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4)2022.01.30.
“안녕하세요, 아버지.” 최지만은 깍듯하게 허리를 접어 인사하며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래.” 최준석 대통령은 담뱃재를 떨며 손짓했다. “가까이 와 봐.” “예.” 첫째 최지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집무실 책상 앞에 섰다. 고태욱 비서실장 앞에서는 그렇게 당당하던 최지만이었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그였다.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서울시장 선거 직후, 다시는 청와대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고 말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자신을 부른 것이었으니까. “후우우.” 최준석 대통령은 담배 연기를 내뱉고는 꽁초를 재떨이에 짓이겼다. 아주 바스러지도록 누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들아.”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는 건 최지만도 알 수 있었다. “네, 아버지.” “네가 했니?” “……예?”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제야 최준석 대통령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정춘식이 그 자식, 네가 그렇게 했어?” “아닙니다, 아버지. 제가 어찌…….” 최지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덧붙이지 말고 대답만 해.”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잡고 대답했다.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벌하게 최지만을 바라봤다. “다시 한 번 묻는다.”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정춘식이 그놈 죽인 거, 너 아니야?” “정말 아닙니다, 아버지.” 최지만은 눈을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제가 갈 때까지 간 놈이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 최준석은 한참동안 그의 눈을 노려보다가. “그러면 됐다.” 지긋이 눈을 감았다. 최지만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심하고선 입을 열었다. “아버지.” “말해.” “아버지께서 절 좋지 않게 생각하고 계시단 건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제가 아버지였어도 그랬을 겁니다.” “그걸 아는 놈이 그랬어?” “그렇지 않으면 제가 설 자리는 영원히 없어졌을 테니까요.” 최준석 대통령은 말없이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최지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가 그것이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는 상태. “지만아.” “예, 아버지.” “내가 저번에 했던 말 기억 나?” 최준석 대통령은 담배를 한 모금 깊이 들이마셨다. “청와대에 다시 들어올 땐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 대책을 세워 오라고 했던 거.” “기억납니다.” “어떻게 할 건데?” “……우선 다음 보궐 선거에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겁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피식 코웃음을 쳤다. “또 지원이랑 한바탕 붙어서 민국당에게 내주려고?” “아닙니다, 아버지.” 최지만은 결연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지원이는 출마하지 않을 겁니다.” “걔가 그렇게 하겠다디?” “그럴 겁니다.” “추측이야, 확신이야?” “확신입니다.” “어째서지?” “…….” 최지만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최준석 대통령은 반쯤 남은 담배를 천천히 재떨이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원이도 알고 있어? 네가 정춘식 죽인 거.” “아버지!” “내가 모르고 묻는 것 같아?” 순간, 집무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최준석 대통령의 냉혈한 눈빛이 최지만을 잡아먹을 듯 쏘아졌다. 최지만은 움찔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낳은 아들인데 널 모를 것 같아?” “…….” “이번 일에 대해 몇 명이나 알아?” 최지만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오 실장이랑 장 비서 두 명밖에 모릅니다. 지원이는 추측 정도만 할 겁니다. 증거도 없고요. 경찰 측과 접촉해 봤는데 제대로 된 증거는 하나도 발견 못 한 채로 사건 종결됐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다시금 담배를 물었다. “둘 다 처리해.” 최지만은 움찔하며 다급하게 변명했다. “아버지. 오 실장은 믿을 수 있습니다. 수행비서였던 장 비서는 해외로 이민 간다고 했고요.” “믿을 수 있다라…….” 최준석 대통령은 조소를 지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은 없도록 해.”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금 눈을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다음부턴 하더라도 내가 모르게 해.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넘어가지만, 이후엔 절대 용납 못 하니까.” “알겠습니다.” “가 봐.” “예.” “걸어서 나가. 머리 좀 식히고.” “알겠습니다.” “고 실장 들어오라고 해.” 최지만은 깍듯하게 허리를 접으며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가 떠난 후, 곧이어 고태욱 비서실장이 꾸벅이며 대통령 앞으로 다가왔다. “고 실장.” “예, 각하.” “저 새낀 못 써.” “…….” “너무 위험해.” 배포와 담력만 봐서는 둘째보다 더 나은 대통령 감이다. 허나, 너무 극단적이다. 결단력이 있는 걸 넘어서 과한 수준. 첫째 아들이 권좌에 올랐을 때,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떨어질 게 뻔히 보였다. “고 실장, 자네가 직접 오 실장이랑 장 비서 접촉해 봐.” “처리할까요?” “아니, 입단속만 철저히 시켜.” “알겠습니다.” “후우우.” 최준석 대통령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째 아들놈이라는 새끼들이 다 이 모양, 이 꼴인지, 원…….” 그는 한탄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아들놈이라서 직접 내치지 못하는 게 한이야. 좀 멀쩡하다 싶다가도 다시 보면 아픈 손가락이라니까.” “그래도 막내 도련님은 잘하고 계시잖습니까?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최준석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놈이 대성하려면 내가 더 오래 버텨야 하는데…….” 그는 허심탄회한 목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 밖 창가를 바라보며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훈이 그놈이 장남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 * 7월. 기존의 서울시장이었던 한중현은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올라갔다. 준군사조직인 경찰관과 소방관을 이끄는 만큼, 장관 중에서도 노른자라고 볼 수 있는 자리. 그리고 그 빈자리는 서울부시장이었던 박병환이 다음 보궐선거가 펼쳐지는 내년까지 1년 간 권한 대행으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결국 지방 선거에서 승리한 건 민국당이었지만, 변한 건 없었다. 서울부시장이 대한당 사람이니, 서울시는 또 대한당에 의해 좌지우지 될 테니까. 당연히 이러한 사실에 민국당은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분노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같은 팀끼리 이럴 수가 있나.” 대한당이고 민국당이고 나눌 것 없이 화합하던 의한회에서조차 민국당과 대한당이 말을 섞지 않는 분위기였으니까. 그렇다고 민국당에서 대놓고 따지지도 않았다. 어차피 암만 물어봤자 대한당에서 대답해 주지도 않을 테고. 대충 보아하니, 대한당 내에서도 실제로 아는 인물도 거의 없는 것 같았으니까.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심각한 거 아닙니까?” 내 물음에 민국당 박무원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은 이렇게 서로 경계하더라도 오래지 않아 풀려.” “그렇습니까?” “응. 어차피 여기 사람들이 갈라설 수는 없는 구도잖아.” “하긴…….” 어차피 의한회라는 이름하에 남아있으면, 결국엔 뭉쳐야할 때가 오니까. 게다가 이곳에 있는 대한당 의원들도 소속은 대한당이지만, 정춘식이 살아 있었다면, 서울시장 덕을 볼 수 있었기에 여기 있는 인물들이 이번 정춘식의 사고를 주도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저 몇 주 동안 소강상태가 되는 것뿐이겠지. “게다가 대한당에서 거사를 치렀다는 확신도 없잖아?” “하긴, 그건 또 그렇죠.” 정춘식이 죽으면 당연히 대한당에 이득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민국당 내에서 그를 암살했다는 의견도 간간이 나오고 있는 상황. 그도 그럴 것이 정춘식은 민국당 내에서 입지가 컸던 인물이 아니다. 애초에 당내 경선에서도 위에 있는 두 후보를 짓밟고 올라갔었던 전적이 있으니까. 그렇기에 서울시장에 당선이 되었다고 한들, 차라리 임기를 제대로 역임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죽어 버리게 되면, 여론은 민국당에게 쏠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 증거로 정춘식이 죽은 지 2주 만에 서울시에서 민국당의 지지율이 대폭 상승했다. “민국당에서 다음 서울시장 후보에 누굴 내보낼까요? 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많지.” 박무원 의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암만 위험해도 무려 시장이야, 그것도 서울시장. 앉기만 하면 차기 대권 후보로 꼽히는데 누가 싫어하겠어?” “그건 또 그렇네요.” “다만, 인물이 없는 게 문제지.” 민국당에서 그나마 유망하던 세 후보가 이번 선거로 정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새로운 인물의 유입이 필요한 상황. “새 유망주 찾느라 한동안 바쁠걸?” “누가 될지 궁금하네요.” 나는 의한회를 한 바퀴 둘러보며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 * * 민국당에서는 비상이 걸려 있었다. 정춘식 사망 건에 대해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건 당연히 해야만 했다. 그래야 현 상황에서 민국당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서울에서는 늘 마의 35%를 넘지 못하던 민국당 지지율이 40%에 육박할 정도니, 서둘러 준비하면 다음 서울시장 선거도 한 번 해볼 만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민국당의 쟁쟁한 후보 하나를 내밀어서 다음 선거까지 작업을 해 두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이미지 메이킹 및 밀어주기. 문제는 그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는 것. 그를 위해 당 소속의 모든 의원을 소집해 회의가 펼쳐졌다. “괜찮은 인물 어디 없어?” “석현욱은 어떻습니까?” “걔는 일산시장으로도 충분해. 서울시장 오기엔 아직 부족하지.” “그러면 엄태휘는요?” “그 친구는 마포구청장도 과분하다.” 민국당의 당대표 백태성 의원은 고개를 저으며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새 얼굴이 필요해. 우리 민국당을 쇄신할 수 있는 이미지를 줘야 대한당을 꺾을 수 있어.” 그때, 강성철 의원이 발언했다. “성문종은 어떻습니까?” “그 자식은 만세당이잖아?” “예. 그런데 젊은 층의 지지를 한 몸에 안고 있습니다. 데려올 수만 있다면, 만세당과 시너지까지 낼 수 있습니다. 야당의 후보 단일화로…….” “강 의원, 정신 차려. 그놈이 민국당으로 오겠어? 우리가 도와주는 꼴밖에 안 돼. 당선되면 분명 만세당부터 챙길 거야.” “…….” “게다가 그 새끼는 골수부터 만세당이잖아. 성태현 前 대통령 아들이라고.” 백태성 의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와도 분명 민국당만 혼란스럽게 만들 거야. 걔는 안 돼.” “그러면…….” 그때 조심스럽게 이치현 의원이 입을 열었다. “최지훈은 어떻습니까?” “최지훈?” 강성철은 듣자마자 펄펄 날뛰었다. “말이 돼? 걔는 최준석 대통령 아들이야.” “하지만 민국당에서 일한 이력도 있죠.” 이치현 의원은 차분하게 반박했다. “어차피 새로 영입할 인물은 100% 민국당일 순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청와대 사람을 데려오면 어떡해? 지금도 청와대에서 일하는데 민국당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게다가 대한당에서 다음 서울시장 후보로 누가 나올 것 같습니까? 평범한 사람이 나오겠어요?” “…….” 안 봐도 뻔하다. 이번에 낙선한 두 아들 중 한 명이 재도전할 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싸워야 합니다. 대통령 아들을 이기려면, 우리도 똑같은 카드를 내밀어야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강성철 의원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 의원은 자네 자리 지킬 생각이나 해. 요즘 대한당이 아주 벼르고 있더만.” “민국당에 도움이 될 것 같냐고 물어보셨죠?” 이치현 의원은 똑바로 눈을 뜨며 말했다. “될 겁니다. 무조건 됩니다. 민국당에서 대통령 아들을 영입했다? 국민들이 보기엔 어떻겠습니까? 대통령 아들이 민국당에서 공천을 받고 출마한다는 건, 우리 당이 그만큼 신뢰도를 쌓기에 아주 좋은 거죠.” “나쁘지 않아.” 당대표 백태성 의원의 대답에 강성철 의원은 엉덩이를 들썩였다. “아니, 선배님.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차피 보안상 새어나갈 일은 없어.” 이런 면에서 최지훈은 믿을 수 있다. 게다가 의한회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최지훈이 정치적으로 닫혀 있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으니까. “밑져야 본전이지. 우리는 최지훈을 이용해서 당의 힘을 키우고, 최지훈은 우리를 이용해서 본인의 힘을 키우고. 이론상 둘 다 나쁠 건 없거든.” 백태성 의원은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돌렸다. “박 의원.” 박무원 의원은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자네가 최지훈이랑 좀 가깝지?” “예, 연락은 자주 합니다.” “시간 내서 한 번 이야기해 봐.”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