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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가리면 (1) (59/200)
  • 눈을 가리면 (1)2021.12.29.

    -북한에서 NLL 이남의 해안을 향해 포격 도발이 행해졌습니다. 포격 대상은 NLL, 즉 북방한계선을 돌던 해경순찰정이 대상이었던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요. 구조 요청에 해안 경비대가 즉시 출동하였습니다. 순찰정에는 총 6명의 해경이 타고 있던 걸로 확인이 되며……. “이런 미친.” “제기랄.” “내 터질 줄 알았지.”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육성을 내뱉으며 휴게실을 뛰쳐나갔다. 나는 곧장 사무실로 향하며. “혜지 씨. 해경이랑 국방부 쪽과 연결해서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 줘요.” “알겠습니다.” 어쩐지 요새 시국이 시끄러운데 조용하다해서 불안하다 했더니,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래, 다시 바쁠 때 됐지. 띠리리링-. 아니나 다를까, 내선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네, 최지훈입니다.” -해양경찰청 차장 임현무입니다. “예, 말씀하세요.” -정무수석님께 직접 보고 드려야 하는 사안인데……. “정무수석께서는 현재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저한테 말씀하시면 바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네. 정무수석님께서 요청하신 자료에 관해서 먼저 유선으로 보고 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포격 지점 외에……. 해양경찰청을 시작으로 온갖 곳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빠르게 자료를 정리한 뒤, 신혜지를 통해 본관에 있는 정무수석에게 전달했다. 지금까지 파악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NLL 근처를 돌며 해안선을 정기 순찰하던 순찰정이 북한의 포격을 받아 전복되고 말았다. 총 3발의 포격이 가해졌으며, 두 발은 바다에 떨어져 큰 타격이 없었으나, 나머지 한 발이 스치듯 부딪쳐 선체가 파손되었고, 다른 포격으로 인해 발생한 파도에 배가 뒤집히고 만 것. 뉴스에선 침몰이라고 보도되었지만, 정확히는 뒤집힌 것이었기에 완전히 침몰하기 전, 인양할 수 있을 터. 아마 오래지 않아 정정 보도가 될 것이다. 또한, 6명의 해양경찰 모두 무사히 구조가 된 상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순찰정은 수리를 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치명적인 인명 피해는 없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국민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할 테고. 이를 계기로 민국당은 정부를 물어뜯으려 할 게 분명한 데다가. 또한, 이에 군과 해경이 어떻게 대응했느냐가 또 중요할 테고. 북한도 언론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칠 테니까. 오전 내내 일을 처리하느라 잠깐도 쉬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게 보여 숨을 돌릴 즈음. 똑똑. “들어오세요.” 신혜지가 들어왔다. “비서관님.” 나는 정무수석에게 보고할 서류를 타이핑하며 말했다. “말씀하세요.” “뉴스에서 해양경찰청의 브리핑이 나오고 있습니다.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좀 틀어 줄래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직접 리모컨을 이용해 사무실에 있는 TV를 틀어 주었다. “혜지 씨도 여기서 보고 가요.” “예.” TV에선 딱 맞춰 해양경찰청과 국방부의 합동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해양경찰청 차장 임현무입니다. 정무수석 오지태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해양경찰청의 청장도 아직 대통령과 함께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오늘 오전 8시 57분 경, 해양경찰청 소속의 순찰정 한 대가……. 그는 내가 아는 상황을 그대로 브리핑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고……. 그다음에 등장한 인물은 군복을 입은 남성. -국방부 대변인 박현철입니다. 국방부와 관련된 사항은 내 담당이 아니다. 정무기획 비서관인 김상진이 기본적인 사안을 조합해서 정무수석에게 전달했을 테고. 주요 사안은 국방부에서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했겠지. 국방부 대변인은 강인한 목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8시 57분에 발포된 북한의 포격 도발에 우리 군은 9시 3분부터 총 31발의 대응 사격을 하였습니다.” 3발을 발사한 북한군의 10배에 달하는 미사일. 지금까지의 정부라면 진보나 보수에 상관없이 과잉 대응이라며 책임자를 경질했겠지만, 이번엔 아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 최준석이 대통령에 오른 뒤부터 지금까지 북한에는 십수 년째 강경 정책을 펼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칭찬을 받겠지. “우리 군의 대응 사격 장소는 북한의 NLL 근방의 해안…….” * * * -동족 조선 인민군의 포격은 단 3발만으로 남조선의 순찰정을 침몰시켰으며 그들의 대응 사격은 우리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허나, 이러한 남조선의 과잉 대응은 이 나라의 모든 가정과 인민군에 대한 강도배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간주하여 머지않아 최준석 역적 패당의 소굴을 초토화해 버리고 남반부를 해방할 것이다. 또한…….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네.” 북한의 보도는 예상했듯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북한에게 강경책을 내세우는 우리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자신들의 업적을 과장했다. 그들의 포격으로 배가 전복된 건 사실이지만, 침몰하지는 않았다. 또한, 가라앉기 전에 순찰정은 인양했고. 우리 군의 포격은 위협사격이었기에 당연히 그들에겐 피해가 있을 수가 없을 수밖에. “며칠 동안 또 살벌하겠구먼.” “그렇겠죠?” 나는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내뱉었다. 아마 한동안 뉴스에서는 이번 포격 관련 소식만 보도하겠지. 민국당에서는 벌써부터 ‘안일한 대처’라든지, ‘경계 부족’ 등 온갖 자극적인 단어로 언플을 시작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아마 나도 며칠 동안은 집에 못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야근은 당연하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할 가능성이 있으니 정말 급하면 어쩔 수 없이 관저의 내 방에서 지내야 될 수도. “여기 모여 있었네.” 그때, 정무수석 오지태가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예, 실장님.” 우리는 하나 같이 담배를 내려놓거나 뒤로 숨겼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담뱃불을 끄려는데 정무수석이 손을 저었다. “아냐. 그럴 필요는 없고…….” 그는 괜찮다며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여기서 말할게. 일단 김 비서관이랑 최 비서관은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대안을 찾아 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박 비서관만 잠깐 따라와.” “예, 실장님.” 박성민 자치발전 비서관은 정무수석을 따라 자리를 비웠고,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김상진 정무기획 비서관과 나는 다시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예상한 그림대로 가네요.” “당연한 거지, 뭐.” 북한이 나서서 사실을 왜곡하고. 민국당이 이때다 싶어 정부를 힐난하기 시작할 때 제일 적합한 방법이긴 하다. 북한에 대한 반감을 키워, 국민들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고, 강경책을 지지하여 정부가 강하게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게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정통적으로 먹히던 방법이었으니까. “오늘부터 보고서들 줄기차게 올라오겠네요.” “그러게 말이야.” 각 기관의 장들에게 정무수석의 지시사항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할 것이다. 그리고 각 부처에서 할 수 있는 사안들이 올라오겠지. 그 중에서 쓸 만한 사안을 골라 보고하는 게 우리가 할 일. 김상진 비서관은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길게 내뱉었다. “난 북한보다도 민국당 녀석들만 어떻게 해 버리고 싶어.” 그는 꽁초를 짓이기며 말했다. “민국당 그놈들 주둥아리만 막아도 참 마음이 시원할 텐데.” “그러게요.” 참 신기한 일이다. 민국당에서 일할 땐 대한당이 미워 보이더니만, 여당에서 일하니, 민국당 녀석들이 양아치스럽기 그지없다. 전부 상대적이라는 거겠지. “일단 들어가자고. 또 바쁘게 일해야지.” “예, 선배님.” “속옷은 챙겨왔어?” “아니요. 못 참겠으면 관저에 들어가서 갈아입고 오려고요.” “하하, 그러면 되겠네.” “선배님은요?” “조금 전에 와이프가 가져다준다네. 도착하면 나가서 받아 와야지.” “좋은 사모님 두셔서 다행입니다.” “심부름 시켰다고 바가지나 안 긁으면 좋겠어. 하하핫.”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자, 일하러 가자고.” “예.” * * * 검찰청, 경찰청, 국정원 등 다양한 부처에서 보고서가 올라왔다. 물론, 어지간한 고위급이 아니면, 확인조차 할 수 없는 보고서. 민국당에서 봐서는 안 되니, 당연히 일개 국회의원들도 확인이 불가능한 등급이다. 그리고 나는 이틀째 한숨도 못 자고 보고서를 훑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진행을 하고 싶지만, 북한과 관련된 문제는 청와대와 직속으로 연결되기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똑똑. “들어와요.” 역시나 사무실에 입장한 건 신혜지. “피곤하실까 봐 커피라도 한 잔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레 내 책상 위에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더 말씀하세요.” “예.” 신혜지는 꾸벅 인사를 하고 뒤로 물러났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다가 문득 문을 닫으려던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혜지 씨.” “네?” “앞으로는 노크하고 굳이 대답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손님 있을 때만 제외하고요.” 그녀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알겠습니다.” 눈웃음의 의미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건, 본인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니까. 나름대로 나에게 인정받았다고 느낀 탓이겠지. 다른 선배들의 말도 그렇고, 며칠 동안 일한 것만으로도 신혜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들은 대로 강직하고 입이 무거우며 업무 능력 또한 출중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행시를 수석으로 패스해서 들어왔다고 하니, 나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다. 올해가 3년째니, 26살. 혹시나 싶어서 마돈나를 통해 뒷조사를 해 보았지만, 문제될 것 없이 깔끔했다. 아직 임지현만큼 숨김없이 오픈할 정도는 아니지만, 신뢰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후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왼손에는 커피, 오른손에는 마우스가 쥐어져 있었다. 카페인으로 머리를 적시며 보고서들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쯤 지났을까. 문득 시선을 사로잡는 서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남파 간첩 리정화 보고서.’ 결과가 나오진 않았고, 현재 조사 중인 인물에 대한 보고서였다. 탈북자로 한국에 들어왔지만, 실상은 스파이인 여성. ‘새터민’이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하는 명목으로 군부대를 돌며 염탐, 시찰하는 것도 모자라. 작전장교들에게 접근해 마음을 빼앗은 뒤, 자연스럽게 군사 기밀을 빼돌려 북한에 보고한 간첩이었다. 이 정도면,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고, 북한에 대한 반발심도 키울 수 있을 터. 다른 것도 아닌, 사람의 마음을 갖고 이용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곧장 보고서를 정리해 정무수석실로 향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발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어차피 정무수석 오지태도 자고 있을 리 없으니까. 똑똑. “들어와.” 칼 같은 대답에 들어가자, 역시나 오지태도 또렷한 눈으로 서류를 뒤지고 있었다. 다만, 눈엔 핏발이 서서 잠을 못 잔 티가 나고 있었다. “괜찮은 것 좀 찾았어?” “예. 이거 한 번 보시겠습니까?” 나는 남파 간첩 리정화에 대한 보고서를 그에게 건넸다. “국정원에서 올라온 거야?” “그렇습니다.” 그는 신중하게 서류를 넘기며 읽기 시작하더니. 이내 흥미롭게 입꼬리가 휘어졌다. “이거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정무수석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지금 보고서 하나를 봤는데, 리정화라고…….” 짧은 대화였지만, 상대는 확인하지 않아도 국정원장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명백하진 않아도, 굉장히 의심스럽다는 거지? 진술 일관성도 보이고. 그래, 오케이.” 그는 전화를 끊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바로 정리할 수 있지?” “예, 실장님.” 정무수석은 눈을 빛내며 지시했다. “그러면 내일 신문 1면으로 바로 보도해.” “알겠습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꾸벅 인사를 하며 사무실을 빠져나오려 했다. 그런데 문고리를 잡자. “최 비서관.” 그는 흐뭇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찾느라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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