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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9) (71/200)

빅딜 (9)2022.01.10.

“형.” “어, 왔어?” 룸에 들어서자, 셋째 형 최지곤이 반갑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일찍 왔네?” “형이야말로 아직 약속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왔네.” “오전에 지역구에 잠깐 들렀는데 생각보다 일정이 일찍 마무리되어서 먼저 와 있었어.” 그는 내 컵에 음료수를 채워 주며 물었다. “우리 동생 술보다는 사이다가 낫지?” “업무 시간인데 술 마시면 안 되지.” “하하하, 그렇지.” 사흘 전에 갑자기 연락해서 식사하자고 하더니, 이제는 또 친근한 척이다. 분명 무언가 목적이 있을 텐데.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부른 거야?” “에헤이, 형이 동생한테 밥 먹자고 말도 못 하나? 간만에 얼굴이나 보려고 부른 거지.”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인지, 그는 젓가락부터 들었다. “얼른 먹어라. 식겠어. 여기 부침개가 기가 막히다, 진짜로.” “알겠어.” 급한 건 아니었기에 일단 그의 말대로 식사를 시작했다. 메뉴는 그가 늘 좋아하던 한정식. 나는 갈비찜을 하나 들고 뜯었다. “잘 먹어서 좋네. 요즘 일은 어때, 할 만해?” “어렵진 않아. 잘 맞는 것 같아.” “다행이네.” 최지곤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국회보다는 역시 청와대가 편할 거야. 안 그래도 너 민국당에 있느라 고생했잖아.” “뭐 비슷하긴 해.” 그렇게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배가 슬슬 찰 즈음, “그나저나 동생아.” 최지곤은 슬쩍 젓가락을 놓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가 엊그저께 지만이 형을 만났거든.” 첫째 최지만에 대한 이야기다. 드디어 본론을 꺼낼 생각이 든 모양. 나 또한 수저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다음 지방 선거 때문이구나.” “맞아.” 그는 코를 찡긋하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상황 상 지만이 형이 꽤 불리한가 봐.” 당연히 그럴 것이다. 애초에 아버지께선 자신의 후임으로 둘째 최지원을 생각하고 그의 입지를 키워 두는 데 힘쓰셨으니까. 오히려 이미 확정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의원들도 있었기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혼동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지. 다음 지방 선거에서 첫째와 둘째 형이 경쟁 구도로 가는 건 하나의 명분이다. 무조건 첫째가 모든 걸 이어받는 유교 사상에서 둘째에게 권좌를 물려줄 수 있는 명분을 만들기 위함. 최지만은 그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 또 막판 뒤집기를 위해서 이번 선거에 총력을 기울일 터. 물론, 내가 생각하는 건 다르다. 둘이 혈투를 벌이는 동안, 내가 성장할 시간을 벌고. 또 첫째와 둘째가 서로 상처를 입히면, 당연히 입지가 줄어든다. 즉 나의 입지가 자연스레 커지게 되는 법. 아버지께선 아마 그걸 노리셨을 것이다.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지?” “정확하게는 몰라.” 대충 구도는 알고 있으나, 최근엔 다른 신경 쓸 일이 많기에 둘의 싸움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의 전쟁은 국회에서 벌어지지만, 나는 여의도를 빠져나와 청와대에 있는 탓도 있고. “잘 분투하고 있지만, 상황이 영 좋지 않은가 봐.” “어느 정도인데?” “첫째 형이 53명, 둘째 형이 89명을 확보했어.” 예상했던 것보다 최지만이 더 선방하고 있다. 대한당 의원은 현재 총 160명. 그중 1/3이나 확보하다니. 싸움도 안 될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저력이 있었네. “둘째 형이 이미 과반을 확보해서 첫째 형이 나머지 18명을 전부 데려와도…….” “공천은 이길 수 없다는 거지?” “맞아.” 그는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당내 경선은 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결과는 뻔하잖아.” 맞는 말이다. 말이 당내 경선이지, 까놓고 말하면 의원들이 미는 사람이 당선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당내 중진 의원들의 힘이 작아지지가 않는 것이고. “솔직히 지만이 형이 이기는 게 너도 낫지 않아?” 최지곤은 첫째 최지만과 손을 잡았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둘째 최지원을 물리치지 못한다면, 권좌는 당연히 그가 차지하게 된다. 우선, 그를 끌어내려야 최지곤에게도 기회가 생기니까. “글쎄…….” 나는 모르쇠를 뗐다. “본 게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지방선거가 펼쳐지는 건 내년 여름. 아직 1년도 넘게 남았다. 변수가 많은 선거의 특성상, 굳이 지금 노선을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가서 바뀔 가능성도 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 둘 중 누군가의 손을 들고 싶지 않았다. 누가 이기든 간에 일장일단이 존재했다. “게다가 아버지 말씀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한 걸음 물러나서 지켜보려고.” “하아…….” 아버지라는 말에 그는 대뜸 한숨부터 내쉬었다. “동생아. 말 나온 김에 나 하소연 좀 하자.” “왜, 무슨 일 있어?” “그날 말이야. 우리 저녁 식사 때.” “형들한테 서울시장 출마하라고 한 날?” “그래. 그날 아버지는 나한테 관심도 없더라.” 최지곤은 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대권 후보로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으시나 봐.” 사실,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긴 한다. 첫째처럼 뒷심이 있어서 진득하니 밀어갈 추진력도 없고. 둘째 형처럼 머리가 똑똑하지도 않은 데다가. 오히려 다혈질이라 불같기만 하니, 절대 대통령감은 아니니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 보겠다만…… 아무래도 나는 형들이 먼저 하고 나서 그 뒤를 노려 봐야겠어.” 그는 답답한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이렇게 억울한데, 막내 너는 오죽하겠냐?” “나야 뭐 워낙 나이 차이가 많으니까.” “그래, 그놈의 나이. 먼저 태어난 게 뭐가 대수라고 말이야.” 그는 ‘쯧’ 혀를 차고는 고개를 들었다. “어쨌든 너는 첫째 형 돕기는 힘들다는 거지?” “그럴 것 같아. 게다가 내가 아는 의원님들도 사실상 민국당 소속이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도움되기도 힘들 것 같고.” “아, 또 그러네.” 최지곤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선 지만이 형한테 너는 두 명 다 돕지 않는 걸로 이야기를 할게. 청와대 업무 적응에 바쁘다고.” “고마워.” “고맙긴, 어쩔 수 없지.” 그는 시원하게 물을 한 잔 들이키고는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손가락을 퉁겼다. “참, 막내야.” “응?” “너 혹시 은실이한테 연락 온 적 있어?” 최은실. 최지곤의 쌍둥이 누나이자, 우리 남매에서 유일한 홍일점. 최지곤이 3분 늦게 태어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절대 누나라고는 부르지 않았다. “은실이 누나한테는 뭐 없었는데…… 그 누나는 아마 내 전화번호도 모를걸?” “아, 그러냐?” “응. 안 친하잖아.” “하긴. 나도 번호만 있지, 따로 연락한 적이 없으니까. 출가외인이라더니, 결혼하고 나서는 진짜 메시지도 안 한다니까.” 나는 슬쩍 그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은실이 누나는 왜, 혹시 무슨 일 있어?” “특별한 건 아니고…….” 최지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거기 매형 있잖아.” “내년에 수원시장 나간다며.” “맞아. 그거 관련해서 대한당 내에서 여기저기 접촉하고 있나 봐. 수원시장 정도야 대한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인데, 뭘 그리 싸돌아다니나 해서…… 네가 아는 거 있을까 봐 물어봤지.” 그건 조금 수상한데. 매형의 아버지, 즉 최은실의 장인어른은 전 국회의장인 박태원 의원이다. 게다가 최은실이라는 버프까지 있으면, 사실상 그의 수원시장 공천은 따 놓은 당상. 그러면 분주히 움직일 필요까지는 없는데……. 무언가 꾸미고 있는 건가? “형이 아는 건 없고?” “에이, 내가 뭘 알겠냐?” 순간, 물수건을 내려놓는 그의 눈동자가 왼쪽 위를 향했다. 거짓말할 때의 특유의 시선. 무언가 알고 있긴 한 모양. 다만, 나에게 말해 주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지. 나는 모르는 척 말을 던졌다. “혹시 알게 되면 나한테 전화 줘.” “그래. 당연하지.” 최지곤은 마땅히 그러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을 짚었다. “일어날까?” “응. 잘 먹었어.” “조심히 들어가라.” * * * -네, 임지현입니다. “어, 나야.” -예, 도련님. “오성복 검사한테는 전달했어?” -오늘 아침에 전달했습니다. 감사 인사는 다음에 직접 만나서 드린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도 이걸 받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당연히 줘야지. 몇 달 동안 무급으로 일했잖아.” 마돈나가 송병준 의원실에서 나온 뒤로 지금까지 나를 위해 일하며 단 한 번도 보수를 요구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내가 활동비를 준 게 전부. 물론, 그녀의 집안이 부산에서 유명한 지역 유지 가문이라서 생활이 쪼들릴 일은 없다고는 하나, 그것과 보수가 없는 건 별개니까. 단순히 미래를 약속하는 게 전부는 아니다. 때때로 당근도 챙겨 줘야 일할 맛이 나는 법.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마돈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충분히 줄 만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나를 위해 한 일의 보수로만 생각해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물론, 오성복 검사는 예외. 그에게 준 돈은 미래의 권력을 약속하기 위해 주는 어음과 같은 개념이니까. “참, 지현 씨.” -예, 도련님. “박홍성 씨 알지?” -도련님의 매형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그분이라면, 아버지인 박태원 의원과 함께 내년 수원시장 선거를 준비하면서 요즘 정계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특별한 게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줘.” -주의할 만한 사항은 있을까요? “최은실의 움직임에 주시해서 조사해.”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나는 전화를 끊으며 소파에 머리를 기대었다. 최은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다만, 그녀가 권력에 대한 욕심이 적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평범한 일은 아닐 터. 애초에 박태원 의원의 집안으로 시집을 간 이유도 그가 아버지의 왼팔이자, 국회의장이었기에 결정한 일이었으니까. 허나, 박태원 의원이 고태욱 비서실장에게 밀려나 입지가 좁아졌으니, 무언가 다른 일을 준비하는 게 분명하다. 이제 고작 남편을 수원시장으로 만드는 것 가지고는 이미 서울시장 경선을 준비하는 다른 형제들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2G가 아닌, 내 명의의 휴대폰. 발신인은 국정원장. “네, 최지훈입니다.” -어, 최 비서관. 날세. “안녕하십니까, 국정원장님.” -다름이 아니고, 그 일 확인되어서 연락했네. 나는 소파에 기대고 있던 몸을 번쩍 일으켰다. “어떻게 됐습니까?” -파나마에 있던 300억 원 전부 회수했어. 일부 다른 화폐들도 있길래 전부 달러로 교환해서 오늘 중에 전세기 타고 들어올 걸세.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 달 안으로 150억 원 전달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문득 머릿속에 최일그룹 구택일 회장이 분노에 차올라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그려져 갔다. 어떻게든 300억 원 중 일부라도 빼돌리려고 애쓸 줄 알았는데, 사업이 걸려 있어서 눈물을 삼키고 내준 모양. -참, 최 비서관. “예, 원장님.” -조금 전에 각하께도 보고 드렸어. 꿀꺽. 나는 침을 삼키며 물었다. “대통령님께선 뭐라고 하셨습니까?” -조금 놀란 눈치를 보이셨는데,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어. 고생했다고만 하셨네. 아무 말도 없었다라……. 따로 무언가 호출할 계획을 갖고 계신 건가? -조만간 술 한잔하자고. “좋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쉬게나. “들어가십시오.” 국정원장과의 전화를 끊기 무섭게.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 순간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고태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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