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오르려는 녀석들은 (3)2022.02.04.
“안녕하십니까, 최 비서관님.” 서울시장 권한대행 박병환은 깍듯하게 허리를 접으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부시장님.” 나 또한 꾸벅 고개를 숙이며 그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래. 이렇게 나오는 게 정상이지.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되는데, 워낙 경황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갑자기 서울시장이 되셨는데 충분히 당황스러우셨을 법합니다.” 정춘식의 사망으로 기존에 서울부시장이었던 박병환이 현재는 서울시장 권한대행 자리를 맡고 있는 상태.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 네. 방금 막 먹고 왔습니다. 요 앞에 김치찌개 집 괜찮던데요.” “그 ‘최가네 김치찌개’ 가셨습니까?” “유명한 곳입니까?” “예. 시청 근처에 있는 한식집 중에서 제일 괜찮습니다.” “이름이 정감이 가서 갔는데, 잘 골랐나 보네요.” 간단한 신변잡기를 하는 사이, 여비서가 커피 두 잔을 가져다주었다. “잘 마실게요.” 그녀가 생긋 눈웃음을 지으며 빠져나가는 것을 신호로 우리는 자연스레 본론으로 들어갔다. “바쁘신데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비서관님이 직접 방문까지 해 주시는데 없는 시간도 당연히 내야죠.” “다름이 아니고 하나 보여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우선은…….” 나는 품에서 사진 한 장을 테이블에 올려 스윽 밀었다. 용산구청장, 서울부시장이었던 박병환 그리고 대현 건설 사장까지 셋이서 만나는 모습을 찍어 놓은 사진. “이건…….” 그것을 확인한 박병환 권한대행은 당황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단순히 추측성 자료는 아닙니다.” 마돈나가 직접 룸살롱에 가서 접대를 하며 브로치로 위장한 카메라로 찍어 온 동영상이 남아 있으니까. 방금 건넨 사진도 그 동영상 중 일부를 캡처한 것이기도 하고. “완공된 한남타운 관련해서 세 분이서 서로 접대를 하고 오래도록 만남을 가져 왔다는 확실한 증거도 가지고 있습니다.” “……흠흠.”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변명 섞인 어조로 말했다. “당시엔 제가 조금 어리석었던 것 같습니다. 혹시 어떤 경로로 입수하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괜찮습니다, 부시장님.” 나는 능청스레 코를 찡긋하며 말했다. “이걸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요.” “부탁이요?” 박병환 권한대행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떤 건지 들어봐도 될까요?” “내년에 열리는 서울시 비엔날레 건에 대해 아십니까?” “대충 보고는 받았습니다.” “JK그룹에 대해 굉장한 특혜가 주어지고 있더라고요.”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다만, 전임 서울시장이셨던 한중현 장관님이 근무할 때 처리가 된 거라, 따로 손대기가 어렵더라고요.” 박병환은 턱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저 또한 한중현 장관님 덕분에 지금 이 권한대행 자리도 하고 있는 거라…….” 그는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 덧붙였다. “물론, 비서관님을 무시한다거나 이 자료를 가벼이 보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 입장이 그렇다는 걸 조금 고려해 주십사…….” 박병환 권한대행은 말하면서도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한남타운 건이 터지는 순간, 자신의 모가지가 날아간다는 건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으니까. 다만, 실제로 그가 서울부시장 자리에 앉았던 것도. 또 짧은 기간이나마 권한대행으로 서울시장 자리를 역임할 수 있는 것도 한중현 덕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여기서 JK그룹을 공격하는 건 한중현에 대한 반항이라고 느껴질 수 있으니까.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어디까지나 힘으로 압박하는 건 한계가 있는 법. “부시장님.” “예, 비서관님.” “저 한 번 보시죠.” 그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고, 나는 똑바로 눈을 마주봤다. “서울시장 권한대행 길어야 1년인 거 아시죠?” 보결로 인한 보궐 선거는 6월 지방 선거보다 빠른 4월에 펼쳐지게 된다. 어느새 7월이 된 마당에 그의 임기는 이제 겨우 9개월 남은 셈이지. “임기 끝나면 정계 은퇴하실 겁니까?” “…….” 현 상황에서는 그에게 딱히 묘수가 없을 터. 박병환의 정확한 직위 명칭은 ‘행정1부시장.’ 그 자리는 선거를 통해서 당선되는 자리가 아니라, 임명을 받아 올라가는 직위다. 다시 말해 그에게 선거 경험은 전무했고.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되어버린 만큼, 공무원으로 더 올라갈 만한 자리는 대한민국에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 그가 청와대로 들어올 만한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부시장님 이제 겨우 58세십니다. 정치인으로서는 한창인 나이죠. 벌써 은퇴하시긴 이르잖습니까?” “저는 정치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정년이 가깝긴 하지만…….” “아쉽지 않으십니까?” 내 물음에 박병환 권한대행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서울은 무리일지라도 지방 같은 곳 가서 군수라도 하시면서 떵떵거리면서 사셔야죠.” “…….”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한당에 충성하긴 했지만, 저 같은 일개 공무원들에게 공천은 하늘의 별따기더라고요.” 서울시장이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권한대행이라고 했어도, 정치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이상, 일개 구청장 자리도 얻는 게 쉽지 않으니까. “제가 도와드릴 순 있습니다.” 순간, 한참을 저어하던 박병환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정치판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압도적인 힘으로 굴복시키거나. 둘째, 채찍과 당근을 잘 배합해서 사용하거나. 첫째의 경우로 꺾이지 않는 대나무들도 둘째의 방법으로는 갈대처럼 넘어오는 게 대부분이다. 정치인들에게는 누구나 ‘욕망’과 ‘야망’이 있는 법이니까 힘으로 압박을 하면서 원하는 걸 손에 쥐여 주는 것이야 말로, 이 정치판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루트지. “제가 도와드리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여쭤 봐도 됩니까?” “우선 약속해 주시면 말씀드리죠.” “…….”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공천은 확실하게 받을 수 있는 겁니까?” “100%라고 장담은 못 드립니다.” “알고 있습니다. 정치판에서 100%는 없으니까요.” “다만, 가능성은 굉장히 높아지겠죠. 지금 기껏해야 1% 미만인데, 최소한 5할, 아니…… 6할 이상은 가능할 겁니다.” 공천 받을 확률이 그 정도라면 굉장히 높은 수치다. 눈이 안 돌아갈 수가 없지. “그러면 만약에.” 박병환 권한대행은 조심스레.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제가 이걸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저는 터뜨리는 수밖에 없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뒤 그림은 상상이 가시죠?” “…….” “살면서 최고의…… 아니, 아마 유일할 수 있는 최고 권력인 서울시장 권한대행이라는 자리에서 한 달 만에 쫓겨나실 겁니다. 국민들 구설수에 몇 년을 오르내리실 거고요. 그게 전부입니다. 아, 징역 몇 년도 추가될 수 있겠네요.”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더 몰아붙였다. “요즘 사건이 많아서 뇌물죄 형량 센 거 아시죠? 5년 이하 징역인데, 집행유예는 거의 안 뜨는 추세니까 한 3년 정도 사시면 되겠네요.” 박병환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선택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그리시거나, 아니면 그 알량한 의리와 충성심 지키기 위해 징역 가시거나.” 그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는 그저.” 박병환을 향해 슬쩍 손을 내밀었다. “잡으시면 돼요.” 그는 더 고민하지 않았다. 내 손에 묵직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하죠.” 박병환이 내 손을 맞잡았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정치라는 게 참 단순하다. 약점만 쥐고 흔들면 단기적인 효과는 있지만, 반감은 커진다. 허나, 이처럼 채찍을 빙자한 협박과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여 주면, 넘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나는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오늘이 화요일이네요.” “……예?” “오늘 끝나고 약속 있으십니까?” “서초구청장이랑 저녁 식사 자리가 있긴 한데…….” “중요한 건은 아니죠?” “취소하겠습니다.” “예. 오늘 저녁에 한남동에서 보시죠.” 나는 싱긋 웃으며 서울시장실을 빠져나왔다. * * * “간만에 왔네, 최 비서관.” “하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내가 있는 곳은 의한회. “그래. 요즘 정무수석실은 어때?” “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이제야 좀 사람 사는 느낌이에요.” “하하하. 청와대가 진짜 고생이 많아.” “어유, 아닙니다. 의원님만 하겠습니까? 요즘 주변 의원님들 전부 지역구 살피느라 바쁘시더라고요.” “그래. 아니, 무슨 우리 지역구민들은 입만 쩍 벌리고 먹이 달라고 난리라니까. 내가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야? 허구한 날 지원금 달라고 아우성이니, 원……. 별의 별 명목을 다 붙이는데, 어휴. 답도 없어.” “그게 또 표심을 잡는 방법 아니겠습니까?” “그건 또 그렇긴 하지.” 지방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의원은 클클대며 물었다. “최 비서관은 요즘 어떤 사건에 관심 갖고 있나?” “아, 내년에 있는 서울 비엔날레를 조금 유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거 JK그룹에서 하는 거 아니야?” “예, 맞습니다. JK컬처가 후원사라서 법적인 문제는 없는데, 너무 사업적으로 가는 것 같더라고요.” “에헤이, 그러면 안 되지.” 의원은 정의로운 가면을 쓰고 말했다. “예술적 행사는 예술이 중시가 되어야지, 어찌 사업이 앞서면 되나?” “맞습니다.” “예술은 말이야…….” 그는 예술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뒤에야 슬쩍 목소리를 낮추며 본론을 꺼냈다. “JK그룹 그놈들 좀 어떻게 잘 처리해 봐. 예전보다…….” 그는 슬쩍 주머니를 벌리며 말했다. “이게 좀 적더라고. 최근 들어 만세당 쪽으로 세게 미는 것 같은데…… 영 마음에 안 든다니까.” 역시나 본론은 돈 때문이었던 모양. “한 번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 최 비서관이 또 이런 건 잘 처리하잖아?” 의원은 흡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었다. “도의적 명분도 생겼겠다, 한 번 밀어 버려.” 나는 대답 대신 찡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의원님, 저 잠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괜찮다고 손짓했다. “가 봐. 전화 받아야지.”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따가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나는 출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전화를 받았다. 발신인은 서울부시장 박병환. “네, 최지훈입니다.” -주소 찍어 주신 곳으로 왔는데…… 앞이 완전히 막혀 있어서요. “그 앞에 경비원 하나 있죠?” -예. “잠깐 바꿔 주십시오.” 휴대폰 너머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바꿨습니다. “나야, 최지훈. 부시장님 안으로 들여보내도록 해.”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박병환은 휘둥그레진 눈을 주체하지 못한 채 꿈뻑거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아, 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뒤를 따라왔다. “한남동이라고 하시기에 한남타운과 관련된 건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금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아주 화려한 역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치의 숨 쉬는 역사들이 모여 있었으니까. 나 또한 이곳을 처음 보았을 때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는데. 하물며 박병환이라고는 안 그렇겠는가? 꿀꺽. 박병환은 어찌나 짜릿한지 주먹까지 부르르 떨며 나를 돌아보았다. “비서관님!” 그에겐 ‘신세계’일 테지. “제가 어떤 걸 하면 되겠습니까?” 그는 긴장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단한 겁니다. 서울시 조례 하나만 만들어주시면 되는데…….” 말을 잇는 대신 박병환의 팔을 잡고 안으로 안내했다. “그건 천천히 이야기하시죠. 우선 소개부터 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의한회 안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