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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승리자 (10) (82/200)

빛바랜 승리자 (10)2022.01.21.

51.7%. 최지원이 당내 경선에서 획득한 득표율은 51.7%였다. 과반을 간당간당하게 넘긴 수치. 분명 치열한 접전이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격차가 더 좁혀진 결과였다. 48.3% vs 51.7%. 겨우 3.4% 차이다. 이게 당내 경선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에 하나 본 선거였다면……. 충분히 뒤집힐 수 있었을 터. 아니, 아마 뒤집혔을 것이다. 첫째 최지만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을 하고 있었으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줄어든 격차에 나도 놀라울 정도인데, 당사자들은 더할 터. 특히나 최지만이 꽤나 약오르겠는데. “최지만이 가만히 있을까요?” “글쎄.” 마돈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늠이 가지 않는다. 아예 격차가 40% : 60%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면, 최지만도 단념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허나, 고작 3% 내외의 차이는 오히려 아쉬움을 키우면 더 키웠지, 줄어들게 만들 리는 없을 터. “일단 지켜봐야지.” “제가 뭐 따로 처리할 일은 없을까요?” “우리는 일단 한 발 물러나서 지켜보자고. 저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천천히 행동 강령을 준비하면 돼. 급할 거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마돈나는 짧게 대답을 마친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도련님, 개인적인 건데 하나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이번 결과에 대해서 도련님의 사적인 의견이 궁금합니다.”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나의 생각. “사실,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다고 봐.” “그 말씀은…….” “아마 대통령 각하께서도 이런 그림을 원하셨을 거야.” 둘째 최지원이 승리하며 대한당의 공천을 받는 것. 아버지는 처음부터 그 결과를 생각했을 테고, 또 원하셨을 것이다. “다만, 변수가 있었다면 최지만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분발해서 지지율이 아슬아슬했다는 점이지.” “그게 오히려 안 좋게 작용할 수도 있겠네요.” “그럴 확률이 크지.” 최지만이 더 야욕을 품게 할 확률이 크니까. “그렇게 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대한당 내에서도 꽤나 의견이 분분했었는데…….” “굳이 그러진 않을 거야. 첫째 최지만이 다른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대한당의 다른 의원들이 그를 따라갈 일은 없으니까.” 대한당의 꼭대기에 있는 아버지가 제일 중요시하는 게 바로 통일이다. 남북한의 통일이 아니라, 대한당의 통일성. 그렇기에 그는 절대 분열된 대한당을 용서하지 않을 터. 뒤에서 몰래 움직일 수는 있더라도, 대놓고 최지만을 도울 수는 없겠지. 사실, 그렇게 되면 효율은 극히 떨어지게 된다. 선거 운동에서 의원들은 결국 얼굴마담 역할인데, 그들이 면전으로 나서지 못한다면, 사실 큰 도움은 되지 못하는 법이니까. “어떤 그림이 나오든 볼 만할 거야.”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우리는 멀찌감치 서서 팔짱 끼고 재미있게 지켜보자고.” * * * “이게 말이 돼?” 최지만은 연신 헛웃음을 흘려댔다. “3.4% 차이가 납득이 되냐고.” “…….” “난 이해가 안 돼.” 비서진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이대로 흘러가면 본 선거에서는 내가 이기는 그림 아니야?” 순간, 그의 눈이 번뜩였다. “난 뻔히 역전하는 그림이 보이는데. 너희는 아니야?”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다가 문득. 쾅! 책상을 세게 내려치며 화를 냈다. “X발, 입이 달렸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 봐!” 최지만은 숙연해진 비서진들을 향해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집어던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진 못했다. 최지만이야말로 자신의 선거 캠프 직원들이 정말 분발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패배도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었다. 어느 선에서부터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횡보했으니까. 그러나 당내 경선 당일에 크게 치고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중간 개표에서 몇 번이나 역전을 하며 치고받았지만, 결국은 패배했다. 그것도 근소한 차이로. 마음 같아서는 재검표를 요구하고 싶었지만, 당내 경선의 특성상 그러한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설문조사까지 퍼센티지로 당내 경선 득표율에 포함되기에 모든 시스템은 전자 처리되니까. 그때, 최지만의 심복과 같은 오 실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 시간만 더 있었으면 결과가 뒤집혔을 텐데…….” “시간이라…….” 최지만은 말을 되뇌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래, 정말 시간만 더 있었으면 달라졌을 거야.” 당원 투표에서는 최지만이 획득한 표는 훨씬 더 적었다. 현재 국회의원들 중 대다수가 둘째 최지원에게 이미 줄을 선 상태였기에, 그들을 포섭하는 건 쉽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최종 결과에서 이렇게 근소한 차이가 났다. 이를 다시 말하면, 시민 투표에서는 본인이 훨씬 더 우세했다는 뜻. 공천권을 결정하는 당내 경선에서나 당원들의 투표가 중요하지, 실질적인 선거에서 당원들의 표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당선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표가 가장 중요한데, 이 점에서 최지원보다 본인이 우세하다는 뜻. 순간, 그의 눈에 다시금 야욕이 차올랐다. “오 실장.” “예, “지난 설문조사 결과 중에 특정 정당이 아닌, 일반인들의 지지율 나온 것 전부 가져와 봐.” “알겠습니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버지는 이번 서울시장에 당선된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찍으실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자신과 맞붙은 결과는 최지원의 승리. 당내 경선의 결과는 되돌릴 수 없었다. 부정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으니까. 허나, 이를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최지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둘째 최지원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결국 최지만은 우수한 동생한테 패배한 장남이 된다. 동생에게 양보한 것도 아니고, 장남이라는 힘을 쥐고도 경쟁 끝에 권좌를 빼앗긴 무능한 형이 된다는 뜻. 여기서 끝나 버리면, 다시는 주연이 될 기회가 없다. 평생 조연으로 살아야만 한다. 근현대사에서 그는 동생에게 권좌를 빼앗긴 불운의 장남이 될 터.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지.’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못 끝내지. 절대로.’ * * * “안녕하십니까, 최지원입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최지원은 올바른 자세로 깍듯하게 허리를 접어 인사하며 마이크 앞에 섰다. “저는 대한민국의 판사로서 15년 동안 올바른 법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제 모든 힘을 다했습니다. 많은 유혹이 있었습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주변 인물도 적지 않았고요. 허나, 저는 모두 이겨내고 깨끗한 사람으로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대한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하여…….” 그는 대한당의 공천을 발표하는 겸, 새로 쓴 출마 선언문을 낭독했다. 최지원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고, 또 그의 강단까지 느껴졌다. 나는 이 모습을 생중계하는 기자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홀로 지켜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온 건 아니고, 오늘은 정무수석실을 대표해서 왔다. 중요한 건 아니다. 정무수석실 자체가 대한당으로 가득 차있는 만큼, 간단한 인사치레 정도? 그가 출마 선언문을 낭독하는 사이, 나는 오랜만에 만난 대한당 의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뒤편으로 돌아왔다. 오래지 않아, 화려하게 출사표를 던진 최지원이 대기실로 돌아왔다. “형.” “어!” 나를 발견한 최지원은 반갑게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지훈이, 네가 무슨 일이야?” “실장님…… 그러니까 정무수석님께서 힘내 보라고 안부 인사 전해 주셨거든.” 그는 단번에 알아챘다. “아, 정무수석실 대표로 온 거구나?” “응, 맞아.” 그때, 뒤에 있던 김 실장이 다가왔다. “후보님. 10분 뒤에 유세 활동장으로 이동하셔야 됩니다.” “10분은 여유 있는 거죠?” “예, 맞습니다.” “그러면 동생이랑 잠깐 대화 좀 하고 나갈게요.” “그렇게 하시죠.” 슬쩍 눈빛으로 지시받은 김 실장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실내. “물이라도 줄까?” “아니, 괜찮아.” 친절하게 묻는 최지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축하해.” “새삼스럽게, 뭘.”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아니야. 내가 못 도와줘서 미안하지.” “에이, 일부러 그랬나?” 최지원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거잖아. 나라도 못 도왔을 거야. 게다가…….” 일순, 그의 눈빛이 거칠게 돌변했다. “그렇다고 네가 지만이 형을 도운 것도 아니잖아.” 물론, 1초 만에 그 사나움은 사라졌다. 허나, 꺼내 놓은 발톱은 이미 내 눈으로 보기엔 충분했다. “난 처음부터 끝까지 중립이었어.” “그래. 내가 그래서 널 좋아한다니까.”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셋째 지곤이 그 녀석은 처음부터…… 어휴.” 최지만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래서 위험할 땐 중립을 지켜야 한다. 같은 편으로서 덕을 보진 않아도, 최소한 적은 되지 않으니까. 사실, 정치판에서는 특정한 누군가의 라인을 타는 것도 중차대하다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니까. “선거까지 파이팅해. 기왕이면, 우리 형제 중에서 서울시장 한 명 나오는 게 좋잖아.” “당연하지, 인마.” 최지원은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대한당 공천까지 받았는데 못하면 그게 병신이지. 안 그래?” “형이 되어야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야.” “그러셨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나중에 다 너한테 물려줄게.” “나한테?” “당연하지.” 그는 독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최지만, 최지곤 그 두 인간이 득세하는 꼴은 절대 보고 싶지 않거든.” 나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둘을 싫어한다고 보는 게 맞겠지. 물론, 다른 형제들에 비해 나를 좋아하긴 한다만……. 그렇다고 해서 겉과 속이 다른 최지원이기에 쉽게 신뢰할 생각은 없었다. 언뜻 보면, 소시오패스 같은 모습까지 갖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혹도 들고는 하니까. 문제는 시민들 앞에서는 절대 그러한 가면 아래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지. 최지원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얼마든 도와줄 테니까.” “그래. 형이 있어서 든든하네.” “자식, 형제 좋다는 게 뭐냐?” 지이잉-. “어, 김 실장이라서 받아야 될 것 같은데.” “그러면 난 가 볼게. 바쁜데 잡고 있었네.” “다음에 밥 한 끼 살게.” “알았어. 고생해.” 나는 들고 왔던 외투를 들었다. “어, 왜?” 그사이, 최지원은 전화를 받았고. 삽시간에 그의 얼굴이 굳었다. 창백해진 것도 모자라, 입술이 바들거리며 주먹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거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실내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지잉지잉-. 내 휴대폰에도 진동이 거칠게 울렸다. 곧바로 꺼내서 확인하자, 뉴스 속보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속보! 최준석 대통령의 장남 최지만, 무소속 출마 선언! ……허. 이거 일 났는데? 갑작스런 속보에 나 또한 빠르게 문고리를 돌리고 나오려는데, 문득 뒤에서 둘째 최지원의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X발, 개X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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