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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승리자 (11) (83/200)

빛바랜 승리자 (11)2022.01.22.

-안녕하세요, 최지만입니다. 그는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우선, 제 각오를 밝히기 전에 대한당의 결과에 불만이 있다거나, 불복하기 위해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힙니다. 최지만은 눈을 반짝이며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 톤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오로지 제 뜻, 제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 무소속 출마를 결정하였습니다. 최지만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닦아 두신 영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가 더 크게 피우기 위해……. 최지원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저희도 지금 기자회견을 보고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날짜에 맞춰서 준비한 것 같습니다.” “이런 양아치 같은 새끼가…….” 그는 한숨을 푹 내뱉었다. 최지원은 이마를 쓸어 넘기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한당 당대표 전상국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수신음이 들린 뒤에야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의원님. 지금 기자회견 보셨습니까?” -보진 못했고 나도 방금 막 전달받았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원……. 휴대폰 너머 전상국 의원에게서도 놀란 기운이 역력했다. -나는 모르고 있었네. 지금 다른 의원들도 같이 있는데 우리 쪽에 미리 알려온 사실은 없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최지만의 단독 행동임은 틀림없을 터. 여기서 거짓말을 했다가는 오히려 당 대표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의원님. 혹시 이렇게 된다고 해서…….” -절대 아닐세. 최지원의 물음에 전상국 의원은 황급히 대답했다. -우리 쪽에선 그를 후원할 생각이 없어. 도와줄 생각도 없고, 연락이 온다고 해도 안 받을 걸세. 걱정하지 말게나.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어차피 우리는 대한당이라는 이름하에 묶여 있어야 해. 자네가 누구보다 각하 스타일은 더 잘 알잖나? 이깟 지방 선거로 인해 당이 분열된다면, 죄다 모가지가 날아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최지원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혹시 뭐 새롭게 알게 되는 거라도 생기시면…….” -당연하지. 내 바로 알려 줌세.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차오르는 분노는 가라앉을 생각이 없었다. 결국 최지원은. 쾅! 들고 있던 휴대폰을 거세게 집어던졌다. “이런 제기랄…….” 커다란 배신감에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최지원은 당내 경선에서 자신이 승리할 건 알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근소한 차이라는 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결과론적으로는 승리했다. 자신이 승리하면, 최지만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건 예상했다. 허나, 이렇게 빠르게 배신할 줄은 몰랐다. 당내 경선이 끝난 지 하루 만에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할 줄이야. “이딴 새끼도 형이라고…….” 지금까지 마주치면 억지로라도 웃었던 게 후회될 정도. “고정하십시오, 후보님.” 김 실장은 조심스럽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어차피 대한당의 공천을 받은 건 후보님이십니다. 그깟 한 명 따위로 대한당이라는 거대한 후광은 빛을 잃을 리 없습니다.” 최지원은 꿀꺽꿀꺽 냉수를 들이키며 속을 달랬다. “후광은 남아 있겠지. 다만, 판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문제고.” “…….” 그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눈을 감았다. ‘이거 진짜 빡세질 수도 있겠는데…….’ 어지간한 카드들은 당내 경선에서 전부 사용했다. 혹시 몰라서 남겨 둔 자잘한 것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 최지원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김 실장.” “예, 후보님.” “지금 우리 측에서 들고 있는 자료는 민국당 것밖에 없지?” “맞습니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김현태와 최창범 위주라…… 정춘식 파일은 적을 겁니다.” “정춘식과 최지만 자료 최대한 찾아 와. 이제부턴 전부 네거티브로 가야 될 것 같네.” “당내 경선 직후부터 공약 보완에 힘쓰려고 돌려 놨는데…… 얼마나 빼 올까요?” “모든 인력 다 동원해.” “……네?” 김 실장은 눈을 휘둥그레 떴고. “공약은 적당히 구색만 맞추라고.” 최지원은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차피 시민들은 순 닭대가리들뿐이야. 그깟 소시민들이 공약을 제대로 알고 볼 것 같아? 절대 아니야. 공약 한 줄 보다 TV에서 어떤 놈이 더 나왔고, 또 뉴스에서 누가 더 나쁜 짓을 했는지 그것만 뇌리에 박혀 있다고.” “……알겠습니다.” * * * “도련님, 저번에 지시하셨던 사안입니다.” 마돈나는 품에 껴 온 클립보드를 가져와 넘기며 입을 열었다. “최은실에 관련해서 조금 자료를 수집하는 데 성공해서요.” “어, 뭐 좀 찾아냈어?” 놀랄 만한 보고였다. 최은실에 대해 조사를 시킨 지는 벌써 1년이 훌쩍 넘었으니까. 작년에 맡겼을 때, 마돈나가 직접 조사를 해도 꽤나 오래 걸린다고 들었는데, 이렇게나 긴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최근 들어 자금을 모으는 행동이 더욱 활발해져서 꼬리를 밟을 수 있었습니다.” 임지현은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보고를 시작했다. “우선, 가장 핵심이 되는 건 강원도였습니다.” “강원도면…… 내가 생각하는 거긴가?” “예. 강원랜드입니다.” 허허……. 꽤나 의외였다. 최은실의 시댁인 박태원 의원 집안은 늘 투자 회사 측과 손을 잡고 있어서 이번에도 당연히 기업일 줄 알았는데 강원랜드라니. 다른 곳도 무려 공기업. 자칫하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생각보다 최은실 간이 더 커졌는데? “강원랜드에서 돈을 돌리는 건가?” “예. 현재로서는 외화로 들어온 검은 돈을 세탁하는 작업과 그 수수료를 통해 고리대금으로 사채를 하며 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규모는?” “올해에만 70억 정도 벌어들인 걸로 확인됩니다.” 2022년에만 70억. 이제 4월인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게다가 그녀가 작년 초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던 걸 생각하면, 필시 모아 둔 자금은 어마어마할 터. 물론, 그 전부터 자금을 더 쌓아 두었을 테니, 총 자본은 내가 가진 것의 수 배에는 달할 터. “돈의 쓰임새는?” “아직까지는 계속 사채를 뿌리고 있어서 당장 회수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당분간 움직일 생각은 아니다. “허나, 그 정도 큰돈이라면, 여윳돈도 적지 않기에 물밑 작업은 시작했을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추가적으로 조사 중입니다.” “분명 있을 거야.” 최은실 그 누나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특히 부모님 앞에서는 조금 모자라기는 해도, 꽤나 영악하게 움직이는 인물이었으니까. “지속적으로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자금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다른 곳도 아니고, 강원랜드가 카지노라서 돈이 꽤 쓸모 있을 거야.” 아무리 대한민국이라도 도박판에서만큼은 권력보다도 돈이 앞서는 곳이니까. “예. 필요하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생했어. 늦었는데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어.” “도련님도 좋은 저녁 되십시오.” 마돈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돌아섰다. 문득 피어난 생각에 그녀를 붙잡았다. “참, 지현 씨.” “네?” “이번 건은 혜지 씨한테도 공유해서 같이 한 번 알아봐.” 마돈나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신혜지 사무관 말씀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100% 믿을 수 있어.” “아, 그때 일이 잘 마무리됐군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녀는 펜으로 클립보드에 무언가 작게 끄적였다. “아마 신 사무관이 많이 도움될 거야. 강원랜드도 어차피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기업이라 정보 얻긴 수월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연락은 어떻게 할까요?” “내가 번호 따로 알려 줄게. 2G 휴대폰 하나 구해 놨거든.”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 * * “이거 아주 개싸움이 되겠네.” 최준석 대통령은 씁쓸한 조소를 머금었다. “내가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어.” 그의 탄식에 고태욱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게 어찌 각하 잘못이겠습니까?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머리가 아프려고 하네.” 최준석 대통령은 씁쓸하게 미소를 삼켰다. “처음 시켰을 때, 노선 정리가 쉽지 않으리라고는 예상했지만, 당내 경선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개판이 될 줄은 몰랐어.” “어차피 한 번은 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차라리 각하께서 정정하신 지금 벌어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의 말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 걱정되시면, 제가 첫째 도련님을 한 번 만나볼까요?” “아니야, 됐어.” 최준석 대통령은 손을 저었다. “내버려 둬. 어차피 녀석들이 감내해야 할 일이야.”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둘째도 첫째를 포용할 생각이 없어서 이 사달이 벌어진 거니까. 둘이 알아서 해결해야지.” 최준석 대통령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둘째가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하는지도 지켜봐야 하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은 걱정 짙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극복하면 다행이겠지만, 만에 하나 둘째 도련님이 선거에서 패배하시고 첫째 도련님이 당선 되시기라도 하면…….” “그러면 첫째가 판을 흔들 줄 안다는 걸 알게 되겠지.” 최준석 대통령의 눈이 빛났다. “둘 중 누가 되든, 싸움은 볼만 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러면 따로 손대지 않고 관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두 번째 보고드릴 사안으로는, 이치현 의원에 관해서입니다.” “이치현?” 최준석 대통령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처리한다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끝났어?” “예. 잠깐 문제가 있었습니다. 각하께 보고드릴 만한 사안이 아니어서 따로 말씀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고 실장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맞는 거겠지.” 그는 별다른 의심 없이 물었다. “그래서 치현이는 어떻게 하려고?” “우선, 막내 도련님이 청와대로 들어온 지 1년이나 된 만큼, 연관성이 사라졌기에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이치현 의원의 지역구를 저희 대한당에서 빼앗아오려고 합니다. 우선 이번 지방 선거에서 그쪽 지역구에 구청장으로 저희 대한당 사람을 심어 두고 그 후에 보궐 선거를 따로 진행하지 않도록…….” 보고를 받은 최준석 대통령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오래지 않아 마무리되겠네.” “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수첩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마지막 보고 사안입니다. 특별한 건 아니고, 다음 주 수요일에 각하의 정기 건강검진이 있는데, 이날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방문하기로 날짜가 잡혀서요. 국빈 맞이 행사인지라, 당일에 각하께서 직접 있는 게 그림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건강 검진은 늘 하던 일이니까 굳이 맞출 필요는 없지. 조금 미뤄 둬.” “다다음주로 잡아 둘까요?” “아니, 기왕이면 지방 선거 끝난 뒤로 하자고. 아직 급할 건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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