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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4) (66/200)

빅딜 (4)2022.01.05.

최일그룹 재벌 3세 구성동의 자수.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구택일 회장은 구성동이 구속되는 것만은 막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당에게 그렇게 로비를 해서 마약 관련 정책을 완화시키려 한 것일 테니까. 허나, 구성동이 검찰에 자진 출석을 했다. 즉, 앞의 노력들을 전부 물거품으로 만들 생각으로 결심했다는 것이지. 아들이 실형을 받는 것도 각오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자금을 지키려는 것일 터. 괜히 최일그룹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아들 대신 돈을 택할 정도의 담력이 있으니 재벌 그룹 총수를 맡고 있는 것이겠지. -비서관님. 구성동의 자수 소식이 들리기 무섭게 국정원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오늘 파나마를 주시하고 있는데 그렇다 할 만한 자금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데요? “조금 시기가 늦어질 것 같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당분간 기다리긴 하겠으나, 시간을 오래 드릴 순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해외에 있는 국정원 요원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업무도 수행해야 할 테니까.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비자금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 의도를 파악한 것이겠지. 작전을 시작하기 전부터 100%라고 확신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가 들고 있던 자료가 확실한 게 아니었기에, 최일그룹이 덫에 걸려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다시 원점부터 시작이다.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무려 최일그룹 재벌 총수인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면 재미없지. 한바탕 놀아야 신이 나지 않겠어? 테이블에 있던 호출벨을 눌렀다. 똑똑. “비서관님, 부르셨습니까?” “어, 혜지 씨.” 모니터를 보며 곧장 지시했다. “최일그룹이 관련되어 있는 최근 정책이나 사업 계획 전부 찾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 * * “비서관님.” 신혜지는 서류 뭉치를 내 테이블에 조심스레 올려 두었다.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고생했어요.” “그리고 제가 먼저 한 번 훑어봤는데.” 그녀는 제일 위에 있던 서류를 하나 집어 나에게 건넸다. “확인한 자료 중에 가장 의심되는 자료는 이거입니다.” 큼지막하게 쓰인 글귀는 ‘파라과이 소금 호수 개발 수주권.’ 나는 피식 웃으며 보고 있던 모니터를 그녀가 볼 수 있도록 옆으로 돌렸다. “안 그래도 지금 그거 보고 있었어.” 파라과이 소금 호수. 작년인 2020년, 대한민국에서는 파라과이의 한 지방에 있는 소금 호수에 대한 개발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단순히 소금 호수라서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곳은 조금 특별했으니까. 해당 호수의 물에는 리튬(Li)이 녹아 있는데, 이 리튬이라는 게 전기차를 포함한 2차 전지를 만들 때 굉장히 중요한 원료로 쓰인다. 처음 대한민국 정부가 수주 경쟁에 참여했을 때는 소금 호수에 매장되어 있는 리튬의 양은 약 220만 톤으로 추정했으나, 개발권 확인 후 직접 확인해 본 결과, 리튬 농도가 평균 900mg/L. 즉,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약 1,350만 톤이 매장되어 있다고 확인이 되었다. 현재 리튬의 국제적 시세는 1톤당 약 3천만 원. 다시 말해 소금 호수의 경제적 값어치는 400조 원에 다다른다. 한국 정부의 1년 예산이 약 500조인 걸 생각하면, 천문학적인 액수에 가깝다는 것이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이 소금 호수의 개발권을 최일그룹이 독점적으로 확보하기 직전이라는 건데……, 관련 정책들 찾아보니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처음 이 사업에 대해 알게 된 후, 국회의 추진안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언론으로 논란이 된 적이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온갖 면세 특권이 붙어 있고 지원 예산 또한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건, 대한당. 대한당에서도 중진 의원들이었다. 아마 최일그룹에서 그들을 중심으로 빵빵하게 로비를 했을 테고, 당내에서 거수기에 불과한 의원들은 중역들을 따랐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왔겠지. “최일그룹이 사업을 따내는 건 아직 확정되지 않았죠?” “예. 이대로 간다면, 다음 달 정도에는 확정이 될 것 같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백지화시킬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는 말이죠…….” 나는 씨익 웃으며 그녀가 정리한 보고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다녀올게요. 혜지 씨는 이거 관련한 서류들 더 찾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선배님.” 내가 파라과이 소금 호수의 서류를 들고 도착한 곳은 내 사무실 옆에 있는 김상진 정무기획 비서관의 사무실. “어, 무슨 일이야?” 서류를 넘기고 있던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웃어 보였다. “혹시 바쁘십니까?” “아니야. 무슨 일인데?” 그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소파로 나를 안내했다. “다름이 아니고, 하나 여쭤볼 게 있어서요.” “뭔데?” 대답 대신 김상진 비서관에게 서류를 건넸다. 스윽 내용을 훑어보던 그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거 리튬 호수 건이네?” “예, 맞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사업 진행 상황을 보니, 조금 이상하더라고요.” “너무 밀어줘서?” “네. 이 정도면 거의 자원 봉사 수준 아닙니까? 대놓고 최일그룹 보고 국내 중공업 1위로 올라가라는 소리 같은데요.” 과장하지 않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국회에서 심사했던 기준을 보니, 거의 최일그룹한테 떠먹여주는 느낌이더라고요.” “사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감이 없지 않아.” 그는 서류를 툭 내려놓고는 가감 없이 말했다. “대한당에서 대놓고 밀어준 거니까.” “이대로 통과되는 겁니까?” “그렇지 않을까? 일단 대한당이 국회에서 패스했으면 각하께서는 어지간하면 허용하시니까.” “전후 사정을 보면, 외교부에서 굉장히 어렵게 따온 사업 같은데…….” 그는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최 프로.” 내게 몸을 기울이며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이 바닥이 깨끗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뇌물, 횡령, 정경유착. 이게 각하께서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들의 범죄임에도 대한당 의원들이 돈을 받아먹는 건 가끔씩 보고도 못 본 척하셔. 왜인지 알아?” “…….” “너무 꽉 묶어 두면 탈이 나서 그래. 각하는 절대 그러지 않으시겠지만, 나머지 정치인들은 제 배가 부르지 않으면, 눈이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거든.” “그러면 이번 건은…….” “대한당 의원들 배 불리는 걸 알고도 눈감아주신 거지. 사실, 정치라는 게 그렇잖아. 국민들이 원하는 건 완결 무고한 민주주의, 공정한 사회. 이런 게 아니야. 정치인들이 배 조금 불리더라도 내 삶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거든.” 대한당 밀어주기가 뻔한 이번 건에 대해 아버지께서 눈 감고 계시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너무 채찍질만 하면, 기수를 떨어뜨릴 수도 있기에 가끔씩 당근을 주는 것이지. “한 번씩 받아먹으라고 기회 주는 거야.” 나는 천천히 턱을 매만졌다. “여기서 태클을 걸면 각하께서 싫어하실까요?” “그렇진 않지. 오히려 청와대에서도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고 좋아하실 거야. 다만.” 그는 조심스레 한 마디를 덧붙였다. “대한당 의원들이 불만을 품을 수도 있지.” 그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쨌거나 먼 훗날을 대비하기 위해서 대한당 의원들과 밀접한 유대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어도,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되니까. “그러면 혹시 태클을 잠깐 걸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요?” “그렇게 되면 별 문제없지.” 그 정도야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일이 완전히 엎어지면 최일그룹에게서 배를 불린 대한당 의원들이 난감해지겠지만, 결국 통과만 되면 어쨌든 그들은 소기 목적을 달성했기에 어깨에 쫙 펴고 목에 힘주고 다닐 테니까.” “그러니까 그 말씀은…….” 내 눈에 생기가 번쩍 들었다. “과정이 조금 혼잡하고 당황스러워도, 최일그룹이 최종 수주하는 데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 이 말씀이시죠?” “그렇지.” 김상진 비서관은 피식 웃으며 내게 턱짓했다. “뭐 하려는 생각인데?” “최일그룹이 너무 쉽게 가는 것 같아서요.” “인사 한 번 받으려고? 그러면 내가 소개해 줄 순 있는데.” “에이, 제가 그거 받자고 움직이겠습니까?” 나는 씨익 입꼬리를 비틀었다. “기왕 인사 받을 거라면, 무릎 꿇리고 큰절 한 번 받아야죠.” * * * 강남의 한 건물. 최상층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 회장님!” “뭔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경망스러운 비서실장의 목소리에 구택일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어지간한 일 아니면, 오후에 한꺼번에 본다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건 급하게 보셔야 될 것 같아서…….” “뭔데?” 비서실장은 걱정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파라과이 소금 호수 개발권 말입니다.” “그게 왜?” “일시 보류됐다고 합니다.” “뭐?” 구택일 회장은 엉덩이를 들썩였다. “국회 통과됐다며. 갑자기 무슨 일인데?” “정확하게는 확인할 수 없는데,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다시 한 번 검토해 보라는 뉘앙스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청와대?” 구택일 회장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물들었다. “VIP라고?”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청와대에서 이번 개발안을 거절할 수 있는 인물은 적지 않다. 다만, 다들 대통령의 사람이기에 대한당의 진행 건에 태클을 걸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대한당 의원들과 충돌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태클이 걸렸다? 어지간한 사람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테니 청와대의 가장 높은 대통령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이지. ‘대통령을 따로 찾아갔어야 하나?’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그는 뇌물을 받지도 않을뿐더러. 대한당 의원들이 배를 챙기는 것은 심할 정도가 아니면 눈감아주는 인물이었으니까. “나가 있어 봐.” “알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예, 의원님. 접니다.” -어, 구 회장. 무슨 일이야? 상황이 상황인지라, 구택일 회장도 정황을 한 번에 파악하고자, 여기저기 거치지 않고 곧장 높은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무려 대한당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차명건 의원. “다름이 아니고, 이번 소금 호수 건 말입니다.” -그거 통과 시켰는데 왜? “아니, 갑자기 청와대에서 조금 더 검토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해서요. -그래? “예. 그래서 보류되었다고 소식이 들어와가지고 여쭤보기 위해 전화 드렸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내가 확인해 볼게. “언제쯤 알 수 있을까요?” -글쎄. 나 지금 지방에 대한당 모금 행사 때문에 내려와 있어서 내일이나 서울 올라갈 것 같거든. 그때 보고 연락 줄게. “……알겠습니다.” 구 회장은 누구보다도 마음이 급했지만, 대한당 넘버 투인 원내대표를 재촉할 수는 없었다. 만약 심사가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그에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테니까. 다른 의원들에게 확인하고 싶었지만, 대한당 모금 행사가 있다면, 주요 의원들은 전부 지방에 있을 터. 결국 그는 꼼짝없이 다음 날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400조다. 무려 400조짜리 사업이 눈 깜짝할 새에 멀어지게 생겼다. 만약 그렇게 되면, 만년 2등만 하던 중공업에서 1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진다는 것이지. 그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푹 내뱉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금 정무수석실에서 나온 자료를 살폈다. 그런데 순간, 구택일 회장의 눈에 세 줄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파라과이 소금 호수 개발권 관련 사안> -본 사안에 대한 정무수석실의……. -파도처럼 너무 빠르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나이브한 태도로 보이며……. -마른하늘에 마치 천둥이 치듯……. -……. -청와대 정무수석실. 특정 문구로 정해 있는 첫 줄을 제외하고 나머지 줄의 시작 단어를 보면 알 수 있었다. ‘파나마’라는 글자라는 걸.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제기랄!” 구택일 회장은 화를 참지 못하고 태블릿 PC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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