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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2) (64/200)
  • 빅딜 (2)2022.01.03.

    서울 서초구 내곡동. “잠깐 내려 주십시오.” 나는 지시에 따라 차에서 내리고 신분증을 건넸다. 입구에 있던 양복의 직원들 중 몇몇은 나를 주시했고, 신분증을 받은 한 명은 내부로 들어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절차는 까다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다름 아닌, 국가정보원. 즉 국정원이었으니까. 가라로 처리하는 몇몇 군인들처럼 적당하게 운전석 창문이나 열고 ‘나야, 문 열어.’ 이딴 소리나 했다가는 쇠고랑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확인되셨습니다.” 직원은 방문증을 내게 건넸다. “나오실 때 반납해 주시면 신분증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금 차에 올랐고, 그제야 국정원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국정원 본관. 서울의 중심인 서초구에 위치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정원이 강남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국정원 본관의 크기는 굉장히 크다. 잠실종합운동장에 못지않을 만큼 크게 설계가 되어 있는데, 위성 지도상에선 가려져 있어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것이지. 그나마 본관이야 위치 때문에 아는 사람은 안다고 하나, 각 지부는 완벽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다. 그래서 나조차도 모르고 있으니까. 주차장에 차를 대고 국정원 본관 건물로 향했다. 간혹 청와대에서 아버지가 국정원에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기에 전경이 마냥 낯설지는 않았다. 차에서 내려 본관에 들어서자, 포니테일에 세미정장을 차려입은 여성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최지훈 비서관님 맞으시죠?” “예, 맞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그녀를 따라 걸어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향한 곳은 건물의 꼭대기가 아닌, 지하. 보안과 안전 때문에 국정원장의 사무실과 주요 회의실이 지하에 있다고는 들었는데, 사실이었던 모양.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안내를 마친 여성은 깍듯하게 허리를 접고는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다. 똑똑.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국정원장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비서관님.” “안녕하세요.” 국정원장 백병기. 당연한 말이지만, 국정원은 대통령의 직속 정보기관이기에 백병기 또한 아버지의 심복 중 하나. 의한회에서 국정원의 관계자를 몇 번이나 보았지만, 백병기만큼은 결백한 인물이었다. 즉 내가 아는 선에서는 구린내가 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 그렇기에 아버지가 믿고 국정원장의 자리에 앉혔겠지. 물론, 그렇다고 융통성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백병기는 야당. 즉 현재의 민국당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국정원이라는 기관 자체가 정부 직속 기관이기에 당적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백병기는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앉으시죠.” “예.” 그는 직접 커피 한 잔을 내려 나에게 건네주었다. “간만에 뵙는 것 같네요.” “그렇습니까?” 나는 능청스레 말을 꺼냈다. “저는 지난번에 한 번 뵀습니다.” “그런가요? 제가 기억이…….” “일방적으로 봤습니다. 정무수석실에 잠깐 오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아…….” 그는 탄성을 뱉었다가, 민망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도련님과 저도 인연이 있네요.” “그렇죠. 리정화 사건은 제가 정무수석님께 올렸으니까요.” 그는 허심탄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당시에 해외 출장으로 부재중이었던지라, 밑에서 바로 보고를 올렸는데, 그 확인 과정에서 부실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괜찮습니다. 주요 수사를 국정원이 아니라, 검찰에서 맡았다고 들었습니다. 검찰의 실수지, 국정원의 실수는 아니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죠.” 백병기 원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정무수석실 일은 잘 맞으십니까?” “나름대로 할 만합니다. 국내에 일어나는 일들의 전반을 파악할 수 있으니 재미있기도 하고요.” “아마 배울 게 많으실 겁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청와대의 직속 정보기관장. 그리고 대통령의 막내아들. 특수한 관계였기에 분위기는 좋게 형성되었다. 잠시 후, 커피 잔이 바닥을 보일 때쯤 우리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비서관님께서는 어쩐 일로…….” “원장님.” 나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재벌들의 해외 비자금에 대해 발견하게 되면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보통은 국세청을 통해서 압수 절차를 밟죠.” “일반적인 경우엔 그렇게 하고…… 특수한 경우에는요?” 국정원장도 흥미가 생겼는지 커피 잔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등을 떼어냈다. “알고 계신 게 있나 보군요.” “예. 그런데 액수가 꽤 만만치 않습니다.” “얼마나 됩니까?” 백병기의 물음에 손가락 1개를 펼쳐 대답을 대신했다. “100억?” 나는 고개를 저었다. “1,000억?” 끄덕이자, 그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어느 그룹입니까?” “그건 잠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전에…….”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천억 원대는 훌쩍 넘어가는데, 그 중에 제가 추적이 가능한 건 300억 가량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많은 액수죠.” 백병기는 깍지 낀 손을 무릎에 얹으며 물었다. “어떻게 처리하길 바라십니까?” “절반.”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150억은 제가 갖겠습니다. 나머지는 국정원에서 활동비로 쓰십시오.” “허허…….” 백병기는 생각이 많아지는지 의뭉스런 웃음을 흘렸다.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말을 덧붙였다. “결정적 제보가 있으면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이 과정에서 국세청이라든지 다른 정부 기관은…….” “굳이 알 필요 없죠.” “대통령님께는 보고드려야 합니다.” “예. 그건 원장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이니까요.” “그 보고 과정에서 도련님의 신분이 유출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괜찮습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정치에서 돈이 필요하다는 건 나보다 아버지가 더 잘 알고 있을 터. 오히려 재계 인사들에게 검은 돈을 받아 챙기는 불법적인 루트가 아니라, 국정원과 손을 잡는 거라면 더 환영하실 터. 백병기 국정원장은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진행할 수 있습니다.” “최일그룹 아시죠?” 그의 눈썹이 들썩였다. “설마 구 회장의 돈입니까?” “맞습니다.” “구 회장이 비자금을 꽤나 많이 쌓아 놓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1천억 원 중 500억은 미국에, 200억 원은 중국 그리고 나머지 300억 원은 파나마에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에 있는 돈은 국가 정보만 알 뿐, 정확한 위치는 알고 있지 않다. 중요한 건 파나마. “파나마요?” “예. 맞습니다.” “파나마 어디 은행에 어떤 명의로 들어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걸 알아야 어떻게 파나마로 흘러들어갔는지 추적이 가능합니다. 그것까지 알고 계십니까?” “파나마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세탁을 했습니다. 그때 이용된 사람들의 이름도 알고 있고요.” “한 명은 아니겠죠?” “예. 여섯 명 정도로 추정 중인데, 그 중 하나만 알고 있습니다.” 국정원장은 진지하게 턱을 매만졌다. “그 정도면 힘들 수도 있겠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나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는 알 수 없죠. 일개 기자가 취재한 거니까요.” 백병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에는 결정적인 힌트를 갖고 계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힌트는 최일그룹에서 직접 보여 줄 겁니다.” “최일그룹에서요?” “제 계획은 이렇습니다. 우선, 이것과 몇 가지 정보를 더 포함해 최일그룹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직접 말이십니까?” “아니요. 다른 사람을 통해야죠. 굳이 최일그룹에 제 신분을 노출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정보를 통해서 그들에게 돈을 달라고 협박을 할 겁니다.” “돈을 달라고요?” 그는 아직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듯 되물었다. “그런다고 순수하게 주진 않을 텐데.”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비자금의 액수와 위치 그리고 그 추적이 들어갔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요?” “……아!” 그제야 백병기 국정원장은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불안해서 자금을 옮기겠군요.” “맞습니다. 그때 국정원에서 자금의 흐름을 포착하시고 압류 진행을 하시면 됩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그는 흥미롭게 눈꼬리를 휘었다. “그런데 과연 그쪽에서 순순히 넘어올까요?” “넘어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단순히 비자금 관련 서류들만 쥐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백병기의 눈썹이 들썩였다.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하겠군요.”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피식 웃었다. “하긴, 다른 분도 아니고 도련님인데 걱정할 필요가 없죠.” 백병기는 허심탄회하게 말을 이었다. “나이가 들다 보니, 걱정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심려하시는 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파나마에 요원을 보내시고 나서 말씀해 주시면 제가 최일그룹과 접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진행하셔도 됩니다.” 그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파나마에도 요원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거든요. 근처 멕시코, 과테말라, 콜롬비아 및 베네수엘라까지 전부 저희 국정원 요원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역시 국정원이다. 그래. 대통령의 직속 정보 기관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아는 자료는…….” 나는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걸 참고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백병기와 손을 맞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바로 진행하면서 큐 사인 드리겠습니다.”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오피스텔. 마돈나와 함께 김태원 기자가 준 자료들을 다시 한 번 복기하며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과연 넘어올까요?” 마돈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재벌이라는 인간들은 워낙 속을 알 수 없어서…….” “괜찮을 겁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붙어있는 한 남자의 사진을 툭 두들기며 말했다. “아들 지키려면 말을 듣겠죠.” 구성동. 이번 최일그룹의 움직임을 보면, 회장은 어떻게든 아들이 실형을 사는 것만은 막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단순히 비자금을 가지고 건드릴 게 아니라, 구성동을 인질로 잡고 후벼 판다면, 그쪽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을 테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은 잘될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그녀는 어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떨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긴장되시나 보네요.” “……그러네요.” 그럴 수밖에. 나를 만난 뒤로 그녀는 늘 음지에서만 활동했으니까. 게다가 실제로 양지에서 활동할 때도 만나는 건 대부분의 정치가의 실무진, 기껏해야 국회의원들이었다. 하지만 내일 그녀가 만날 인물은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가. 그것도 무려 재벌 그룹의 총수였으니까. 마돈나가 긴장하는 건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철인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람은 사람인 모양. “걱정할 것 없습니다. 현장에서는 제가 전부 지시해 드릴 테니까요.” 이것 또한 사실이었다. 내일 구택일 회장과의 담판에서 마돈나는 나의 입과 귀가 되어 줄 예정이니까. “긴장하지 마시고 오늘은 푹 주무십시오.” 다시 말해. 최일그룹 총수와 담판을 짓는 건 나라는 뜻이지. 바로 내일 작전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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