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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그림 (1) (50/200)

큰그림 (1)2021.12.20.

-MBS 뉴스속보입니다. 서울교통공사는 노조의 요구안을 받아들여 근무 시간을 조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최종안은 노조의 요구를 완전 수용하는 것으로, 기존 파업 전 연장 근무를 돌입하지 않는 정책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지하철은 정상적으로 운행이 될 예정이며……. “수고했어.” “아닙니다.” 이치현 의원은 내 어깨를 도닥이며 미소를 지었다. “강성철 의원 측에서도 네가 고생 많이 했다고 하더라.” “아, 그렇습니까?” “그래. 특히 이번에 기관사 구한 게 컸다고 언젠가 우리랑 같이 회식 한 번 하자고 하더라. 본인들이 쏜다고.” “알겠습니다.” 이번 건은 결국 민국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기관사가 졸다가 선로로 넘어져서 죽을 뻔한 모습이 CCTV로 온전하게 공개되었고. 그것을 구한 사람이 나로 밝혀지면서 커다란 화제가 되었으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내가 구하는 바람에 대한당에서는 추가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또한, 사람이 죽을 뻔했던 것보다 더 큰 임팩트를 대한당에서 만들어낼 수도 없었고. 그러니 자연스레 여론은 노조원에게로 쏠리게 되었고, 서울교통공사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 “하지만 대한당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던데요.” “어, 안 그래도 오늘 국토위에 안건 하나 올라왔다더라.” 아무리 이번 건에서는 여론 때문에 밀렸다고 하나, 그쪽도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지하철 요금 인상안이 올라왔어.” “아…….” “노조원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추가 고용이 필요한데, 예산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지하철 요금을 올린다고 하네.” 그런 핑계를 대며 지하철 요금을 올리면 당연히 세수는 올라가고, 노조원을 지지했던 민국당에게로 질타가 쏠릴 터.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정치에서 완벽한 승리란 있을 수가 없다. 뼈를 취했으니, 살 정도는 내줘도 되겠지. 대한당에서 저들의 패배에 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한 안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오르락내리락하겠지만, 크게 보면 궁극적으로 민국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 진짜 커다란 건은 다 끝났네.” “예.” “이번 9월 임시 국회도 다 끝나 가고…….” 이치현은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엔 좀 쉬엄쉬엄 가자고.” 지이잉-. 그때,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 “어, 그래.” 나는 복도로 나오며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인: 어머니. 어머니? 갑자기 어머니께서 무슨 일이지? “흠흠.” 나는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예, 어머니.” -어, 아들. 통화해도 괜찮니? “잠깐 나왔어요. 말씀하세요.” -이번 주말에 뭐 해? 바빠? “아니요. 따로 약속은 없어요.” -그러면 잠깐 집에 다녀가라. “청와대예요?” -응. 네 아버지가 같이 식사라도 하자고 하시네. 토요일 저녁에 와서 다 같이 저녁이라도 먹게. 안 본 지 오래 됐잖아. “알겠습니다.” 갈 때가 되긴 했다. 국회의사당에 출근하기 시작하며, 청와대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그나저나 다 같이 저녁을 먹자는 거면…….” -네 형들도 올 거야. “전부 다 온대요?” -이제 전화해 보려 하는데 오지 않을까? 아마 올 것이다. 어머니가 오라고 하는 거면 고민할지 몰라도, 아버지가 식사를 제안했다면 저녁에 야식까지 먹었어도 배고프다며 오는 게 내 형제들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토요일에 갈게요.” -그래. 그날 보자. * * * 똑똑. “열려 있어.” 청와대의 비서실. 노크 소리와 함께 양복의 직원 하나가 고개를 꾸벅이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실장님.” “어, 조사해 봤어?” “예.” 남자는 수첩을 꺼내 고태욱 비서실장을 향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도련님께서 탑승한 지하철은 당일 10시 50분경에 당고개역에 도착하신 걸로 확인됐습니다.” “그래?” 고태욱 비서실장은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 “사고 발생 시각은 11시 30분 아니었나?” “맞습니다. 그런데 당고개역에서 도련님은 역에 설치된 CCTV의 사각지대에 있어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역무원 증언은?” “객차는 전부 확인했다고 합니다. 물론, 제대로 검사하지 않았지만, 했다고 말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인들이 제대로 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업무 태만이라고 볼 수 있기에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그렇다 치고…… 열차가 차고지에 도착한 시각은?” “11시에서 11시 10분 사이로 추정됩니다.” “결국 20분에서 30분 동안 도련님은 혼자 차고지에 계셨다는 거네?” “예, 맞습니다.” “그리고 기관사를 구한 뒤에 집으로 돌아간 건가?” “그렇습니다.” “중간에 따로 만나거나 약속이 있었을 가능성은?” “그건 배제할 수 없습니다만, 제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없습니다.” “흐음…….” 고태욱 비서실장은 진지하게 고민에 잠겼다. 최지훈의 신분도 신분이고, 워낙 언론에서 그를 영웅으로 비추고 있었기에 경찰은 최지훈에게 상황에 대한 진술만 들었을 뿐,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허나 고태욱 비서실장은 그의 행적에 의문이 생겼다. 어째서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는지. 또 CCTV에는 왜 잡히지 않았는지. 이러한 추론의 끝을 따라가면, 이번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연’이 아니라면 말이지. “도련님께서 꾸미셨을 가능성은…….” “없어.” 고태욱 비서실장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께서는 그럴 만한 성격도 아니고, 애초에 그럴 만한 이유가 없어.” “……하긴. 지금 상태에서는 굳이 언론의 관심을 받아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강성철 의원이 사건을 꾸몄고, 그걸 막기 위해서 막내 도련님이 나섰다. 이게 가장 그럴듯하긴 해.” “강성철 의원이 돈으로 기관사를 매수했다는 가능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애초에 다치고 구하는 시나리오를 기획했을 수도 있잖습니까?” “아니야. 내가 CCTV를 몇 번이나 돌려봤어.” 기관사는 정말로 죽을 뻔했다. 아니, 죽을 생각이었다. 그걸 최지훈이 살려낸 것이다. “시나리오를 기획했다면 도련님이 아니라, 강성철이겠지.” 강성철 의원은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다. 그가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하고 다닌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대한당의 몇몇 의원들과도 은밀한 커넥션이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다. 몇 개월째 조사 중이긴 하나, 실체는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요 며칠 동안 도련님도 강성철 의원실에서 일한 걸로 확인되는데…… 같이 기획했을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전혀.” 최지훈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가 작전을 짰다면, 이것보다도 훨씬 더 깔끔하고 완벽했을 테지. “그리고 무엇보다 강성철 의원이 그런 작전을 짠다고 해도 막내 도련님이 따를 사람이 아니야.” 또한, 강성철 의원은 고태욱 비서실장이 잘 알고 있다. 고작 발가락 반 마디를 위해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만한 사람이 아니다. 최지훈이 기관사를 살려내다가 안타깝게도 새끼발가락 끝부분이 잘려나간 거지, 애초에 다치는 것으로 작정했다면, 이러한 작은 상처가 아니라, 발목 전체를 열차에 갈리도록 했을 것이다. 그 정도는 해 줘야 여론의 관심을 더 크게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면 강 의원 짓이겠군요.” “그럴 확률이 높지.” 다만, 중요한 건 강성철 의원의 성격상, 아무리 최지훈이 의원실에서 같이 일한다고 한들, 그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알려 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그러나 이 사실은 고태욱 비서실장의 입장에선 전혀 유추할 수가 없었다. “일단 계속 지켜 봐.” “알겠습니다.” 부하직원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흐으음…….” 고태욱 비서실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깍지를 끼고 테이블 위로 올렸다. 고민이 깊어져만 갔다. 최지훈이 민국당에 있으면 위험하다. 정확히는 대한당에게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온다는 생각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심이었지만, 이젠 확신이 되고 있다. 그를 민국당에서 빼내야 했다. 허나, 그렇게 하기엔 대통령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최준석 대통령의 성격상 이유를 자세히 물어볼 터. 현 상황에서 고태욱 비서실장에게는 확실한 ‘물증’은 없었다. 그저 ‘감.’ 확신할 수 있는 감이었으나, 최준석 대통령은 그 ‘감’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었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막내도련님이 민국당에 남아 있으면 우리에겐 더 안 좋은 그림이 될 텐데…….’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최지훈을 빼내 올 수 있는 방법. 오랜 고민 끝에 고태욱 비서실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로 붙어 있는 대통령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어, 들어와.” 최준석은 이번 지하철 요금 인상안에 대한 정책을 살피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막내 도련님에 대한 보고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지훈이?” 그는 펜을 내려놓으며 고태욱을 바라보았다. “지훈이가 왜? 뉴스에 나온 것 때문에?” “그것도 관련이 없지는 않습니다.” “뉴스에 나온 게 마냥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은 일이잖아.” “예. 그렇긴 합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이렇게 관심이 쏠렸을 때, 최지훈 도련님을 이동시키려고 합니다.” “국회에서 빼내자고?” “예.” “굳이 그럴 필요 있나?” “얼마 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이치현 의원에 대해 당 차원에서 보복이 들어갈 거라고.” 최준석도 기억하고 있었다. “조만간 이치현 의원은 무너질 겁니다. 그때 막내 도련님이 의원실에 남아 있으면 분명 피해를 보실 겁니다. 그 전에 빼내는 게 맞지 않나 합니다.” “흠…….”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최준석 대통령도 찬찬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생각해 보겠네.” “알겠습니다.” * * * “어머니, 저 왔습니다.” “아들 왔어?” “형들은요?” “아직 안 왔어. 네 누나만 먼저 왔다.” 아니나 다를까, 귀신 같이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최은실이 얼굴을 비췄다. “우리 막내 왔어?” 또 또 저 친한 척이다. 청와대에서 볼 때 빼고는 따로 연락도 안 하면서. 아니 애초에 내 번호를 알고 있는지나 모르겠다. 내가 몇 살인지는 알려나. “누나한테 인사 안 할 거야?” 최은실. 셋째 형 최지곤과 쌍둥이이자, 남편을 통해 정권을 잡으려는 야심이 있는 인물. 그러니 전 국회의장 박태원 의원 집안의 며느리로 들어가 있지. 나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어차피 요리는 주방장님이 해 주실 건데 무슨 앞치마야.” “어머, 얘는. 나 한식 자격증도 있어. 오늘 요리는 내가 해 줄 테니까 기대해.” “……쓸데없는 짓은.” 어떻게든 부모님에게 점수 따려고 노력이다. 저게 더 가증스럽다. “얼른 들어와. 가방도 벗고.” 어머니는 인자하게 웃으시며 내 외투를 받아 주셨다. “아버지는 언제 오신대요?” “7시 딱 맞춰서 오실 것 같아.” 아버지답다. 최은실이 문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엄마, 혹시 아버지 또 고 실장님이랑 같이 오시는 거예요?” “아니, 오늘은 우리끼리 먹을 것 같은데.” “그게 저도 편해요. 우리 핏줄도 아닌데 같이 식사할 때마다 얼굴 보면 부담스럽다니까.” “오더라도 인사만 하고 가는데, 뭐 어떻다고 그래?” “그냥 좀 불편해요.” 그럴 만하지. 최은실의 시아버지 박태원 의원과 고태욱 비서실장은 오랜 앙숙 사이였으니까. 정확히는 박태원 의원이 아버지의 왼팔이었지만, 고태욱과의 싸움에서 지고 청와대에서 밀려났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박태원 의원은 국회를 포함한 정계에서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뽐내고 있다. 그러니 권좌를 노리는 최은실이 그 집안으로 시집을 간 것이지. “얼른 요리나 해. 곧 아버지 오시겠네.” “얘 좀 봐라. 이제 다 컸다, 이거지?” 나는 대꾸하지 않고 방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거실엔 막내 형, 최지성이 도착해 있었다. 본인만의 꿈이 있다며 정재계로 진출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연예계에서 엔터 사업을 하는 탓에 아버지의 눈 밖에 났다.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아버지께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화가 누그러지신 탓에 가족 행사에는 꾸준히 부르고 있긴 하다. 그와 친한 내 입장에선 내심 다행이었다. “형 왔어?” “어, 지훈아.”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내게로 다가오더니. “이리 와 봐.” 목소리를 낮추고는 다시 나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데?” 그는 평소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첫째 형이 나한테 찾아왔어.”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지만이 형이?” “응. 너에 대해 물어보더라.” 심상치 않은 일인 모양. 최지성은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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