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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오르려는 녀석들은 (2) (95/200)
  • 기어오르려는 녀석들은 (2)2022.02.03.

    “JK컬처 사무실?” 마돈나의 말에 나는 다시금 되물었다. “지금 나보고 거기로 오라고?” “예.” 마돈나는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저희 쪽에서 먼저 장소를 제안했으나, 바쁘다며 거절했습니다.” 바쁘다라……. 참 오묘한 말이다. “그래서 JK컬처 사무실로 와 달라고?” “와 달라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오지 않으면 만나 주지 않는다는 뉘앙스였습니다.” “허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디 재벌 3세 새끼가 건방지게 오라가라야? “JK쪽이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나?” “그건 아닙니다.” 내 기억에도 그렇다. JK그룹이 親 만세당이긴 하나, 대한당과 민국당에도 늘 적지 않은 돈을 뿌려 왔다. 사실, JK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재벌들이 그렇다. 너무 특정한 곳으로 치우치면 다른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한쪽으로 라인을 타긴 하더라도, 두루두루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하니까. 그런데 지금 JK컬처의 우현중 본부장 저 인간은 기존 재벌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마 우현중 본부장이 성문종과 꽤 친분이 깊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입가엔 조소가 터져 나왔다. 성문종이라……. 만세당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키는 후보. 성태현의 아들이자, 우리 최 씨 집안과 상극인 인물. “뭐가 있어서 믿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정치를 덜 배운 것 같은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하긴, 그런 정신머리니 재벌급이나 되는 인간이 일개 연예인 스폰서나 하고 있지.” “어떻게 답변할까요? 거절하고 다시 불러 볼까요?” “아니, 됐어.”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가 직접 간다고 그래.” 주먹을 꽉 쥐었다. “기어오르려는 녀석들은 초장부터 짓밟아 줘야 후일이 편하거든.” * * *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현중 본부장과 약속을 잡고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은 명부를 확인한 후, 조심스레 물었다. “성함이…….” “최지훈입니다.” “아,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가명을 대지 않고 본명을 댔다. 무슨 이름을 대도 출입하는 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후일 명단을 보았을 때 단순히 가명이 적혀 있는 것보다는 내 이름 ‘최지훈’ 석 자가 그의 입장에선 더 인상적일 테니까. 간부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본부장실에 도착했다. 똑똑. “본부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여비서의 노크소리 직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여직원은 내게 꾸벅 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정장을 빳빳하게 내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본부장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넓었다. 재벌 3세라고 한들, 본부장급이면 직원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화려하지 않게 만드는데 그와는 상반되는 모습. 하나 더 문제가 있다면. “오셨습니까?” 우현중 저 인간은 일어날 생각조차 않고 앉은 채 나를 반긴다는 것. “앉으시죠.” 약속 잡는 것부터 달갑지 않더라니만, 이거 미팅 꼴이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바쁜 척 펜을 굴리던 그는 내가 소파에 앉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가오더니. 보통 맞은편에 앉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상석에 앉았다. 그것도 모자라.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되바라진 목소리와 함께 다리를 꼬며 물었다. 이젠 기가 차다 못해 귀여울 지경. 그래. 이 정도면 한 번 해 보자는 거지? 먼저 호의를 보여 주었음에도 이렇게 나오면, 나도 좋게 나갈 필요 없지. “내년에 개최될 서울 비엔날레 건에 대해선 알고 계시죠?” “당연하죠.” 그는 한쪽 입꼬리만 비틀며 말했다. “제가 JK컬처 본부장인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비꼬는 말투에 심기가 불편했지만, 모르는 척 말했다. “상당히 문제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아, 그렇습니까?” 우현중 본부장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떤 점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건지 말씀해 주시면 한 번 참고는 해 보겠습니다.” 이건 젊다고 패기를 부리는 게 아니다. 그저 객기. 재벌가에서 장남으로 살아와 오만방자함이 몸에 배어 거만한 것이다. “그걸 제가 입으로 말해야 되겠습니까?” “아, 저는 잘 모르겠어서 여쭙는 겁니다.” 그는 태연한 척 되물었다. “사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진즉에 태클이 걸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미 전임 서울시장께서 OK를 하셨네요. 비엔날레 진흥 위원회도 발기가 되었고요.” 딱 그 모습이다. 법정에서 범죄가 확실한 용의자가 증거가 없다며 오리발을 내빼는 모습. 이야, 이 자식 생각보다 더 신기한 놈이었네. “이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나는 비엔날레 관련 서류를 테이블에 툭 던지며 말했다. “대놓고 JK컬처 밀어주기 사업인데요.” “에이, 후원사니까요. 당연히 저희 JK컬처에서 돈을 댔으니 협찬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대가 아니겠습니까?” 말문이 턱 막혔다. JK그룹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런 놈이 후계자라니…… 아무래도 JK그룹이 몰락하는 미래가 뻔히 그려졌다. 여차하면 그의 스폰서 이야기도 꺼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꺼낼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 말해 봐야 미리 언질해 주는 꼴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이런 녀석들은 적당히 대화로 끝내는 게 불가능하다. 직접 눈앞에서 손에 쇠고랑이 채워져 봐야 정신을 차릴 테지. “됐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느껴졌기 때문. “아이, 오자마자 가시려고요?” 그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시지.” 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랑 대화하실 준비가 안 되신 것 같아서요.” “예. 조금 급하게 약속을 잡힌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귀를 후비는 우현중을 향해 목소리를 굳히고 말했다. “조만간 다시 한 번 뵈어야 될 것 같네요.” “왜요?” 그때, 우현중이 가증스레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이거 안 들어주면 혹시 저도 정춘식처럼 죽는 건가요? 뭐, 충분히 무서울 만한 상황이긴 하네요.” 하. 신사답게 마무리하려고 했더니, 결국 선을 넘고 말았다. 보자보자 하니까 얻어온 장 한 번 더 뜬다더니. 나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그를 되돌아봤다. “우현중 씨.” “네?” “좋게 말해 줬더니 내가 참새 X으로 보이십니까?” “에헤이, 제가 언제 그랬다고. 화내지 마십시오.” 정색을 해도 그는 굴하지 않겠다는 듯 오히려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아, 혹시 제가 안 챙겨 드려서 그런가? 요즘 만세당이랑 가깝게 지낸다고 삐지신 건가 싶네요.”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말을 내뱉었다. “성문종이랑 허물없이 지낸다더니 저에 대한 열등감이 같이 물들었나 보네요.” “…….” 우현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에도 지지 않겠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뒷조사까지 하고 다니실 정도면 꽤나 견제가 되나 봅니다.” “조사하고 말고 할 게 있습니까, 세상 천지에 다 퍼져 있는데 모르는 게 병신이죠. 혹시 당사자들만 모르고 계셨나?”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처음부터 시비를 걸은 건 그쪽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기에 당연히 막 나가자는 줄 알았는데…… 그저 재벌 3세의 이기적인 오만함이었나 보네요.” “…….” “하나만 물어봅시다.” 나는 우현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믿는 구석 있어요?” “뭐요?” “나한테 이렇게 대하면, 처음인 줄 알고 당황하거나 놀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죠?” “…….”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네. 성문종이랑 해외 유학하다가 만났다고 들었는데, 같이 대마를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헤까닥 돌은 건가?”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우현중은 곧장 수화기를 들었다. “한 비서. 손님 나가신다.” 그는 여전히 상석에 앉은 채 눈을 치켜떴다. 나는 우현중을 향해 조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아무래도 성문종과 함께 오래도록 같이 지내다 보니, 그저 한만 사무쳤을 뿐.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 최 씨 가문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잊은 모양. 이 대화를 JK그룹 총수가 직접 듣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참 궁금한데 말이야. 때마침 비서가 문을 열었고, 나는 잡지 말라는 의미로 손짓을 하며 홀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차분하게 머릿속에 생각이 하나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짓밟아 줘야 할까. 어떤 식으로 저 콧대를 꺾어 줘야 잘했다고 칭찬받을까. 한창 고민을 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지이잉-. 오성복 검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낮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연락하지 않을 텐데. “네, 최지훈입니다.” 통화가 되기 무섭게 염려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카, JK컬처랑 무슨 일 있어? “……예?” -아니, 지금 서울중앙지검에 제보가 하나 들어왔네. 청와대 정무수석실 직원이 JK그룹과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는데, 뇌물 수수 정황이 의심된다고. 순식간에 얼굴이 굳었다. -임지현 씨한테 물어보니까 오늘 조카가 JK컬처 갔다고 하길래 혹시나 해서. “단순한 만남이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일단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알았어. 퇴근하고 지현 씨 사무실로 갈 테니까 그때 한 번 더 이야기하자고. “예.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차에 탑승했다. 그러자, 참고 있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핫!” 그래. 이래야 재밌지. 검찰에 제보한 건 그룹의 일개 직원 따위가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았기에 얼굴을 알아본 건 비서실이나 프론트 직원이 전부. 허나, 회사가 흔들려 봤자 비서실 직원들의 손해기도 하고, 프론트 직원은 이렇게나 빠르게 검찰에 직접 제보할 루트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우현중 본부장 그 자식이 직접 제보한 것이다. 뻔하다. 본인이 조금 귀찮아지더라도, 나를 엿 먹이려는 것이지. 사실, 재벌 측에서는 정치인들과 엮이는 게 한두 번이 아니기도 하고, 엮여 봤자 뇌물 공여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나올 가능성은 없기에 늘 증거불충분으로 종결되는 일이 대다수. 허나, 정치인들은 다르다. 국민의 신뢰를 먹고 사는 직업인 만큼, 한 번 엮이면 굉장히 악영향이 미칠 수밖에. 특히나 대통령 아들로서 이름이 알려진 나라면 더욱더. 재미있다. 아주 재미있어. 그래. 어중간하게 등 뒤에서 칼 꽂는 것보단, 이렇게 대놓고 적대시하는 녀석들이 상대하기 편하지. 첫 만남부터 아주 강렬한 인상이 박혔다. 다음에 만날 때도 어디 이번만큼 건방진 태도를 취할 수 있나 보자고. 그 도도한 콧대를 부러뜨리는 건 물론, 무릎을 꺾어 버릴 테니까. 손이 파리가 되도록 싹싹 빌다 못해 문드러지게 만들어 주지. 차의 시동을 걸며 휴대폰을 들어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 부시장님.” 서울부시장이자, 現 서울시장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박병환. “빠른 시일 내로 한 번 뵈었으면 좋겠는데, 언제가 괜찮겠습니까?” 아이가 잘못 된 게 있으면 그 꼬마를 꾸짖는 게 아니라, 부모를 혼내야 한다. 그래야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긴히 드릴 말씀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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