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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2) (100/200)

핏줄 (2)2022.02.08.

-보낸 이: 17 -동영상. 잠깐만. 보낸 이가 17이라고?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네, 도련님.” 마돈나를 뒤로하고 밖으로 자리를 옮겼다. 홀로 앉아 다시금 휴대폰을 바라봤다. 보낸 이가 17이라……. 지금까지 미래 문자는 말 그대로 ‘미래’만 내게 보여 줬다. 앞으로 벌어질 예정의 사건들. 그리고 그 보낸 이의 숫자가 사건이 벌어지는 당시의 내 나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물론, 미래가 아닌, 과거를 보여 주었던 경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딱 한 번. 미래 문자를 받던 초창기에 당시보다 1년 전 사건에 대한 정보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문자가 실제 정보를 알려준다는 확신이 있지 않았던 터라, 적당히 넘어갔었지. 그 뒤로 온 문자는 4년 내내 모두 ‘미래’였다. 그렇기에 그때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보낸 이가 17이라면,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즉 ‘과거’의 이야기임을 뜻하고 있다. 내가 정치에 눈을 뜨기도 전의 과거. 미래 문자는 시점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걸 뜻하는 건가. 온갖 고민 속에서 우선 미래 문자로 도착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화면이 밝혀지자,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어떤 이의 뒷모습. 새벽녘. 별이 보이지 않는 도심의 벤치에서 한 남자가 의자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는 배경으로 보아, 한국은 아니었다. 아마 유럽으로 추정되는 모습. 그리고 몇 분 뒤.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성 하나가 근처로 다가와 앉으며 입을 열었다. -Die Sterne blenden. 유창한 독일어가 귀에 파고들었다.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단어를 떠올리면, 대충 별이 빛난다는 말로 기억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늦게 오셨네요. 먼저 앉아 있던 남성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위의 독일어가 접선 암호 비슷한 것이었던 모양. 둘은 대화를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순간. “허허…….” 내 입가에선 오묘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문종이다. 성태현의 아들이자. 만세당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키는 성문종. 보낸 이가 17인 걸 생각하면,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즉 성문종이 28살로 해외 유학을 하던 시절이다. 늦게 등장한 인물은. -미안합니다. 오다가 검문이 있어서. 한국에서 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물건은 가져 왔습니까? 북한 말. 틀림없이 명확한 북한 사투리다. 정체가 뭐지? 성문종은 들고 있던 햄버거 브랜드 마크가 찍혀있는 테이크아웃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북한 남자는 그것을 받아 슬쩍 열어 내부를 확인했다. 내부엔 햄버거와 콜라 사이에 담배 케이스가 들어있는 게 화면으로 보였다. 북한 남자는 흡족스럽게 웃음을 흘리며 봉투를 다시 닫아 봉인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두툼한 누런색 봉투를 꺼내 성문종에게 건넸다. 그는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안주머니에 넣었지만,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돈이다. 게다가 저 정도 두께면 소액이 아닐 터. -그분께서도 좋아하실 겁니다. -동지께서는 늘 만족하십니다. 그 말을 끝으로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이거 아무래도……. 단순히 담배 케이스가 아닌 것 같았다. 대마. 대마초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애초에 독일에서는 대마가 합법이기도 하고, 담배 케이스에 담길 만한 물건은 흔치 않으니까. “허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단순히 대마를 했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흠을 잡으려면 잡을 수 있으나, 너무나도 오래 전의 일이기에 증거를 찾기도 힘들고. 법적으로 따지면, 한국인이 해외에서 마약을 한 건 불법이나. 공소시효도 이미 지난 지 오래되었고 또 젊은 날의 일탈 정도로 치부될 수 있으니까. 문제는 따로 있다. 그가 북한과 접촉을 했다는 사실. 분명 둘이 대화하는 걸 미루어보아, 북한 남자는 높은 신분의 수행원일 가능성이 크다. 성문종은 독일에서 유학 후 미국의 하버드로 진학했다. 현재 북한의 국가원수이자, 수령 ‘김정무’ 또한 독일에서 유학 후 미국의 동부 8개 대학 중 하나를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시기는 성문종이 유학을 했던 시절과 겹치기도 하고. 그저 대마를 주고받은 게 전부가 아니라. 대마를 같이 말아 피운 사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무엇보다 만세당 측 자체가 극단적 진보 성향을 갖고 있어 ‘사회주의’에 가까운 색깔을 띠고 있는데. 만세당의 대표 인물격인 성문종이 북한의 김정무 국방위원장과 접촉을 했다면, 위험성이 더욱 커지는 법이니까. 이거 아무래도 성문종을 막아야 할 이유가 더 늘어났다. 만에 하나 그가 속된 말로 빨갱이일 경우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전복될 위험성까지 생기는 법이니까. 나는 곧장 내부로 돌아와 마돈나를 불렀다. “지현 씨.” “예, 도련님.” “성문종의 유학 시절에 대해 한 번 조사해 주세요.” “오래 전 일이라, 자료가 많진 않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그의 주변인들 중심으로 조사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 * * “흐으음.”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잔을 채웠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10여 분 가까이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성문종이 북한 국가원수와 가까운 사이였을 줄이야. 마돈나가 빠르게 자료를 뒤지고 있었지만, 아마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해외 자료에다가 시간이 오래 지났기도 하고. 북한의 특성상, 국가원수의 자료는 최대한 파기하기 때문에 김정무와 관련된 자료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마돈나가 구할 수 없다면, 성문종이 김정무와 직접 접촉했거나 가까운 사이였을 가능성까지 있다고 봐야지. 오래지 않아.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는 성문종이 들어왔다. 175cm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적당히 풍채는 있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한 것 같지는 않은 몸. 통통한 얼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이다. 그렇기에 젊은이들이 호감을 가지는 것이겠지.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네요. 성문종입니다.” “최지훈입니다.” 우리는 가볍게 서로 손을 맞잡았다. “제가 늦었나요?” “아닙니다. 앉으시죠.” 우리는 가벼운 술상 차림을 두고 마주앉았다. 그는 멋쩍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뵙는 게 조금 어색하긴 하죠?”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성 위원님께서 먼저 연락하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요.” “저 또한 제가 연락드릴 줄은 몰랐습니다. 하핫.” 그도 그럴 것이 성태현 전 대통령과 아버지 사이의 악연으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성’ 씨 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였으니까. 까놓고 말해서 아버지는 색안경을 벗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성’ 씨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은 짙으시다. 그래서 아버지의 최측근 인물 중에 ‘원주 성 씨’는 한 명도 없기도 하고. “한 잔 받으시죠.” “예.” 성문종은 사람 좋게 웃으며 내 술잔을 채워 주었다. “갑자기 연락해서 놀라셨죠?” 나는 대답 대신 콧잔등을 들썩이며 웃음을 지었다. “한 번 뵙고 싶었는데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전화 드렸습니다.” 사실, 정치를 하다 보니, 나에게도 스킬은 생겼다. 신변잡기를 하려면 몇 시간이고 할 수 있다는 것. 허울 좋고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루 종일 할 수도 있지만, 성문종과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단순히 접촉한 거라면, 그의 본심을 떠보기 위해 그럴 용의가 있었지만. 미래 문자를 통해 경계심이 짙어진 만큼, 오랜 시간 함께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서론을 끝냈다. “혹시 무슨 일 때문에 뵙자고 하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특별히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성문종은 천천히 말을 늘였다. “직접 뵙고 대화를 좀 나눠 보고 싶어서요.” “그렇습니까?” 나는 탐탁지 않게 대답하며 술을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제야 성문종도 오래 끌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조선시대 아니고, 대한민국에 연좌제라는 건 없지 않습니까?” 연좌제. 특정 인물에 대한 범죄의 형사 책임을 그 가족에게 지우는 것. 사실, 연좌제라는 게 대한민국에 없었던 건 아니다. 박정희 정권에 부활하였다가 최규하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80년 8월 1일에서야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니까. “그 이야기는 왜 꺼내시는지요?” “각하를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최 씨 집안을 탓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고요.” 그는 오해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조상 일은 조상의 일로 끝내고, 저희 세대까지 끌고 올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성문종은 눈썹을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각하와 저희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일을 모른 척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저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묻어두자는 거죠. 우리 세대까지 끌고 올 필요는 없잖습니까?” 좋게 포장하고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과거는 잊고 새 출발을 하자는 뜻이지. “글쎄요.” 나는 천천히 턱을 매만졌다. “저는 그럴 수 있다고는 하나, 저희 가족들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거든요.” 물론, 나 또한 그럴 생각은 없다. “그 걱정은 이해합니다.” 성문종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마냥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죠.” 그는 내게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최 비서관님께서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으신 분 아닙니까?” 역시 보통 놈은 아니다. 그리고 굉장히 의뭉스럽다. 그저 나와 손잡기 위해서 접촉한 건 아닐 터. 아직까지 속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이걸 물어보죠.” 나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입을 열었다. “왜 접니까?”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봤다. “다른 형제들도 있는데 왜 저한테 연락하셨죠?” 최지만이나 최지원에게 접촉했을 리는 없다. 그 인간들의 성향을 미루어보아, 만에 하나 그랬다면, 진즉에 고태욱 비서실장의 귀에도 들어갔겠지. “열려 있으신 분이라 들었습니다.” 성문종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닫혀 있는 다른 형제분들과 달리, 최 비서관님은 생각이 열려 있고 또 그렇기에 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대한당 하나만 보고 자라온 다른 형제들과 달리, 나는 의한회 활동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의한회에 만세당 의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들 중 하나가 성문종의 측근이라면 그 사실이 전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기도 하고. 다만, 꺼림칙한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허나, 그걸 지금 당장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제가 다른 형제들과 다르긴 하죠.” 미소 짓는 가면을 쓰고 술병을 들었다. “그런 의미로 한 잔 받으시죠.” “좋습니다.” 성문종은 흡족스레 웃으며 잔을 들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녀석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더 알아봐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떨쳐낼 게 아니라, 조금 더 성문종에 대해 파악할 필요성이 있을 터. 그는 술잔을 비우고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최 비서관님이랑 술 한잔하니 좋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여의도에서는…….” 술자리가 길어지는 동안 느낀 그에 대해 느낀 감상은 하나였다. 음흉하다. 대화하면 할수록 더 음흉하고 의뭉스러웠다. 가식적인 자식.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 걸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녀석에 대해 하나씩 까발려 봐야만 할 필요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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