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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7) (69/200)

빅딜 (7)2022.01.08.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나는 모자를 벗으며 당당히 구택일 회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무비서관 최지훈이라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당황하여 아연실색하였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소파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앉아도 될까요?” “그, 그러시게나. 아니, 그러십시오.” 그는 놀랐는지 말까지 당황하였다. 재벌 총수나 되는 사람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코를 찡긋하며 엉덩이를 붙였다. “말은 편하게 하십시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그게 제가 편합니다.” “그렇다면야…….” 구택일 회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잠깐의 침묵. 그 사이, 그는 정신을 차리고는 그나마 표정 관리를 하며 고개를 들었다. “최 비서관. 이번 일의 배후가 혹시 VIP님이신 건가?” “아닙니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분은 이번 일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움찔거렸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걸 분명 아버지의 뜻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구택일 회장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러면 혹시 저번에 왔던 여성은…….” “제가 보냈습니다.” 순간, 그의 동공이 움찔거렸다. “……자네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의 배후가 전부 자네였다는 말인가?”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허허…….” 그는 당황스러운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최 비서관.” 구택일 회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내게로 몸을 기울였다. “내가 혹시 잘못한 게 있나? 아니면 우리 최일그룹이 자네에게 밉보일 만한 일이라도 한 건가?”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말해 주게. 내 바로 해결해 줌세.” “잘못이라…….” 침을 꿀꺽 삼키는 그를 향해 말했다. “굳이 꼽자면, 지난번에 회장님과의 면담을 요청했는데 비서실장님이 나오셨다는 것 정도?” “그것 외엔 없다는 건가?”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저 정무비서관으로서 이번 일의 처리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느꼈을 뿐입니다.” “…….” 구택일 회장은 조심스럽게 얼굴을 굳히고 물었다. “혹시 지난번 박 실장을 통해 했던 말이 진심인 겐가?” 마돈나를 통해 비서실장에게 했던 제안. 즉 300억을 내놓으라는 말이 진심이었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여유롭게 되물었다. “제가 달라고 하면 주실 겁니까?” “허허…….” 그는 실소를 머금으며 허리를 세웠다. “나한테 왜 이러나? 나도 선량하게 사업하는 사람이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공정해야 합니다. 그 비자금은 부정하게 축적된 돈이고요.” 사실, 비자금이란 건 정부로 들어갈 세금을 빼돌린 것과 다름없다. 공식적으로 흐름을 추적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든 돈. “최 비서관.” 그는 하소연하듯 말을 보탰다. “그 비자금을 내가 쓰는 줄 아나? 전부 정치인들 주머니에 들어가는 거야. 각하께서야 대통령이시기에 안 받으시겠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은 다 받는다고.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자네가 알고 있지 않나.” 알고 있다. 어차피 온갖 사치와 쇼핑 정도는 법인카드를 통해 전부 해결할 수 있다. 재벌들의 비자금은 곧 정치인에게 로비를 하기 위함. 허나, 그 로비로 인해 특혜를 받는다는 게 문제인 것이지. 무엇보다 이번 파라과이 소금 호수 건도 그 비자금으로 인한 로비 때문에 최일그룹이 독식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이고. “회장님.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몸을 기울이며 다시금 물었다. “제가 300억을 요청하면 줄 생각은 있으십니까?” “…….” 그의 입이 굳게 닫혔다. 고민스럽겠지. 300억 원이라는 비자금은 하루이틀의 노력만으로 형성되는 자금이 아니니까. “이걸 넘기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텐데요.” 이미 파라과이 소금 호수 개발 사업권에 대한 선정이 중지되었다. 재심의를 진행할 확률이 굉장히 커졌고. 태무그룹 외에도 가능성을 본 몇몇 중공업 회사들은 다시금 관심을 가지며 로비를 시작했다는 건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로 인해 국회의원들은 또 배를 불리고, 최일그룹의 입지는 좁아지겠지. 당연히 파라과이 소금 호수를 독점하는 계획은 물 건너갈 터. 구택일 회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미 들인 돈을 생각하면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투자금이 조금 커졌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지금 구택일 회장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오늘 담판의 결과가 어찌 되었건 간에 파라과이 소금 호수의 개발권 중 90% 이상은 최일그룹에게 돌아갈 예정이었으니까. 다만, 중요한 사실은 구택일 회장은 그걸 모른다는 점. 또한, 지금까지의 로비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위협까지 느끼고 있을 터. “최 비서관.” 생각을 마친 구택일 회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비자금은 줄 수 있네.”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그의 말을 들었다. “다만, 그렇게 된다면 파라과이 소금 호수와 관련된 일들은 원상 복구 되는 건가?” 그에게는 나쁘지 않은 장사였다. 300억이라는 비자금은 최일그룹에 굉장히 큰 타격이 되겠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총 400조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회다. “재심의가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까?” “그렇네.” 100%의 독점 개발권을 달라는 소리다. “글쎄요.” 나는 턱을 매만지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협조해 주시더라도 100%의 지분을 드리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구택일 회장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그럼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없지 않나?” 그는 주먹을 꽉 쥐며 따지고 들었다. “이게 협상은 아니잖나. 결국 강탈 아닌가?” “회장님.” 나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냉혈하게 바라보았다. “저는 여기 회장님과 협상하려고 나온 게 아닙니다.” “……뭐?”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살벌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300억도 잃고 사업도 잃을지, 아니면 사업만이라도 지킬지. 그걸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죠.”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지금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십시오. 각하께서는 이미 재심의를 승인하셨고, 태무그룹을 포함한 각종 재계 그룹에선 국회에 로비를 시작했습니다. 저한테 따질 게 아니라, 제 바짓가랑이를 잡으셔야 하는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구택일 회장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도 한국 재벌의 총수. “자네 뜻대로만은 되지 않을 걸세.” 쉽게 질 생각은 없었다. 그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300억 원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역시나 구택일 회장은 쉽게 말리지 않았다. 상황을 직시하고 있다. 내가 그의 비자금 행방을 모른다는 건 알고 있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추적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을 터. 허나, 여기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과연 그럴까요?”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저는 영원히 그 돈에 대해 주시할 수 있는 인력이 있습니다. 300억 원이라는 돈이 평생 묶이게 되는 겁니다.” “…….” 이것 또한 맞는 말이다. 비자금은 굴려야 돈이지, 은행에 묶여 있는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특히나 파나마에 숨겨 둔 비자금 같은 경우, 이자가 붙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관 비용이 더 든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니까. 구택일 회장은 한참동안 생각하는 듯하더니. “……후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 봐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지 단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 비서관.” “말씀하십시오.” “그 돈을 주면 단순히 300억 원만 나가는 게 아니야. 추징금은 물론이고 언론과 여론도 날뛸 테고 추가 세무조사도 들어올 텐데…… 그건 우리 쪽에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뜻이지?” “회장님께선 단순히 300억의 행방만 알려 주시면 됩니다.”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 비자금만 가져가겠습니다. 부가적인 추적이나 복잡한 일은 만들지 않는다고 약속드리죠.” “진심인가?” “예. 그리고 파라과이 소금 호수 개발권도 최소 90%는 챙겨 드리겠습니다.” 나는 구슬리듯 그에게 몸을 기울였다. “이 정도면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구택일 회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미 벼랑 끝까지 몰린 그에게 이 선택지는 구원의 동아줄과 같았다. 비록 동아줄의 사용료가 꽤나 비싸긴 하겠지만, 굳이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것보단 나으니까. 한참의 고민 끝에 구택일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감사합니다, 회장님.” 나는 웃으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참, 지난번에 제 직원에게 붙인 미행도 풀어 주시고요.” “그렇게 하지.” “제 직원 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며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곧장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쓴웃음이라고는 하나, 분명 구택일 회장의 입꼬리는 휘어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웃고 있지만, 그의 눈빛은 심상치 않았다. 표독스러움이 담겨 있는 상태. 그럴 수밖에 없지. 비자금도 뜯기도 사업권도 쪼개게 되었다. 어지간한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대들 용기도 내지 못하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와서 협박을 하고, 그것을 이길 수 없는 상황. 재벌 회장으로서는 굉장히 굴욕적이었겠지. 분명 그는 보복하려 들 것이다. 이제부터는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조금만 미끄러지더라도 분명 날 잡아먹으려 달려들겠지. 앞으로는 더욱더 신중해야만 한다. * * * “최지훈입니다.” 제일 먼저 국정원장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 오전 중으로 안보팀에 우편물이 하나 갈 겁니다. 거기에 구택일 회장의 비자금 행방이 적혀 있을 겁니다.” -추가 조사 없이 그대로 빼 오면 되나? “그렇습니다.” -알겠네.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예상보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파나마에서 확인하는 대로 다시 연락줌세. 전화를 끊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150억. 무려 150억 원의 든든한 비자금이 생기게 된다. 과정이 꽤나 복잡하기에 내 주머니에 들어오기까지는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겠지. 허나, 확실하게 들어오는 돈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 최 비서관. “예, 의원님.” 두 번째 통화 상대는 대한당 원내대표 차명건 의원. “저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최일그룹 지분은 90%에 맞춰서 진행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네. 나머지 10%는 우리 대한당 내에서 정리해서 정하려는데 괜찮겠나? “네. 그렇게 하십시오.” -그래. 고맙네. 들어가게. “쉬십시오.” 굳이 특정한 그룹을 말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10%는 태무그룹이 맡게 될 것이다. 태무그룹에서 돈을 받은 40여 명의 의원들이 지분을 나누는 것을 지지할 테고, 그들은 태무그룹을 선정할 테니까. 당연히 태무그룹이 중공업계 1위인만큼, 다른 이들도 동의할 테지. 남은 건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지이잉-.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셋째 형 최지곤. 무슨 일이지? “크흠.” 나는 목을 가다듬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최지훈입니다.” -어, 동생아. 요즘 잘 지내지? “응. 무슨 일이야?” -특별한 건 아니고, 오랜만에 같이 밥이나 한 끼 먹을까 해서. 100% 용건이 있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화 걸 일이 없는 양반이니까. “나야 좋지. 언제 볼까?” -사흘 뒤 점심 어때? “그래. 내가 여의도로 갈게.” -형이 식당 예약해 둘게. 그때 보자.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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