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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략 (3)2021.12.11.

오혁철 의원. ‘안산시 상록구 병’을 지역구로 하는 대한당 국회의원으로 이제 2선에 당선된 정계 신입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타깃으로 정한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 대한당에서 입지가 굉장히 좁기 때문. 굳이 뒤를 캐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21대 총선 직후, 대한당에서는 작은 마찰이 있었다. 분열이라고 하기엔 오버스럽고, 당권 싸움이라고 봐야겠지. 늘 총선 직후엔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하는 경선이 있다. 후보는 5선 의원 최창식과 7선 의원 전상국. 전상국이야 종로를 지역구로 하는 거물이기도 했고, 지난 대한당에서 원내대표 출신이었기에 유력한 당대표 후보였고, 최창식은 몇 번의 국정감사를 통해 민심을 잡은 대한당의 새로운 별과 같은 존재. 그러나 오래지 않아 기세는 기울어졌다. 워낙 노련한 전상국이 중진 의원들과 손을 잡고 우위에 섰고, 최창식은 자연스레 밀리게 되었다. 당연히 대한당의 다른 의원들 또한, 전상국에게 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쪽으로 줄을 서야, 안위를 지킬 수 있고, 또 좋은 자리를 하나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상황에서도 오혁철 의원은 최창식과의 의리를 지켰다. 허나, 그 의리가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었고. 결국 전상국이 당대표로 선출되게 된다. 당권을 전상국이 잡으니, 좋은 자리에 대한 선출권도 그가 갖게 되고, 자연스레 대한당의 중역도 그에게 붙었다. 당연히 최창식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던 것이지. 그래서 최창식과 함께 하던 몇몇 의원들은 뒤늦게나마 석고대죄를 하며 전상국 의원에게 붙었지만, 오혁철 의원은 타이밍을 놓친 건지, 의리를 지키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최창식 곁에 남은 상태. 그러니 최창식과 함께 당에서 겉돌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정치에서는 의리를 지키는 게 꼭 필요하진 않다. 그 상대방이 100%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모를까, 애초에 정치에는 100%라는 확률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물며 최준석 대통령처럼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도 모든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도 없는 법이니, 일반 의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결국 의리를 지키다가는 도태되기 십상이다. 갈아탈 줄 아는 것도 정치력이고 정치의 기술 중 하나다. 대한당이라는 이름하에 모여 있다고는 하나, 모두가 하나된 것처럼 끈끈한 게 아닌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 의한회의 존재는 차치하고, 대한민국에서 권력이라는 파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원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니 서로 뺏고, 뺏기고 욕심을 낼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 정치라는 걸 하다 보면,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건 인간의 심리상 일반적이니까.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현재 대한당에서는 오혁철 의원의 입지가 굉장히 좁을 수밖에 없다. 최창식 의원을 필두로 하는 그들 무리는 어쩔 수 없이 끈끈하다고는 하나, 서로 지킬 수 있는 힘도 많지 않다. 그래서 그를 타깃으로 잡은 것이지. 또한, 녀석을 털면 먼지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도 있다. 아예 이치현처럼 청렴하게 움직이면 모를까. 정치권에서 줄서기 싸움하는 놈치고, 손에 오물을 묻히지 않는 놈은 없으니까. 만에 하나 털어서 안 나온다면, 다른 놈도 있겠지만, 그럴 리는 만무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결정을 마친 나는 민종근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민종근 장관님. 최지훈입니다.” 천선화에게 법무부 장관 카드를 받아 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한 사람 좀 털어 주셨으면 해서요.” 그에게 거는 전화는 2G 휴대폰이 아닌, 내 명의의 휴대폰을 사용했다. 오히려 이 편이 더 안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법무부 장관은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발신, 수신 내역에 대한 추적이 가능하다. 2G 휴대폰 번호를 녀석이 알게 된다면, 마돈나 혹은 지난번 김태원 기자와 연락하는 걸 알게 되고, 오히려 천선화 측에서 꼬리를 잡을 수 있게 되니까. 물론, 처음부터 나를 드러내지 않고 마돈나를 통해서 움직인다면 더 안전하겠지만, 벌써부터 마돈나의 존재를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 마돈나, 즉 임지현과 손을 잡은 건 늦게 드러날수록 좋은 법이다. “예, 감사합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민종근 장관은 사안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거나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은밀한 거래일수록 자세한 사항은 모르는 게 좋다는 것이 불문율이니까. “지현 씨.” “예, 도련님.” “지현 씨는 당분간 의한회에 대해서 조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마 많은 것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모임 장소도 주기적으로 변경을 한다고 들었고. 애초에 청와대에서 모르는 모임일 만큼, 은밀하게 형성되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다시 생각해도 내가 의한회에 알게 된 건 천운이 따랐다고 봐야겠지. 허나, 조금이라도 건질 수 있는 게 있다면 알아놓는 게 좋다. 내 손에 쥔 패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 * * 공청회. 송산면 주민들을 비롯한 화성 시민들이 참여해 이번 유류 저장 시설 설치에 관한 의견을 듣는 자리. 오혁철 의원 건은 내가 개인으로 진행하는 것이지,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한다. 결국 이치현 의원실 자체에서는 유류 저장 시설을 설치하는 대신 추가 예산을 받는 것 외에는 그렇다할 해결책이 없기에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래야만 지지율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청회가 가장 중요했다. 일단 대화를 해야 설득을 하든, 말든 할 수 있으니까. 광석현 비서와 이장인 그의 아버지의 도움을 통해 꽤나 많은 주민들을 공청회에 참석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만, 예상했던 대로 공청회는 혼란스러웠다. “반경 1km는 지원되는데 그 나머지는 어쩌란 거요?” “독지리에서도 일부만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못 받아. 우리는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고?” “이쪽 부지만 보상하고. 우리는 그냥 불청객 취급하려고 하는 거요?” 결국 이치현 의원까지 직접 나섰다. “여러분들. 저희가 단순히 그 지역 근처에 대한 보상만 하는 게 아닙니다. 우선적으로 5일장 센터를 새로 지을 건데…….” 이치현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주민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결국 그 5일장 먹고 떨어지라는 거 아니야?!” “5일장 외에도 추가적으로 지원을 받아올 겁니다. 받아올 건데, 어떤 시설이 필요한지 말씀을 해 주셔야 제가 예산을 따올 수 있어요.” “난 마을회관이나 고쳤으면 좋겠네.” “우리 마을은 얼마 전에 마을 예산으로 수리공 불러서 수리했어. 그건 됐으니까 유류 저장 시설 자체를 치우라고!” “뭐, 이 영감네가 미쳤나! 거기만 사람 사는 곳이야?” “아니, 어르신들. 고정하시고요.” 우리가 직접 나서서 주민들의 분열을 막았다. 이치현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우선 농촌 정비 사업에 대한 예산은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공 체육 시설 정비 사업을 위해 추가 예산 10억 원도 확보를 해 둔 상태예요. 그러니까…….” “그건 네 입장에서나 보기 좋은 거지, 우리한테 무슨 상관이야?!” 노인 하나가 또다시 태클을 걸었다.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 공설 체육관 가서 운동할 일이 있냐고. 겉으로 보기 좋은 거 말고, 실질적으로 우리 주민들을 위해서 성과를 내라, 이거야!” “아니, 자네는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마을이 좋아지려면 일단 화성시 자체가…….” “안 해, 안 해!” 결국 저들끼리 싸운 끝에 한쪽 구석에 있던 노인들은 단체로 일어섰다. 면장으로 보이는 인물은 이치현을 향해. “다 됐고, 우린 혐오 시설 들어오면 다음번에 무조건 대한당 찍을 거야. 알아서 해!” “어르신들 잠시만요!” 광석현 비서가 나서서 그들을 막았지만. “비켜!” 노인들은 거칠게 밀며 공청회장을 빠져나갔다. 한 번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회의장이 개판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첫 공청회는 결국 제대로 대화를 해보지도 못한 채 마무리 되고 말았다. “후우우…….” 이치현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뱉으며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강선우 보좌관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쉽게 조율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 어디 쉽게 되는 일이 있겠어? 천천히 하자고. 차차 좋아지겠지. 언젠간 어르신들도 이해를 해 주실 거야.” 이치현 의원은 참담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 “일단 서울로 가자.” “예, 의원님.” * * * 한편, 같은 시간. 서울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이쪽입니다.” 비서의 안내를 따라 자신의 의원실에 도착한 오혁철은 거세게 문을 벌컥 열었다. “……하.” 오혁철 의원은 거칠게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이런 X발…….” 의원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서류가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고, 책상은 어질러져 있었다. 집무실도 마찬가지. 열쇠로 잠가 둔 은밀한 곳까지 자물쇠를 부셔서 모두 압수 수색을 해 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의 보좌관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혁철 의원이 오찬회에 다녀온 사이, 검찰이 다녀갔다.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의원실을 완전히 헤집어 놓았다. 그럼에도 오혁철 의원에게는 그 어떠한 사전 통보나, 귀띔도 없었다. 열이 받는 것보다도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대한당에서 밀려나 힘이 빠졌다고 한들, 무려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 그런데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의원실이 압수수색 당한 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 “내가 검사 시절에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지는 국회의사당까지 와서 털어갈 정도면 보통 사안이 아닐 정도. “검찰에 알아봤어?” 그는 사납게 눈을 치켜뜨며 보좌관을 쪼았다. “아니요…….” 두 명의 보좌관은 물론, 비서관들 또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검찰 인맥을 통해서 물어봐도 전혀 아는 게 없다고 하고요.” “이런 무능한 새끼들!” 오혁철 의원은 구두 앞코로 보좌진의 정강이를 걷어차고는 씩씩거리며 의원실을 빠져나갔다. 그의 휴대폰은 한 곳으로 전화가 걸리고 있었다. “어, 나 오혁철인데 지금 중앙지검으로 갈게.” 그와 친분이 있는 차장 검사를 직접 만나서 어떻게 된 건지 들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예상외였다. -의원님, 오셔도 못 만날 것 같습니다. “뭐?” 오혁철 의원은 살벌하게 목소리를 굳혔다. “이유부터 말해 봐.” -정말 죄송합니다, 의원님.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이런 개X끼가. 누구 덕분에 차장검사 단 줄 모르고…….” 오혁철 의원은 바로 차에 올라 직접 서울중앙지검으로 차를 몰았다. * * * “혹시 약속을 잡고 오셨나요?” “아니.” “그러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오혁철 의원은 서울중앙지검의 게이트에서 막혔다. 그러나 돌아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는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다. “너 이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그는 가슴팍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지름 1.6cm, 무게는 6g의 금배지가 달려 있었다. 아무리 대한당에서 겉돈다고 한들, 국회의원이라는 직급의 무게감은 압도적이었으니까. “당장 안 열어?!” 그가 윽박을 지르자, 책임자로 보이는 인물은 결국 이기지 못하고. “열어 드려.” 권력에 굴복했다. 오혁철 의원은 분노를 삭이지 못한 채 차장검사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논스톱으로 직행한 그는 차장검사실에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어 재꼈다. “이 차장!” 집무를 보고 있던 차장검사는 당황한 얼굴로 탄식을 내뱉었다. “아이고…….” “아이고?” 오혁철 의원은 차장검사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나한테 고맙다고 머리 박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입 싹 닦으려고 그래?” “의원님. 그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일단 진정하시고 여기 앉으시죠.”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의원님. 일단은…….” 적지 않은 대화 끝에 겨우 분을 가라앉힌 오혁철 의원은 소파에 마주앉았다. 차장검사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의원님. 저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모르는 겁니다.” “자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중앙지검에 제2 차장검사보다 높은 사람 몇 명이나 된다고.” “정말입니다. 제가 알았으면 미리 연락 드렸겠죠.” 이 차장은 진심이라는 듯 호소했다. “위에서 내려온 거라서요.” “……위?” 오혁철 의원의 눈이 번뜩였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장은 대한당 당대표가 만들어 준 자리다. “검사장 그 자식이…….” “아니요, 의원님.” 차장검사는 고개를 저었다. “검사장님보다 더 위인 것 같습니다.” 오혁철 의원은 예상치도 못한 말에 당황하며 멈칫했다. “……그게 말이 돼?” “저도 그래서 당황스럽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말씀을 못 드린 거고요.” 자신 또한 당혹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애초에 제가 의원님이랑 가깝다는 걸 알고, 저를 거치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저도 압수수색 들어가고 나서 들었다니까요.” “……이런 X발.” 오혁철 의원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상국 당대표가 아니라고?’ 그가 아니면 추측이 가는 인물이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두려워졌다. 칼을 든 자가 누군지 알면 대처를 할 수 있을진 몰라도. 누군지도 모르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대체 어떤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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