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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상반 (2) (46/200)
  • 선악상반 (2)2021.12.16.

    회의 직후, 강성철 의원과 태서형 보좌관의 대화를 들어보니, 그놈의 ‘임팩트’ 때문에 얼굴에 커터칼을 긋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내가 돕는 게 맞나?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내가 정치에 뛰어든 건, 권력을 손에 넣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으나 궁극적으로는 ‘나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처럼 권력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을 바로세우기 위해서 정계에 뛰어들었다. 허나, 그 과정이 옳지 않다면, 과연 그 결과는 맞는 것일까. 점점 고민은 깊어졌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내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권좌에 올라야만 한다. 다른 곳은 몰라도 유일하게 정치에서 만큼은 수단이 옳지 못하다고 결과가 지탄받지는 않는다. 역사에서 말하는 선(善)과 의(義)는 승자에 의해 쓰이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악(惡)에 굴복하거나 손을 잡겠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나만의 정치를 위해서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어차피 내가 강성철 의원의 이번 계략을 말리고 막아낸다고 한들, 그들의 심성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에 나로 인해 실패한다고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들은 오히려 더 악랄하고 자극적인 일을 벌일 것이고, 성공할 때까지 시도할 것이다. 지금 당장 나에게는 강성철 의원을 국회에서 끌어내릴 만한 힘이 없으니까. 내 힘이 있어야만 정의를 펼칠 수 있는 법. 혹시나 그 정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미래 문자가 오지 않을까 싶어 휴대폰을 바라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여전히 미래문자에 대한 메커니즘은 파악할 수 없었다. 그저 문자의 보낸 이가 사건이 일어나는 당시의 나의 나이라는 것뿐. 그 외에는 미래 문자가 어떤 이유로, 또 어떠한 방식으로 전송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현재의 나는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의원님.” “왜?”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노조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섭외는 태 보좌관이 할 테니까 따로 언질 줄 필요는 없어.” “알겠습니다.” * * * 답십리와 장한평역 사이에 있는 서울교통공사 앞. 강성철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한 성동구의 용답동. 오늘 당장 파업을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곳에선 노조원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노조원들에게 다가가 몇 가지 의견을 물어보려던 찰나. 천막 사이로 익숙한 인물이 빠져나왔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어, 최 비서관.” 다름 아닌, 민국당의 당대표 백태성 의원. 그는 반갑게 나에게로 다가왔다. “여기까지 왔네?” 백태성 의원은 자연스레 나와 함께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이번 지하철 파업은 환노위 말고 국토위에서 맡기로 했는데, 자네는 무슨 일이야?” “강성철 의원님께서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번 파업 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그쪽 의원실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오, 그래?” 그는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강 의원실에 사람이 부족하다고는 들었는데, 자네가 지원을 나올 줄은 몰랐네.” “예. 강성철 의원님이 저를 지목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어쩐지…….” 백태성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되든 간에 자네는 늘 가장 핫한 사건의 중심에 섞여 있구먼.” 그의 말은 능청스레 받아쳐 주었다. “태풍 곁에서 휘말릴 바에야 차라리 고요한 태풍의 눈이 더 안전한 법이거든요.” “하하하핫.” 백태성 의원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거 아나?”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태풍의 곁바람에도 휘둘리는 자가 있나 하면, 태풍을 전면으로 맞이해도 끄떡없는 자가 있어.” “그 태풍을 부르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죠.” “그렇지. 태풍이 휩쓸고 간 뒷자리는 폐허가 될지라도, 모든 걸 삼키진 못하니까.” 그는 대화가 만족스럽다는 듯 한껏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난 이번 일의 결과를 기대해도 되겠나?” “백 마디 말 보다 한 번 성과를 보여 드리는 게 확실하겠죠?” “입만 번지르르한 형보다는 낫구먼.” 아마 나의 둘째 형, 최지원을 말하는 것일 터. “그래. 한 번 유심히 지켜보겠네.” 그는 내 등을 툭툭 두드리고는. “또 보자고.”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후우…….” 나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태성 의원을 만난 탓에 자신감을 내비추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내게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반드시 민국당을 승리로 이끄는 수밖에. 그렇다고 강성철 의원의 방식과 타협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갈 테니, 나는 비서관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것뿐. * * * -뉴스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11시 경, 지하철 파업을 진행 중인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원 박 씨에게 무차별 테러가 벌어졌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김현미 기자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주변에 주차되어 있던 블랙박스에 녹화된 장면입니다. 박 씨가 서울교통공사 시위를 벌이고 있던 도중, 신원미상의 인물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접근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박 씨에게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주변에 있던 조합원들에게 저지당한 뒤,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피해자 박 씨는 이마에 깊은 상처를 입고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 중에 있습니다. 조사 결과, 무차별 테러를 한 남성은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김모 씨로 밝혀졌으며, 파업으로 인해 지하철 운행 시간이 단축되어 지낼 곳이 사라지자, 이에 악의를 품고 노조원을 향해 무차별 테러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곳이 박 씨가 무차별 테러를 당한 장소입니다. 피해 현장에는 이처럼 혈흔의 흔적이 낭자합니다. 또한……. “벌써 기사가 떴네.” 강성철 의원은 흡족스레 웃으며 외투를 챙겼다. “가자고.” 가는 장소는 뻔했다. 피해자의 병원. 그곳에 가서 언론에 얼굴을 비추고 이번 테러를 강조하여 노조의 동정 여론을 키우려는 셈이지. “태 보좌관은 여기 남고…… 최 비서관이 나랑 같이 가자고.” “알겠습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슬쩍 김태원 기자에게 하나의 문자를 남겼다. * * * 병원 앞에 도착하자, 수많은 기자진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들이 많네?” 강성철 의원은 씨익 입꼬리를 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숙연하게 표정 관리를 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의 길을 열며 조심스레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은 당연히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왔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나서야 사방이 고요해졌다. 강성철 의원은 그제야 엄숙하던 표정을 풀고는 눈을 끔뻑였다. “기자들이 왜 이렇게 많아?”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위 현장으로 가 있을 줄 알았더만…….” 얼굴을 보아하니, 흡족스러운 얼굴이다. 애초에 언론에 카메라 마사지를 받으려고 온 것인데, 기자가 생각한 것보다 많으니 좋을 수밖에. “제가 불렀습니다.” “최 비서관이?”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언제?” “국회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아는 기자에게 연락했습니다.” “캬, 역시 우리 최 비서관이 센스가 좋다니까.” 강성철 의원은 흡족스러운 듯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 건을 논의할 때마다 최 비서관이 입을 꾹 다고 있어서 불만이 많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나 보네.”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건 여전히 반대하니까. 다만, 나를 위해서. 내가 권좌에 오르기 위해서는 승리해야 하니까. 또, 내가 말린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기에 내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협조하는 것뿐이다. 그는 연신 클클대다가. 띵-. 병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기 무섭게 엄숙하게 표정을 굳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역시나 몇몇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의원님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울교통공사의 탓이라고 보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강성철 의원은 사납게 눈총을 쏘았다. “지금 상황에서 파업이 중요합니까? 사람이 먼저지. 나중에 대답하겠습니다.” 그는 정의감 짙은 얼굴을 하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효과는 확실했다. 지하철 파업으로 인해 교통 체증은 심화되었고. 출퇴근길은 평소보다 2배 이상 걸리는 건 예삿일이 되었다. 물론, 타이밍에 맞춰 지하철이나 버스에 탄다고 한들, 평소보다 훨씬 더 비좁고 불편한 건 당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조원들 대상으로 하는 테러까지 발생하자, 당연히 여론은 노조에게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거, 참 적당히 요구 수용하고 파업 멈춥시다. -그냥 대충 들어주면 안 되나? 사람이 다치는 꼴까지 보면서 말이야……. -원래 지하철 안 타고 차로 출근하는데, 다들 자차로 몰려서 30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이젠 1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제발 파업 좀 멈춰 주세요. -언제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해야 되는지 모르겠네. 아침마다 무슨 땀으로 샤워를 한다니까? -노조원들 진짜 불쌍함. 요즘 날씨도 꽤 추워졌는데 무차별 테러까지 두려워해야 되는 거 아님? -잘 다쳤다. 그러니까 파업 그만하고 지하철 좀 타자! -└사람이 다쳤는데 잘됐다는 건 무슨 개소리임? -아, 이 정도면 파업 끝낼 때 됐다. 진짜 지하철 좀 탑시다. 요즘 10분 기다려서 지하철 오면 만원이라 타지도 못함. 서울교통공사는 불쌍한 노동자들 말 좀 들어줍시다. “하하하하핫!” 강성철 의원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 사흘…… 아니, 이틀만 버티면 되겠구먼.” 사실이었다. 안 그래도 지하철을 타지 못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원 테러 사건은 기름에 불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효과가 확실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TV토론 시간은 어떻게 되어가?” 오늘은 이번 파업 건에 대하여 대한당 의원과 직접 토론을 하기로 했다. 민국당 측에는 노조 대표가 함께하고, 대한당 측에는 교통공사측 책임자가 함께 참여해 2:2로 토론을 진행할 예정. “예. 지금 출발하시면 됩니다. 차에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가자고. 오늘 쐐기를 꽂아야겠어.” * * * “스탠바이 10분 전입니다.” 스태프의 사인에 강성철 의원은 옷매무새를 만지며 의자에 앉았다. 노조원 무차별 테러 사건을 일부러 오늘 터뜨렸다. TV토론을 하기 직전에 임팩트 있는 사건을 벌이고, 거기에 이 토론으로 쐐기를 박을 생각이었다. 그 증거로 강성철 의원의 얼굴엔 여유가 보였고. 서울교통공사 대표로 나온 책임자와 대한당 의원의 얼굴엔 수심이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스탠바이 5분 전입니다.” 강성철 의원은 의원실에서 건넨 자료를 다시금 살펴보며 복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측에서 확보한 자료에다가 오늘 테러 건까지 포함하면 토론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여론은 확실하게 잡을 수 있을 테고. 여론을 잡는다는 건 승리를 뜻하는 것이지. 나는 토론 도중 필요한 자료를 건네기 위해 태서형 보좌관과 함께 스태프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스탠바이 3분 전입니다.” 그런데 그때. 대한당 보좌관이 황급히 의원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한당 의원은 씨익 웃더니. 카메라를 확인하고는 이내 표정 관리를 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태서형 보좌관과 나의 휴대폰이 동시에 진동이 울렸다. 먼저 화면을 확인한 그는 나지막이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제기랄…….” 잠깐만. 이거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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