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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상반 (5) (49/200)

선악상반 (5)2021.12.19.

“으아아악!” 남자는 다리를 부여잡고서 비명을 질러댔고. 그제야 열차를 멈춘 기관사가 황급히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괘, 괜찮습니까?” 나는 그를 향해 정확히 지시했다. “지금 당장 119에 연락하세요.” “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는 어찌나 놀랐는지 휴대폰을 떨어뜨렸다가 주우면서 구급차에 신고를 했다. “끄으으…….” 남자는 힘이 빠졌는지 비명 대신 신음을 뱉기 시작했다. 그의 팔은 자꾸만 왼쪽 다리를 향하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보자, 왼발에 신고 있던 신발은 기차에 갈려 찢겨져 나가 있었고, 바닥은 이미 피로 흥건했다. “아저씨, 조금만 참아요.” 나는 남자를 붙잡으며 정신을 깨웠다. “금방 구급대가 올 겁니다.” “이런 제기랄…….” 남자는 손등으로 얼굴을 가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왜 살렸어…….” 그는 흐느끼듯 몸을 떨었다. “내가 여기서 죽었어야 하는데…….” 어느새 남자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내 멱살을 쥐었다. “내가 여기서 죽었어야 와이프랑 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혹시라도 아니길 바랐지만, 역시나였다. 강성철 의원에게 죽음을 대가로 돈을 받기로 한 모양. “…….” 나는 남자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그의 신발을 벗겼다. 새끼발가락의 앞부분이 잘려나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대략 반 마디 정도가 사라져 있었다. 그나마 마지막에 다리를 힘껏 당긴 덕분에 다리가 전부 깔리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일 따름. 주변을 돌아보자, 잘려나간 부위는 이미 짓눌린 것도 모자라 먼지로 뒤덮여 오염되어 있었다. 저 상태면 아마 병원에서도 봉합하는 건 불가능할 테지. 나는 우선 손수건을 꺼내 지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걷는 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수술 후, 퇴원하면 기관사로 일하는 것도 가능할 테고. 삐이이용-. 오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하며 구급대원들이 몰려왔다. 기관사는 들것에 실려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제야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강성철 의원 이 미친 새끼. 대체 대가리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 거야? 잠깐 지원 나온 것이라고는 하나, 더 이상 이 인간과 일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정치라고 해도, 이건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후우.” 숨을 찬찬히 내뱉으며 차고지 밖으로 향했다. 우선 돌아가자. 따지더라도 내일 만나서 따져야 한다. “저기요.” 그때 나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조금 전의 기관사가 서 있었다. 마지막 열차를 운전해 들어왔고, 119에 신고한 인물. “예.” “죄송한데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나는 미리 생각해 둔 대로 둘러댔다. “당고개역에서 반대편…… 그러니까 오이도행으로 가는 막차인 줄 알고 탔는데 차고지로 왔더라고요. 뒤늦게 정신 차리고 나가려 했는데 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다가 사고가 난 걸 발견했습니다.” “아…….” “그럼 이만 가도 될까요?” “예.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며 차고지를 빠져나왔다. 아마 경찰에서도 한 번 연락이 올 것이다. 분명 강성철 의원이 언론을 통해 사건을 키울 터인지라, 경찰에서도 경위는 조사해야 할 테니까. 나는 그때도 똑같이 둘러댈 생각이다. 갸우뚱할 수는 있어도 믿지 못하지는 않겠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위기의 상황에서 사람의 생명을 구한 것이니까.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계속 CCTV가 없는 장소에서 대기를 했기에 의심할 여지도 없을 터. 긴장이 풀려서일까, 한 번에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2G 휴대폰을 들었다. “어, 지현 씨. 이쪽에서 상황 마무리됐어. 들어가도 될 것 같아.” -알겠습니다. * * * “살았다고?” 강성철 의원은 팔짱을 꼈다. “예. 정말 한 끗 차이로 살았다고 합니다.” “아이, 이거 아쉬운데.” “왜 하필 행인이 그 시간에 거기 있어서…….” “아, 의원님. 그런데 그 행인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지훈 비서관인 것 같습니다.” “최지훈?” 강성철 의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최 비서관이 왜 거기 있어?” 그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우리 계획 알고 있었던 것 아니야?” “그럴 리가 없습니다.” 태서형 보좌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 생각해서 의원님께 보고 드린 사안입니다. 이외엔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고요.” “그러면 최 비서관이 왜 거기에 있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경찰 조사 내용을 들어보니, 지하철을 잘못 탔다가 우연히 차고지로 간 것 같습니다.” “에헤이…….” 강성철 의원은 혀를 끌끌 차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거 일이 겹치려니, 이렇게도 겹쳐 버리네.” “그래도 계획에 큰 차질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언론에 나오기도 전에 사고를 낸 열차를 운전했던 기관사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려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좋은 소식이지.” “예, 맞습니다. 오히려 극적으로 살아나서 대중들이 더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같습니다. 살린 인물이 대통령의 막내아들이라는 사실도 꽤나 임팩트가 있고요.” “그렇지.” 강성철 의원은 흡족스럽다는 듯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대중들은 새롭고 더 자극적인 사건을 보면, 앞에 있던 걸 잊어버리거든. 이 기회에 몰아붙여.” “알겠습니다. 우선, 이번 사건에서는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최 비서관을 위주로 기사를 쓰는 게 낫겠죠?” “그렇지. 최지훈 비서관을 조명하는 것처럼 보여 주면서 서울교통공사가 합의를 오래 끌고 있는 탓에 다른 기관사들의 업무량이 늘어나서 편부모 가정의 가장이 죽을 뻔했다. 이런 식으로 어필해 봐.” “예. 빠르게 보도 한 번 내겠습니다.” 강성철 의원은 클클 대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과로로 죽을 뻔한 기관사. 그리고 목숨 걸고 그를 구해낸 민국당 소속의 비서관. 이 정도면 대한당을 압박할 만하지.’ 그의 눈빛이 사악하게 휘어졌다. “참, 태 보좌관.” “예, 의원님.” “그 인간한테는 5억 전부 주지 마.” “알겠습니다. 계획이 어그러졌으니 입막음 비용으로 절반 정도만 주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 * * 민국당 국회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교통공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노조의 요구안은 하나입니다. 왜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겁니까?” “협의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거 아닙니까? 적어도 파업을 종료하려는 노력은 했어야죠!” “노조가 파업하기 전에도 이미 업무량은 극한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은 일을 몰아주니, 치사량인 거죠. 이번 사고로 다친 기관사는 교통공사의 책임입니다.” 숨 막히는 업무로 인해 퇴근길에 졸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죽을 뻔 했고. 우연히 지하철을 잘못 탑승한 승객의 극적인 구조. 여론은 당연히 민국당 편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강성철 의원이 있었다. “서울교통공사에서는 파업을 막으려는 의도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번 사고를 부른 겁니다. 만에 하나 그 행인이 아니었다면, 기관사는 사망하고 말았을 겁니다. 이제 막 교복을 입은 딸과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단 둘이 남겨진 걸 상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광경입니까? 저는 도저히…….”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었다. 그게 굉장히 눈꼴시려웠다. 나는 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기사님 죄송한데 라디오 다른 채널로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유, 알겠습니다.” 택시 기사는 음악 채널로 주파수를 변경했다. 나는 복잡해진 머리를 시트에 기대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지잉지잉-. -보낸 이: 임지현 -호수도 확인했습니다. 한국K병원 2101호실입니다. 마돈나가 따로 조사를 통해 예의 그 기관사가 입원해있는 병실을 알려 주었다. 나는 작은 음료수 바구니를 하나 사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병문안을 올까 말까 꽤나 고민했다. 남자의 생명을 살렸다고는 하나, 그의 입장에서는 계획이 틀어진 것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후회는 없었다. 이따위 정치질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2101호 앞. 병실입구에는 ‘박호선’ 석자가 붙어 있었다. 똑똑.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자. “들어오세요.” 남자의 말이 들려왔다. 꽤나 차분한 목소리.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아.” 나를 발견한 그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드러났다. “들어가도 될까요?” “예. 오시죠.” 그는 손으로 나를 안내했다. 내가 음료수를 테이블에 올려놓자, 박호선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여기 앉으세요.” 그가 가리키는 간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문득 병상 끝에 있는 박호선의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모습. “다리는 괜찮으십니까?” “아, 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가락 끝이 조금 잘려나가긴 했는데…… 보행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다행이네요.” “들어보니, 국회에 계신 분이라고……. 출근하셔야 될 텐데.” “오늘은 안 가도 괜찮습니다.” 강성철 의원에게 따로 연락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같은 의한회라고 한들, 더 이상은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실, 사과를 하려고 찾아왔었다. 내 판단은 판단이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계획을 망친 것이었기에 미안함은 있었으니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지훈 씨.” 박호선은 먼저 입을 열었다. “예.” “그…….”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박호선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지훈 씨가 아니었으면 저는 정말…….” 침대 시트 위로 그의 눈물이 툭 떨어졌다. “어제 수술 직후에 눈을 떴는데 딸이 엄청 울고 있더라고요. 그때 느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다고.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가족 곁에는 내가 있어야 되는데…… 현실에 쫓겨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는 두 팔을 뻗어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제가 이 은혜는 어떻게든…… 평생에 걸쳐서라도 꼭 갚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잘 사십시오.” 더 있다가는 괜히 나도 울컥할 것 같아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왔다. 병원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하나 꼬나물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열 받았다. 화려한 권력을 잡기 위해 이 바닥에 들어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러운 꼴만 보고 있다. 이딴 녀석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니. X발. X같은 대한민국. 이치현 외에 제대로 정신이 박힌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그나마 그 이치현 의원도 대한당의 모략 때문에 쫓겨날 위기고. 대한민국 정치판은 잘못되었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진짜 내 정치를 펼치는 것이 더욱 간절해졌다. 국회의원이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정책을 펼치는 자리여야만 한다. 대한민국을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한다. 하지만 대한당도 민국당도 모두 썩었다. 다 뜯어 고쳐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좌에 올라야 한다. 허나, 이 꼴을 보아하면, 내가 추구하는 정의만으로는 절대 대권을 쥘 수 없다. 더러운 걸 손에 묻힐 각오를 해야 한다. 커다란 악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작은 악 정도는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야 ‘대의’를 펼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어떻게 해서든 권좌에 오를 것이다. 아버지의 자리, 대통령에 올라서. 이 대한민국을 새롭게 고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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