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일지, 적군일지 (2)2021.12.26.
2019년.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서울 용산구의 한남동에 작은 소란이 있던 적이 있다. 이른바 ‘한남타운’ 건설. 사실, 한남동이라는 동네 자체가 서울에서도 굉장히 땅값이 비싼 곳이다. 초호화 아파트와 고급 빌라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비싼 땅값과 달리 아파트의 층수는 높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강 경관 및 근처 아파트의 조망권을 보호하기 위해 한강 근처에는 고도 제한이 40m로 걸려 있었으니까. 아슬아슬하게 10층 아파트를 겨우 지을 수 있는 높이. 한국에서 가장 비싸다고 알려진 한남 언덕 아파트 또한 10층 언저리이니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이곳에 2년 전에 한 아파트의 건설 인허가가 떨어졌다. 보통 아파트도 아니고, 무려 30층으로 높이가 무려 100m에 달하는 고층 아파트. 고작 3개 동에 불과하지만, ‘한남타운’이라는 아파트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남향으로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30층 아파트. 그것도 무려 한남동에서. 온갖 현금 부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지. 돈이 몰리니 건설사들도 당연히 몰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지를 마련하고 아파트 건설을 준비하는 찰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같은 해 2019년, 한남동엔 다시금 50m의 고도 제한이 걸리고 만다. 다시 말하자면, 한남동에서 오로지 ‘한남타운’만이 유일하게 고층 아파트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지. 당연히 반발이 거세지고,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군대에 있을 때였기에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당시 언론에서 꽤나 다루었던 기억이 있지만, 어느 샌가 슬쩍 묻혀 버린 사건. 현재 아파트는 건설 중이고, 머지않아 분양을 앞두고 있는 상태. 그럼에도 여전히 언론은 잠잠했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아주 기가 막혔다. 2016년과 2017년에도 시행사에서 몇 번이고 건설 인허가 요청을 했지만, 고도 제한이 있다며 거절하고, 일시적으로 풀어 달라는 요구도 특혜를 줄 수 없다며 거부당했다. 그런데 고작 2년 뒤인 2019년엔 인허가 요청하자, 고도 제한이 풀리고. 아파트 건설이 시작된 지 6개월 후, 다시금 고도 제한이 걸리게 된 것. 말 그대로 한남타운 건설에만 특혜를 준 것이지. 정책의 통과 과정을 살펴보면, 기가 막혔다. 인허가 요청 후 19일 만에 고도 제한이 풀린 것이다. 용산구청장, 국토위, 서울시를 모두 거치는데 고작 19일이면 말 그대로 보지도 않고 패스, 패스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뜻. 그리고 이 정책의 최종 허락자가 바로. ‘정무수석 오지태.’ 아버지의 왼팔이자, 내가 있는 이 사무실의 주인이었다. “허허…….”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뻔했다. 정무수석 오지태가 힘을 쓴 것이지. 누가 봐도 뻔한 정황이었지만, 언론사에서는 나처럼 쉽게 정책의 통과 과정을 볼 수 없기에 알 수 없는 사실. 물론, 언론사에서도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리라. 열정 있는 기자들과 PD들은 발로 뛰며 취재를 했을 테니까. 허나, 아무리 자료를 모은다고 한들, 보도를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을 테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무수석이 엮여 있는 일이면, 정부에서 언론사를 찍어 누르는데 어떻게 보도를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쉬쉬하고 묻는 분위기로 갈 수밖에 없고, 기자나 PD들 또한 그에 수긍하는 수밖에. 암만 기자 정신이 뚜렷하다고 한들, 국내에서 찍히면 밥벌이할 곳이 없어지기 때문. 직장을 잃고 굶어 죽을 바에는 못 본 척 눈 감고 입 다무는 게 편한 법이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 정책의 통과 과정을 본다고 해서 정무수석 오지태가 로비를 받았다거나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말 그대로 정황만 있을 뿐, 심증만으로는 끼워 맞추기에 불과한 것이지. 허나, 나는 언론사들과 달랐다. 조사를 한다고 압박을 할 만한 윗대가리도 없고. 무엇보다 그들은 대중들을 향해 터뜨리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만, 내게는 아주 큰 의미가 있으니까. 원래 약점이라는 건 만천하에 공개하기보다, 쥐고 흔들며 쑤셔 팔 때야말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법. 그들을 이용하기에 좋다는 것이지. 나는 차분하게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차를 몰고 청와대 부지 밖으로 나온 뒤에야 2G 휴대폰을 꺼내 마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도련님. “어. 조사할 게 하나 생겼어.” -말씀하십시오. “용산구청장과 서울시청 소속 고위 공무원들 그리고 대현건설 사장의 최근 5년간 스케줄 표를 구해서 오피스텔로 들어와.” -알겠습니다. * * * “도련님.” “어, 왔어?” 마돈나는 커피 두 잔을 사서 집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두겠습니다.” “고마워.” 임지현은 일산 은신처를 정리하고 나와 같은 오피스텔에 주거지를 잡았다. 물론, 그녀의 명의가 아닌 다른 명의. 나의 바로 아래층으로 이사를 했기에 기자들 눈에 걸리지 않은 채로 집에 드나들 수 있었다.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쉽게 만날 수 있어야 하니까. 내가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기도 하고. “메일 보낸 건 확인하셨습니까?” “어, 지금 뽑아서 비교하고 있어.” 용산구청장, 서울시청 소속 차관급 이상 공직자와 대현건설 사장의 5년 치 스케줄 표. 그리고 나는 내 사무실에서 오지태 정무수석의 스케줄 표를 뽑아 와 이 4개의 서류를 비교 및 대조하고 있었다. “공통으로 비어 있는 날짜가 있을 거야.” 마돈나는 정무수석의 스케줄 표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정무수석을 건드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하지.” 아버지의 왼팔이다. 여차하다가는 아버지의 귀에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의 넘버 3까지 올라간 인물. 자칫하다가는 오히려 내가 그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을 터. “정무수석은 타깃이 아니야. 그냥 함께 묻어 가는 것뿐이지.” “그러면…….” “우리가 노리는 건.” 나는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한 사진을 가리켰다. “여기 서울시청이지.” 분명 차관급 이상의 인사가 이번 사건에 개입했다. 그리고 현 정권의 특성상, 그들은 분명 더 높은 곳에 올라간다. 제일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는 現 서울시장인 한중현. 아버지가 대선에 당선된 직후부터 계속 서울시장 자리에 눌러앉아 있는 인물이자, 최준석 대통령의 충직한 신하인 그의 꼬리를 밟는 것이다. “지현 씨가 최근 2년 치를 살펴 봐. 내가 앞선 3년차 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카페인의 힘으로 밤을 지새운 지 몇 시간쯤 지났을까. “찾았다.”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마다 일정이 취소되네.” 용산구청장은 빠질 때가 있었지만, 대현건설 사장과 서울부시장 박병환은 한 번도 빠짐이 없었다. 일부러 위장 스케줄을 잡아 놓고 취소한 탓에 스케줄 표에는 업데이트되지 않아 꽤 헤매긴 했지만, 확실히 찾아냈다. 서울시장이면 좋았겠지만, 부시장도 나쁘진 않다. 서울시장의 오른팔이자, 실무진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니까. 무엇보다 서울시장을 움직이는 것보다 티도 덜 날 테고. “한남타운 시공사가…….” “적안건설입니다.”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적안건설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한 번 봐야겠는데?” * * * 분명 룸살롱이다. 서울부시장과 대현건설 사장급이나 되는 인물이 어지간한 곳에서 만나진 않았을 터. 게다가 대현건설 사장은 유흥으로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기에 강남의 룸살롱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문제는. “없어.” 카드 내역에 접대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현건설은 단순 시행사이기에 접대 자리에만 함께하고 직접 금품이 오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허나, 서울부시장은 달랐다. 유흥 접대와 용돈. 그것이 아니면, 로비를 하는 의미가 없으니까. 적안건설에서 서울부시장에게 주는 용돈은 회사 돈으로 조성한 비자금에서 빼내 현금으로 건넸을 것이다. 그러나 유흥비는 다르다. 이런 인간들이 어떻게 노는지는 누구보다 정치판에서 많은 인간군상을 봐 온 내가 제일 잘 안다. 워낙 얼굴이 알려진 양반들이기에 하루에 수백 수천씩 술값을 뿌릴 텐데, 기업의 특성상 그거야 말로 접대비로 처리를 해야만 하니까. 그러니 개인 카드를 사용했을 리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분명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다시 차근차근 발자취를 따라갈 무렵. “적안건설 회장이 차명으로 강남에 룸살롱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임지현이 건수를 건져 왔다. “그래?” “예. 확실합니다. 위치도 확인했고, 확실합니다. 대현건설 사장이 드나드는 것도 봤다는 증언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알아낸 거야?” 그녀는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었다. “영업 비밀입니다.” 굳이 내가 알아서 좋을 게 없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더 물어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어떻게 증거를 확보하느냐인데…….” 룸살롱을 직접 운영하면, 당연히 CCTV는 확인할 수 없다. 근처에서 죽치고 앉아 있다가 들어가는 차량을 확인한다고 해도,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가 없는 법이고. 결국 안에 직접 들어가 봐야 한다는 건데, 나는 이미 얼굴이 너무나도 많이 알려져 있다. 어지간해서는 취재도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하려나. 고민이 깊어지려던 찰나. “제가 가 보겠습니다.” 마돈나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국회의원들이 아니기에 마돈나의 얼굴을 알 리도 없고. 하지만 중요한 건 방법이다. “어떻게 가려고?” 마돈나는 여유롭게 입꼬리를 휘었다. “방법이 다 있죠.” * * * “월향이 대타라고?” “네, 맞습니다.” 마담의 물음에 마돈나, 임지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경력은 있지?” “예.” “흐음…….” 마담은 마돈나의 얼굴을 세세히 살피더니. “괜찮네. 대표님들이 좋아할 법하겠어.” 그녀는 흘긋 가게 홀에 놓인 명부를 바라보았다. “이거 적어야 되죠?” “당연하지.”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확진자의 동선 확보를 위해 출입자 명부를 적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보여주기식으로 적을 뿐이었다. 룸살롱에서 성접대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으니까.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자, 대통령은 분개하며 일반 식당뿐만 아니라, 술집이건, 유흥업소든 전부 다 적어야만 하는 법령을 선포했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말 그대로 불시검문에서 한 번만 걸려도 1년 간 영업 중지를 해야만 한다. 사실 상 폐업을 해야 하는 것이지. 성매매야 경찰들과 유착하여 단속 뜨기 전에 미리 알고 관리를 한다지만, 이 명부와 관련된 제보는 단순 112 신고로도 출동을 해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이 적어야만 했다. 국회의원이건, 정무수석이건 상관없이 전부 적어야 하는 것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가명으로 적는 것도 불가했다. 단순 QR코드를 넘어 지문 인식 시스템까지 추가되어 있으니까. 임지현은 자신의 이름을 적으며 앞에 적힌 이름들을 유심히 살폈지만, 전부 낯선 이름뿐이었다. 서울부시장과 대현건설 사장 등 다른 인물들도 분명 적었을 것이다. 다만, 높으신 양반들이기에 따로 명부를 만들어 그곳에 적어 뒀겠지. “어, 콜 들어왔네.” 그때, 마담이 마돈나를 비롯해 안쪽에 있던 여성들을 부르며 손짓했다. “들어가자.” 임지현은 긴장감을 삼키고 마담을 따라갔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있는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임지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적안건설 회장, 서울부시장 박병환 그리고 대현건설 사장까지. 세 명이 모두 모였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달의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이곳에서 모이는 게 맞았다. 이러한 생각을 알 리 없는 마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우선 1조예요. 여기는 뉴페이스.” “유화예요.” 마돈나는 가명을 쓰며 가볍게 인사했다. 그때 서울부시장 박병환이 욕정 가득한 눈으로 마돈나의 몸을 위아래로 훑고는 탐욕스럽게 혀로 입을 핥았다. “괜찮네.” 임지현은 가슴팍에 달려 있던 브로치를 매만져 각도를 조절했다. 정면이 잘 보일 수 있도록. 그런데 그때. “뭔데 나를 잡아! 이거 놓으라고!” 밖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홀에 있던 웨이터 하나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사, 사장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 이상한 놈이 하나 왔는데요?” “뭔데?” “손님인 척 왔다가 출입 명부를 몰래 휴대폰으로 찍다가 걸렸습니다.” “뭐?” 마담은 눈썹을 역팔자로 휘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고. 임지현은 슬쩍 고개를 돌려 밖을 확인했다. 그곳에서는. “내가 대한민국 검찰이야. 검사라고! 이거 안 놔?” 웬 불도그 한 마리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