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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5) (67/200)

빅딜 (5)2022.01.06.

“태클이 걸렸다고?” 서명을 하던 최준석 대통령의 펜이 멈추었다. “그냥 통과시키겠다고 한 거 아니었어?” “예, 맞습니다. 그런데…….” 고태욱 비서실장은 정무수석실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사유로 통과가 일시 보류된 상태입니다.” 정무수석실에서 청와대에 요청을 한다면, 패스하기 전까지는 무기한 정지. 최일그룹에서 대한당 의원들을 후원했고, 그 결과가 이번 사업의 독점 개발권이라는 건 이미 대통령도 보고를 받아 알고 있는 사실. 그렇다고 해도, 별 다른 소리 없이 통과시킬 생각이었다. 최준석 대통령은 의원들도 어느 정도는 자기 배가 불러야 나라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전혀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청와대 내에 있는 친대한당, 정무수석실에서 보류를 시킨 것이었으니까. “오 수석은 별 말 없었는데?” “예, 맞습니다. 다만, 이번엔 결재를 올리신 분이…….” 고태욱 비서실장은 보고서의 하단에 ‘정무비서관 최지훈’이라고 쓰인 글귀를 가리켰다. “막내 도련님입니다.” “그래?” “예. 아마도 오 수석이 따로 보고 없이 바로 이쪽으로 올린 것도 도련님이 올리신 보고서라서 그런 걸 겁니다.” “흐음…….” 최준석 대통령은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냈지만, 그의 입꼬리는 휘어져 있었다. “지훈이 놈이 한 거라고?” “예. 추측컨대 아무래도 이번 개발 사업이 너무 최일그룹에게 특혜가 심하다고 생각해서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신 모양입니다.” “그걸 정무수석이 허용한 거고?” “오 수석은 아마 중립에 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겠지.”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네가 보기엔 어때?” “제가 보기엔…….” 그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대한당 의원들이 조금 상황을 불쾌해할 수도 있겠으나, 도련님께 큰 지장이 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건 간에 그들은 최일그룹에게 돈을 받아먹었기에 이러한 결과를 냈으니까. “지장이 없는 게 아니라, 두려워해야지.” 최준석 대통령은 눈을 번뜩 떴다. “원래 더러운 걸로 배를 불렸으면, 배를 쨀 각오도 해야 되거든.” 그것이 최준석의 정치 철학이었다. 그렇기에 적정선의 검은 돈은 허용하면서도 뇌물, 횡령, 정경유착이 드러나면 가차 없이 쳐냈다. 이러한 모순적인 가치관이 최준석 정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던 것이지. “지난 총선에서 대한당 의원들 과반 확보했다고 요즘 좀 신이 났지?” “예. 이전에 비해 정책을 통한 특정 기업 밀어주기는 30% 가량 더 많아졌습니다. “이럴 때 한 번 휘저어 주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어?” 최지훈이 움직였다면, 대한당 의원들은 그의 단독 행동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배를 채워도 적당히 채우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터. 계속 저질러도 본인의 비리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점점 더 욕심이 커지는 게 인간의 본능. 그걸 억제해 줄 타이밍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대로 내버려 둬.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보자고. 재미있겠네.” * * *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2G폰이 아닌, 내 명의의 휴대폰. 저장되어 있는 번호였다. “네, 최지훈입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그럼요. 회장님은 잘 지내셨습니까?” -물론이지. 발신인은 태무그룹의 회장 진태석. 내가 국회에 처음 입성했을 때, 제일 먼저 접근했던 인물이자, 최일그룹과 매번 재계 서열 경쟁을 하는 재벌. -자주 연락했어야 되는데, 괜히 책잡힐까 봐 하지 않았네. 이해해 주길 바라. “아닙니다. 많이 접촉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굳이 연락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기업인과 정치인이 만나 봤자 안 좋은 추측만 불거질 게 뻔하니까. 그리고 사실 서로 필요하지 않으면 연락하지 않는 게 정상이기도 하고. 오늘은 그가 왜 연락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그럼에도 모른 척 물었다.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다른 건 아니고, 최근에 정무수석실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들어서 말이야. “어제 있었던 일 말씀하시나 보네요.” -하하하, 그래.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파라과이 소금 호수, 정무수석실에서 태클이 걸렸다고 하던데. 역시나 태무그룹. 정보력이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다. -어떻게 된지 물어봐도 되나? “특별할 건 없습니다.” 돌려 묻고 있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알 수 있었다. 최일그룹에서 독점적으로 가져갈 뻔한 파라과이 소금 호수 개발 사업을 본인들이 쥘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 것이지. “제가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아마 결과에 큰 이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그곳에 태클을 걸은 건 최일그룹을 흔들기 위해서지,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니까. 어찌되었건 나는 대한당 의원들을 적대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 그런가……. 그는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무려 400조짜리 사업이다. 조금이라도 발을 낄 수 있다면, 끼는 게 무조건 이득이니까. -개발권의 지분을 쪼개는 것도 힘들겠나? “그건 확인해 봐야 합니다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진태석 회장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혹시 필요한 게 있나? 진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입가엔 가볍게 미소가 피어났다. 물론, 전화였기에 그러한 티는 내지 않았다. “필요한 거라…….” -최 비서관도 이제 슬슬 선거 준비해야지. 그는 달콤한 말로 내 귀를 감싸기 시작했다. -자네도 알잖나,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많다는 걸. “그러기엔 아직 3년이나 남아서요.” -많이 안 바라네. 큰 욕심 없어. 진태석 회장은 솔직한 심정을 말해냈다. -10%. 딱 10%면 돼. 아마 진태석 회장도 이번 사업을 따내기 위해 꽤나 많은 로비를 했을 것이다. 다만, 그 로비에서 최일그룹에게 밀려서 결국 손을 뗀 것일 터. 그러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우리가 10년째 중공업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데, 그 소금 호수 사업권 하나 놓치는 걸로 선두 자리를 뺏기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나. “10%면 유지할 수 있으십니까?” -쉽지 않겠지만, 한 5년 정도는 싸움할 만하겠지. 5년을 버티면 또 그 동안 좋은 호재들이 나타날 테니까. -최 비서관. “예, 회장님.” -큰 거 1장 어떤가.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400조 중 10%. 즉 40조 사업권에 대한 보상이 겨우 10억은 아닐 터. 나 하나한테 100억을 투자한다니. 반갑기도 하지만, 쉬이 믿기지는 않았다. “이제 겨우 정무수석실 비서관을 단 사람한테 그 액수는 너무 크지 않나 싶네요.” -우리가 중간에 로비에서 손을 떼면서 얻은 기회비용이 꽤 컸거든. 게다가 그 당시엔 소금 호수에 있는 리튬의 함량이 이렇게 큰지도 몰라서 포기했을 테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결국 나에게 올인한다는 뜻이지. -그리고 어디 자네가 평범한 비서관인가.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난 태무그룹의 10년 뒤, 20년 뒤까지 생각하고 투자하는 거야.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단순히 이번 사업이 아니라, 멀리 보고 나를 제대로 잡겠다는 뜻이니까. 다만, 이번 건은 꽤 위험도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10% 정도라면 조정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정치에 어디 확실한 게 있겠나?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습니다.” 나는 사무실의 문이 꽉 닫힌 걸 재차 확인하고는 물었다. “이번 건으로 회장님께서 로비하신 인물이 몇 명입니까?” -……그것까지 말해야 하나? “최소한 들고 있는 패가 뭔지는 알아야 베팅을 하지 않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보게. 휴대폰 너머로 진태석 회장이 서랍을 열어 수첩을 꺼내 펼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43명이네. 43명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적다. 그러니 내게 저만큼 투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 “큰 거 한 장…….” -그래, 큰 거 한 장. 그는 결심한 듯 말을 덧붙였다. -내 오늘 중으로 바로 보내 줌세. “아닙니다.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보류해 두겠습니다.” 상황을 봐야 한다. 여차하면 발을 빼야 하는데, 자칫하다간 태무그룹에게 목줄을 잡히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알겠네. “그리고 만에 하나 성공한다면.”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0년 뒤, 20년 뒤가 아니라, 단순히 이번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이 돈으로 뒷일까지 휘둘릴 생각은 없다. 휴대폰 너머로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알겠네. 역시 자네야. “우선 로비하신 43명의 명단부터 보내 주십시오. 그래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는 잠깐 고민하나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걸 자각한 듯 곧바로 대답했다. -알겠네. 내 오늘 중으로 자네한테 전하지. “예. 그러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잘 좀 부탁하네. 전화를 끊고 차분하게 머리를 식혔다. 100억이라……. 안전한 돈이다. 먹어도 절대 탈이 나지 않는 돈. 태무그룹이다. 1980년대 이후로 재계서열 5위 밖으로 한 번도 밀리지 않은 재벌가. 그렇기에 태무그룹에서 로비 기록을 유출할 리도 없다. 평생 안전한 것이지. 게다가 그 돈만 생기게 되면, 다시는 기업가들에게 목줄을 잡힐 필요도 없다. 태무그룹에서 로비한 대한당 43명의 의원 중엔 분명 중진 의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태무그룹을 도와주는 행보에도 등을 돌릴 리는 없다. 문제는 최일그룹에서만 돈을 받은 의원들인데……. 지잉지잉-. 때마침 휴대폰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보낸 이: 마돈나. -최일그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시 한 번 만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순간, 머리가 번뜩 트였다. 잠깐만. 내 생각이 짧았다. 이번 일의 종막엔 결국 내가 나설 생각이었다. 어차피 국정원에도 최일그룹 사람과 손을 잡은 사람이 있기에 그 돈이 나에게 들어갔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이를 다시 말하면, 이번 일이 끝난 뒤에 나는 최일그룹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는 뜻. 대통령의 가호가 있기에 그쪽에서 나를 함부로 공격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재벌이라는 작자들이 한 번 당하고 가만히 있을 양반들은 아니다. 두고두고 나를 공격하기 위해 칼을 갈 것이고. 언젠간 나는 그들의 타깃이 될 게 분명하다. 그럴 때 나를 보호해 줄 원군이 필요하다. 그 지원군은 정치인이나 행정부여서는 안 된다. 최소한 같은 수준의 기업가. 즉 재벌이어야만 최일그룹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이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태무그룹과 손을 잡아야만 한다. 최일그룹보다 재계 서열에서 앞서는 태무그룹.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먼저 접근했으니, 나는 갑의 위치에서 손을 잡을 수 있지. 이 모든 일의 뒤에 내가 있다는 걸 숨겼기에 가능했던 상황이다. 나는 곧장 마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예, 도련님. 문자 확인하셨습니까? “응. 생각보다 빠르게 알아챘네.” 일의 배후가 마돈나라는 걸 눈치채라고 힌트를 주긴 했으나,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서 알아챌 줄이야. “만나자고 해.” -언제로 잡을까요? “한 사흘 뒤로 잡아.” -그쪽에서는 최대한 빠르게 만나고 싶어 하던데요? “그렇겠지. 그러니까 늦게 잡는 거야.”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똥줄 좀 타면서 기다리라고 해. 기왕이면 저녁으로 약속 잡고.”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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