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2)2022.01.28.
-보낸 이: 26 -동영상. 미래 문자! “지현 씨.” 나는 목울대를 가다듬으며 마돈나를 불렀다. “네, 도련님.” “커피 한 잔만 가져다 줄래요?”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예.” “잠시만요.” 마돈나가 자리를 비운 뒤, 나는 곧장 동영상을 재생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지훈입니다! 화면의 중심에는 내가 서 있었다. 선거 유세 차량 앞에서는 아르바이트 아주머니들이 손을 흔들며 운동을 돕고 있었다. 보낸 이가 26이면 2년 뒤의 이야기. 게다가 내 옷차림과 주변 상황을 보아하면, 22대 총선. 즉 국회의원 선거인 모양. 사실, 대충 가늠은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다음 총선에서 출마해야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까. -맞습니다. 저는 최준석 대통령님의 막내아들입니다. 허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 저는 제가 원하는 정치를 이룩하기 위해 파란집 막내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당당히 출마하였습니다. 또한……. 내 정치관에 맞는 연설이었다. 2년 뒤라고는 해도, 지금과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이라 위화감 또한 없었다. 좌측에는 마돈나가 서 있었고. 우측에는 어느 정도 연이 있는 인물들이 하나씩 줄을 채우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선거 캠프의 트럭 가까이에 유니폼을 입지 않은 여성이 있다는 사실 정도? 옆모습밖에 보이지 않아서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옷차림이나 얼굴, 몸매 등을 보아하면, 연예인이나 모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절대 일반인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장면만으로는 확실한 건 없었다.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에 선거 유세에서 내가 하는 말을 전부 기억 속에 집어넣고 있었지만, 특별하다고 할 만한 내용도 없는 상태. 이번 미래문자가 내게 보여 주려는 것은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하며 영상에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특별한 내용 없이 나의 유세 운동이 끝나갈 즈음. 타닥. 갑자기 누군가가 연단으로 달려들었다. 꽤나 추레한 복장.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 개X끼야! 그는 안주머니에서 30cm가 넘는 커다란 회칼을 꺼내들었다. 잠깐만. 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린데. 그와 동시에 화면의 앵글이 전환되며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그 덕분에 칼을 들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미친.” 화면으로 보고 있던 나도 모르게 육성이 터져 나왔다. 김치호. 이치현 의원 밑에서 일하던 시절, 내가 ‘코리안 뉴딜’의 유출범으로 보내 버렸던 그 김치호 비서관이다. 얼굴엔 끔찍한 흉터가 드러나 있었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꺄아아아악! 울려 퍼지는 비명들 사이로 남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비켜! 누군가가 화면 속 나를 밀쳐냈다. 그 탓에 나를 향해 쇄도하던 김치호의 칼날은. 푹-! 내 앞을 가로막은 누군가의 복부를 갈랐다. -이, 이 새낀 뭐야! 김치호는 당황한 얼굴로 칼을 빼내며 그 사람을 밀쳐냈고. -최지훈 이 X같은 새끼야! 그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피가 흐르는 칼을 높이 들었다. -나만 병신 되고 끝날 줄 알았지? 김치호는 마치 광인처럼 히쭉 입꼬리를 휘며 나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그 장면을 끝으로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내가 칼을 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김치호 비서관이 나를 향해 칼을 찔렀다는 사실뿐. “이런 미친…….” 육성으로 욕이 터져 나왔다. 정신이 아찔해지려 했다. 워낙 다급하게 벌어진 상황이라, 내 앞을 가로막은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파악할 수 없는 앵글. 게다가 시민들은 혼비백산하여 온갖 비명을 질렀고, 그 외 소음까지 낭자한 상태라 나를 지켜 준 사람의 목소리 또한 제대로 듣지 못했다. 머리가 다시금 지끈거려 왔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커피잔을 들고 오던 마돈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신데.” “아니야.” “식은땀도 흘리시고…… 약이라도 가져올까요?” “괜찮아.”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체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커피 말고 꿀물로 가져다 드릴게요.” “고마워.” 마돈나가 부엌으로 돌아간 사이, 다시금 고민에 잠겼다. 이 동영상이 왜 지금 온 걸까. 서울시장 선거로 한창 고민하던 도중이었는데……. 잠깐만. ……설마 두 형님 중 한 명이 김치호 비서관을 풀어 준 건가? 아니지, 그럴 리가 없다. 서로 견제하기도 바쁜 상황에서 나까지 죽일 필요는 없을 테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순간, 머릿속에 아버지가 총살당했던 미래 문자 동영상이 스쳐지나갔다. 혹시 그것도……. 아니지. 그 암살 미수 사건의 범인은 남파 간첩으로 확인이 되었다. 온갖 추측과 상상이 머릿속에서 난잡하게 떠올랐다. 허나 그 와중에도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은 없었다. “도련님.” 마돈나가 가져다 준 꿀물을 황급히 들이켰다. “뜨거워요, 천천히 드세요.” “고마워.” 꿀물을 반 잔쯤 마시고 나서야 머리가 식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 벌어질 일이 아니다. 2년 뒤의 이야기. 그것도 총선의 선거 유세 운동 도중이라는 것까지 알아냈으니, 조금만 주의하면 큰 문제는 벌어지지 않을 터. 우선, 어떻게 되었는지 상황 파악부터 해야 한다. “지현 씨.” “네, 도련님. 편의점 가서 약이라도 사올까요?” “아니요. 몸은 괜찮은 것 같고, 혹시 김치호 비서관 기억해요?” “예전에 도련님께서 국회에 계실 때 같이 보좌진으로 있었던 사람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다. 나의 기억도 거기까지. “제가 알기로는 국정원 통해서 검찰에서 구속한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한 번 알아봐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안녕하세요.” 건물 로비에 들어서자, 입구에 있던 직원 하나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최지성 대표님 뵈러 왔거든요.” “혹시 약속 잡으셨나요?” “예.” “잠시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직원이 수화기를 들려는 찰나. “아니, 됐어.” 게이트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속 있는 거 맞아.” “아, 사장님.” 직원은 눈을 꿈뻑이며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나는 가볍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형.” “왔어?” “뭐 하러 여기까지 내려왔어?” “길 잃을까 봐.” “나이가 몇인데 길을 잃어.” “내가 보기엔 넌 꼬맹이야.” 우리는 클클대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표실로 향했다. “사무실 좋네.” “그러고 보니 넌 처음 오는구나.” “응. 저번에 화분만 보냈었어.” “하긴…… 애초에 가족 중에서 내 사무실에 와 본 사람이 네가 유일하다.” “그래?” 당연한 사실 같긴 하다. 아버지는 두말할 것 없고. 다른 형제들은 최지성이 연예계에서 일한다며 그를 딴따라라고 부르며 무시하기 일색이었으니까. 물론, 가끔씩이나마 어머니가 챙기긴 했지만, 영부인이라는 특성상 얼굴이 알려져 있어서 대외활동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청와대 밖으로 나가지 않기에 오기 힘들었을 테고. “앉아.” “응.” 나는 소파에 그와 함께 엉덩이를 붙였다. “사무실 깔끔하고 좋네.” “어차피 다 월세야.” “사업하는 사람은 다 그렇지, 뭐.” 넷째 형, 최지성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오랜만에 형이랑 이야기나 하려고 왔지.” 얼마 전 어머니가 걱정이 된다며 이야기를 하셨던 게 떠올랐기에 한 번 찾아왔다. 끝이 좋진 않았지만, 어쨌든 지방 선거도 끝나서 여유가 있기도 하고. “에이, 그럴 줄 알았으면 점심 시간이나 저녁 시간으로 약속을 잡지. 어중간하게 3시에 왔어?” “근처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잠깐 왔다가 짬 낸 거야.” “그럼 어쩔 수 없고.” “밥은 다음에 먹자.” “그래. 시간은 많으니까.”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아, 참.” 최지성은 문득 궁금한 게 있다는 듯 눈을 빛내며 내게 몸을 기울였다. “나 하나 물어봐도 돼?” “뭔데?” “이번에 정춘식 죽었잖아. 서울시장은 어떻게 되는 거야? 지금 서울시장 한중현이 연임하는 건가?” “아니, 한중현은 임기 끝나면 내려와야 돼. 대신 서울부시장이 권한 대행으로 다음 보궐 선거까지 업무를 맡을 거야.” “현 서울부시장이면, 서울시장이 임명한 거 아니야?” “그렇지.” “결국 대한당 판이네.” “맞아.” 서울시장이 임명했으니, 서울부시장 또한 대한당 사람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결국 대한당에서 1년 더 서울시를 장악하는 것과 똑같은 셈이다. 최지성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질문을 이었다. “이번 사건, 진짜 사고 맞아?” “형 정치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어?” “없었는데, 이번 건은 하도 뉴스에서 보도하다 보니 나도 궁금하더라고.” “나도 보도 자료로 본 게 다야.”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네가 보기엔 어떤데?” “말해야 알겠어?” “하긴…….” 최지성도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형제들은 무엇이든 할 사람이라는 건 그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나는 적당한 시점에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요즘 일은 어때? 특별한 건 없고?” “마음에 걸리는 건 없는데…… 재밌는 건 하나 있긴 하다.” “뭔데?” “너 우리 회사에 백사은이라는 여배우 있었던 거 알지?” “있었던 거면, 이젠 없어?” “응. 어쨌든 알아?” “알지. 형 회사에서 제일 잘나가던 여배우잖아. 저번에 듣기로는 갑자기 드라마랑 CF가 꽂혀서 신기했다며.” “맞아. 그땐 놀랐어. 무슨 인터넷에서 어떤 팬이 백사은 연기를 모음으로 만들어 놔서 그게 갑자기 화제가 되는 바람에 뜬 줄 알았거든. 그래서 이렇게도 스타가 생기는 거구나, 뜰 사람은 어떻게든 뜨는구나, 생각했단 말이야.” “그게 아니었어?” “응. 알고 보니까 그게 아니라, 기업에서 스폰을 받았더라고.” “스폰?” “알아보니까 ‘시안홀딩스’라는 회사인데, 하도 신기해서 알아봤더니 무슨 페이퍼 컴퍼니더라.” “페이퍼 컴퍼니에서 스폰을 했다고?” “그래. 나도 이해가 안 되는 거야. 그래서 회사 주소로 직원을 보내 봤더니 텅 비어 있어. 이름만 올라가 있는 거지.” 이거 구린내가 나는데. “그래서 우리 측도 미리 대비를 해야 되니까, 백사은한테 까놓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스폰이 맞긴 한데, 이제는 관계 청산했다며 부정하더라고. 근데 말이 그렇지, 누가 봐도 알잖아. 이게 정상적으로 섭외가 들어오는 건지, 아닌지. 나도 이 바닥 몇 년짼데.” “계속 스폰을 받고 있던 거야?” “안 봐도 뻔하지. 당연히 스폰이 그렇게 빵빵하니, 회사에 돈은 많이 벌어다 주는데, 괜히 데리고 있다가 밝혀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나는 그런 식으로 돈 벌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지난 달에 계약 만료되면서 연장 안 하고 해지했거든.” “잘했다.” “근데 스폰 규모를 보면, 분명 어마어마하단 말이지?” “놀랄 정도야?” “그래. 내가 이 바닥에서 스폰 받는 애들 많이 봤는데, 얘는 진짜 보통 스케일이 아니더라고.” 그 말인 즉슨. 커다란 기업과 엮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소위 말하는 재벌급. 게다가 단순한 스폰도 아니고, 페이퍼 컴퍼니까지 엮여 있는 상황. 파보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기도 한데? “나야 뭐 계약 해지했으니까 이제 문제는 없다만…… 그래도 영 마음이 편치는 않더라고.” “형.” “응?” “그 관련 자료 아직 있어?” “있지. 따로 보관해 뒀을 거야.” “혹시 나한테 줄 수 있어?” 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내가 한 번 알아보고 싶은데.” “당연하지.” 넷째 형, 최지성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려 봐. 바로 꺼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