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3)2022.01.29.
‘시안홀딩스.’ 넷째 형, 최지성이 알려 준 페이퍼 컴퍼니 의혹이 있는 회사. 그에게 받은 자료와 함께 직접 관련 문건들을 구해 살펴보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충 재무제표만 살펴봐도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이거 심각하네.” “예. 제가 봐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마돈나 또한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기업의 자본금은 겨우 1억 원에 불과하지만, 상배전자라는 상장 회사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었다. 상배전자는 연간 매출이 300억, 영업 이익만 100억 원이 넘는 유망한 회사로 확인이 되었다. 게다가 회사의 자본금만 무려 200억 원 가까이 되는데, 그런 우량 중소기업을 겨우 자본금 1억 원짜리 법인에서 인수를 하려는 상황. 아이러니한 것이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고, 상식적인 상황도 아니고. 그런데 놀라운 건, 상배전자의 대표이사가 자신의 모든 지분을 이 페이퍼컴퍼니 ‘시안홀딩스’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수 자금은 270억 원. 그것도 인수 자금 중 269억 원을 전액 채권과 개인 사업자로부터 차입했다고 출처를 밝히고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한 마디로 말하면, 대표이사가 그냥 이 회사의 소유권을 ‘시안홀딩스’에게 거저 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상배전자가 일반 회사가 아니죠?” “예. JK그룹의 하청 업체로 확인이 됩니다.”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JK그룹에서 일부러 상배전자를 키우기 위해 일감을 몰아주고 회사의 매출을 키우며 사내 자본금을 계속해서 축적시킨다. 당연히 상배전자의 핵심 이사진은 전부 JK그룹에서 심어 놓은 사람. 그렇게 어느 정도 회사가 커졌을 즈음, 새로운 법인을 만들고 그곳에서 상배전자에 대한 인수 작업을 시작한다. 그곳의 대표가 바로 JK그룹의 후계자 중 하나라는 건 안 봐도 뻔한 사실. 그런 식으로 법인의 재산을 늘리고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을 때 즈음, 다시금 그 법인을 폐쇄하며 새로운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부를 축적해 왔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후계 방법이 재계에서는 굉장히 흔한 일이다. 부모자식 간에 직속으로 주식이나 건물 혹은 현금 등의 재산을 물려주면, 액수가 커질수록 상속세가 더욱 커지는데, 이는 거의 50% 수준에 육박하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주식과 같은 경우는 특수 관계자에 한해 20%의 할증이 붙으니, 상속세만 무려 60%에 달하는 셈. 그렇기에 이처럼 여러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서 상속세를 줄이고 그룹의 지분을 늘리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린 뒤. 후일,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나머지 돈을 상속하며 그에 대해 상속세를 내고 최종 지분을 끌어안은 뒤, 주주총회를 통해서 대표로 올라가는 구조. 재벌들의 흔한 상속 방식 중 하나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상속세를 줄이려고 갓 2살, 3살이 되어 한글도 모를 나이에 건물 법인을 주고 그 월세를 모아서 재산을 만들어주거나 부동산을 늘리는 방식도 꽤 많은데. 이 때문에 대한민국 20대 청년들의 평균 재산이 1억 원이 넘어가는 터무니없는 수치가 나오는 것이지. 여하튼 이러한 페이퍼 컴퍼니는 금융감독원에서 주목하기 전에 폐쇄하는 게 흔하니, 보통 재벌들도 깐깐하게 처리를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상속하려고 법인을 만드는 것을 제외하면, 길어 봤자 2, 3년 정도 안에 법인을 폐업하기 때문. 다시 말해 이를 잡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는 뜻이지. “지현 씨, 이거 등기부등본 한 번 떼어 올래요?” “잠시만요.” 그녀는 몇 번의 클릭만으로 곧장 서류 하나를 뽑아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페이퍼 컴퍼니로 보이는 ‘시안홀딩스’가 갖고 있는 건물. 부동산 등기와 법인 등기부등본만 때어 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중 대표격으로 보이며 반복적으로 나오는 인물이 바로. ‘우현중.’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인물은 아니다. 다만, 우 씨라는 성이 흔한 성 씨가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그리고 JK그룹이 바로 단양 우 씨 일가가 이끌고 있는 재벌이라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현 씨.” “예, 도련님.” “JK그룹에서 최근에 관심 가지고 있는 사건들 한 번 정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촤르르륵-. 기자들의 플래시와 셔터음이 한 남자를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몇 걸음 가지 못해. “여기까지입니다.” 경호원들에 의해 기자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의원님께 아버지와의 시간을 주십시오. 프라이버시를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평소 같으면 끝까지 달려들 기자들이었으나, 오늘만큼은 그들도 카메라를 내리며 물러섰다. 터벅터벅-. 남자는 하염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기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즈음, 무덤 앞에 도착했다. “……후우.” 그는 의미심장한 한숨을 내뱉으며 들고 온 꽃다발 한 송이를 비석 앞에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한 걸음 물러나, 잔디밭에서 두 번 절을 하고는 막걸리 한 병을 무덤 위에 조금씩 뿌려주었다. “아버지…….”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묵념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의원님.” 산의 반대쪽을 통해 건너온 남성이 나무를 헤치며 다가왔다. 묵념을 하고 있던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들며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이거 참 뵙기가 힘드네요.” 무덤 앞에 있는 인물은 만세당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젊은 국회의원 성문종. 그리고 그 앞에 다가온 인물은 JK그룹의 우현중 본부장. 성문종의 아버지의 성묘를 비롯한 은밀한 만남이었다. “죄송합니다. 서울시장 사망 사건 이후로 기자들이 계속 붙어 있는 상황이라, 이렇게밖에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이해합니다. 기자들 붙으면 다 그렇죠, 뭐.” “본부장님.” 성문종은 무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저희 아버지에 대해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셨는데.” 묘비엔 ‘대한민국 대통령 성태현’이라는 글귀와 함께 그의 임기가 적혀 있었다. 물론, 단임제였던 시대임에도 임기였던 5년을 다 채우지 못한 짧은 기간. “한 3년쯤 하셨나요.” “예. 그 정도 됩니다.” 이유는 하나였다. 성태현 대통령은 임기 도중 탄핵을 당하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그 탄핵을 이끈 인물이 바로. “그 쓰레기 같은 범죄자 자식이 정의로운 척하는 걸 보면…….” 최준석 대통령이었다. 억울한 탄핵에 의해 성태현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한 성문종의 아버지, 성태현은 스스로 목을 매 세상을 등졌다. “아무리 쫓겨났다고 해도, 대통령이잖습니까. 일국의 수장, 국가원수. 그런데 현충원도 못 들어가게 하고, 전문 관리 인력도 안 붙여준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성문종은 어금니를 빠득 깨물었다. “내가 최 씨 일가를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어요.” 우현중 본부장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직접 성태현 대통령을 본 적은 없지만, JK그룹의 現 회장인 그의 아버지가 성태현과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니 의원님이 그 자리에 올라가셔야죠.” “올라갈 겁니다.” 성문종의 눈에 광채가 일었다. “반드시 올라가서 아버지의 복수를 할 겁니다.” 그는 주먹을 부들거리다가 힘을 풀며 천천히 호흡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아직 만세당으로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개 정당은 전라도의 대한당과 경상도의 민국당이다. 허나, 만세당은 그렇다 할 만한 텃밭이 없었고. 그저 각 지방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정도였다. 물론, 그 규모가 작지 않기에 지난 총선에서 약 50석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했지만, 그렇다고 서울시장이라든지 주요 지방의 도지사나 대선은 꿈도 못 꾸는 상태. 국회에서 갖고 있는 의석수는 많지만, 그에 비해 파워가 약한 게 사실이었다. “만세당이 왜 힘을 못 내는지 아십니까?” 그제야 성문종은 고개를 들었다. “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한당은 최준석 대통령과 전상국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이 많았고. 민국당 또한 백태성 의원과 같은 굵직한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허나 만세당은 신흥 세력이기에 아직까지 당을 대표할 만한 대표격 인물은 전무한 상태. 그렇기에 각 주요 지방을 점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를 성 의원님께서 하시지요.” 우현중 본부장은 성문종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돕겠습니다. 아니, JK그룹에서 밀도록 하죠.” “……진심이십니까?” “당연합니다. 만세당 최대 후원사가 바로 저희 JK그룹 아닙니까? 저희가 추대하면 가능합니다.” JK그룹에서도 그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밀고 있는 만세당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대선 주자로 나설 만한 인물이 필요한데. 그에는 현재 젊은이들의 맹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성문종이 제격이었으니까. 올해 나이 36세로, 내년에 돌아오는 대선은 힘들지만, 그 다음 대선에는 출마할 수도 있는 상황. “한 번 가시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습니까? 까짓 거 대한당, 민국당에서만 대통령이 나오리라는 법은 없잖습니까?” “…….” 성문종은 주먹을 꽉 쥐었다. “빌어먹을 독재 정권, 최 씨 일가는 제 손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는 무덤을 바라보며 결연하게 다짐했다. ‘아버지. 제가 복수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 * * “오셨습니까, 도련님.” “안녕하세요, 실장님.” 고태욱 비서실장은 운전석에 올랐고. 최지만은 조수석이 아닌, 뒷좌석에 탑승했다. 일종의 신경전이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여전히 그를 ‘도련님’이라고 호칭했고. 최지만은 동등한 조수석이 아닌, 상석인 뒷좌석에 탑승한 것 자체가 서로를 긁는 행위였으니까. 허나, 고태욱 비서실장은 태연하게 운전대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요즘 바쁘신 것 같습니다.” “바쁘긴요.” 최지만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선거도 떨어졌는데 할 게 있나요. 완전 백수죠.” “그렇습니까?” 고태욱은 흘긋 룸미러로 최지만의 눈빛을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둘째 도련님은 꽤나 정신이 없으신 것 같더라고요.” “아, 지원이는 그렇더라고요. 대한당에서 최고 위원 되려고 준비를 하는 것 같던데요.” “첫째 도련님도 무언가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우선은 천천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른 대책을 세우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은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오늘 각하께서 호출하셨는데도,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 곤란해지실 것 같은데.” “…….” 최지만은 입술을 꾹 다물며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의 호출. 그것도 다른 비서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태욱 비서실장을 직접 보내서 픽업을 해 오라고 했다는 건, 은밀하게 불러냈다는 걸 뜻했다. 필시 보통 의미가 아니라는 뜻일 터. 최지만은 찔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장을 낙선한 것도 모자라, 그 뒤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건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최지만은 한 걸음 물러나 수그리는 자세로 고태욱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서는 어떠십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고태욱은 모르는 척 되물었다. “도련님께서는 추측되시는 게 없으십니까?” “…….” 그 질문을 끝으로 차내에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자동차는 청와대에 도착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조심스레 노크를 했다. “각하, 도련님 모셔왔습니다.” “어, 들어와.”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최지만은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먼저 입장했고. 고태욱 비서실장이 따라 들어가려는 찰나. “고 실장.” 최준석 대통령은 고개를 들며 그를 막았다. “자네는 잠깐 기다려.” “알겠습니다.” 집무실은 최지만을 삼키고 굳게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