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5)2022.01.31.
지이잉-. 한창 일하던 도중 휴대폰에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마돈나.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어, 지현 씨.” -도련님, 통화 괜찮으십니까? “말해.” -다름이 아니고, 지난번에 지시하셨던 두 건에 대해 보고드리려고 합니다. “둘 다 확인됐어?” -예. 우선 김치호 비서관에 대해서입니다. 미래 문자에서 선거 유세 중인 갑자기 내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던 그 녀석. -현재 확인된 바에 의하면, 김치호 비서관은 가석방 된 상태라고 합니다. “……뭐?” 듣자마자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가석방이라니. “사건이 터진 지 이제 겨우 1년 반 지났는데 벌써 가석방이라니. 말이 돼?” -그게 국정원과 아무래도 형량 거래를 한 것 같습니다. “형량 거래를 했다고?” -예.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에 대한당 측에서 국정원에 제안을 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만……. “괜찮아. 그건 알 것 같으니까.” 대한당에서 접근했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이치현 의원 때문이겠지. 김치호 비서관은 이치현 의원 밑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던 인물. 대한당에서 이치현 의원을 몰아내려고 하고 있는 만큼, 김치호 비서관까지 이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기랄.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그래서 지금 김치호는 대한당이랑 같이 움직이는 거야?” -아니요. 대한당과 협의를 하고 빠져나왔으나, 나온 지 한 달 만에 외국으로 밀항했다고 합니다. “허…….” 기가 찼다. 대한당 이 자식들 일처리하는 꼴하고는. “해외 어디로 갔는데?” -중국 혹은 태국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확실하진 않습니다. 아주 개판이다. “지현 씨가 한 번 알아볼 수 있겠어?” -불가능하진 않습니다만……. 그녀는 조심스런 목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해외까진 정보력이 닿지 않아서 꽤 오래 걸릴 겁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확률은 꽤나 희박하고요. 하긴. 아무리 마돈나라고 해도, 국정원 측에서도 쉽게 찾지 못하는 인간을 색출해내는 건 어려울 테니까. 돈을 퍼붓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김치호 비서관도 뇌물을 받으며 불법 자금을 축적해 둔지라, 분명 들고 있는 돈이 적지 않을 터. 가석방과 동시에 도망간 게 아니라, 한 달이나 기다렸다가 밀항한 것도 그 돈을 정리하기 위함이었겠지. 아마 돈을 들이더라도 현금만 쓰고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는 수배 때릴 수 있어?” -어렵진 않습니다. “그러면 국내 들어오면 바로 잡아내는 걸로 해.” -알겠습니다. “자금은 필요할 때마다 말하고.” -예, 도련님.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그리고 다음 건은?” -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JK그룹 건입니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 왔다.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휴대폰을 책상 밑으로 내리며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로 들어온 인물은 신혜지. “급한 일이에요?” “손님이 한 분 오셨습니다. 민국당 박무원 의원님인데…….” 박무원 의원이? 무슨 일이지, 올 일이 없는데. “잠깐 차 한 잔 드리고 있어요. 5분 내로 마무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신혜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다시금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됐어. 말해 봐.” -최근 들어 JK그룹에서 분사한 JK컬처를 키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포착되었습니다. JK컬처.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JK엔터테인먼트와 JK미디어를 통합해 새롭게 세운 법인으로서 영화를 포함한 예술계에서 힘을 키우고 있는 대기업이니까. -그리고 거기 대표 격으로 있는 인물이 우현중입니다. “그래?” -예. 정확히는 실제 JK컬처의 사장이 따로 있고, 우현중은 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만, 실질적인 권한은 우현중에게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렇겠지. 일개 사장은 JK그룹에서 임명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임명 권한을 가진 이는 JK그룹의 총수. 다시 말하면 우현중 본부장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다. 그러니 실권은 우현중에게 있다고 볼 수밖에. “JK컬처는 어때?” -주로 하는 업무는 영화 투자와 현대 미술관 운영 및 확장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만, 최근 들어서는 비엔날레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엔날레?” -예. 그 중에서도 올해 말에 펼쳐지는 서울 비엔날레를 거의 도맡아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관련 자료는 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곧바로 메일함을 열어 문서를 확인했다. ‘2023 서울 비엔날레’ -서울시 주최. -서울 비엔날레 진흥위원회 주관. -JK컬처 후원. 내년 가을에 서울미디어시티에서 펼쳐지는 비엔날레. 이제 막 삽을 뜨고 진행하는 사업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주관을 맡은 ‘서울 비엔날레 진흥위원회.’ 이곳은 매번 비엔날레에 맞춰 창설되었다가 비엔날레 종막에 맞춰 폐쇄되는 위원회인데, 현재 해당 회의를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위원들이 전부 JK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후원사도 JK컬처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 있으니, 아마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JK그룹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는 야심이 있겠지. 서울시도 그걸 허용한 그림이고. 아마 한중현 前 서울시장이 JK컬처와 손잡고 이러한 그림을 만든 것일 터. 천천히 한 번 조목조목 뜯어봐야겠는데? 나는 씨익 입꼬리를 휘며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내선 전화를 들어 기다리고 있는 밖을 향해 말했다. “혜지 씨. 박 의원님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청와대에서 보기 힘든 얼굴이 등장했다. 민국당의 박무원 의원. “최 비서관. 바쁜데 미안하네.” “아닙니다, 의원님.” 나는 반갑게 그를 맞이하며 소파로 안내했다. “앉으시죠.” “그래.” 의한회에서 몇 번이나 보았던 얼굴. 그곳에 꾸준히 얼굴을 비추는 인물이라, 관련 정보를 얻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 인물이기에 나 또한 호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강성철 의원의 반대파라서 더 마음이 맞기도 했다. 게다가 실리적으로 움직이는 게 진짜 정치인 같은 느낌이 들어 더 좋기도 하고. “차는 어떤 걸로 드시겠습니까?” “괜찮네. 밖에서 커피 한 잔 얻어 마셨어.” “아, 그렇습니까?” 나는 인터폰을 들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여기서 뵙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그렇지. 나도 한 3년 만에 처음 들어온 것 같은데.” “하하하, 그렇습니까?” “나 같은 일개 의원이 청와대에 올 일이 있어야지.” 나는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연락도 없이.” “아무래도 보안이 꽤 중요한 일이라,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보안까지 따질 정도면 보통 사안이 아니라는 건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를 향해 슬쩍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습니다.” “자네, 정춘식 교수 사망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서울시장 당선인의 사망. 두 형제 중 하나가 죽였다는 확신은 갖고 있었다. 물론, 민국당 측에서도 비슷한 의심은 품고 있을 터. 나는 씁쓸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없다는 걸 잘 아시잖습니까?” “알지. 내가 원하는 건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다음 보궐 선거를 준비해야하지 않나?” 순간, 박무원 의원의 눈이 반짝였다. “민국당의 다음 주자를 골라야 되지 않나? “…….” 아직까지 긴가민가했다. 의심 가는 바가 있긴 했지만, 박무원 의원이 그걸 결정할 만한 급은 아니기에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생각이 채 끝나기 무섭게. “독단적인 결정으로 온 게 아닐세. 백태성 의원님이 보내서 온 거야.” “……!” “진실이네. 걱정되면 전화해서 확인해 봐도 좋아.” 설마 했지만, 진실일 줄이야. 갑자기 머리가 아파지려 한다. “잠시만요.” 나는 손을 들며 혹시나 내가 오해한 게 아닐까 싶어 확인 차 물었다. “지금 저보고 민국당의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라는 겁니까?” “맞네.”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당내 경선부터 문제입니다. 제가 어떻게…….” “당내 경선은 없네.” 박무원 의원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바로 공천을 받을 거야.” “그렇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냉정하게 판단했다. “제가 99년생입니다. 내년 선거 당일이 되어도 만 24세라 피선거권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만 40세, 지방자치단체장 및 국회의원에 대한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이어야 확보하게 된다. “조만간 제한 연령이 내려갈 거야.” “확실한 겁니까?” “이건 100%야. 민국당과 만세당이 합심했고, 의한회에서도 동의할 거야. 그러면 국회에서 과반은 무조건 나오네.” “대통령 각하께서 거부권을 사용하시면…….” “그럴 리가 없지. 자네가 있는데 말이야.” “…….”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지려는 것 같다. 민국당의 공천이라……. 사실, 내년이 아니라, 후년이 된다면 자연스레 나 또한 만 25세가 되며 피선거권을 얻게 된다. 그때가 되면, 나 또한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할 생각이었다. 당적을 대한당으로 할지, 민국당으로 할지는 결정하지 않았으나, 둘 다 충분히 공천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허나, 서울시장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 자리는 대권으로 가는 디딤돌임이 명백한 사실. 그것도 이 어린 나이에 해내게 된다면, 더욱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된 정치 커리어를 쌓고, 최연소 대통령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될 터. 굉장히 탐이 나는 자리다. 얻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을 테니까. 단순 국회의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자리지.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그렇게 해서까지 저를 영입하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라…….” 박무원 의원은 고심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 자네와 친분이 있으니 솔직히 말하지.” “감사합니다.” “다음 서울시장 선거에서 최지만, 최지원 두 형제 중 한 명만 출마한다는 게 우리의 추측이야.” “예.” “그리고 그가 대한당의 공천을 받는다면, 우리는 이길 수 없어.”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아무리 이번 정춘식 사망 사건이 논란이 되었고 민국당이 동정표를 받았을지라도, 위와 같은 상황이라면 보궐 선거에선 승리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네를 통해 민국당의 서울시장 자리를 수복하고, 자네는 우리를 이용해 서울시장 자리를 잡고.” “서로 윈윈하자는 거네요.” “그렇지. 손해 볼 건 없어.” 그 말엔 동조하지 않았다. 정확히 따지면, 민국당은 손해 볼 게 없지만, 나는 손해 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최지원과 최지만을 누르고 단숨에 아버지가 대놓고 밀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허나, 실패하게 되면 모든 게 틀어진다. 우선 형제에게 패배했다는 타이틀이 아버지의 발길을 잡을 것이고. 다른 형제들이 나를 대놓고 공격할 수 있는 동기를 주게 되는 법이니까. 무엇보다 가장 걸리는 건 지난번에 받은 미래 문자. 동영상을 보낸 이는 26. 즉 2024년의 나는 국회의원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서울시장 출마라는 계획이 없었을 경우의 수라는 미래라면 모를까, 만에 하나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라면…….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위험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정말 좋은 제안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의원님을 포함해 백태성 당대표님과 다른 민국당 주역 의원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내 꼭 전하지.” “다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 바로 확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예상했다는 듯 박무원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네. 충분히 그 마음 이해해.” 박무원 의원은 짧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오래 기다릴 수는 없어.” “서둘러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조만간 또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