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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상반 (1) (45/200)
  • 선악상반 (1)2021.12.15.

    “선배님. 기사 보셨어요?” 의원실에 들어서자마자, 8급 오태용 비서가 신문을 고이 접어 내게 가져왔다. “어, 안 그래도 오는 길에 봤어.” 지하철 파업. 며칠 전부터 근무 시간 문제로 떠들썩하더니만, 결국 파업을 단행하고 말았다. “무슨 이렇게 기한도 안 주고 갑자기 파업을 해? 수요일부터 파업이면 바로 이틀 뒤잖아.” “예. 아무래도 서울교통공사 측에서 단호하게 나오다보니, 노조 측도 강수를 던진 것 같습니다.” 서울교통공사의 파업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사실, 이치현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화성시 을’은 지하철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곳이나 다름없다. 허나, 이치현 의원이 속해있는 상임위원회는 환경노동위원회. 약칭 환노위에서는 고용노동과 관련된 문제도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이건 단순히 환노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크게 보면, 민국당은 노조를 지원해야 하고. 대한당은 교통공사를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 그럴 수밖에 없다. 현재 여당은 대한당이고, 대중들의 심리상 지하철 파업으로 인해 개인이 고생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정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되는 경향이 있다. “규모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원 3017명이 파업했고, 기관사 중 운전 거부는 88%입니다.” “관련 자료 좀 가져다줄래?” “예, 준비해 뒀습니다.” 그는 곧장 서류를 가져와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관사 한 명당 운전 시간이 4시간 40분이었는데, 이를 지난달부터 4시간 55분으로 늘렸고, 이에 대해 교통공사 측에 항의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파업을 선언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천천히 서류를 살피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실, 이 파업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올해 초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했고,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지하철의 특성상, 코로나의 감염을 두려워한 대중교통 이탈 및 승객 감소. 그로 인한 지하철 예산 부족. 그리고 이는 곧 직원 감축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다. 공기업이기에 쉬이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고 하나, 시간이 갈수록 직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직원들에 대한 추가 선발을 하지 않으니, 기존 근무자들이 연장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월급을 올려주는 것도 아니기에 파업을 선언한 게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근무시간 15분 차이면 생각보다 적은데?” “예. 그렇긴 한데, 기관사의 일 특성상, 말이 15분이지 실질적으로는 최소 30분에서 최대 2시간까지 연장 근무가 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래? 어떤 구조인지 자세히 좀 알려 줄래?” “지금 알아보는 중이라 바로 체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래지 않아, 문이 열리며 강선우 보좌관과 한유라 보좌관도 빠르게 의원실로 출근해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강선우 보좌관은 서류를 들추며 물었다. “만약에 노조가 이기면 어떻게 되지?” “지하철 요금이 인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서울시랑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겠네.” “예, 맞습니다.” 현재 서울시장은 대한당 소속이다. 우리는 노조가 승리하도록 만들어야만 하는 상황이지. “1호선부터 8호선까지만 파업이지?” 한유라 보좌관은 확인하듯 물었다. “네. 9호선이나 분당선 등 민영 호선은 아예 따로 운행하는 거라 문제없다고 기사까지 났습니다.” “그래, 알았어.” 한 10시쯤 되었을까. 이치현 의원이 느지막이 출근했다. 행색을 보아하니, 이제 국회의사당에 온 건 아니고, 누군가와 만나고 온 모양. “오셨습니까?” “어, 지훈이 잠깐 들어와 봐.” “예, 의원님.” 나는 그를 따라 곧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지훈이, 너 혹시 강성철 의원 알아?” 강성철 의원. 서울시 성동구 갑을 지역구로 하는 민국당 의원.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며칠 전, 한남동의 그 펜트하우스. 즉 의한회에서 보고 인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 따로 교점은 없었다. “한 번 인사한 적은 있습니다. 친하진 않고요.” “지금 지하철 파업 때문에 비상인 거 알지?” “예. 안 그래도 지금 관련 자료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상황을 보아하니, 이번 건은 국토위에서 제대로 다룰 건가 봐.” 국토교통위원회. 약칭 국토위. 사실, 노조의 파업이라고 하나, 지하철과 관련된 탓에 국토위에서 다뤄도 이상할 건 없다. “네가 그쪽으로 지원을 좀 나가야 될 것 같아.” “저희 쪽 말고요?” “어. 백태성 의원님이 환노위는 서브로 움직이고 국토위에서 메인으로 잡자고 하시네. 그런데 강성철 의원이 너를 콕 집어서 지원을 좀 보내 줄 수 있냐고 하더라고.” “저야 뭐 상관이 없습니다만, 의원님은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쪽은 서브로 움직이니 너 하나 빠져도 괜찮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간단히 가방만 챙겨서 강성철 의원실로 가 봐.” “예. 당분간 그쪽에서 출퇴근하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특이사항 있으면 알려 주고.” “네, 의원님.” 나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의원실을 빠져나왔다. 강성철 의원이라……. 의한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꽤나 능구렁이 같은 모습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눈에서는 탐욕이 느껴졌으니까. 의원실에 인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나, 다른 이유가 있을까 싶었기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후우.” 나는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고 강성철 의원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으로 들어가자. “어, 최 비서관.” 강성철 의원이 능청스레 웃으며 나를 반겼다. “이쪽으로 와.” 나는 다른 보좌진들과 인사를 한 뒤, 집무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 “아닙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드려야죠.” “알다시피 우리가 인력이 부족하잖아. 지금 보좌관 하나는 출산 휴가 나갔고, 비서관은 교통사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 있거든.” 강성철 의원은 문을 꽉 닫고 나서 목소리를 낮췄다. “최 비서관 부른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자네도 의한회잖아. 우리끼린 믿을 수 있으니까. 여기서 벌어진 일이 외부로 새어나가면 안 좋지 않아?” 말하는 걸 보아하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의한회에 한 번 속한 이상, 서로 뒤통수를 치는 건 굉장히 어려우니까. 믿고 갈 수 있는 사이가 된 건 사실이지. 허나, 반대로 생각하면. 여기서 부조리를 보더라도 눈감아줄 수 있는 인물을 데려왔다는 것이다. 강성철 의원은 서울에서만 무려 3선이나 당선된 힘 있는 의원이다. 그리고 의한회에 속해 있다는 사실과 그간 행적을 보면. 그에게는 선(善)과 의(義)는 고려 사항이 절대 아니었다. 오로지 권력. 권력을 가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행하는 인물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이거 평범하게 일이 진행될 것 같지는 않은데. 우선 천천히 지켜봐야 할 터. “예. 내부에서 일어난 일은 외부에서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치현 의원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겠습니다.” “고마워.” 그는 코를 찡긋하고는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다들 들어와. 회의 시작하자고.” 보좌진들은 서둘러 집무실로 들어왔다. 자세한 성격까지는 몰라도 대충 서로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태서형 보좌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인터넷을 통해 현재 대중들 반응을 확인해 본 결과, 실제로 파업이 시작되기 전이라서 그런지, 노조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파업이 그렇다. 실제로 불편을 겪게 되면, 해결하지 못하는 기관과 정부를 욕하지만, 시작 전에는 노조에 대해서 손가락질 하는 게 대부분이니까. “이미 대한당에서도 벌써 언플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가 건넨 태블릿 PC를 확인하자, 가관이었다. 실질적인 근무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하루 근무 시간 15분이 늘어난 걸로 파업을 한다고 지탄하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여론도 나쁠 수밖에 없었다. -공기업 놈들, 어차피 돈도 잘 벌면서 맨날 파업이네. -겨우 15분 가지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매일 같이 한두 시간 야근하는 게 일상인데. -얘네들 파업하면 출근 시간대에 배차시간 10분, 15분 된다는데 팩트임? -└미친 거 아님? 안 그래도 출퇴근 시간에 만원인데 지옥철 되겠네. -버스 타야겠는데? -버스도 지옥일 듯. -자차로 출근해도 지옥일 것 같네요. 안 봐도 교통 체증 뻔해서 숨 막힌다. -저 놈의 노조를 다 없애야 됨. -아, 내일부터 이번 주 내내 오전 9시 수업만 있는데 어떡하냐? 아니나 다를까. “이거 분위기가 안 좋네.” 강성철 의원은 심각하게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여론을 끌고 와야겠는데?” “예. 일단 파업이 시작 된 뒤에 일을 벌여야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파업 직후의 교통 체증 예상도를 한번 구해 볼까요? 업체 맡기면 오늘 내로 나올 겁니다.” 기존에 2분에서 3분이던 지하철 배차 시간이 10분, 15분이 된다면. 그것도 오전 출근 시간대와 오후 출근 시간대에 그렇게 된다면, 속된 말로 ‘토 나올 정도’가 될 터. “나쁘진 않은데 임팩트가 약해.” 그의 대답에 다른 비서 하나가 의견을 냈다. “지하철 파업으로 인해…….” “아니야, 아니야.” 그 외에도 몇 번의 의견 제시가 있었지만, 강성철 의원은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이 와중에도 태서형 보좌관은 골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강성철 의원이 원할 만한 대답을 찾는 모양. 그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이니, 질이 좋지 않은 의견을 제시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 당기지 않는데. 강성철 의원은 지금까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더 센 거 없어?” 그는 심기 불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국민들한테 팍 하고 인상을 줄 만한 그런 아이디어 없냐고.” 그제야 태서형 보좌관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혹시 노조원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는 어떨까요?” “테러?” “예. 약품을 붓는다든지, 아니면 커터칼로 테러를 한다든지요.” 끔찍한 소리다. 무슨 공산당도 아니고, 테러라니. 그런데. “그거 좋네.”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강성철 의원을 돌아봤지만. 그는 흡족스럽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커터칼로 얼굴 한 번 쫘악 그으면 임팩트가 생기겠구먼. 아니면, 깁스를 하게 팔을 건드리거나 목발을 짚게 다리 쪽도 괜찮고.” 놀랍게도 다른 보좌진들은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번 섭외해 봐. 기왕이면 노숙자가 좋겠네. 막차가 당겨져서 지낼 곳이 없어져가지고 불만이 생겼다, 시나리오도 나왔네.” 강성철 의원은 클클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번 배우들 섭외해 봐.” “알겠습니다.” “다들 일 봐. 아까 말했던 교통 체증 관련 자료들도 구해서 보도 자료로 내보고.” “예, 의원님.” 보좌진들은 꾸벅 인사를 하며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당황한 탓에 나갈 타이밍을 놓쳐 뒤늦게 나가려는데. “최 비서관.” 강성철 의원은 친근하게 내게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이, 뭘 그렇게 놀라?” “……예상과 너무 달라서요.” “괜찮아. 테러 당하는 노조원도 다 섭외할 거야. 막무가내식 테러는 아니라고. 우리도 마냥 나쁜 짓은 안 해.” 불행 중 다행이긴 하나, 그것도 전혀 내키진 않았다. “한 5천 정도 쥐여 주면 너도 나도 하려고 들걸? 서민들 움직이는 건 쉽거든. 상처 하나 남고 5천이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단 말야.” 강성철 의원은 익숙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테러범이나, 피해자나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기라고. 걱정하지 마.” 그는 웃으며 내 어깨를 도닥였다. “원래 정치라는 게 쇼(Show)거든. 누가 더 임팩트 있는 장면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여론이 갈리고 승리가 결정되는 법이잖아.” 강성철 의원은 음흉한 눈빛으로 찡긋하며 말했다. “이제 우리 도련님도 진짜 정치를 알아 가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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