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략 (5) (43/200)

계략 (5)2021.12.13.

“누가 보냈어?” “최지훈 도련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뭐?” 오혁철 의원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는 당황했는지, “쿨럭!” 헛기침까지 하고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의 막내 도련님이 보냈다는 거야?” “맞습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하.” 오혁철 의원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믿고 싶지 않으시면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나, 확실한 건.” 여성은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상국 의원한테 가 봤자 지금 상황은 멈추지 않는다는 거죠.” “…….” 단호한 말투에 오혁철 의원은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았다. 또한, 여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대체 왜?’ 왜 최지훈이 본인을 건드렸는지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았으니까. 의문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또 그가 어떻게 위에 연줄과 연결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청와대의 막내아들이라고 한들, 서울지검장보다 높은 사람과 손을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는 멈칫하며 마돈나를 바라봤다. “혹시 청와대 지시인가?” “청와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로지 최지훈 도련님의 독단적인 움직임입니다.” 오혁철 의원의 머릿속엔 만감이 교차했다. 우선, 안도감. 전상국 의원에게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 그와 동시에 불안감 또한 피어났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자신이 최지훈을 포함한 청와대 가족들에게 실수한 적은 없다. 그렇기에 무엇을 요구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확실한 건, 최지훈이 여기 오지 않았고, 눈앞의 인물은 최지훈의 하수인이라는 사실. 최지훈이 아무리 청와대 막내아들이라고 한들, 이제 막 정계에 입문한 인물. 자신보다 아랫사람이라면, 정답이 없는 건 아니었다. 충분히 본인이 판을 흔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대화의 주도권부터 가져와야 했다. “일단 모자부터 좀 벗지.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눈을 봐야지, 이거 답답하네.” 그러나 그녀가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회는 물론, 정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천하의 마돈나였으니까. “대화할 생각이 없다면 저는 내리겠습니다.” 그녀는 정체를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최지훈이 아직까지는 마돈나에게 자신과 협업하는 걸 밝히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으니까. 진심이라는 듯 문고리까지 잡는 걸 보여 주자, 오혁철 의원은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에헤이, 내가 실수했어. 미안해.” 오혁철 의원도 슬쩍 물러났다.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느꼈는지, 그는 경계심을 세운 채 입을 열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그러시죠.” 오혁철 의원은 진지하게 물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이번 송산면 유류 저장 시설, 예산 얼마까지 생각 중이십니까?” 그녀의 물음에 오혁철 의원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위협을 줘 놓고 결국 정보나 얻는 거라니. ‘역시 피라미라니까.’ 그는 신중하게 고민하는 척 입을 열었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당에서 생각하는 건 대략 30억에서 40억. 내가 힘 써 보면 50억까지는 어떻게든 뺄 수 있을 거야.” “50억이라…….” 마돈나는 빙글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미소는 마스크에 가려져 오혁철 의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50억으로 상록구 사업 한 번 하시죠.” “……뭐?”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저 정보를 원하던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으니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여성의 말은 자신에게 유류 저장 시설을 가져가라는 뜻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걸 내가 가져가면 다음 총선에서 당선이 힘들 수도 있어.” 마돈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다음 총선까지 버틸 수 있다는 게 어디입니까?” “…….” 이걸 받지 않으면, 검찰 수사는 계속될 것이고, 4년 임기도 채우지 못할 게 뻔하다. 또한, 다음 총선에는 출마 자체를 하지도 못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모두 아는 사실. 오혁철 의원은 부들부들거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초짜라고만 생각했는데, 보통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오혁철 의원의 생각까지 모두 파악하고 왔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나 치를 떠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대로 이틀에서 사흘만 시간이 더 지난다면, 검찰의 조사 소식은 언론으로 퍼질 테고. 이는 곧 자신의 정치 생명에 대한 사형 선고와 같을 테니까. “……사흘만 주게.” 오혁철 의원은 버티는 걸 포기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유류 저장 시설이 필요하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명분을 만들어야지. 대한당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을.” “어차피 대한당에서는 겉돌고 계시잖습니까?” “…….” 그녀의 말이 오혁철 의원의 심기를 거슬렀지만,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또한, 여기서 그녀를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법이니까. “자네 말대로 임기는 채워야 하지 않겠나?” “사흘.” 마돈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뒤에 유류 저장 시설을 받는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래. 내 약속함세.” “알겠습니다. 검찰은 내일부로 수사를 중지할 겁니다. 만약 사흘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면…….” 뒷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걱정 마. 한 입으로 두말할 처지는 아니니까.” “예. 그러면 기다리겠습니다.” 마돈나는 대화를 마치고 차 문을 열었다. 그녀는 밖으로 발을 내딛기 전,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하나 더.” 마돈나는 살기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번 일에 도련님이 엮이신 걸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그때도 이번 수사 자료들은 전부 언론에 넘어갈 겁니다.” 입까지 닫으라는 소리다. 오혁철 의원에게 만족스러운 면이 단 하나도 없는 거래였지만, 그는 모두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네.”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눈웃음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오혁철 의원에게 직감이 들었다. “잠깐만.” 목소리가 낯설지 않은 듯한 느낌. “혹시 우리 예전에 본 적 있나?” “그럴 리가요.” 마돈나는 코웃음을 치며 차에서 내렸다. “이런 식으로 작업 거는 건 너무 올드하네요.” “…….” “사흘 뒤. 기다리겠습니다.” 그녀는 짧은 말을 남기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 * * “수고했어.” -아닙니다. “반항하는 낌새는 없었고?” -잠깐 선을 넘으려는 언행은 있었으나, 제가 잘 정리했습니다. “고생했네.” 나는 마돈나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오혁철 의원이 지현 씨 알아보진 않았어?” -얼굴은 가린다고 가렸지만, 목소리 때문에 조금 의심하는 낌새는 있었습니다만, 알아챈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다행이네.” 마돈나의 얼굴이 미리 드러나서 좋을 건 없는 법이니까. “대화는 차 안에서 했다고 했지?” -예. “블랙박스는?” -나오기 직전에 확인했는데, 작동 중이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의 차량에서 블랙박스가 꺼져 있는 건, 흔한 일이다. 애초에 블랙박스의 목적은 사고 전후 상황을 보고 과실을 따지기 위함. 그 과실을 따지는 이유 자체가 사실 ‘돈’ 때문이다. 허나, 국회의원들의 대부분은 재산적인 여유가 있는 인물이고. 오히려 블랙박스를 켜 뒀다가 전화 혹은 대화 내용이 녹음되어 유출되는 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장식용으로 달아 두기만 하고, 녹화는 켜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한 번 더 꼼꼼히 확인했다는 걸 들으니, 역시 마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처리한다는 게 그녀의 최대 장점이지. “수고 많았어. 그리고 조만간에 지금 일산 오피스텔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있어. 당분간 움직일 일이 많아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쉬어.” -예, 도련님. 그리고 다음 날. 뉴스에선 오혁철 의원의 지역구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상수관 노후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주민들의 인터뷰. 노후 상수관으로 인해 수도꼭지에서 녹물 섞인 붉은 수돗물이 나온다는 소식. 상수관이 삭아 이물질이 섞여 나온다는 뉴스. 상수관이 오래 되어서 페인트가 벗겨져 문제가 되고 있다는 기사까지. 상수관, 상수관, 상수관. 전부 상수관에 대한 내용이었다. 굳이 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오혁철 의원이 고의적으로 기사를 낸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를 다시 말하면. 그는 내 제안을 받겠다는 증거였다. 사실,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 딜을 거부하면, 단순히 금배지를 내려놓는 걸 넘어, 추가적인 조사까지 받아야 했을 테니까. 나는 기사를 읽으며 법무부 장관 민종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무슨 일이지? “오혁철 의원에 대해 진행되는 조사들, 전부 중지시켜 주십시오. 그는 심기가 불편한 듯 되물었다. -……이제 와서? “예. 자료 폐기는 하지 말고, 우선 저한테 공유해 주십시오.” -흠. 일단 그렇게 하도록 하지. 수사는 아예 종결인가? 아니면, 중단인가? “일시중지입니다. 제가 빠른 시일 내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전화를 끊는 목소리에서 민종근 법무부 장관은 내가 지시하고 그것을 따라야 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이미 천선화를 통해 모두 합의가 된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피식 입꼬리를 휘었다. * * * “다음 공청회에서는 우선 주민분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마을회관과 그 주변의 토지를 중심으로 추가적인 보상안에 대해 제안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적으로는…….” 광석현 비서가 다음 공청회를 준비하며 브리핑을 이어 갔다. 아무래도 자신의 고향이다 보니, 잘 알기도 하고, 또 주민들을 알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크게 의미를 가지는 못할 테니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주민들을 설득하려다가는 오히려 반감만 더 키울 상황이었으니까. 부질없는 회의가 얼마쯤 진행되었을까. 9급 비서 김한나가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의원님.” 회의 중에. 그것도 브리핑 중에 들어와서 말을 끊을 정도면 보통 건이 아니라는 뜻.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에 한껏 주름을 잡은 채 입을 열었다. “이거 보셔야 될 것 같은데요.” 그녀는 리모컨으로 집무실에 있던 TV를 틀었다. 그곳에선 오혁철 의원이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노후 상수관 사업 정비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 재생 사업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약 50억 원의 예산을 투자할 생각이며, 이 예산은 상록구에 유류 저장 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확정을 받아 둔 상태입니다. 또한……. “어?” “이게 뭐야?” 보좌진들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얼마 전부터 상수관 관련해서 뉴스 엄청 터지더만…….” “민심이 뿔이 나서 못 견뎠나 본데?” “아무래도 상록구청장이 오혁철 의원한테 부탁한 것 같은데요.” “의원님 이거 이렇게 되면…….” 띠링. 알림 소리에 휴대폰을 확인한 이치현 의원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유류 저장 시설, 상록구에서 가져가는 걸로 확정됐어.” 보좌진들의 얼굴에 피어난 당황스러움도 잠시. 이내 그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오, 잘됐네요.” “하하하핫. 이게 이렇게 해결이 되네.” 그들은 후련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 또한 가볍게 미소를 지었고. 이치현 의원은 입꼬리를 휘며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눈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다.

1655736865671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