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일지, 적군일지 (3)2021.12.27.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마담의 목소리에 날뛰던 남자는 자신을 붙잡고 있던 떡대들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품안에 있던 검찰 공무원증을 보여 주며 말했다. “협조 좀 해 주시죠.” 마담은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영장 있어요?” “없어서 협조를 구하는 거 아닙니까? 있었으면 강제 집행했겠지.” “하.”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영장도 없이 이렇게 난동을 피우고 있는 거예요?” “난동이라고요?” “나가세요.” 마담은 단호한 어투로 손을 휘휘 저었다. “나가시라고요.” “지금 실수하시는 겁니다.” “이거 공권력 남용인 거 알죠?” 그녀는 이런 일이 낯설지 않은 듯했다. “경찰 부를 수 있거든요? 경찰 오면…….” 그러나 마담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불러 보시죠.” 남자 또한 당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높으신 양반들 뺀질나게 드나드는 걸 알고 있는데 경찰 부를 수 있겠어요?” “…….” 마담은 한 방 먹은 듯 입을 닫았다. “지금 이 안에도 그런 윗대가리 인간들 몇 명은 있을 것 같은데?” 남자는 히죽 웃으며 상체를 기울여 안쪽을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럼 더 잘 알겠네.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는 걸.” 마담은 앙칼진 목소리로 떡대들을 바라봤다. “내보내.” 덩치들은 마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자의 팔을 붙잡아 계단으로 끌고 갔다. “내가 너 얼굴 기억했어.” 자신이 검사라 주장한 남자는 순순히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나 절대 그냥 안 넘어가. 알았어? 알았냐고!” 샤우팅에 가까운 육성을 끝으로 남자의 모습은 마돈나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흠흠.” 마담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표정 관리를 하고는. “뭐 해, 얘들아. 얼른 들어가야지.”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안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정무수석 오지태는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무슨 일인데?” “웬 이상한 놈이 검사라고 하면서 출입 명부를 찍어 갔다더라고요.” 그와 동시에 실내에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우리도 적었잖아.” 서울부시장이 당황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걱정 마세요.” 마담은 눈을 찡긋하며 말을 덧붙였다. “여기 계신 분들의 장부는 따로 적어 놨으니까.” 법적으로 적어야만 하지만, 같은 장부에 적으라는 법은 없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겼을 시, 방역 당국의 요구가 있을 때만 보여 주면 된다. 그것도 2주 한정. 2주만 지나면 장부는 얼마든지 폐기할 수 있으니 심려할 만한 사항은 없었다. “그러면 장부는 됐고, 그래서 누군데?” “그것까지는 잘……. 제가 CCTV 한 번 돌려 보겠…….” 마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울중앙지검 오성복 검사.” 마돈나가 입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에게로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마돈나는 생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전에 공무원증 꺼내 보일 때 봤어요.”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똑똑하고 좋네. 얼굴도 예쁘고.” 정무수석은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두들겼다. “이쪽으로 앉아.” “네.” “똑똑해서 내가 참을 수가 없네.” 그는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마돈나에게 찔러 주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 “이거 예쁘네?” “네. 오늘 쓰려고 샀어요.” “그래?”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초이스가 끝나고 여성들이 각자 자리에 앉았고. 맞은편에 있던 서울부시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실장님. 아까 그 검사 놈, 아는 녀석입니까?” “아, 그 꼴통 새끼…….” 정무수석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자식 처리하라고 시킨 지가 꽤 됐는데 아직도 날뛰고 있네.” “단순한 일개 검사 아닙니까?” “그랬으면 진즉에 치웠지.” 조용히 듣고 있던 대현건설 사장 송형석이 무언가 떠오른 듯 손가락을 퉁겼다. “혹시 그 불도그 놈입니까?” “송 사장도 알고 있네?” “몇 번 들어봤습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못 말리는 검사 하나가 있다고.” 마돈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기에 슬쩍 물었다. “유명한 사람이에요?” “또라이야, 또라이.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고 해서 불도그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영 골치가 아파.” 그녀는 잘 기억을 해 두고는 슬쩍 물러났다. 과한 호기심을 보여 봤자, 오히려 의심만 사는 법이니까. “그 녀석 뒤에 있는 사람이 대체 누굽니까? 누구길래 이렇게 들쑤시고 다녀도 버티고 있는 건지 전혀 가늠이 안 가서.” “그놈이 미국 쪽에 연줄이 있는데…….” 정무수석은 말하다가 짜증이 났는지. “에잇.” 말을 끊으며 술잔을 들었다. “술맛 떨어지니까 그 자식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잔이나 채워.” * * * “고생했어.” 집으로 돌아온 임지현을 반기며 그녀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아닙니다.” “녹화는?” “잘됐습니다.” 마돈나는 가슴팍에 있던 브로치를 떼어내 건넸고, 나는 곧바로 노트북에 연결했다. 렌즈가 담겨 있던 브로치. 영상은 아주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굳이 세 명이 모이는 룸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잠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셋이 함께 있는 영상을 담을 수 있기에 노렸던 것인데, 정무수석이 마돈나를 초이스한 덕분에 훨씬 더 디테일한 내용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영상을 전부 살핀 뒤, 마돈나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문제는 처음에 나오는 오성복 검사입니다.” 불도그. 한 번 물면 상대가 정계 인사건, 재계 인사건 상관없이 계속해서 사건을 후벼 파며 놓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그럼에도 든든한 뒷배가 있어서 무려 정무수석이 지시해도 굴하지 않는 인물.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 조사는 못했지만, 며칠만 주시면 금방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예?” “저 검사, 내가 알고 있거든.” 마돈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지현 씨, 최하나라고 들어봤나?” “최하나요?” 그녀는 기억을 헤집나 싶더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오래 되어서 가물가물합니다.” “올해로 65살. 미국에 살고 있고, 가장 중요한 건.” 나는 노트북으로 오성복 검사의 얼굴을 보며 화면을 멈췄다. “최하나 그 여자가 우리 아버지의 고모야.” “……예?” “나한텐 고모할머니지.” 마돈나는 혼란스러운 듯 내게 물었다. “올해 최준석 대통령님이 72세신데…… 각하의 고모님이 더 어리신가요?” “윗세대를 생각하면 쉬워. 그땐 아이를 엄청 많이 낳았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나의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낳으신 뒤, 증조부께서 늦둥이 막내딸을 낳으신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1950년생. 6.25가 벌어진 해에 태어나셨고, 나의 조부께서 6.25까지 직접 참전한 세대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꼬마 삼촌, 꼬마 고모라는 호칭도 흔하게 쓰였으니까. “그러면 오성복 검사는…….” “나의 당숙이지. 나는 그분의 종질, 당질이고.” 우리 아버지로 따지면, 오성복 검사는 대통령의 사촌동생인 셈이다. “아…….” 마돈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다가 물었다. “문득 기억이 난 건데, 최하나 씨께서는 미국으로 가신 게 대통령의 미움을 받아서라고 들었거든요.” “맞아.” 권력을 쥐게 된 아버지에게 떡고물이라도 받으려다가 결국 미움을 샀고,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쫓겨난 것이지. “고모가 밉다고 사촌동생까지 내쫓을 순 없으니까. 아버지께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시지만, 어쨌든 법무부장관도 대통령의 사촌동생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쉽게 못 건드는 거지.” “그렇군요.” 오성복이 대한민국에 남아서 검사 일을 한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서울중앙지검에서 저렇게 미친개 마냥 날뛰고 있었을 줄이야. “어떻게 할까요, 제가 한 번 만나 볼까요?” “아니, 됐어.” 나는 노트북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직접 만나 볼게.”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야지.” 이렇게 미쳐 날뛰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가려운 데가 있으면 내가 긁어 줘야 하지 않겠어?” 마돈나를 보며 지시했다. “오성복 검사에게 미리 연락해. 조만간 한 번 검찰청 들어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으라고.” “알겠습니다.” * * * 정무수석실에 딸린 작은 휴게실. “요즘 민국당 그 자식들 말이야…….” 정무기획 비서관, 자치발전 비서관과 커피를 한잔하며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던 무렵. 벌컥. 문이 열리며 정무수석이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필요한 거 있으세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됐어.” 정무수석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흔들며 물었다. “최 비서관이 여기 검찰 특수활동비 관련한 사안들 올렸지?” “네, 맞습니다.” “이거 서울중앙지검장이랑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오늘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럴래?” “예.” “여기 지시 사항 적어 뒀으니까 가는 길에 읽어보고 그대로 전하면 돼.” “알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끝나고 바로 퇴근해.” 정무수석은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나는 남아있던 두 명의 비서관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그래, 고생해.” * *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입구에 들어서자, 따로 검사 절차도 없이 프리패스였다. 출발하기 전에 신혜지가 미리 연락을 해 둔 덕분이었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검사장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오셨습니까, 도련님.” 검사장이 직접 엘리베이터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검사장님.” “다른 사람 시켜도 되는데 어떻게 직접 오셨습니까?”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그리고 오늘은 정무 비서관으로 온 겁니다.” “아, 네.” 그는 자신이 부른 호칭에 실수가 있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꾸벅였다. “죄송합니다, 비서관님.”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나는 정무수석이 지시한 내용을 검사장에게 전했다. 유선이나 문서로 전달할 사안이 아니기에 직접 오긴 했지만, 사실 굉장히 중요한 건 또 아니었다. 특수활동비 관련해서 처리할 사안이 있었는데 급한 게 아니어서 미루고 있다가, 이번에 가져온 것이지. “……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앞으로 특수활동비 집행할 때 참고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가 보겠습니다.” “어, 벌써요?” 검사장은 아쉬운 듯 나를 붙잡았다. “다과라도 들고 가시지요. 아직 커피도 한 모금밖에 안 드셨는데요.” “아닙니다. 바쁜 검사장님 시간 뺏으면 되나요.” 나는 찡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수호해 주실 분인데.” “에이, 아닙니다. 제가 뭐라고…….” 쑥스러운 듯 웃는 그를 뒤로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향해 몇 걸음 옮기다가 멈춰 서고는. “아, 참.” 나는 문득 돌아서며 말했다. “혹시 여기 옥상 좀 볼 수 있을까요?” “옥상이요?” 그는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요즘은 옥상을 잠가 두고 있는데……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아, 특별한 건 아니고…… 저희 아버지께서도 서울중앙지검에 오래 계셨잖습니까? 그래서 옥상에서 찍은 사진 보여 드리면 옛날 추억도 생각나고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검사장의 얼굴에 미소가 방긋 피어났다. “어유, 당연히 가능하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옥상에서 사색하는 게 그렇게 좋다고 들어서…… 혼자 생각도 좀 해 보려고 하거든요.” “아, 그러십니까?” 그는 지체할 것 없이 비서에게 바로 지시했다. “김 사무관. 옥상 문 열어 둬.” 검사장은 문 쪽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어차피 잠겨 있는 줄 알아서 다른 사람들은 갈 생각도 안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손짓했다. “더 나오지 마십시오. 혼자 가 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네.” 나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옥상. 쌩쌩하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올 생각도 하지 않을 터. 애초에 문이 잠겨 있으니 엄두도 내지 않을 테고. 홀로 난간에 기대어 담뱃불을 붙였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까. 끼익-. 옥상 문이 열리며 한 남자의 실루엣이 등장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동영상에서 본 오성복 검사다. 나는 여전히 뒤돌아 있었기에 내 정체를 알아채진 못했을 터. “어떤 양반이시길래 드나들기 힘들다는 중앙지검의 옥상으로 불러내셨을까.” 그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런데 나한테 오는 놈은 딱 두 부류밖에 없어.” 오성복 검사는 여유로운 목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99%는 찔리는 게 있는 놈이지. 그게 아닌 나머지 1%는…….”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미친놈밖에 없거든.” 나는 담배를 퉁기며 뒤돌아섰다. “그러면 나 같은 놈은 처음이겠네.” 내 얼굴을 본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며. “광견병 걸린 불도그 길들이려고 왔거든.” 담배를 짓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