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빅딜 (10) (72/200)

빅딜 (10)2022.01.11.

“어떻게 생각하나?” 최준석 대통령의 물음에 고태욱 비서실장은 천천히 대답했다. “막내 도련님은 정계에 입문한 지 이제 겨우 1년 되셨잖습니까?” “만으로는 1년도 안 됐지.” “그런데 이 정도 일을 해냈으면…….” 그는 감탄스런 목소리로 혀를 내둘렀다. “꽤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자네가 봐도 그렇지?” 최준석 대통령은 흡족스런 표정으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특하단 말이야.” 평소 자식들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더라도 이렇게 기쁜 얼굴을 보이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태욱 비서실장은 조금 더 그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어디 150억이 작은 돈이겠습니까?” “그렇지. 중견 정치인한테도 큰돈인데,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하는 녀석한테는…… 아마 당분간 돈 걱정할 일은 없을 거야.” 최준석 대통령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게다가 녀석은 혼자서 먹으려고 욕심내지 않았어.” “그게 가장 중요한 점 같습니다.” “그렇지. 먼저 작전을 짜고 국정원장과 직접 접촉해서 딱 절반씩 먹은 거니까.” 그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돈은 오늘 중으로 들어온다고?” “예, 그렇다고 합니다.”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자네가 잘 도와줘.” “알겠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최준석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에 놓여 있는 가족사진을 바라보며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시선은 단연 막내아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고 실장.” “예, 각하.” “최지훈 그 녀석이…….” 최준석 대통령은 앉고 있던 자신의 의자 손잡이를 천천히 쓸었다.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각하께서 도우신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고 해도…… 내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는 못내 쓸쓸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어.” “…….” 고태욱 비서실장은 달콤한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게 그를 대통령의 오른팔로 만든 이유였으니까. “한 20년은 더 기다려야 돼.” 그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투표를 거쳐야 하고, 대선 후보자로 출마하려면 만 40세가 넘어야 피선거인 등록이 가능하니까. “그땐 내가 아흔이 넘어. 만에 하나 살아 있더라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할 거야.”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 실장은 현실을 직시해야지.” 최준석 대통령은 코를 찡그리며 조소를 지었다. “평범하게 살았으면 몰라도, 내가 그 나이쯤 되면 살아 있는 송장일 거야.” 그의 삶을 돌아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온갖 테러의 위협을 받았고, 실제로 그 테러에 당해 수술을 한 경력도 서너 차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용할 정도였으니까. “현실을 봐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슬픈 감정을 지우고 말했다. “건강검진 결과는 전혀 이상 없습니다. 정정하게 오래 사셔야죠.” “됐어. 이젠 나이 들어서 슬슬 골병드는 게 느껴지는데 오래 살기는.”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최준석 대통령은 슬슬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대놓고 큰 병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흔이 넘어가니 예전에 비해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만은 확실했으니까. 물론, 그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고태욱 비서실장만 눈치껏 알아챌 뿐. “누워서 골골 댈 바에야 일찍이 가는 게 낫지 않아?” “오래 사셔야죠.” “하하하. 고 실장이랑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서 낚시도 다니고 농사도 짓고 편안하게 살고 싶긴 한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네.” “전원생활은 3년이면 질린다고 들었습니다.” 고 실장에게서 혹시나 최준석 대통령이 이러다가 갑자기 은퇴를 해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모습이 느껴졌는지. “걱정 마.” 최준석 대통령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막내 녀석 때문에라도 최대한 버틸 테니까.” “저 또한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그래.” 그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를 펼치며 화제를 돌렸다. “행정안전부 장관 은퇴는 잘 준비되고 있지?” “예, 그렇습니다. 어차피 나이가 꽤 있는지라, 자식들에게 선물 하나 쥐여 주면 내려올 겁니다.” “그래, 잘 마무리해. 그래야 지방선거 전에 교통정리가 되니까.” 2022년에 펼쳐진 지방 선거는 대통령에게도 꽤나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의 자식 중 두 명. 장남과 차남이 서울시장 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일 테니까. 現 서울시장의 경우, 정치인으로서는 아직 5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기에 은퇴할 생각이 없다. 허나, 자신의 자식 중 하나가 그 자리에 가야하기에 현 서울시장이 공천을 받지 않게 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달콤한 사탕을 쥐여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행정안전부 장관 자리. 휘하에 경찰관과 소방관이라는 준군사 조직을 관리하는 만큼, 장관 중에서도 꽤나 힘 있는 자리기에 현 서울시장은 거절할 리가 없다. 그 준비를 끝마쳐 둬야, 두 아들 중 하나가 서울시장에 오를 수 있는 법이지. “이번 달 내로 정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그리고 각하.” 고태욱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서울시장으로는 어떤 도련님을 생각하고 계신지…….” 최준석 대통령은 진지하게 고민하며 턱을 매만졌다. 그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생각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나마 둘째가 더 낫지 않으려나 싶어.” 첫째가 되면 막내 최지훈의 입지를 더욱 키우게 만들 순 있다. 장남과 차남이 서로에게 더욱 신경을 쓸 테니까. 허나, 그렇게 되면 대한당의 분열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첫째 최지만이 당선된다고 한들, 둘째의 입지가 좁아지긴 하더라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테니까. 이미 대한당에서도 그의 입지가 다른 형제들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크기도 하고. “하긴, 첫째 도련님이 당선되시면 온갖 싸움이 벌어지겠군요.” “그래. 완전 진흙탕 싸움이 될 거야.” “그러다가 민국당이 득세하기라도 한다면…….” 최준석은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연개소문이 되고 싶진 않거든.”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후임을 정했으나, 현대 정치라는 게 어찌 조선시대처럼 대권자가 정한다고 뚝딱 완성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 지방 선거에서 첫째와 둘째를 싸움에 붙인 것이다. 막내아들에게 시간을 더 벌게 해 주고, 형제간의 싸움 구도에서 첫째를 떼어내기 위함. 둘째의 입지가 조금 더 커지긴 하겠으나, 결국 처음과 별다르지 않은 상황이 되는 것이니까. 게다가 차라리 장남이 물러나면, 더 능력 있는 놈이 자신의 후임이 된다는 명분도 생기는 법이고. 무엇보다 차남과 막내아들 단둘이 맞붙게 된다면, 다자구도보다 한 명을 밀어주기는 더 쉬운 법이니까. “참, 고 실장.” “예, 각하.” “여기 앉아 보게.” 고태욱 비서실장의 손이 움찔했다. 이곳은 대통령 집무실이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어지간한 경우엔 자신은 늘 서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앉으라고 할 정도면, 보통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일 터. 꿀꺽. 그는 침을 삼키며 대통령의 맞은편에 앉았다. 최준석은 서랍을 열더니,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 책상에 올렸다. 한 모서리에 10cm 정도 되는 정육면체 크기의 민트색 상자. 고 실장은 이 상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최준석 대통령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상자를 스윽 밀었다. “이건…….” “지훈이에게 전해 주게나.” “진심이십니까?” “그래.” 그는 진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자와 함께 이 말을 전해 주게. 내가…….” * * * “도련님, 고태욱입니다.” 현관문 너머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곧바로 문을 열었다. “실장님?”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기도 잠시. 한 발 물러나며 그를 맞이했다. “들어오십시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고태욱 비서실장을 안내해 작은 소파에 앉혔다. “마실 거는 뭐로 드릴까요? 주스랑 음료수가 있는데…….” “괜찮습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분명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예.” 나는 의자를 하나 끌어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각하께서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전언! 그것도 고태욱 비서실장을 통해서 직접 전하는 말.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피어났다. 그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스윽 나를 향해 밀어주었다. 처음 보는 물건. “……이게 뭔가요?” “각하께서 도련님께 전하신 물건입니다.” 고태욱 실장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만, 감정이 복잡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만에 하나 당신께서 당초 예상하신 것보다 더 일찍 가게 될 경우 혹은 도련님께서 권좌에 오르시기 전에 본인이 내려오실 경우에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거나,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먼저 돌아가셨을 경우. 다시 말해 위급한 상황이다. “이거 열어 봐도 되는 건가요?” “예.” 상자를 열어 보자, 커다란 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다. 10cm 상자를 꽉 채우는 두꺼운 열쇠. “이게 어떤 건지는 말씀해 주실 수 없나요?” “청와대 집무실 금고 열쇠입니다.” “……!” 말문이 턱 막혔다. 청와대 집무실 금고에 무엇이 있는지는 우리 형제들 중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머니도 모르고 계실 가능성이 크다. “혹시 뭐가 들어 있는지는…….” “그건 저도 모릅니다. 다만.”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른 하나는 제가 들고 있습니다.” 청와대 집무실에 있는 금고를 열기 위해서는 두 개의 열쇠가 필요하다. 두 개를 동시에 넣어서 돌려야만 열리는 금고. 그 두 개가 각각 고태욱 비서실장과 나에게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잘 보관해 두십시오.” “알겠습니다.” “그 외에 남기신 말씀은…….” “없었습니다.” 그럴 것 같았다. 아버지께서는 이러쿵저러쿵 긴 말을 하는 분이 아니셨으니까. 그제야 고태욱 비서실장은 무거운 표정을 풀고 허리를 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스윽 집안을 살피고는. “집은 좋네요.” 가벼운 목소리로 사담을 꺼냈다. “그럼요. 누가 구해 주신 건데.” 그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알기로는 아버지의 오더로 고 실장이 구해 준 것이다. “참, 비자금 받으면 숨기실 곳은 정하셨습니까?” 국정원에서 받을 150억을 이야기하는 것일 터. “아직입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제 오랜 친구입니다. 돈 관리는 확실하게 합니다. 불리기도 하는데, 후일 위험이 될 수 있으니 기본 관리와 은닉만 하시면 괜찮을 겁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신뢰성 짙은 목소리로 말했다. “맡겨 두시면, 언제든 도련님 원하실 때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둘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늘 그랬다. 자신의 임무를 끝내면 더 남아 있는 법이 없다. 그게 지금까지 그가 추문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겠지. 그렇기에 그를 잡지 않았다. “조심히 가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그는 꾸벅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고태욱 실장이 건넨 명함을 바라봤다. HIT 인베스트먼트 대표 이문석. 투자회사면, 돈 관리와 처리에 능하겠지. 게다가 고태욱 비서실장이 소개해 준 거면 아버지의 소개와 같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얼마든지 믿을 수 있다는 것이지. 나는 곧장 그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최지훈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뵙고 싶은데요.” 곧장 이틀 뒤에 미팅을 잡았다. 그리고 남은 건 작은 상자. 아버지가 내게 건네신 열쇠. 나는 그것을 들고 창가로 향했다. 여의도의 화려한 야경이 널찍이 펼쳐져 있었다.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상념에 잠겼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주신 선물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잘못되면 사용하라는 전언. 청와대 집무실 열쇠라……. 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전혀 가늠이 가질 않는다.

16557379860867.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