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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6) (93/200)
  • 혼돈 (6)2022.02.01.

    “서울시장이라…….” 피식 조소가 흘러나왔다. 이제 겨우 24살이다. 내년 보궐 선거철이 된다고 한들, 25세. 그런데 법 개정을 통해 피선거인 제한 연령을 낮추고 공천까지 해 준다며 서울시장에 나가 달라고 부탁을 받을 줄이야. 웃음이 날 일이다. 물론, 가문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내 능력이 아니었다면 절대 그럴 수 없었을 테니까. 사실, 서울시장이라는 커리어는 굉장한 메리트가 있음에 틀림없다. 허나, 쉽게 민국당의 제안을 받을 수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저번 달에 있었던 지방 선거에서 파국이 있었던 탓. 민국당의 당선인은 사고를 빙자해 사망당했고. 대통령의 두 아들은 피 터지게 싸우다가 낙선했다. 다음 보궐 선거까지는 1년. 지금부터 민국당의 공천을 확정해 세력을 쌓는다면, 결코 짧지 않은 시기다. 세력을 모으기엔 충분하겠지. 무엇보다 의한회의 도움까지 받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고. 분명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다. 승리 확률은 5할. 높으면 6할까지도 잡을 만하지. 허나, 대한당이 아닌, 민국당이기에 위험 부담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죽으나 사나 최준석 대통령과 함께 가야 하는 만큼, 최 씨 집안을 외면할 수 없는 대한당과 달리. 민국당은 얼마든지 나를 내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갈아탈 수 있는 게 바로 야당이니까. 물론, 그렇기에 그쪽에서도 내게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일 테지.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모를까, 패배할 경우엔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어진다. 아니, 아버지께서 나를 경멸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지.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기에 굳이 위험 부담을 안아 가며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일을 할 필요는 없지. 분명 좋은 기회는 맞다. 하이 리턴을 위해서는 하이 리스크를 지는 게 맞지만, 그 리스크로 내 정치 인생을 걸어야 한다면, 지양하는 게 맞다. 승부수를 걸기엔 아직 너무나도 미래가 창창하니까. 특히나 정치판에서는 더욱더 그렇지. 물론, 바로 그렇게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상황을 따져 봤을 때, 내게 최선으로 이끄는 게 진짜 정치의 기술이니까.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두 형제의 미래 계획이 어떤 것이냐는 사실. 우선, 두 형을 만나 볼 필요성이 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먼저 둘째 형 최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조만간 식사 한 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언제가 괜찮아?” * * * 여의도의 한 사무실. “형.” “왔어?” 둘째 최지원은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반겼다. “이쪽으로 앉아.” “응.” 문이 닫히기 전, 그는 밖에 있는 여직원에게 말했다. “따뜻한 녹차 두 잔만 줘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최지원과 가볍게 손을 맞잡은 뒤, 자리에 앉았다. “근무 시간에 형이 판사복 안 입은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또 그러네.” “사무실도 깔끔하고 좋네.” “저건 기억 나?” 최지원의 사무실 한쪽 구석에 있는 화분을 가리켰다. “네가 준 건데.” “당연히 알지.” 내가 직접 선별해서 보낸 것이니까. 잠시 후, 최지원은 여직원이 가져다 준 녹차를 내게 건네며 물었다. “그나저나 여기까진 무슨 일이야?” “우리 실장님…… 그러니까 정무수석님께서 한 번 들러 보라고 하시더라고.” “아, 그럴 만하지.” 그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요즘 상황이 상황이니까.”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정무수석에게는 내가 자발적으로 만나러 간다고 했으니까. “정무수석께서도 꽤 난감하실 거야.” “그렇지. 아버지 최측근이니까.” 오지태 정무수석은 현 정권의 3인자. 고태욱 비서실장 다음 가는 인물인 만큼, 지난 지방 선거 결과와 내년의 보궐선거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슬쩍 몸을 기울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년에 어떻게 할 거야?” “보궐선거 말하는 거지?” “응.” 최지원의 눈에 장난기 짙은 야욕이 서렸다. “공식적으로 대답해 줘? 아니면 형제로서?” “두 답변이 달라?” “비슷하긴 해.” “둘 다 알려 줘.” “우선 공식적인 답변이라면.” 그의 입꼬리가 옅게 휘었다. “출마하진 않을 거야.” “안 한다고?”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이렇게나 쉽게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할 줄은 몰랐는데. “왜?” “생각해 봐. 지만이 형이 내년에 어떻게 할 것 같아?” “첫째 형은 출마하겠지. 뒤가 없잖아.” “그래. 뻔한 상황이잖아. 그런데 여기서 내가 다시 출마하면 어떻게 되겠어?” “……아.” 그러면 대충 최지원의 심정은 이해가 갔다. 이미 뒤가 없어진 최지만에겐 선택지가 없다. 무조건 다시 출마를 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만약 최지원이 또 한 번 출마를 선언하면, 대한당의 공천은 그가 받게 되겠지. 하지만 최지만은 이번에도 사퇴를 하지 않을 테고, 또 표를 갈라먹을 터. 그런데 이 상황에서 민국당은 어떻게든 다음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재를 찾고 있다. 심지어 나한테 공천까지 해 주겠다며 접근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렇게 다시금 삼파전이 펼쳐진다면, 최지원 한 명뿐만이 아니라, 대한당 전체에게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될 터. 최지원이 또 출마하게 되면, 결국 개싸움이 된다는 뜻이지. 만에 운 좋게 하나 승리하더라도 아버지가 좋게 볼 수가 없을 터. 이미 한 번 선거를 조져서 서울시장 당선인이었던 정춘식이 죽고서야 겨우 원상 복귀되었는데, 또 똑같은 일을 벌어지면 아버지가 굉장히 실망하실 테니까.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거야.” “그렇겠네.” 나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그러면 공식적으로는 출마하지 않는 거고…….”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너 믿어도 되지?” 그는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당연하지. 어디 가서 내가 입 가볍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 “믿으니까 말해 주는 거야.” 최지원은 차갑게 눈을 식히며 말했다. “선거에 나가 볼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면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아?” 당선이 된다면 몰라도, 실패했을 경우면 최지만과 본인 모두 끝장이다. “대신 하나는 확실해지거든.” 그는 말을 잇는 대신 사악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꿀꺽. 나도 모르게 목울대가 울렁였다. 최지원 이 인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다. 어렸을 적, 최지성에게 들었던 적이 있다. 둘째 최지원은 사회 부적응 판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자료는 폐기했고, 그 결과는 외부로 절대 새어나가진 않았지만, 가족이었던 최지성은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그걸 현대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소시오패스.’ 단순히 소시오패스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도 간혹 보이곤 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소름이 돋을 지경. 사실, 최지원이 출마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간다. 최지만은 대한당의 공천을 받을 테고, 민국당 후보로 누가 나오든 간에 큰 이변이 없다면 당선이 되겠지. 허나, 최지원이 출마를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결과가 어떻든 최지만은 승리를 할 수 없는 구조. 대한당 공천은 최지원이 받게 되고. 최지만이 아무리 승리하고 싶어도 그간 해 온 역사가 있기에 민국당을 포함한 다른 당의 공천은 받을 수 없으니까. 즉. 최지원이 출마를 결정하는 순간, 최지만은 후계 구도에서 아웃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둘째 최지원이 당선에 실패하게 되면 당연히 그에게도 타격이 있을 테지만, 최지만이라는 숙적을 아웃시키는 것이니, 실이 큰 만큼 득도 크게 되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최지원은 무너지진 않는다. 그만큼 오래도록 베이스를 튼튼하게 쌓아 왔으니까. “다만, 그렇게 하면 아버지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으니 고민 중이야.” 그렇긴 하다. 최지만이 아웃되는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실망하는 리스크를 안고 싶진 않을 테지. 사실, 현재 구도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 최지원이 승리하는 구도로 갈 수밖에 없다. 기반이 워낙 튼튼하기도 하고, 아버지가 그를 신뢰한다는 소식이 정계에 그득하게 깔려 있으니까. 물론, 다른 이들은 아직까지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이긴 하다. 그렇기에 첫째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판을 흔들어서 자신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형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 “글쎄.” 최지원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은 고민 중이야.” “앞으로의 형 계획은?” “정무수석한테 적당히 걸러서 보고할 거지?” “당연하지.” “우선 대한당에서 최고 위원을 달 거야. 그리고 차기 총선을 준비한 후에 2026년도 지방 선거를 준비해야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무수석에게는 차기 총선까지도 보고할 필요는 없을 터. 적당히 최고 위원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만족할 것이다. “막내야.” 그때, 갑자기 최지원은 목소리를 깔며 분위기를 잡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너한테 왜 해 주는 줄 알아?” “모르겠는데.” “믿으니까.” 입에 발린 소리다. 그러나 놀란 표정을 연기를 했다. “넌 다른 형제들과 다르잖아. 그렇지?” “당연하지.” 나는 든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그래.” “난 당연히 형의 편이야. 늘 응원할게. 다른 형보다 더.” “고맙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가 볼게.” “차 더 마시지.” “아니야. 얼른 들어가 봐야 해.” “그래. 조심히 가라.” “또 봐.” “응.” 간단히 작별을 하고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나를 믿는다라……. “하.” 코웃음만 나왔다. 믿기는 개뿔. 뒤통수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최지만에게 새어나가는지 확인하거나, 아니면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따로 있었다. 차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흘려놓은 것. 그건 분명히 중대한 사실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다른 야욕을 품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니까. 그런데 그걸 나에게 이야기했다? 최지만은 내가 정무수석을 통해 대통령에게도 흘릴 수 있을 가능성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말했다는 건……. 아직까진 가늠이 가지 않는다. 그래, 쉽게 예상이 가는 게 이상한 것이지. 최지원. 그는 일반인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조심해야만 할 터. 무슨 의도를 갖고 있는지 천천히 알아봐야 한다. 차에 오르며 곧장 신혜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비서관님. “어, 혜지 씨. 나 지금 바로 복귀할 건데, 최고 위원이 대한당 내에서 할 수 있는 역할 전부 파악해 주세요. 세세한 것까지.” -주로 쓰이지 않는 권한도 파악해 볼까요? “네. 특별한 상황에서까지 전부.” -알겠습니다. 둘째 최지원. 그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아내야만 한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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