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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6) (68/200)

빅딜 (6)2022.01.07.

“통과됐다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러나 신혜지의 대답은 똑같았다. “예. 대통령 각하께서 정무수석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재검토하라는 의견을 보이셨습니다.” “허허…….” 놀라웠다. 그저 시간을 끌 생각으로 파라과이 소금 호수 사업권 배정에 대해 보류 요청을 하는 보고서를 냈는데, 아버지께서 재검토 의견을 밝히실 줄이야. 혹시 아버지께서 내 의도를 읽으신 건가? 그럴 리는 없다. 아직 국정원에서 보고를 올리진 않았을 테니까. 태무그룹이 내게 접근했다는 것도 아실 리 없고. 정무수석은 내 보고서를 보고는 별다른 이견 없이 대통령 집무실로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의 결론은……. 아버지께서 내게 힘을 실어 주시는 것이다. 뭐가 됐든 한번 해 보라는 의미.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래. 이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정무수석실로 부르신 거겠지. 단순 태클일 것이라고 생각한 대한당 의원들은 의아하고 당황스러울 터. 아마 이번에 배를 불린 의원들은 걱정스러울 테고. 최일그룹은 점점 더 똥줄이 타고 있겠지. 물론, 태무그룹은 쾌재를 외칠 테고. 이거 모험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든든한 보디가드가 붙은 느낌이다. 다만, 아버지의 도움은 여기까지일 터. 이 뒤는 나의 영역이다. 판은 기가 막히게 깔렸다. 여기서 내가 해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나의 무능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판을 내게로 끌어와야 한다. * * * 국회의사당. 대한당 차명건 의원의 사무실. 똑똑. 노크소리를 내며 들어가자, 보좌진들이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안녕하세요. 비서관님.” “오랜만에 뵙네요.” 친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내가 이치현 의원실에서 일했을 때 오다 가다 보면서 인사한 정도. “안에 의원님 계세요?” “혹시 약속 잡으셨어요?” “아니요. 지나가다가 잠깐 인사할 겸 들렀는데…….” “바로 여쭤볼게요.” 막내로 보이는 비서는 친절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아니, 최 비서관!” 차명건 의원이 직접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잘 지냈나?”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들어와, 들어와.” 그는 반갑게 집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차는 뭐로 마시겠나?” “괜찮습니다.” 나는 비서를 보며 공손히 말했다. “문 좀 꽉 닫아 주세요.” “예.” 차 의원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보네?” “아니, 뭐 특별한 건 아닙니다만…… 조금 짚어 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건데? 뭐든 말해 보게. 내 가능하면 들어 주지.” 그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혹시 형제들 지지 때문인가? 그거면 조금…….” “아니요. 그런 부탁드리러 온 건 아니고요.” 차명건 의원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뭐든 말해 보게.” 나는 차갑게 표정을 굳혔다. “의원님께서 최일그룹과 적잖은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피어났다. 뻔하다. 대한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은 총 160여 명. 그러나 이들을 움직이는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번 건을 최일그룹이 통과시키자고 마음먹었다면, 대한당의 2인자인 원내대표에게 로비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애초에 그랬다면, 최일그룹이 이번 개발 사업을 독점하도록 두지 않았을 테니까. 차명건 의원의 입은 꾹 닫혔다. 아마 머릿속에서 퍼즐을 짜 맞추고 있겠지. 머지않아 직감할 것이다. 이번 보고서를 올린 게 정무수석실이고. 청와대는 이번 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허가하였다. 그리고 그 정무수석실에는 대통령의 막내아들이 일하고 있고. 자신이 뇌물을 먹고 밀어 준 사업이 보류되자마자 그가 자신을 찾아왔다. 모를 수가 없지. 아니나 다를까, 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호, 혹시 VIP께서…….”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온 사람처럼. 물론, 내 손에 쥔 건 없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도 아니고, 정황상 그렇게 보일 뿐. 하지만 그들에겐 지금까지의 경험이 있다. 그들이 봐 온 최준석 대통령은 어지간해선 움직이지 않으니까. 때로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이라는 게 이성을 잃게 하는 법이니까. 게다가 본인이 찔릴 만한 일까지 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가, 각하께서 화가 많이 나신 건가?” “아버지는 이번 일에 대해 제게 일임하셨습니다.” 순간,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이 말을 다시 말하자면. ‘네 목줄은 내가 쥐고 있다.’와 같았다. 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눈감아주실 겁니다.” “저, 정말인가?” “제가 따로 보고 드리지 않는다면 말이죠.” “…….” 나는 여유롭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기세는 이미 내게 기울었다. 제아무리 원내대표라도 대통령 앞에서는 한낱 파리 목숨이었으니까. “사실, 이번 소금 호수 건은 조금 과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느끼던 참이야.” 역시나 2인자답게 상황 파악과 태세 변환이 빠르다. “무려 400조짜리 사업입니다. 그걸 혼자 먹으려고 로비를 하다니…… 국민들이 이를 알면 얼마나 괘씸하게 생각하겠습니까?” “맞는 말일세.” 그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차명건 의원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다른 기업들에게도 조금은 나눠 주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혹시 원하는 기업이 있나?” “글쎄요.”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특정 기업을 후원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디를 특정하진 않아도 한 10% 정도는 넘겼으면 하거든요.” “10%나?” 독점 사업과 90%는 상당히 다르다. 9:1이라고는 하나, 사업 개발 면에서 마음대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건 천지 차이니까. “흐으음…….”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혹시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나?” “의원님께 제일 먼저 찾아왔습니다.” 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슬쩍 긁었다. “원내대표신데…… 힘드실까요? 혹시 뭐 당을 통제하지 못한다거나…….” “아니야. 그건 아니네. 다만…….” 차명건 의원은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랐다. “이랬다 저랬다 갑자기 말을 바꾸면 당에서 내 입지가 조금 곤란해질 수도 있어서……. 최 비서관도 알지 않나, 다른 의원들도 최일그룹에서 챙겨 준 게 많아서 나 혼자 독전으로 일을 결정할 수가 없어. 분명 반대도 심할 거고…….” “그렇지 않을 겁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40여 명의 의원이 함께 목소리를 낼 예정이거든요.” “40여 명?” 그는 놀란 듯 눈을 꿈뻑였다. “설마 자네가 통제하는 건가?” 그 물음에는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당연히 아니다. 태무그룹에서 돈을 받은 43명의 의원들이 나설 테니까. 다만, 이런 상황이라면 차명건 의원은 그들에게 물어볼 수조차 없다. 여차하다간 내 뒤를 캐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으니까. 그의 풍부한 상상력이 내게 도움이 되는데 굳이 제지할 필요는 없지. “의원님.” “그래, 최 비서관.” “믿고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차명건 의원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 일주일 안에 통과시키지.” “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그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천천히 하시죠. 사람에겐 여유가 있어야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아, 그런가?” 이 정도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일부러 딜레이시킨다는 걸 알아챘을 터. “따로 신호드리겠습니다. 그때 추진하시죠.” “알겠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최일그룹. 그 녀석들을 한번 만나 봐야지. 나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의원님.” “어, 말하게.” “아까 말씀하셔서 그런데, 혹시 제 두 형님 중에 어느 편에 설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건…….” 차명건 의원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에 하나 반대편의 귀에 들어갈까 봐 걱정하는 것일 테지. “저는 어느 편도 아니고, 누구에게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렇죠.” 그저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미 물길이 잡혔는데, 굳이 파도가 치는 걸 원치 않는다네.” 사전에 굳혀진 둘째 최지원. 그를 지지한다는 소리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쉬십시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의원실을 빠져나왔다. * * * 사흘 뒤 저녁 8시. 최일그룹의 회장실. “후우우…….” 구택일 회장의 짙은 한숨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뇌물을 잔뜩 먹여 둔 국회의원들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자신들도 조심스러워서 쉬이 말을 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일의 시작이 정무수석실이라는 건 알지만, 최지훈이 뒤에 있다는 건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접근한 국회의원들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저들끼리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오지태 정무수석이 대통령의 왼팔이었기에 오히려 VIP의 뜻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을 뿐.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며칠 전에 찾아왔던 여자의 정체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도저히 모르겠어.’ 전혀 가늠이 가질 않았다. ‘VIP 혹은 정무수석을 움직일 만한 여자라…….’ 구택일이 알기론 대한민국에 없었다. ‘영부인이나 대통령 딸이라면 몰라도…… 아니, 대통령이 그들의 말을 들을 리가 없지.’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독불장군으로 유명한 대통령이다. 그의 최측근인 고태욱 비서실장의 말이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따르지도, 또 믿지도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구택일 회장의 탄식이 깊어질 즈음. 똑똑. 비서실장이 노크를 하며 바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회장님, 방금 차 도착했습니다.” “그래?” “그런데 지난번과 다른 차량입니다.” “CCTV 확인했어?” “남자인 걸로 확인이 되는데, 모자를 쓰고 있어서 정확한 얼굴 식별이 되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는?” “거기서도 안 보입니다.” “하아…… 나가 있어.” “죄송합니다.” 구택일 회장은 초조함 속에서도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래도록 그리고 정성스레 공을 들인 만큼, 이번 사업이 나가리가 되면 굉장히 위험해진다. 로비용으로 쓴 자금만 수백억 원에 달했으니까. ‘VIP가 직접 올 리는 없고…… 혹시 고태욱 비서실장인가? 아니지, 그럴 리도 없어.’ 최준석 대통령은 해외의 대통령급과 국민 앞이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나서지 않는다. 간혹 고태욱 비서실장이 나설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굉장히 드문 일. 구택일 회장의 머릿속이 터지기 직전까지 복잡해진 뒤에야.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목을 가다듬으며 들어오라는 말을 뱉으려는 찰나. 자신의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거침없이 문이 열렸다. 뚜벅뚜벅.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가 표연하게 걸어왔다. 꿀꺽. 구택일 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익숙하지 않은 체형. 정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은 아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이 목소리 어디서 들어봤는데…….’ 그제야 남자는 모자를 벗으며 정체를 드러내 보였다. “정무비서관 최지훈이라고 합니다.”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을 본 구택일 회장은. ‘……이럴 수가.’ 아연실색하여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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