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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상반 (3) (47/200)
  • 선악상반 (3)2021.12.17.

    “안녕하세요, KTS 뉴스 속보입니다. 뉴스 속보로 인해 기존에 편성되었던 지하철 파업에 관한 TV토론은 결방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오늘 오후 5시경, 휴가 나온 군인이 사망하는 참담한 교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TV토론은 채 시작도 해 보지 못한 채 종료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심각한 사고가 발생해 버렸으니까. 전남에서 군복무를 하는 군인 하나가 오늘 아침 휴가를 나왔다. 대대장에게 휴가 신고를 마친 뒤, 동기들과 국밥을 한 그릇 먹고,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KTX가 다니지 않는 지역이었기에 무궁화호를 타고 느지막이 용산역에 도착한 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동묘로 향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려던 찰나. 신호를 위반하고 달리던 화물 트럭과 부딪쳐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하…….” 강성철 의원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런 망할…….” 그는 이마를 쓸어 넘기며 탄식을 내뱉었다. “일단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 * * 대한당에서는 강성철 의원이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TV토론장에서 씨익 웃다가 뛰쳐나갔던 국회의원은 피해자에게 찾아가 슬픈 척 위선을 떨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면에 나오는 장소가 병원이 아니라, 장례식장이라는 점. 그는 절망적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말 소중한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제 막 100일 휴가로 처음 사회에 나온 이등병이었습니다.” 신병 위로 휴가. 즉 첫 휴가를 받은 군인이었다는 점이 대중들의 가슴을 자극했다. “이제 21살밖에 되지 않는 꽃다운 청춘이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지고 말았습니다. 꿈이 창창하고 미래가 밝던 사내였습니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아들이었으며 대한민국에겐 나라를 지키던 소중한 군인이었고요.” 대한당 국회의원은 슬픈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용산에서 동묘까지는 지하철로 한 번에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병태 이병은 버스를 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故 전병태 이병이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메신저를 통해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화면에 떠올랐다. 엄마: 아들, 지하철 타고 올 거야? 전병태: 응. 엄마: 요즘 지하철 파업 때문에 배차 시간도 길고 복잡하다던데 괜찮겠어? 전병태: 아, 그러네. 그러면 그냥 버스 타고 갈게. 엄마: 그래, 이따 보자. (2시간 뒤.) 엄마: 아들, 언제 와? 엄마: 왜 전화가 안 돼? 엄마: 아들, 무슨 일 생겼으면 전화 줘. 엄마: 뉴스에서 봤는데 아니지? 엄마: 아들, 제발……. 실로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그저 보는 입장에서도 이렇게 가슴이 쓰라린데 당사자는 어떻겠는가? “전병태 이병은 지하철 파업 때문에 버스를 탔습니다. 화물 트럭 운전자는 교통체증 탓에 늦었고 퇴근 전까지 물품을 가져다 주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과속을 했던 것이고요.” 그는 원망하듯 말을 덧붙였다. “이 교통체증은 지하철 파업 때문에 발생한 겁니다. 평소엔 막히는 시간도, 막히는 도로도 아니라는 게 자명한 사실이고요.” 대한당 의원은 눈시울까지 붉히며 말했다. “고작 15분의 근무 때문에 파업을 하며 농성을 하는 그 지하철 노조 때문에 이 소중한 생명이 죽었습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는 울부짖듯 연기했다. “직장인들은 출근길과 퇴근길이 지옥이라고 말합니다. 소중한 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저 이렇게 괴로우면 되겠습니까? 이젠 악몽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대한당 의원은 절망적인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부디…… 부디 이 파업을 조속히 마무리지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삑-. 강성철 의원은 TV를 끄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 개X끼, 저거 연기하는 거 봐.” 그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며 짜증을 내뱉었다. “내가 저거 봤다고. TV토론회장에서 스튜디오 나가기 직전에 좋다고 웃은 거 봤어. 저런 가식적인 자식 같으니라고.” 그 말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이 슬프고 비통한 건 사실이었으나, 이 사고를 처음 접한 저 대한당 의원은 좋다고 웃다가 카메라를 보고 표정 관리했던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일단 대책부터 세워 보자고.” 어쩔 수 없지만, 퇴근은 당연히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했으니까. 오늘 낮까지만 해도, 이쪽에서 분명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강성철 의원이 그토록 울부짖던 ‘임팩트’에서 밀렸으니, 밤사이에 여론이 역전되는 건 순식간일 터. “의원님.” 그때, 태서형 보좌관이 매섭게 눈을 치켜뜨며 수첩을 들었다. “잠깐 이야기 좀…….” 강성철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함께 집무실로 향했다. “뭔데?” “이렇게 된 이상 최후의 수단을 꺼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저희도 마찬가지로 임팩트를 더 세게…….” 그 말을 끝으로 집무실의 문이 닫혔다. 뒷이야기는 더 듣지 못했다. 허나, 더욱 더 강력한 임팩트를 주려는 속셈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여론을 반전시킬 만한 카드를 꺼낸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뉘앙스를 보면, 무언가 꾸미려는 것만은 확실했다. 지난번 사건처럼 또 다른 사건을 조작하려는 셈인가? 이거 상당히 불안한데……. * * *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강성철 의원은 답답한 듯이 물었다. “어지간한 건 안 통할 거야. 저쪽엔 불행하게도 지하철 파업으로 인해 사망한 21살 이등병이 있어.” “의원님.” 태서형 보좌관은 눈을 반짝였다. “저쪽에서 세게 나왔다면, 저희도 세게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좋은 수라도 떠오른 거야?” “얼마 전에 노조원 외 기관사들에 대해 조사하다가 한 인물에 대해 알았습니다.” 그는 수첩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나이는 45세. 중학생 딸이 하나 있고, 집에서 할머니가 키워 주고 계십니다.” “아내는?” “아내는 바람이 나서 이혼했습니다. 애가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이니 아예 관련이 없다고 보셔도 돼요.” “더 말해 봐.” “예. 기관사로 일하는데, 3억의 빚이 있습니다.” “3억이나?” 강성철 의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다가 생긴 건데?” “친구 보증을 잘못 섰답니다. 집까지 날리고 지금은 투룸에서 딸과 할머니까지 셋이서 살고 있는 걸로 확인이 됩니다.” “그래?” “예. 하지만 딸은 지극하게 아낀답니다. 그런데 월급은 전부 빚 때문에 압류를 당하니, 도저히 생활이 안 돼서 얼마 전에는 신장까지 떼어서 판 걸로 확인했습니다.” 이야기를 듣자, 강성철 의원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얼마 정도면 될 것 같아?” “많이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빚이 3억이니 한 5억만 줘도 넘어올 겁니다.” “5억이라…….” 강성철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목숨 값으로 5억이면 싸지. 그 정도는 마련할 수 있어. 어떻게 처리할 건데?”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남은 기관사들에게 업무가 몰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들 과로로 인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고요.” “거기다가 신장 이식까지 했으면 몸의 피로도는 극치로 올라가 있겠네.” “맞습니다. 졸다가 넘어지기 딱 좋죠.”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한 번 진행해 봐.” “알겠습니다.” 태서형 보좌관은 수첩을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시기는 언제쯤으로 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지금 상황 보면 오래 못 끌어.” 강성철 의원은 천천히 달력을 확인한 뒤 말했다. “내일 저녁에 바로 실행 가능해?” “내일이 아니면 협상이 안 되는 걸로 딜을 걸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일단 이야기해 보라고.” 강성철 의원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지금 바로 가 봐.” “알겠습니다.” 태서형 보좌관은 꾸벅 인사를 하며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 * * 다음 날. 태서형 보좌관은 출근하지 않았다. 어젯밤, 강성철 의원을 포함해 우리는 모두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퇴근을 했지만. 태서형 보좌관은 오후 10시가 채 되기도 전에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오늘 오후 6시가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출근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언론은 난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노조에게 계속해서 파업을 진행할 것이냐며 압박을 넣고 있었고. 여론은 이미 노조를 비난하는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대한당에서는 이번 사건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전병태 이병 사망에 대한 보도의 분야를 더욱 크게 늘리고. 아버지는 국무총리에게 직접 장례식장에 다녀오도록 지시했다. 또한, 국방부에서도 전병태 이병에 대한 추모를 진행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노조는 이전까지처럼 적극적으로 시위를 이어 나가진 못했다. 민국당 내부에서도 한 수 접어야 되지 않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 그렇기에 나를 포함한 강성철 의원의 보좌진들 또한 비상이었다. 온갖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워낙 전병태 이병의 사망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대한당에서 지속적으로 인용하고 있기에 쉽게 나설 수가 없는 상황. 그런데도 이 상황에서 강성철 의원은. “어, 아직 남아 있었네?” 발등에 불 떨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점심시간에 볼일이 있어 나간다더니, 해가 지고 나서야 들어왔다. 그것도 굉장히 태평한 얼굴로. “벌써 6시 넘었어. 다들 퇴근해.” “……예?” 정신없이 업무를 보고 있던 우리는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그대로 굳고 말았다. “퇴, 퇴근이요?” “어. 늦었잖아. 퇴근해야지.” “지금 퇴근하면 분명 저쪽에선…….” “에이, 됐어.” 강성철 의원은 손을 휘휘 저었다. “지금 그거 서류 잡고 있는다고 대세가 바뀌겠어?” 맞는 말이다. 허나, 영 찜찜한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커다란 임팩트가 있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는 손짓을 하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얼른 짐 챙겨서 가 봐.” 강성철 의원의 행동을 보면 마치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듯한 느낌. 즉 이것의 의미가 없어질 만한 커다란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 같달까. “그, 그러면 들어가 보겠습니다.” 강성철 의원의 성화에 못이긴 8급 비서가 먼저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들어가.” 그를 시작으로 다른 비서들도 의원실을 떠났고. 나 또한 짐을 챙겨 일어났다. “최 비서관도 내일 보자고.” “알겠습니다.” 나는 사무실을 나가려다가 슬쩍 멈춰 서서 슬쩍 운을 뗐다. “참, 의원님.” “왜?” “태서형 보좌관님이 출근을 안 하셔서 다른 비서님 통해서 전화를 드렸는데도 연락이 안 되어서요.” “어, 그건 신경 쓰지 마.” 강성철 의원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일 맡긴 게 있어서 그 업무 보고 있는 거거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래. 오늘 고생했어. 조심히 들어가.” “예,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도 영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별일 없으려나? 무언가 분명 일이 터질 것 같은데……. 허나,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단 집에 들렀다가 마돈나와 한번 만나서 이야기해 볼 생각으로 국회의사당을 빠져나오려는 찰나. 지잉지잉-. 휴대폰에 짧게 두 번 진동이 울렸다. -보낸 이: 22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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