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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1) (63/200)

빅딜 (1)2022.01.02.

“안녕하십니까.” “어, 최 프로. 좋은 아침.” 휴게실에 들어서자, 어김없이 두 명의 선배들이 날 반기고 있었다. 물론, 평소에는 내가 더 먼저 도착해 있긴 하다. “오늘은 좀 늦었네.” “예. 차에 시동이 안 걸려서 수리 넣어 두고 지하철 타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무슨 문제 있대?” “배터리 문제인 것 같긴 한데, 한 번 체크해 본다고 하네요.” “조심해. 요즘 별거 아닌 거 수리해야 된다고 하면서 돈 받아먹은 놈들이 있어.” “신경 써야겠네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최 프로.” 박성민 비서관은 들고 있던 신문을 내게 뒤집어 보여 주며 물었다. “이거 봤어?” “아, 여배우 마약 사건 말입니까?” “응. 요즘 난리네. 이거 한둘이 아니더만?” 여배우 마약 투약 스캔들. 리정화 간첩 사건의 사실을 덮기 위해 고태욱 비서실장이 준비한 일이라는 건 안 봐도 뻔했다. 사실, 흔한 일이다. 지금까지도 줄곧 보아 온 것처럼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보다 더 큰 이슈를 터뜨리는 것. 애초에 리정화 사건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일부러 극비로 조사 중이던 걸 터뜨렸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물론, 이 두 명의 비서관은 이번 스캔들의 공개를 결정한 게 고태욱이라는 걸 모르고 있을 터. “예. 저도 간단히 한 명만 문제되고 끝날 줄 알았는데 대충 알아보니 엄청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있더라고요.” “맞아. 남자 배우도 2명인가 엮여 있고, 무슨 모델들도 몇 명 있는 것 같더라.” “클럽을 통째로 빌려서 집단 투약했다는 의혹도 돌고 있더라고요.” 그때 김상진 비서관이 커피를 홀짝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을 뱉었다. “여자 배우는 송하늬라던데?” “송하늬요?” “응. 얼마 전에 ‘대조선의 부흥’ 출연했던 배우. 알지?” 알다마다. 연예인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TV 광고로 몇 번은 보았으니까.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최근 드라마로 대박이 났다고 기억한다. 고태욱 비서실장, 생각보다 더 큰 건을 터뜨렸네. “아, 그래서인가?” 박성민 비서관은 낮게 입을 벌리며 말했다. “어제부터 이번 일 관련 정책 수정안이 올라오던데.” “예, 그렇더라고요.” 나도 업무망을 통해 확인했다. “대한당에서 엄청 올리던데요?” 마약 사범들을 보호하거나 초범에 한해서 처벌 수위를 낮추자는 식의 개정안. “당연하지. 송하늬가 WG엔터잖아. 거기 회사에서 로비 엄청 하는 거 알지 않나?” “알고 있긴 하죠.” 그와 동시에 문득 기억 속에 있던 남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WG엔터테인먼트 대표 석현준. 몇 번 참석하지 않은 의한회에서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만났던 인물. 연예계 인사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심력을 쏟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던 건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WG엔터만으로 대한당이 이렇게 크게 움직일 수 있나요?” “그건 아니지.” “무언가 다른 게 있을 거야.” 지잉지잉-. 그때, 박성민 비서관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문자를 확인하나 싶더니. “오!” 그는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이래서 대한당이 움직인 거네.” “뭐 있습니까?” “이거 찌라시 보내 주는 기자 단체 채팅방인데, 송하늬랑 최일그룹 3세랑 교제 중이었다네?” “최일그룹이면…… 그럴 만하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린 고개를 주억거렸다. 최일그룹.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그룹 중 하나. 특징적인 점이 있다면, 가장 뉴스에 많이 나오는 재벌가라는 사실. “최일그룹에서 이렇게 움직일 정도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3세도 같이 마약 투약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그렇다고 봐야지.” 김상진 비서관은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보통 재벌들이 연예인이랑 만나는 건 흔해도 깊은 관계가 되는 건 흔치 않잖아. 서로 이용해서 즐기다가 헤어지는 게 태반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움직일 정도면 같이 연루가 되었다고 봐야지.” 만약, 최일그룹 3세가 송하늬와 진지한 관계고, 그 3세가 마약과 무관하다면, 오히려 송하늬가 은퇴한 뒤, 결혼하는 방향으로 진행했을 테니까. “그러면 선배님.” 박성민 비서관은 김상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단순 투약이 아니라, 유통일 가능성도 있네요?” “그렇지. 클럽에서 단체 투약했다는 의혹도 있다며. 그러면 유통 쪽도 같이 끼울 수 있지. 그러면 형량 엄청 세질 텐데.” “판이 생각보다 더 커지는데요?” “한동안 뉴스거리 볼 만하겠네. 마약 스캔들이 아니라, 마약 게이트가 될 수도 있겠어.” 이건 나도 꽤나 흥미가 생기는 스캔들이다. 보통 재벌가도 아니고, 무려 최일그룹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고 싶었으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이미 국민들의 관심이 이쪽으로 쏠리며 리정화 간첩 사건은 마무리가 된 상태. 이번 마약 스캔들의 초기 목적은 이루었으니, 내가 어떻게 개입하든 간에 고태욱 비서실장은 따로 터치하지 않을 테니까. 무엇보다도 이 마약 스캔들이 게이트가 되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든 간에 청와대는 타격을 입을 리가 만무했기에 그의 손을 떠났기도 하고. 한번 조사 좀 해 봐야겠는데? 지이잉-. 그때, 휴대폰에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발신인은 김태원 기자. 제목이 꽤나 흥미로웠다. -최일그룹 마약 게이트에 관한 소고. * * * 외근을 핑계로 빠르게 청와대를 빠져나와 김태원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최지훈입니다.” -아, 통화 괜찮으세요? “예. 메일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러니까 이게 설명하자면 복잡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번 스캔들이 터지기 전부터 제가 최일그룹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호텔 펜트하우스나 클럽에서 집단으로 투약한다는 의혹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건 최일그룹 재벌 3세 구성동. 구성동과 송하늬가 연인 사이라는 의혹은 이미 기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까놓고 말해 심증은 있으나, 최일그룹에서 대형 신문사에 넣고 있는 광고도 있고 확증이 없으니 보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당연히 소형 언론사들은 대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기도 하고, 애초에 정보력조차 없었을 테지. 그리고 오래 전부터 최일그룹에 대해 김태원 기자가 취재한 결과, 구성동과 송하늬가 연인 관계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지금은 터뜨릴 시기를 재고 있는 상태고. “마약 투약이나 유통에 대한 증거는 찾지 못했고요?” -사진을 입수하긴 했는데…… 화질이 흐려서 정확히 구성동인 건 파악할 수 없습니다. 실제 증거로 쓸 수 있는 건 찾지 못했다는 뜻. 김태원이 기자라는 한계 때문에 발견하지 못한 것이지, 수사 기관이 직접 나선다면 아마 그 증거를 찾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워낙 언론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기에 송하늬를 포함해 드러난 용의자들에 대해서는 경찰들이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섰고, 경찰 당국에서도 완벽하게 조사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으니까. 워낙 엮여 있는 사람이 많은 만큼, 구성동의 실체가 드러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대한당에서 하루빨리 법을 개정하려고 움직이는 것일 테지. 뻔한 이야기다. 얼마 후에 걸리고 구속이 되어 조사를 받더라도, 결국엔 법정에서 집행 유예 정도로 빠져나오게 만들려는 게 목표일 테니까. 그리고 그 공판을 진행할 때는 이미 언론과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나 조용해질 게 분명하고. “최일그룹에 대해서 기자님이 쥐고 있는 건 송하늬와 구성동의 열애 사실 하나인 거죠?” -아니요. 원래는 비자금 관련 조사를 하던 중이어서 다른 자료도 몇 가지 있습니다. “비자금이요?” -예. 현재 최일그룹 회장인 구택일의 비자금 운용 정황을 파악해서 조사 중이었거든요. 그러다 최일그룹에 대해 제보를 받았는데, 그때 구성동의 마약 투약 건이 접수되어서 같이 확인을 하던 도중에 스캔들이 터진 겁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더 재미있게 돌아간다. “비자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계십니까?” -정확하게 아는 건 해외에서 돌고 있는 비자금의 규모가 약 1천억 원대이고, 현재 파나마에 300억 원 가량이 있다는 것 정도뿐입니다. 순간, 머릿속에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비자금이란, 탈세하고 회사 돈의 횡령 및 리베이트나 회계 조작 등을 통해 높으신 양반들이 쓰려고 따로 마련해 둔 돈. 다시 말해 부정한 ‘검은 돈’이라는 뜻이다. 즉 빼앗기더라도 신고할 수 없는 돈이지. 어차피 불법적인 자금이다. 그리고 이걸 최일그룹의 현재 마약 게이트와 연결 지으면……. “기자님. 이거 조사하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글쎄요. 제가 두 달 동안 조사한 게 겨우 저 정도라…… 어느 정도 걸릴지도 모르고 또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확실하게 캐낼 수 있다는 확신은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씨익 입꼬리를 휘었다. “저랑 빅딜(Big Deal)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빅딜이요? “그 돈, 우리가 가져오죠.” 그는 걱정스러운 듯한 목소리를 냈다. -방법이 있을까요? 해외라 한국의 법이 닿지도 않을 텐데. “합법적인 방법으론 불가능하죠. 애초에 불법적인 돈인걸요.” 나는 정치를 하기 위해 이 바닥에 뛰어 들었다. 권좌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고.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검은 돈이야 말로 아주 탐나는 먹잇감이지. 뺏어먹어도 절대 탈이 나지 않는 맛있는 먹잇감.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나는 여의도로 차를 돌렸다. “관련 자료들 전부 저한테 보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 * * 국세기본법 제84조 2항. 체납자의 은닉 재산을 신고한 자에게는 최대 20억 원의 범위에서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 최일그룹의 비자금 300억 원 자체가 불법적으로 형성된 돈이기에 전액 국고로 환수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버지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탈세와 횡령은 칼같이 잡아 왔으니까. 내가 최일그룹의 비자금에 대해 결정적인 신고를 하면 280억은 국고로 환수되고 나는 20억을 먹는 것이지. 그렇게 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나라에는 돈이 많다. 280억 정도 없어도 큰 문제는 없다는 뜻이지. 어차피 없었던 돈이니까. 그러나 겨우 20억 먹자고 이러한 수고를 들일 생각은 없다. 선거판에서 20억 정도는 콧바람 한 번이면 날아갈 돈이니까. 사실, 일반인이라면, 이 20억도 받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말 그대로 ‘최대’일 경우가 20억이니까. 하지만 나는 청와대 소속의 정무비서관이자, 대통령의 막내아들. 당연히 다른 방법을 쓸 생각이다. 국세청과 딜을 할 게 아니라, 국정원과 딜을 해야지. 그쪽과 승부를 봐서, 절반 정도는 내가 가져올 생각이다. 그 정도 자격은 있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국정원에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국세청을 통해 국고로 환수될 돈이지만, 나와 손을 잡으면 국정원이 직접 입수해 그들의 활동비로 쓸 수 있는 돈이니까. 그것도 아버지의 공인 하에 말이지. 어디 빅딜 한번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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