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가리면 (4)2022.01.01.
“긴히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나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앉았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공손하게 물었다. “어떤 사안인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이번 리정화 사건에 관해서입니다.” “리정화 사건이라…….” 그는 책상 위로 깍지 낀 손을 올렸다. “국정원에서 보고한 걸 도련님께서 확인하고 직접 정무수석님께 올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아보았더니…….”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알고 계셨군요.” 고태욱 비서실장은 숨길 생각이 없는 듯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애초에 내가 직접 찾아왔다는 건 적당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실체를 알고 있다는 걸 뜻하니까. “지금 수습하기엔 늦었고요.” 수습하기에 늦었다. 다시 말하면, 수습하지 않을 생각이다. 즉 덮는다는 뜻이겠지. 잠깐의 침묵 이후, 고태욱 비서실장이 먼저 물었다. “혹시 출처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내가 말을 길게 끌자. “곤란하시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죄송합니다.”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쭤보고 싶은 건.” 그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몸을 기울였다. “이번 일을 언론에 공개하실 생각이시냐는 겁니다.” 역시 고태욱 비서실장이다. 오래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 파악을 끝낸 모양.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고한 희생자가 4명이나 발생했습니다.” “4명밖에 발생하지 않은 거죠.” 그는 냉철한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대통령이 흔들리면 국가가 흔들립니다. 안 그래도 북한의 포격 도발로 인해 5천만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각하께서 결단을 내리셨고, 제가 민심을 모으고 있는 중이고요.” 나는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이런 말씀이십니까?” “때로는 눈을 가리는 게 더 이로울 때가 있는 법이라는 겁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도련님. 정치에서는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게 이로울 때가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게 둘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걸 막자고 대통령 각하를 타격 입힐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의 표정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께선 알고 계십니까?” “모르십니다. 아실 필요도 없고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비단 대통령 각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정원, 검찰 그리고 저와 도련님까지. 전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4명의 군인들은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도련님께서 군 간부 출신이라서 더 마음이 가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덮어야 할 타이밍입니다.” “장교들에게 불명예 전역은 그들이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도련님이 나서셔야 할 일은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닙니까?” “정부가 할 일은 국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겁니다.” “…….” “도련님께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불의를 보고 참으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의 물음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 말엔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불의. 참은 적이 없기는커녕, 내가 저지른 적이 없다고도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만 해도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니까.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정치가 아니라, 억지였다. 내 직위와 신분을 통해서 땡깡을 부리는 일과 같았다. 내가 원하는 정치 그리고 정의라는 핑계 하에 움직였던 ‘선택적 정의.’ 고태욱 비서실장의 말이 옳다. 대국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대국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나는 인간 최지훈의 정의를 찾을 게 아니라, 정치를 해야 한다. 이게 현실이고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니까. 내 인생의 장르는 히어로물이 아니라, 서바이벌물이다. 불의. 그딴 건 충분히 감수해야만 한다. “도련님.” 고태욱 비서실장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도련님께서 바라시는 게 정확히 어떤 겁니까?” “제가 바라는 건…….” 나는 냉정하게 머리를 식혔다. 나의 정의를 세우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4명의 장교를 구원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신중하게 생각을 정리하나 싶더니, 한 발 물러났다. “제게 열흘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동안 준비해 두겠습니다.” 열흘. 열흘 만에 장교들의 유죄가 판정나지는 않는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도련님.” “예.”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도련님께서 이번 건으로 언론의 관심을 필요로 하신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억울한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알고도 외면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열흘 뒤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 * 아직도 나는 부족하다.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 고태욱 비서실장과의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다. 대통령 최준석의 아들이 아니라, 최지훈으로서 힘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총선. 다음 총선에서 반드시 당선되어서 내 힘으로 국회의원 자리에 올라야만 한다. 그래야 정의를 주장할 수 있을 테고, 불의를 보고도 당당하게 입을 열 수 있을 테니까. 22대 총선까지는 앞으로 3년. 그동안 최대한 내 세력을 키워 둬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당선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휴대폰을 들고 입을 열었다. “접니다.” 통화 상대는 오성복 검사. “임지현 씨 통해서 연락 받으셨죠?” -어, 그래. 조카님. 이거 꽤 문제가 있는 사건이던데? 국정원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잘하면 청와대까지 치고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청와대는 이번 사건에서 완전히 무관해야 합니다.” -……그래? 오성복 검사는 당황한 듯 물었다. -조카님한테까지 영향이 미치는 건가? “예. 이번 건은 단순히 검사님의 실적을 올리는 용도로만 쓰여야 합니다. 국정원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고요.” -흐음……. 그는 짧게 고민하더니. -그래, 알았어. 조카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그리고 오늘 중으로 기자 하나한테 연락이 올 겁니다.” -기자? 언론사 기자 말하는 거야? “예. 한정일보 김태원 기자가 직접 찾아 갈 겁니다.” -믿을 만해? “충분히 믿을 만합니다.” -알았어. 김태원 기자가 직접 기사를 쓰진 않을 것이다. 익명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예 제3자를 통해서 연결시켜 기사를 내겠지. 그래야만 한다. 이번 사건엔 내가 끼어 있다는 걸 고태욱 비서실장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 기사가 한정일보에서 단독으로 터진다? 당연히 김태원 기자의 이전 기사들도 눈에 밟힐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스레 나와 연결고리가 하나씩 노출될 터. 그걸 막기 위해 제3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민국당에서 내가 했던 행동들을 고태욱 비서실장이 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오성복 검사는 커다란 문제가 없다. 어디까지나 그는 독자적으로 미쳐 날뛰는 망나니일 뿐, 이번 사건만으로는 나와 연관이 있다는 걸 파악할 수가 없을 테니까. * * * 고태욱 비서실장이 내게 약속한 열흘. 정확히 열흘째, 그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오후 3시에 진실을 밝히라고. 그의 말을 따라 오성복 검사와 김태원 기자가 연결해 준 다른 기자를 통해 리정화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혔다. 거창한 기자회견도 굳이 열지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3시 5분. 뉴스와 실시간 검색어는 ‘여배우 마약 투약 사건’으로 도배가 되었다. 인터넷은 그 여배우가 어느 소속사의 누구인지, 어떤 작품이 있고, 다른 누구와 연관이 되어 있는지에 대해 찾는 내용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사실상, 리정화에 대한 사건은 묻힌 것이지. 현대인들에게 간첩을 향해 쏟기에 열흘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으니까. 더 자극적이고 신선한 뉴스가 있으면 그쪽으로 쏠리는 게 당연한 일. 무엇보다 그 열흘 사이, 대북 이슈는 정부가 마무리를 지어 놓은 게 크기도 했고.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오성복 검사가 나선 덕분에 리정화는 가짜 간첩으로 판명이 날 테고, 덕분에 4명의 장교는 무죄를 밝힐 수 있을 테니까. 그는 꾸준히 실적을 쌓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나중에 내가 그를 끌어올릴 때 특혜 논란이 없을 테니까. 이렇게 리정화 간첩 사건은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진실을 밝히게 되었다. * * * “흐으음…….” 고태욱의 입가엔 흥미로운 미소가 걸렸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그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알던 꼬마 도련님이 이제 진정한 정치인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존심, 정의 그리고 가치관까지. 고태욱 비서실장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대통령의 자식들을 지켜봐왔다. 성장하는 모습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전부.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나 막내 도련님인 최지훈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현실과 타협했다. 자존심을 버리거나 정의를 잃기도 하고 가치관을 바꾸기도 하였으니까. 특히나 유일한 딸인 최은실은 본인의 한계를 깨닫고 합리화하여 전 국회의장 박태원 의원의 집안으로 들어가 있을 정도. 그러나 최지훈은 달랐다. 본인 고유의 가치관 그리고 정의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목표를 이뤄내고 있다. 타협하지 않으면서 말이지. 다른 형제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젊으니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연륜으로 정치 스킬이 생기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니까.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점은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그 누구도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관여한 일들은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최지훈은 자신을 아버지의 오른팔로 본 게 아니라, 순수하게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보고 움직였다. 그것이 형제들과 가장 다른 점이었다.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신선한 충격이야.’ 그는 피식 입꼬리를 휘었다. 처음 대통령이 막내아들을 밀어준다고 했을 때만 해도 100% 이해를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지시를 받았고, 각하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 그대로 움직이는 것뿐.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떡잎부터가 달라.’ 탁탁탁. 그는 서류를 추린 뒤, 대통령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 “각하, 고태욱입니다.” “들어와.”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며 꾸벅 인사를 하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리정화 사건은 새롭게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 최준석 대통령은 스윽 보고서를 훑었다. “이거 논란은 안 되겠어?” “예. 언론사에서 취재는 자제시켜 뒀고, 국민들의 관심에선 이미 벗어났습니다.” “그러면 됐지.” 그는 보고서를 책상 위로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 외에 내가 알아야 할 만한 사항이 있나?” “아닙니다. 보고드릴 만큼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