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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8) (70/200)
  • 빅딜 (8)2022.01.09.

    대한당 의원의 가족이 직접 운영하는 여의도의 프라이빗한 중식당. 고급스런 음식 앞에 대한당의 중역 의원들이 모여 있었으나, 그 누구도 젓가락을 들지는 못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게 재심의가 나올 줄이야…….” “혹시 각하께서도 문제 삼으시려는 게 아닐까요?” 의원들이 하나둘씩 소곤소곤 심각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무렵. 원내대표 차명건 의원은 큼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너무 과하긴 했어.” 대한당의 넘버 투. 발언권이 센 만큼 다른 의원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면세만 해도 엄청난 특권인데 각종 혜택을 몰아줬잖아. 개발권 수주에 정부에 3억 달러만 내고서 400조짜리 사업을 통째로 먹으면서 말이야.” “…….” 의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꿔야 돼. 면세 특권을 날리든지, 아니면 다른 기업과 사업을 나누든지.” 구석에 있는 의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면세 특권을 빼면, 기업에서 타격이 너무 크지 않을까요?” “그러면 독점 말고 쪼개기를 하든가.” “그것도 조금…….” 조심스럽게 말하던 의원은 차명건 의원의 눈총에 슬쩍 입을 닫았다. 여기서 최일그룹의 편을 더 들어봤자 자신이 뒷돈을 많이 받았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으니까. 중심에 앉아 있던 대한당의 대변인 오경희가 비꼬듯 말했다. “그러게 적당히 좀 챙겼어야죠.” 이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번 일과 관련되어 돈을 챙기지 않은 인물. “너무 많이 먹으니까 탈나는 거 아니야?” “…….” 허나,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회의실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원내대표 차명건 의원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최일그룹 눈치를 보더라도, 이번 건은 손봐야 해. 여기서 적당히 넘어가면, 분명 각하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거야.” 당대표 전상국 의원은 눈을 지그시 감고 나직이 말했다. “경고야.” 다른 이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각하께서 우리에게 주는 경고. 이럴 때는 제대로 해야 돼.” “그러면 어떻게 진행할까요?” 의원의 조심스런 물음에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행이고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각하께서 우리를 얼마나 한심하게 보실지 예상이 안 돼!” 그는 눈을 번뜩 뜨며 의원들의 얼굴을 살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오경희를 제외한 의원들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쯧쯧. 이러니 각하께서 화를 내실 수밖에 없지.” 당연히 전상국 의원도 돈을 받아 챙기긴 했다. 대놓고 내로남불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이곳의 수장이었으니까. 원내대표 차명건 의원도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전상국 의원은 한숨을 푹 내쉰 뒤 입을 열었다. “50% 면세 그리고…….”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독점권 날리고 10% 사업권 넘겨.” “10%나요?” 의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전상국 의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어중간하게 한 자릿수로 조정했다가는 오히려 화를 더 돋우는 거야. 그걸 아직도 몰라?” “…….” “이 답답한 새끼들…….” 그는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차 의원.” 고개를 돌려 차명건 의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나눠야 좋겠어?” “글쎄요. 일단 10% 정도 되니…….” 그 순간.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전상국 의원은 미간을 세게 찌푸리며 소리쳤다. “심각해 죽겠는데 어떤 새끼야!” 그때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의원 배지를 달지 않은 양복의 사내가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다들 당황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전상국 의원도 마찬가지. 놀라지 않은 건 차명건 의원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애초에 그에게 이곳을 알려 준 건 차명건 의원, 본인이었으니까. 물론, 그 티가 나지 않게 놀란 얼굴을 연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들.” 남자는 안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오며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정영주 실장입니다.” 굳이 소개를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정영주 비서실장. 태무그룹 진태석 회장의 그림자와 같은 인물. “여기 모여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한달음에 달려왔습죠.” 그는 능청스레 웃더니. “제가 뭐 따로 드릴 말씀은 없고…….” 정 실장은 뒤를 향해 손가락을 크게 퉁겼다. 딱! 소리가 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며 검은 양복의 사내 두 명이 양손 가득 007가방을 들고 와 의원들의 옆자리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식사 맛있게들 하십시오.” 그는 더 말하지도 않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깔끔하게 사라졌다. 전상국 의원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의원들을 바라봤다. “태무그룹에선 어떻게 안 거야?”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차명건 의원은 슬쩍 가방을 들며 입을 열었다. “10%는 태무그룹으로 가시죠.” “다른 의원들은?” “제가 확인해 본 결과, 40여 명 의원들은 태무그룹과 나누는 게 괜찮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한열그룹 등이 잇고 있었고요.” “흐으음…….” 전상국 의원은 숨을 깊게 내쉬고는 다른 의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불만 있는 사람 있어?” “아니요, 좋은 것 같습니다.” 반대표를 던지는 이는 없었다. 어차피 다른 곳에 사업을 나눠줘야 한다면, 주머니라도 불리는 게 나으니까. 조금 전 다른 이들을 질타했던 오경희 의원도 어느새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전상국 의원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그렇게 진행하도록 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손엔 묵직한 가방이 들려 있었다. * * * “뭐?” 구택일 회장은 눈을 부릅뜨는 것도 모자라. 쾅-!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태무그룹?” “예. 10% 전부를 태무그룹에서 맡는 걸로 진행한답니다.” “이런 썩을…….” 10%를 넘기라기에, 다른 기업들에게 쪼개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걸 통째로 태무그룹에게 넘길 줄이야. 머릿속에 최지훈의 모습이 아른하게 떠올랐다. “어린놈의 새끼가 진짜…….” 그는 주먹을 꽉 쥐는 것도 모자라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다른 그룹이었어도 열 받았을 텐데, 태무그룹이라니. 개발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분명 이것저것 태클을 걸 게 분명하다. 시작부터 불협화음이 날 게 뻔하다.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 이후에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겠지. 서로 눈치보고 견제를 하는 데 심력을 쏟을 터. 결국 중공업 1위를 빼앗는 건 점점 더 멀어진다는 뜻이지. “이미 확정된 거야?” “국회 흐름으로는 그렇게 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는 곧장 휴대폰을 집어 들어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인은 대한당의 원내대표 차명건 의원. -어, 구 회장. 그의 목소리는 느긋하기 그지없었다. 구택일 회장은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의원님. 태무그룹이라니요?” -아, 그거? 어쩔 수 없게 됐어. 우리도 노력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 “그게 말이 됩니까?” 구택일 회장은 눈을 부릅뜨며 따져들었다. “저는 다 챙겨 드렸잖습니까. 가능하다고 하셨고요. 그런데 이 결과가 이따구로 나오면 어떡합니까?” -욕심이 과했어. 90%도 큰 거야. “그게 말이 됩니까? 이게 어떻게…….” -구 회장! 휴대폰 너머로 차명건 의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선은 넘지 말게. “…….” 구택일 회장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현재 당 분위기로선 이게 최선이야. 자네도 조용히 넘어가. 내가 때 되면 조용히 챙겨 줄 테니까. 홧김에 소리치긴 했으나, 구 회장은 차명건 의원의 심기를 거스를 순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래. 조만간 한 번 보자고. 그는 어금니를 깨물며 목소리를 유지했다. “들어가십시오.” 뚝. 전화가 끊기는 순간. “이런 개X끼가!” 텅! 그는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웃으면서 돈 받아 처먹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야!” 한참을 씩씩거리던 그는 다시금 소리쳤다. “박 실장!” “예, 회장님.” “최지훈 그 자식 뒤 좀 파 봐. 구린내 없는지 좀 봐야겠어.” “괜찮을까요?” 박 실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계 입문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청와대까지 뒤에 있어서…….” 무엇보다 최지훈이 며칠 동안 움직이는 동안엔 최일그룹의 비자금과 연관이 될 가능성이 많기에 이는 건드려 봤자 자폭하는 것과 같았으니까. “그래도 모르잖아. 일단 사람 한 번 붙여 보고 오래도록 지켜봐. 하나는 나오겠지.” “알겠습니다.” * * * “흐으음…….” 나는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100억. 내 눈앞엔 100억 원의 탑이 쌓여져 있다. 그것도 현금으로. 5만 원짜리 다발로 무려 2천 개. 처음 받을 때만 해도 무감각했는데, 이렇게 쌓아 놓고 보니 조금은 실감이 나는 기분. 바닥에 돈다발 20개를 넓게 펴고 그 위에 각각 100개씩 쌓았다. 돈 뭉치의 높이는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내 허리춤과 비슷한 수준. 생각했던 것보단 더 적은 양이었다. 5만 원 신권이 나와서 다행이지, 1만 원짜리 지폐였다면 집에서 보관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 100억 원은 태무그룹에서 소금 호수 개발권 10%를 가져가면서 그 보상으로 받은 돈. 머지않아 국정원에서 추가적으로 150억 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자금은 총 250억 원. 선거 자금으로 계속해서 소모하면, 내가 대선에 나가기 전엔 전부 소모될 것이다. 허나, 이 돈이 바닥을 칠 일은 없다. 이 정도 총알이 생기면 돈이 줄어들 수가 없다.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정무수석실에 있으면 경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한눈에 보듯 볼 수 있다. 각종 호재, 악재는 미리 파악 가능하고. 내수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알기에 돈을 불리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이지.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기 같은 방법을 쓰면 굉장히 쉽겠지만, 괜히 불법과 연루될 필요는 없다. 굳이 서민들의 등골을 뽑아먹고 싶지도 않고. 합법적인 방법으로도 돈을 불리는 방법은 충분히 많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정치인, 경제인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도 되고.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까. 물론, 내 이름을 숨긴 채로. 그 외에도 하나하나 나열할 것 없이 돈을 불릴 방법은 많다. 250억 원. 선거 자금으로 쓰면서도 계속해서 불리고 불릴 수 있을 만한 돈. 다시 말해 평생 돈 걱정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더 이상 재벌들에게 고개 숙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 물론, 그들과 지속적인 유착 관계는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 단순히 내 이득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를 위해서라도 밀접한 유대는 있어야만 하니까. 정경유착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치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니까. 또한, 돈은 단순히 불리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충견이라도 배가 고프면 눈이 돌아가기 마련. 내게 충성하는 이들이 다른 유혹에 끌리지 않도록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하는 데도 쓰인다. 나는 500만 원짜리 다발 40개를 2개의 가방에 나눠 담은 뒤, 마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내가 오늘 중으로 지현 씨 집에 가방 두 개 넣어 놓을 텐데, 하나는 지현 씨가 쓰면 되고, 다른 하나는 오성복 검사에게 전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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