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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상반 (4) (48/200)

선악상반 (4)2021.12.18.

-보낸 이: 22 -동영상. 미래 문자다! 나는 국회의사당에서 나오던 걸음을 돌려 다시 안으로 들어가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를 잡고 곧바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검은 화면이 걷히며 드러난 건 뉴스의 한 장면이었다. -PBC 9시 뉴스입니다. 어제 저녁 11시 30분 경, 지하철에서 사망 사고가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서울교통공사 소속 기관사인 박모 씨로 밝혀졌습니다. 박모 씨는 열차의 운행을 끝내고 차고지에 넣은 뒤, 밖으로 나오다가 마지막 운행을 끝내고 들어오던 열차와 부딪쳐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밝힌 현장 CCTV 영상입니다. 이내 화면이 점멸하며 CCTV 영상이 재생되었다. 남자는 비틀비틀 걸어오다가 이내 선로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열차가 들어오는 장면을 끝으로 CCTV 영상은 종료되었다. 얼굴이나 잔인한 현장이 모자이크 될 법도 하지만, 미래 문자여서 그런지 가감 없이 전부 드러나고 있었다. -조사 결과, 박모 씨는 음주 상태가 아닌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며 과로로 인해 졸며 걷다가 발을 헛디뎌 선로로 넘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실족사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기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미친.” 나도 모르게 육성이 터져 나왔다. 보자마자 직감이 왔다. 이건 실족사 같은 사고사가 아니다. 강성철 의원이 벌인 짓이다. 태서형 보좌관이 아이디어를 냈고, 강성철 의원이 받아들인 것일 터. 그러지 않고서야 오늘 강성철 의원이 그렇게 여유를 부린 모습 그리고 이 미래 문자까지 딱 맞아 떨어질 수가 없다. 지난번 노조원 테러 때만 해도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넘어갔다. 어쨌든 판세는 뒤집어야 했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합의된 사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그들이 하려는 짓은 ‘돈으로 생명을 사는 것’이었으니까. 정확히는 돈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지. 아무리 이번 사안이 중요하다고 한들, 사람 생명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또한, 그 피해자를 열차로 치게 되는 기관사는 합의도 되지 않았을 터. 그는 평생 사람을 죽인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비록 사고일지라도, 그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을 터. 그렇기에 더욱 이건 막아야만 했다. 그들의 뜻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만약 이번 일이 성공한다면, 후일에도 분명 돈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일을 벌일 가능성이 크니까. 하지만 막막했다. 미래 문자에서 나온 건 그저 피해자가 지하철의 기관사라는 사실뿐이고 어느 역인지는커녕, 몇 호선인지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노조원들은 파업 중이니,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기관사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그 사람을 찾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강성철 의원의 태도로 보아, 오늘 벌어질 일이라는 건 확실할 테니까. 나는 곧장 2G 휴대폰을 꺼내 마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임지현입니다. “어, 나야.”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지현 씨, 서울교통공사 쪽에 인맥 있나?” -예,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근무표 같은 것도 받을 수 있지?” -받아 본 적은 없는데, 어렵진 않을 겁니다. “노조에 포함되지 않은 기관사 중 성이 박 씨고 남자이면서 오늘 마감 시간대 열차를 운전할 거야.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나 확인해 줘.”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서둘러 집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옷만 갈아입은 뒤 곧장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공덕역. 집 근처에서 가까운 환승역 중에서도 제일 많은 노선이 겹치는 곳이었으니까. 그곳에서 얼마쯤 기다렸을까. 오후 9시가 되어 갈 즈음이 되어서야 마돈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어, 찾았어?” -예. 오늘 근무표 확인했고, 말씀하신 조건에 해당하는 인물 두 명을 찾았습니다. 나는 멈칫하며 되물었다. “두 명이나 있다고?” -예. 4호선과 5호선에 한 명씩 있습니다. 기관사의 수가 많지 않아 혼자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조금 일이 꼬일 것 같다. -오늘 마지막 운행으로 박호선 씨는 4호선 당고개행 열차를 운전할 예정이며, 5호선에서는 박중현 씨가 방화행을 운전할 예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의 운행 시간은?” -박호선 씨는 뒤에서 두 번째, 박중현 씨는 뒤에서 세 번째입니다. 이런 젠장. 타이밍까지 둘 다 굉장히 비슷하다. “두 사람 사진은 볼 수 있나?” -그건 내일이나 되어야 입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면 곤란한데. 사고가 일어나는 시간은 알고 있으나 몸은 하나뿐. 지금 상황에서는 둘 중 한 곳밖에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하나. “지현 씨 오늘 밤에 일정 있나?” -없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지금 어디에 있어?” -목동에 있습니다. “막차 시간 맞춰서 방화역 열차 차고지로 가 있어.” -차고지로요? 임지현은 약간 놀란 듯 되물었다. -어떤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고가 날 거야. 아니, 사고를 빙자한 자살이 벌어질 거야.” -아……. “두 차고지 중 하나인 건 확실하지만, 둘 중 어느 곳인지를 몰라. 몰래 숨어 들어가든, 인맥을 사용하든 어떻게든 들어가서 기다리다가 만약 자살을 할 낌새가 보이면 막아야 돼.” -알겠습니다. 임지현은 어떻게 아느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 줄 리도 없고, 본인이 알 필요도 없었으니까. 내가 마돈나를 신뢰하는 게 바로 이러한 이유지. 본인이 알 필요가 없는 사안은 굳이 묻지 않으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지현 씨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 오면…… 그땐 포기해.” 지금 임지현은 내게 가장 든든하면서도 유일한 아군이다. 그녀를 휘말리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다고 다치게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차고지 도착하면 보고해.” -예, 도련님.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곧장 지하철역 안으로 향했다. * * * -이번에 내리실 역은 당고개. 당고개역입니다. 당고개역은 이번 열차의 종착역으로서……. 10시 30분. 당고개역에 도착했다. 아직까지 시간적 여유는 있는 상황. 우선 당고개역에서 하차했다. 멀리 떠나지 않고, 열차 앞에서 기다리자, 역시나 역무원이 첫 번째 칸부터 마지막 객차까지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스크린도어가 닫히기 직전. 나는 빠르게 지하철에 올랐다. 혹시나 누군가 볼까 싶어 객차와 객차 사이에 있는 문틈으로 향했다. 2014년 7월 도시철도법 개정으로 인해 지하철의 약 1/4 정도는 객차 안에도 CCTV가 있어서 확인할 수도 있는데, 이 지하철에 CCTV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으니까. 다행히 역무원이나 기관사가 보지 못했는지 열차는 멈추지 않고 차고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열차의 속도가 천천히 멈추더니 이내 객차 내의 전등이 꺼졌다. 그리고 멈춘 곳은 차고지. 그곳은 굉장히 어두웠다. 미래 문자에서 본 배경과 비슷하긴 하나, 다른 차고지도 이와 비슷할 확률이 높기에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문은 닫혀 있었으나 도어 밑 핸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열 수 있었다. 나는 휴대폰의 불빛에 의지하며 걸음을 옮기다가 몸을 숨기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차고지 내 CCTV에 찍히지 않는 위치. 오래지 않아 문자가 도착했다. 지잉지잉-. -보낸 이: 임지현. -방화역 차고지 도착했습니다. 숨어 있겠습니다. 그녀도 늦지 않게 잠입에 성공한 상태. 남은 건 기다림뿐이다. 날씨는 꽤나 추워져 있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옷을 두껍게 입지 않아 쌀쌀한 추위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추위에 아린 손을 비비며 얼마쯤 지났을까. 11시 10분 경. 지하철 한 대가 차고지로 들어왔다. 객차에 불이 꺼지고 기관사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음에도 기관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놓친 건가? 그럴 리 없었다. 왜 나오지 않는 거지? 그런 의문이 피어나고 있던 무렵, 기관사실의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걸어 나왔다. 암순응이 되었음에도 워낙 어두운 탓에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차고지 밖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점점 더 가까워지며 남자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시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그 남자다. 동영상에서 본 그 기관사! 강성철 의원이 벌인 일이라는 확신은 있었으나. 만에 하나 사고일 가능성도 아예 지워 두진 않았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졸면 소리를 내서라도 깨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아…….”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뱉더니.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싸고는. “흐흐흑…….”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이었다. 40대, 50대의. 흔히 말하는 내게 아버지뻘인 인물이 이토록 섧게 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와 동시에 점점 더 확신이 들고 있었다. 그의 죽음은 사고 따위가 아니라는 확신이. 철커덕 철커덕. 그때, 멀리서 차고지를 향해 열차가 한 대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차를 하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기에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허나, 열차의 무게를 생각해 보면 바로 앞에서 사람이 떨어질 경우에 멈출 수도 없고, 깔아뭉개고 지나가는 순간, 사람은 즉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CCTV의 각도에 찍히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남자와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 지하철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 한참을 울던 남자는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래 문자에서는 화질이 좋지 않아서 확실하게 알 수 없었지만, 직접 보니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졸고 있는 게 아니다. 그의 정신은 멀쩡했다. 그럼에도 남자는 졸음이 쏟아지는 듯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갈지(之)자를 그리며 안전선 너머로 왔다 갔다 하기도 잠시. 열차가 어느 정도 가까이 오자, 남자는 그대로 발걸음을 잘못 디딘 듯 미끄러지며 선로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열차의 라이트가 환하게 켜지며. 빠아앙-! 커다란 경적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선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지하철 선로 옆에는 혹시나 사고를 대비해서 안전지대를 만들어 놓고 있다는 건 기본 상식. 열차는 어느 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안전지대로 들어가 남자의 옷을 잡아 힘껏 당겨 왔다. 아니나 다를까. “뭐, 뭐야?” 그는 당황하며 반항하려 했다.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어느새 열차는 머리맡까지 와 있는 상태. 나는 온힘을 다해 남자의 몸을 끌어당겼고. 그의 몸은 내가 있는 선로 밑 공간으로 끌려 왔다. 그 와중에도 지하철은 연신 경적을 울려대고 있었다. 허나, 남자의 다리가 아직 선로 위에 놓여 있었다. “다리 당겨!” 나는 힘껏 외치며 남자의 허벅지를 잡아 힘껏 당겼다. “다리 접으라고!” 그러나 내 외침을 듣기에는 열차가 너무 가까이 와 있어서 경적 소리에 묻힌 것 같았다. “아저씨, 정신 차려!” 내가 힘껏 외치는 그 순간. 철커덕-. 열차는 우리의 바로 옆을 지나갔고. 나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끄아아아악!” 남자의 비명소리가 귀를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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