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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1) (88/200)
  • 혼돈 (1)2022.01.27.

    “조심히 가십시오, 시장님.” “에헤이, 시장이라니.” 정춘식은 씩 벌어지는 입꼬리를 부여잡지 못하고 손을 내저었다. “아직은 아니야. 취임식까지 며칠 남았어.” “곧 시장님이시죠.” “하하하, 자네 세 치 혀가 마냥 나쁘진 않아.” “또 뵙겠습니다, 시장님.” 남자는 꾸벅 허리를 접으며 인사했다. “그래. 또 보자고.” 거나하게 취한 정춘식은 흡족스런 웃음을 흘리며 차에 올랐다. “출발하겠습니다, 시장님.” “그래.” 운전대를 잡고 있던 수행비서는 자연스레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출발한 지 5분쯤 지났을까. 수행비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어 변속기 옆 컵홀더에 준비해 둔 숙취 해소제를 꺼내더니 직접 뚜껑을 따서 뒷자리로 건넸다. “시장님, 이거 드십시오.” “뭔데?” “숙취 해소제입니다.” “아, 그래?” 정춘식은 눈썹을 들썩이며 숙취 해소제를 받아들어 바로 원샷했다. “크으, 역시 장 비서가 센스 있다니까.” “감사합니다.” 장 비서는 슬쩍 손을 뻗었다. “쓰레기 저한테 주십시오.” “어, 그래.” 정춘식은 뚜껑까지 닫아서 수행비서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도시를 빠져나올 즈음. “흐아아암…….” 정춘식의 입가에선 늘어지게 하품이 나왔다. “술 마셔서 그런지, 졸립네.” “한숨 주무십시오. 도착하면 깨워 드리겠습니다.” “서울까지 얼마나 걸리지?” “한 3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래. 천천히 운전해.” “알겠습니다.” 그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장 비서는 뒷좌석의 정춘식이 완전히 곯아떨어진 걸 확인한 뒤. -길 안내를 종료합니다. 내비게이션의 전원을 껐다. 눈앞엔 길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직진은 서울, 우회전은 상주. 그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 경로를 이탈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낙동강변. 새벽 2시가 넘은 늦은 시간. 그곳엔 수풀에 숨겨져 있는 검은 승용차 한 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끼익-. 장 비서는 차를 부드럽게 멈추며 입을 열었다. “시장님.”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다시금 불렀다. “교수님?” 그러나 정춘식 교수는 거칠게 콧바람을 내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장 비서는 다시금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살포시 눈을 감고. “후우우.”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될 즈음, 정춘식이 마신 숙취 해소제 병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손수건을 꺼내 핸들과 기어 변속기까지 닦은 뒤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고, 정춘식의 양쪽 어깻죽지에 두 팔을 넣어 그를 끌어당겼다. 바닥에 닿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장 비서는 정춘식을 운전석으로 옮긴 뒤, 그의 품을 뒤져 휴대폰을 한 대 꺼냈다. 자신의 메모장에 적어 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 30초쯤 지났을까. 수신음이 끊겼다. 누군가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진술하기 위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지, 통화 내용은 필요 없었으니까. 짧은 대화를 한 것처럼 보이도록 약 50초 정도만 통화한 후, 전화를 끊었다. “하아.” 장 비서는 자신의 지문을 닦아 다시 정춘식의 주머니에 넣었다. 또한 그의 팔을 들어 정춘식의 손으로 핸들을 몇 번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마치 그가 직접 운전을 한 것처럼 지문을 찍는 행위. 그러한 작업이 끝날 때까지도 정춘식은 수면제를 먹은 듯 미동도 없었다. 장 비서는 홀로 일어서서 머릿속을 정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진 게 없다. 계획에 있는 건 모든 사안을 끝냈다는 걸 확인한 뒤, 그는 정춘식의 안전벨트를 메주고 운전석의 문을 닫았다. 장 비서는 차량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자신의 지문이 묻지 않도록 손수건을 덮어 차를 힘껏 밀기 시작했다. 사이드브레이크는 내려가 있었기에 차량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평지를 움직이던 차량은 곧바로 내리막길에 진입했고. 더 이상 장 비서가 밀지 않아도 자연스레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굴러 내려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풍덩-! 수면 위 커다란 파동을 그리며 차량의 머리가 물속에 처박혔다. 이 와중에도 차내가 침수되기 시작하며 정춘식의 다리에 물이 잠기기 시작했지만, 운전석에 있던 정춘식은 여전히 잠에 취해 깨어나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장 비서는 수풀에 가려져 있던 승용차로 몸을 옮겼다. 그곳에 탑승해서 한참을 기다렸다. 머리부터 처박힌 승용차가 트렁크까지 완전히 침수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가량. 그렇게 장 비서는 오래도록 지켜보다가 정춘식이 탑승한 차가 눈에서 사라지게 된 뒤에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유유하게 낙동강변을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예, 실장님. 방금 마무리했습니다. 완전히 물에 잠기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계획대로 이동하겠습니다.” * * * “안녕하십니까, 상주경찰서 서장 김민중입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성은 경찰정복을 입고 기자 브리핑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실종 신고는 사흘 전, 유가족을 통해 접수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첫 조사를 시작했고, 동선 파악 후 저희 상주 경찰서에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조사 도중 낙동강에 침수된 차량을 파악했고 잠수부들의 수색 결과, 그 안에서 정춘식 서울시장 당선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보고서를 흘긋 보고는 다시금 읽기 시작했다. “현재 차량은 인양해서 조사를 마친 상태입니다. 그리고 서울 경찰청과 합동 수사를 통해 최종적인 결과를 말씀드리면.” 촤르르륵-. 기자들의 셔터음이 더욱 빠르게 이어졌다. “정춘식 서울시장 당선인은 음주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운전 미숙 혹은 졸음운전으로 인하여 낙동강으로 빠졌고, 만취 상태인 탓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들이 번쩍 손을 들었다. “유가족들은 정춘식 예비 시장이 음주운전을 절대 할 리가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도 확인을 해 보았습니다. 원래 운전 자체를 자주 하시지 않는 분이시나, 음주로 인한 객기 때문에 운전대를 잡은 게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술자리를 같이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확인되었나요?” “저희 측에서 조사했었습니다만, 누구인지 밝힐 수는 없습니다. 직접 소환해서 조사해 본 결과, 술자리를 마치고 출발할 때는 수행비서의 차량에 탑승한 걸로 확인이 됩니다.” “그러면 그 비서는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시 운전자는 장 모 씨로 밝혀졌는데, 진술한 내용은 상주 근처에 만날 사람이 있다고 해서 거기까지만 운전한 뒤, 하차하여 근처 찜질방에서 숙면 후 다음 날 아침에 첫 차를 타고 갔다고 하였고, 모두 진실임이 CCTV 및 카드 내역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장 비서가 유력한 용의자 아닙니까?” “예. 저희 측도 그럴 가능성을 두고 확인했으나, 정춘식 예비 시장이 사망하기 전, 다른 이와 접촉한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어떤 정황이죠?” “제3자와 통화를 했는데, 그 번호의 주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용의자일 가능성은요?” “없지 않다고는 생각하고 조사를 시작했으나, 수사 정황 상 타살의 가능성은 현저히 낮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사람에 정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삐익- 리모컨을 눌러 TV의 전원을 껐다. “충격적이네요.” 마돈나는 입을 가리며 심각한 눈빛으로 날 돌아보았다. “타살이겠죠?” “100%지.” 나는 호언장담했다. “대한당에서 벌인 일이야.” “……역시.” 물론, 내가 아는 정보는 없다. 누구에게 따로 들은 언질도 없다. 경찰 수사까지 사고사라는 결론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당연하게 믿을 수는 없었다. 서울시장 당선인이 취임식을 열흘 남기고 음주운전해서 사망을 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조심하면 더 조심했지, 아무리 만취해도 그 기간에 저런 짓을 벌일 리 없다. 마돈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사하면 어느 정도 나오지 않습니까?” “보통 나오는 게 정상인데…… 정춘식이 익사체라 제대로 된 분석도 안 될 거야.” 물에 빠져 죽은 뒤 바로 발견이 되면 모를까, 며칠 지나고 나면 물에 온몸이 퉁퉁 불어 사망 시간도 추정하기 힘들뿐더러, 제대로 된 부검도 어려우니까. “대한당 자체적으로 계획한 건 아니겠죠?” “그렇지. 당 차원이 아니라, 따로 움직인 걸 거야.” “대한당에서 이렇게 대담한 일을 벌일 만한 인물은 많지 않을 텐데요.” “가늠이 가는 인물은…….” “두 명밖에 없지.” 마돈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안 봐도 뻔하지. 최지만이나 최지원. 둘 중 하나다. 평소 성격 상, 워낙 과격하고 파격적인 일을 많이 하는 첫째 최지만이 의심스럽긴 하나. 둘째 최지원도 워낙 소시오패스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다른 대한당 의원들도 가능성은 있지 않습니까?” “일을 벌이려면 얼마든 벌일 수 있지.” 대한당 최고위원들 혹은 중진 의원들은 충분히 일을 벌일 깜냥이 있다. 허나, 굳이 그럴 만한 이유는 없다. 대한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두 명만 내고, 패배한 것. 그 패착이 바로 최지만과 최지원에게 있는데, 굳이 그 잘못을 다른 의원들이 나서서 주워 담을 필요가 없으니까. 사람을 죽인다는 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도 무려 차기 서울시장이나 되는 사람을 죽일 만큼 위험 부담을 안을 만한 이유는 없으니까. 이렇게 타살 정황까지 완전히 지우고 자살로 몰아갈 만큼 차곡차곡 진행이 되고 있다면,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닐 터. 경찰을 매수했을 리는 없으니까. 다만, 이러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수사를 재촉할 만한 압력을 넣을 수는 있었을 터. 그러면 바로 떠오르는 게 최지만이다. “첫째 도련님이 경찰과 조금 가깝지 않나요?” 마돈나도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 “굉장히 가깝지.” 법조계에 종사하는 둘째 최지원이 검찰과 가깝다면. 첫째 최지만은 경찰과 꽤 깊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민국당에서 가만히 있을까요?” “길길이 날뛰겠지. 아마 한동안 시끄러울 거야.” “두 도련님들도 꽤나 위험하겠는데요.”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일을 벌인 거지.” 그들의 심정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개표 당일, 아버지의 호출까지 받아서 청와대로 끌려왔었고. 그곳에서 어떤 대화가 나왔을지 대충 가늠은 가니까. 이대로 민국당의 정춘식이 서울시장에 등극해 버리면, 아버지가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터. 그렇기에 첫째와 둘째 형 모두 가능성이 있다. 아니, 둘이 합작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하아…….” 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단순히 내가 정춘식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 후일, 그것을 써먹을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형제들이 선을 넘기 시작했다는 건, 다시 말하자면 온갖 암투가 벌어질 염려도 있다는 뜻이니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려나. 그런데 그때. 지잉지잉-. 짧게 두 번, 특유의 진동음이 울렸다. -보낸 이: 26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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