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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5) (103/200)
  • 핏줄 (5)2022.02.11.

    <속보! 민국당 국회의원 이치현 구속영장 청구…… 아들 취업 비리 의혹!> -민국당 소속의 2선 국회의원 이치현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국립 외교원 소속의 외교 안보 연구소에 이치현 의원의 아들 이 모 씨의 취업에 대한 압박을 넣은 혐의다. ……. 한편, 민국당에서는 공식적인 의견을 내는 대신 수사를 믿고 기다린다는 방침을 밝혔다. -동면일보 최하림 기자 함께 티타임을 가지던 신혜지는 기사를 보고 낮게 탄식을 흘렸다. “국회의원 구속이라니…… 보통 사안이 아닌가 본데요?” “그렇겠죠. 불체포 특권이 있는데도 영장 청구를 감행할 정도니까.”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는 불체포 특권이라는 면책 특권 중 하나를 가지고 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및 법원이 받아들여 발부하더라도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의 동의 없이는 체포나 구금이 되지 않을 권리. “민국당 내에서도 반대하면 불가능하지 않나요?” “그렇긴 합니다.” 국회의원을 구속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다. 구속 영장이 발부되더라도, 정부에서 수리한 이후 국회에 체포 동의를 요청해야 하고. 만에 하나 국회의장의 동의를 받는다고 한들, 재적 의원의 1/4 이상이 요구하면 즉시 석방할 수 있으니까. 현재 민국당의 의석수는 80석 남짓. 1/4인 75명을 충분히 넘기기에 이치현 의원이 구속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아마 언론플레이용으로 기사를 낸 걸 거야.” “……아!” 실질적으로 이치현 의원을 체포하거나 문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비리와 관련된 문제가 있고, 그게 보통 사안이 아니라는 걸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기사. “그러면 적당히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은 없겠네요?” “전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사건은 단순하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올 것이 온 거죠.” 혀끝으로 씁쓸한 맛이 스쳐지나갔다. 대한당에서 벼르고 벼르다가 이제야 터뜨린 느낌이었으니까. 오래도록 준비한 만큼, 반드시 이치현을 끌어내릴 가능성이 크다. 확실한 건수가 잡혔기에 혹은 그렇게 만들었기에 기사까지 냈겠지.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해야 할 일만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벌써 1시네요. 일 시작할까요?” “예, 비서관님.” 신혜지가 빠져나가고 업무를 준비하려는 찰나.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 강선우 보좌관. 이 사람이 왜?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강선우는 다름 아닌, 이치현 의원실의 보좌관이었으니까. 잠시나마 고민하다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 “네, 최지훈입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의 목소리에선 암담한 기운이 전해져 왔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기사 봤어? 우리 의원님 관련된……. 역시나 그것 때문이었던 모양. “방금 봤습니다.” -그거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혹시 시간 괜찮나? 내가 직접 갈게. “…….” 애써 외면하려 했는데, 차마 상황이 그럴 수가 없다. “오늘 저녁에 뵈시죠. 일 끝나고 여의도에서 봬요.” -그래. 고마워. * * * 여의도의 한 공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린 지 오래 지나지 않아 무거운 걸음을 이끌고 강선우 보좌관이 등장했다. “최 비서관…… 아, 이제 지훈 씨라고 불러야 되나?” 정무 비서관을 뜻하는 게 아닌, 국회의원실에서 썼던 호칭이 입에 익은 거겠지. 당시에도 직급명은 비서관이었으니까. 물론, 지금과는 전혀 다르지만. “아닙니다. 편하게 부르십시오.” “그래. 어쨌든…….” 그는 씁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상황이 꽤나 심각해. 그래서 혹시 아는 게 있나 물어보고 싶어서.” “그 전에 자초지종은 조금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특별할 건 없어.” 강선우 보좌관은 벤치에 털썩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이치현 의원님의 아들이 미국에서 오래 유학 생활을 하다가 왔잖아?” “예, 그렇죠.” 내가 국회에 있던 당시 미국의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를 밟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그 과정이 끝나고 올해 초엔가 귀국했었지. “한 1월쯤이었나, 회식 자리에서 아들이 구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 그런데 한유라 보좌관이 조금 신경 쓰였는지 이것저것 알아봤나 봐. 그래서 이번에 국립 외교부에 소속된 외교안보연구소에서 새로 정원을 늘려서 사람을 뽑는다는 걸 알게 되어서 의원님께 알려줬거든.” 한유라 이야기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의원님도 아들에게 알려줘서 서류를 넣었고, 한국대 외교정치학과 학사에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석사까지 있으니 당연히 합격한 거잖아. 그렇지?” “예. 그 정도 스펙이면 면접에서 무너지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들어가죠.” “그런데 마침 당시 면접관이 민국당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나 봐.” “……설마.” “대한당에선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고, 이게 검찰 수사로 번진 거지.” 답답함에 머리를 쓸어 넘겼다. 강선우 보좌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에 미래 문자를 통해 보았던 내용이 겹쳐 지나갔다. 한유라가 대한당의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받는 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측들이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 나는 갑갑한 마음을 목소리에서 감추고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시려고요?” “당연히 우리 측에서는 청탁을 한 적도 없고, 또 그럴 만한 이유도 없으니 결백하다고 주장할 생각이지.” 그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만, 문제는 우리 의원님의 방식이야. 너무 고지식하셔.” “어떻게 하시기로 하셨는데요?” “찔리는 게 없으니, 구속 수사에 응하겠다고 하시네.” “……예?”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필요가 있나요?” “우리도 똑같은 생각이야. 당연히 반대했지.” 강선우 보좌관은 진력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안 받아들이시더라고. 설득이 안 돼.” 그는 애절한 눈으로 날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솔직히 말해서 너보고 한번 만나 보라고 부탁하고 싶은데…… 너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말은 차마 못하겠다.” 강선우 보좌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상황을 보면, 그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이치현 의원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대한당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혹시 네가 아는 게 있나 물어보고 싶은데…… 굳이 숨겨야 될 사항까지 알려달라는 건 아니야. 말해줄 수 있는 것만. 가능하다면 말이야.” “이 상황에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냉정하게 말했다. “저 또한 어떻게 손쓸 수가 없습니다. 아마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그래?” 그는 씁쓸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쩔 수 없지.” 강선우 보좌관을 코를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다. 갑자기 연락했는데 응해 줘서.” “아닙니다. 제가 평소에 연락 못 드려 죄송하죠.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주세요.” “그래. 고생하고.” 강선우 보좌관은 힘없이 손을 흔들며 휘적휘적 공원을 떠나갔다. 이번엔 아무리 나라도 이치현 의원이 배지를 내려놓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사건에 누가 어떻게 엮여 있는지는 알아볼 필요성이 생겼다. 나는 차에 올라 한남동으로 목적지를 찍고 운전대를 잡았다. * * * “부정청탁을 받았다고 증언할 거야.” 의한회에서 들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애초에 모든 게 설계된 거야. 그 면접관이 하필 걸린 게 아니라, 애초에 그 사람으로 대한당에서 내정한 거였고. 이치현 아들이 지원한 부서의 정원이 한 명 늘어난 것도, 또 이치현 의원에게 그 소식이 전해진 것까지 전부.” 대한당 국회의원 현종성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전체적으로 설계한 건 아마 거기 보좌관일걸?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고 들었어.” 한유라가 단순히 정보 전달자 정도로 움직인 게 아닌 모양. 아주 크게 활약을 한 것 같았다. 아마 작년부터 대한당과 손을 잡았다는 뜻이겠지. “그러면 혹시 내년 공천은…….” 현종성 의원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유라 보좌관 그 친구가 받을 거야. 최 비서관도 같이 일해서 잘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일하기 좋겠네. 게다가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잘 돌아가서 괜찮을 것 같더라고. 전상국 의원님께서는 대변인으로 얼굴 마담 시켜도 괜찮다는 판단을 하셨거든.” 그는 슬쩍 목소리를 낮춰 덧붙였다. “물론, 자기네 의원 뒤통수 치고 들어온 인간이라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이 바닥에선 어지간하면 두 번이나 통수 치긴 힘드니까.” 맞는 말이다. 민국당에서 일하다가 대한당의 공천을 낼름 받아 국회에 입성했는데. 어지간한 계기가 아니면, 민국당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받아줄 리가 없고. 다른 당에서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여하튼 그쪽 공천은 한유라 보좌관이 받는 게 아마 확실할 거야.” 정보를 전해 주고 있는 현종성 의원은 당내에서도 발 빠르고 내부 사정에 빠삭한 걸로 유명한 인물. 아마 해당 내용은 확실하겠지. 이미 당내에서 확정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참, 외부엔 비밀로. 알지?” “그럼요.” 물론, 그렇다고 그가 입 싼 인물은 아니다. 나쯤 되니까 말해 주는 것이지, 어지간하면 비밀로 숨기는 게 보통이다. 정보라는 게 한 번 새어나갔다는 게 밝혀지면, 다시 얻을 수가 없는 게 이 바닥의 룰이니까. 이렇게 조심스레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아마 의한회에 소속된 대한당 의원이라도 극히 소수만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감사합니다.” “최 비서관은 내가 믿고 이야기할 수 있지.” 그는 코를 찡긋했다. 결국 이치현 의원이 아웃되는 건 시간문제. 내가 따로 건들 수가 없다. 이 거대한 흐름을 역류하려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대한당 내에서 고깝게 볼 확률이 높기도 하고. 잘못 나서면 분명 아버지나 고태욱 비서실장 또한 불쾌함을 표할 테니까. 강선우 보좌관에게 말한 대로 이대로 지켜보는 수밖에. “다음에 필요하신 거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저도 아는 선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 좋지.” 현종성 의원은 옆에 있던 샴페인 한 잔을 집어 들며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참, 최 비서관.” “네, 의원님.” “그나저나 요즘 최지곤 의원은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예?” “아무래도 다음 선거는 꽤 빡세게 준비해야 될 것 같은데, 요즘 통 뭐 하고 다니는지 안 보이더라고.” “다음 총선에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 이건 말해 주면 안 되는데…….” 무언가 재미있는 냄새가 폴폴 풍겨온다. 나는 슬쩍 그에게 한 발 더 다가갔다. “제가 입은 또 무겁잖습니까?” “그렇지?” 그는 슬쩍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이건 최지곤 의원한테도 비밀이야.” “그럼요.” 은밀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보다 더욱 작고 낮게. “이번에 내가 우연찮게 알게 됐거든?” “예.” “아무래도 다음 총선에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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