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군일지, 적군일지 (4) (58/200)

아군일지, 적군일지 (4)2021.12.28.

“광견병 걸린 불도그 길들이려고 왔거든.” “……뭐?” 오성복 검사는 내 답변에 기가 찬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젊은 애새끼가 정신을 못 차렸네.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다만, TV라도 몇 번 나왔다고 기고만장해졌나 보지?” “그렇게 눈썰미가 없어서 쓰나.”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니면, 다르게 불러야 알아듣나?”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호칭을 불렀다. “당숙.” “……뭐?” 순간, 그의 입이 쩍 벌려졌다. “너 설마…….” “오랜만에 뵙네요.” 나는 꾸벅 인사를 하며 소개했다. “최지훈입니다.” 그는 벙찐 얼굴도 잠시. “하하하하하핫.” 웃음을 터뜨리며 내게 다가왔다. “조카. 오랜만이야.” 5촌 조카였기에 ‘종질’이라는 호칭이 맞지만,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 한국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당질, 종질이라는 호칭은 모르는 모양. 그렇다고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었다. “잘 지냈어?” 그는 손을 내밀며 내게 인사했다. “예. 그럼요.” 사실, 친척이라고는 하나, 오늘 보는 게 이제 딱 두 번째다. 고모할머니를 따라 어렸을 적부터 미국으로 옮겨 가 자랐기에 만날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지난번에 만난 것도 거의 20년 가까이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사실, 그래서 처음 마돈나가 찍어 온 영상 속 얼굴을 보고도 가물가물했다. 이름을 들어서 겨우 기억이 났지.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 불도그 검사님 길들이려고 왔다니까요.” “……뭐?” 그의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아까 농담으로 한 말인 줄 알았더니만…….” 오성복 검사는 살벌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위압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불도그’라는 별명을 가진 건 단순히 업무 스타일 때문은 아니었다. 193cm로 한국에서 드물게 나보다 큰 키. 100kg를 훌쩍 넘는 덩치.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나운 인상. 말 그대로 ‘불도그’가 연상되는 외모였으니까. “늦둥이 막내라고 오냐오냐 자랐나 본데, 슬슬 정신 똑바로 차려. 아무리 친척이라도…….” “당숙.”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나 또한 그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당숙이야말로 정신 차리시죠. 올해 벌써 서른다섯이잖습니까? 언제까지고 평생 평검사로만 남으실 겁니까?” 나와 띠동갑이기에 나이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서른다섯. 평검사로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의 사법연수원 기수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승진이 기대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고, 한국대 법학과 졸업과 동시에 사시패스. 그리고 첫 발령부터 계속 서울. 게다가 계속해서 실적도 내시고…… 최소 부부장검사는 달았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아?” 그도 할 말이 있는지 받아쳤다. “내가 승진 못 하는 게 누구 때문인데? 네 아버지 때문이야. 알아?” “아버지 때문이라니요. 아버지 덕분에 지금까지 버티고 계시는 겁니다. 청와대 아니었으면 진즉에 나가서 변호사 간판 세우고 굽실거리기 바빴을 겁니다.” “…….” “당숙도 이제 슬슬 올라가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평검사로 썩다가 후배들 올라가는 거 보고 존심 다 상한 뒤에 어쩔 수 없이 옷 벗는 건 지양해야죠.” 나는 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검사 양반이시니 더 잘 알잖습니까? 대한민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높으신 양반들은 아버지 때문에 오성복 검사가 깽판을 치고 다니는 걸 막을 수는 없다지만, 승진을 막는 건 가능했다. 어차피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그도 이렇게 맘대로 움직이는 것이었고. “확인해 봤습니다. 작년에 동기들 대다수가 부부장검사 달았다면서요? 줄 잘 잡은 인간은 이미 부장검사까지 달은 녀석도 있고요.” 나는 또 한 발자국 그에게 다가갔다. “평검사로만 썩다가 고모할머니 따라 물 건너 미국으로 가서 여생 보내실 겁니까?” “내가 지금까지 그 생각 안 한 줄 알아?” 그는 발끈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엔 나도 열심이었어. 우리 어머니가 아무리 미움 받았다고 해도 사촌이니까 조금 챙겨 주시지 않을까. 그런데 챙겨 주기는 개뿔. 서울에 머물러도 매번 아동범죄부, 보험범죄부 이딴 곳들…… 아무도 관심 없는 부서로 쫓아내는데 내가 마음이 생기겠냐고.” 오성복 검사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어차피 쫓아내지도 않아, 그렇다고 승진시키지도 않아. 그러니 내 X대로 하는 거지.” 그는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내가 검사니까 더 잘 알지 않냐고 했지? 그래, 알아. 연줄 잡아야 올라가지. 이 바닥 실적 따위 필요 없잖아. 전부 다 인맥이고 돈 있어야 갈 수 있는 거.”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난 연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어. 근데 그 잘나신 너네 아버지께서 다 막아 두셨더라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겠어?” “할 말 다 하셨습니까?” 어느새 그는 씩씩거리며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조금 전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올라가셔야죠.” 나는 한 발자국 더 그에게 가까이 붙었다. 코앞까지 다가왔다. 더 이상 갈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거리. “사나이로 태어났는데, 한 번은 높은 곳에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빌어먹을 높은 곳, 안 올라가고 싶겠냐고.” “가고 싶으면 가셔야죠. 그리고 가서 어머님 모셔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도그의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당숙에게만 어머니인 게 아닙니다. 저한테도 고모할머니예요. 아주 어렸을 적이지만, 기억납니다.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제 손을 잡아 주셨는데, 그 온기를 아직도 못 잊어요. 당신께서 만 리 먼 이국땅에서 눈감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나는 눈썹을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한국 살기 좋은 나라예요. 가진 거 없으면 X같은 나라가 맞지만, 돈 많고 백 좋으면 여기만큼 좋은 나라가 없어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높은 자리 가셔야죠.” “……어떻게?”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랑 같이 가면 가실 수 있습니다.” 꿀꺽. 오성복 검사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그의 입에선 나지막이 세 글자가 튀어나왔다. “……검사장?”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는 그딴 일개 수장 자리 따윈 높은 자리라고 안 합니다.” “그러면…….” “총장.”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검찰총장은 가셔야죠. 그래야 어디 가서 ‘내가 검사 출신이다.’ 이런 이야기 할 것 아닙니까? 목에도 힘 좀 세우시고요.” 그의 어깨를 탁탁 털어 주었다. “이상한 룸살롱 같은 데 가서 명부나 캐다가 쫓겨날 필요도 없고요.” 순간, 불도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잠시 고민하다가 목이 메어 물었다. “한남타운 조사를 그만두면 되나?” “아니요.” 나는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더 털어 주셔야죠.” “……뭐?” “늘 그랬듯, 깽판 치고 돌아다니시면 됩니다.” “그러면 왜…….” “대신 터뜨리시면 안 되죠.”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차피 실적이 없어도 잘릴 걱정은 없잖습니까?” “……아.” 오성복 검사가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이제야 내 말뜻을 알아들은 모양. “차곡차곡 쌓아 두십시오. 보물창고에 하나씩 하나씩 쌓듯 말이죠.” 필요할 때 꺼내 보는 건 내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보물창고지. 정치인, 경제인들. 소위 말하는 높으신 양반들의 치부가 담겨 있는 보물창고. “쉬울 거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지간한 검사들은 두드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아주 튼튼하고 숨겨진 비동(秘洞). 오성복 검사는 그 비동을 향해 휘두르는 ‘나의 칼’이 될 것이다. “조만간 다른 사람 통해서 연락 갈 겁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를 확인한 뒤, 나는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몇 걸음 걸었을까. “어이, 조카.” “예, 당숙.” “이 사실은 다른 형제들에게 말하면 안 되겠지?” “그럼요.”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살벌하게 표정을 굳히고 말을 이었다. “당숙께서 평생 고모할머니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를 한국에서 평생 나가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는 그를 뒤로하고 옥상을 빠져나왔다. * * * 정치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건 딱 두 가지다. 압도적인 힘. 달콤해 보이는 당근. 그렇기에 오성복 검사는 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총장이라는 당근과 함께 청와대라는 힘을 보았을 테니까. -어젯밤에 만나 보았는데 도련님 지시를 그대로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고생했어.” -아닙니다. “우선 오성복 검사랑 같이 조사하되, 그는 손 뗀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그래야 방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새로운 사항 확인하는 대로 업데이트 드리겠습니다. “그래.” 나는 전화를 끊으며 청와대로 향했다. 이번 한남타운 비리 사건은 터뜨리면 안 된다. 서울시장과 대현건설 사장 혹은 그 그룹을 움직이는 용도로만 사용할 생각이지. 더불어 정무수석의 약점도 쥐고 있으면 언젠간 쓸 수 있을 테고. 사실, 이 건의 조사를 끝내고 밝힌다면, 언론의 큰 관심은 받을 수 있겠지만, 아버지에게 타격이 갈 수밖에 없다. 정무수석은 아버지의 왼팔이기 때문. 안 그래도 내가 민국당에 있는 동안의 행보가 대부분 아버지의 노선과 반대를 걷고 있었기에 현재 정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 아버지를 위해서도, 또 나를 위해서라도, 청와대와 정부는 더 이상 타격을 입어선 안 된다. 또한, 내가 정무수석실로 옮겨오자마자 문제가 터진다면, 내가 의심을 받을 가능성도 있고. 나는 언제까지나 아버지의 든든한 아군이어야 한다. 게다가 아버지께서 건재해야 내게 자리를 물려주실 수 있을 테니까. 정무수석에 대한 카드는 미래를 위해 들어 놓는 든든한 보험이라고 봐야지. “안녕하십니까, 비서관님.” “네, 혜지 씨도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신혜지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간단한 업무 준비만 마치고 휴게실로 가자, 역시나 정무기획 비서관과 자치발전 비서관도 비슷한 때에 도착했다. “얼굴이 좋네.” “어제 좀 푹 잤습니다.” “하하, 다행이야.” 우리는 커피를 한잔하며 휴게실에 있는 TV를 틀었다. 뉴스에서는 북한에 대한 보도가 연신 이어지고 있었다. “요즘 북한 정세가 심상치 않아.” 정무기획 비서관이 커피를 홀짝 마시며 말했다. “최근 들어 북한 국방위원장 건강 이상설도 많아지고, 체제 붕괴설도 거세지고 있잖아.” “에이, 그래도 늘 그렇듯 건재할 거야.” 자치발전 비서관은 걱정도 안 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매번 무너진다, 무너진다 하는데 멀쩡하잖아?” “그래도 이번엔 또 몰라. 얼마 전에 서열 2위가 기차 사고로 사망해 버렸잖아.” “하긴, 그게 있었네.” “고위층 내부에 변화가 있으면서 조금 정신이 없더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북한은 이렇게 어수선할 때일수록 꼭 건재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무슨 짓을 하잖습니까?” “하긴…… 그건 또 맞는 말이야.” 은근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 도발이라도 하면, 결국 가장 비상이 되는 건 국방부와 더불어 청와대였으니까. “이번엔 조금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휴게실 창문으로 정무수석 오지태가 전화를 받으며 굳은 얼굴로 여민관을 빠져나가는 느낌이 났다. “저쪽은 주차장이 아닌데?” 나도 보고 있다. 정무수석이 분주한 발걸음으로 향하는 곳은 아버지가 계시는 본관의 집무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안녕하십니까, KTS 뉴스 속보입니다. TV의 화면이 바뀌며 속보가 쏟아져 나왔다. -오늘 오전 8시 57분 경, 북한에서 NLL 이남의 해안을 향해 포격 도발이 행해졌습니다.

16557378469708.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