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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 (5) (37/200)
  • 도약 (5)2021.12.07.

    “예약하셨습니까?” “네. ‘우태직’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직원은 깍듯하게 허리를 접으며 나를 안내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인물은 대한당 소속의 우태직 의원. 사실, 내가 만나자고 제안하면, 대부분의 대한당 의원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아직까지 국회에서 ‘최지훈’이라는 사람에 대한 인식은 민국당 의원실의 비서보다는 청와대의 막내아들이라는 인식이 훨씬 더 강하니까. 물론, 이러한 장점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길어야 한두 달 정도. 당연한 일이다. 내가 민국당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국회에서 내 입지가 커질수록 민국당 소속으로 활약을 하고 있다는 건데, 이는 대한당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과 같은 이치니까. 실제로 대한당과 민국당이 걷는 노선은 정 반대의 길이다. 아버지가 민국당을 탄압하고 싫어하는 것도 현재 정부가 나아가는 길을 사사건건 막으며 방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면, 겉으로는 대통령의 막내아들을 대우하며 챙기는 척하더라도, 실질적인 핵심 정보는 숨길 확률이 더 커질 테지. 그래서 오늘 만나는 대상으로는 일부러 대한당에 영향력이 크지 않은 의원을 택했다. 약삭빠르지도 않고, 머리가 좋거나 눈치가 빠르지도 않은 인물.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을 만한 사람. 그게 바로 우태직 의원이었다. 라인을 잘 타서 비례대표로만 2선을 했던 인물인데, 처음에는 ‘거수기(擧手機)’였다. 한자에 드러나는 것처럼 ‘손을 들어 주는 기계’라는 뜻으로, 본인의 의견 없이 당의 핵심 의원들이 시키는 대로 표를 찍어 주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그렇게 우직하게 당에 따르며 본인의 충심을 드러냈고, 그 결과 그는 지금의 대한당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구를 물려받는 데 성공했다. 여당의 텃밭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홍길성’이 4번이나 총선에서 승리하며 여당의 표심을 다져놓은 곳. 홍길성이 경제부총리로 발탁되며 ‘경기도 화성시 갑’을 우태직에게 넘겨준 것. 어차피 우태직 의원은 당에 충성하며 시키는 대로 할 만한 사람이었으니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약삭빠르게 행동하거나 영악하게 행동하지만 우태직 의원은 나쁘게 말하면 둔한 스타일이지만, 좋게 말하면 우직한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 우태직 의원이 당선되며 당당히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에 이름을 올린 것이지. 다시 말해 눈치싸움을 하거나 인맥을 넓히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물이 아닌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를 선택했다. 외부로 퍼질 만한 염려가 훨씬 더 적기도 하고.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직원이 직접 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도련님!”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우태직 의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192cm에 120kg에 육박하는 거대한 체구. 어지간해서 내가 올려다볼 만한 일이 없다지만, 이 정도면 위압감이 느껴질 법도 하다. 허나, 우태직 의원은 옆집 털보 아저씨 같은 느낌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의원님. 잘 지내셨죠?” “아, 그럼요! 제가 비례대표 때 뵈었으니 한 7, 8년 정도 된 것 같네요. 그때는 막 교복을 입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죠?” “하하하, 맞습니다.” 그때 생각이 난다는 듯 우태직 의원은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그때는 어리신데도 정말 의젓하고 똘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도 그때와 똑같습니다. 여전하시네요.” “어휴, 의원님이라니요.” 그는 가당치도 않는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말씀 낮추십시오. 그런 딱딱한 호칭보다는, 음…… 그래. 삼촌이 어떻습니까? 그때도 삼촌으로 부르셨던 것 같은데.”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남이다. 그것도 첫 번째는 내가 중학생 시절이기에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는 게 사실이지. 그럼에도 친근감이 물씬 느껴져 왔다. 우태직의 장점을 한눈에 알 것 같달까. “괜찮습니다. 이게 편합니다. 삼촌으로 부르다가 혹시 밖에서 실수라도 했다간 골치 아파지거든요.” “아, 하긴. 보는 눈이 많으니까요. 또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호칭이 버릇되면 안 되기도 하고요.”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민망하게 웃으며 상을 바라보았다.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이 근처에서 가장 비싼 집으로 예약했습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제가 다 좋아하는 겁니다.” 한정식으로 아주 푸짐하게 한 상 차려져 있다. 하나씩 맛만 봐도 배가 부를 것 같은 느낌. “그렇습니까?” 우태직 의원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이네요.” 나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어 그를 향해 뻗었다. “한 잔 받으시죠.” “어휴, 도련님이 주시면 영광이죠!” “말 편하게 하세요. 거의 조카뻘이잖아요.” “저도 이게 편합니다. 껄껄껄.” 술을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연스럽게 사담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도련님도 운동을 조금 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깨가 펴져 있네요.” “군대에 있는 동안 헬스를 좀 했습니다. 의원님도 운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아, 저는…….” 그는 민망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실전을 좀 했죠.” “실전이요?” “제 집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시죠?” 대충 알긴 한다. 우태직 의원은 그의 체구와 말투에서 풍겨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조직 출신이다. 깡패짓을 일삼았던 건 아니고. 화성에 유명한 조직인 탁유파 보스의 막내아들이었다. 다만, 그의 아버지가 경찰에게 쫓겨 도망가다가 목숨을 잃은 뒤,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몰입했고. 그 덕분에 검사가 되어 이 넓은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우태직과 달리, 형제들은 조직을 이어받아서 제주도에서 돈을 좀 만지고 있고. 그 검은돈으로 홍길성이 국회의원으로 있던 시절, 그를 후원하다가 자연스레 우태직이 연결되어 정계에 입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홍길성이 경제부총리로 올라가며 우태직을 자신의 자리에 앉힌 것이지. 그렇다고 우태직에 대해 색안경을 낄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우태직이라는 인간은 나쁜 짓을 한 적이 없고. 그의 형제가 여전히 조직에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에 연좌제는 없으니까.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짤막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그는 내 술잔을 채워 주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사담을 하며 얼마쯤 지났을까. 슬슬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실, 우태직이 어느 정도 취했을 때 이번 사건에 대해 물어보려 했으나, 그는 전혀 취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덩치를 보고 예상은 했지만, 확실히 술이 세긴 세다. 그러나 굳이 취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어보였다. 몇 마디 더 나눠 본 결과, 우태직의 성격상 굳이 취기가 오르지 않아도 솔직하게 알려 줄 것 같았으니까. “의원님.” “예.” “뭐 하나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이번에 송산면에 유류 저장 시설 하나 설치하기로 했잖아요. 그거 뭐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아, 참. 생각해 보니 도련님이 이치현 의원실에서 일하고 계셨죠?” 그는 턱을 매만지더니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어쩔 수 없지만, 포기하셔야 할 겁니다.” 우태직 의원은 일말의 의심도 않고 숨김없이 이야기해주었다. “그건 답이 없어요.”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송산면이나 유류 저장 시설이 중요한 게 아니란 건 아시죠?” “대충 눈치는 채고 있습니다.” 유류 저장 시설을 꼭 세워야 한다기보다는, 이치현을 엿 먹이려는 상황이니까. “이번 건은 이치현 의원이 거부하며 다른 요구를 하면, 적당히 지원을 해 주고 넘어갈 거긴 합니다만, 거기서 그치진 않을 겁니다.” 우태직 의원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계속해서 혐오 시설을 그쪽으로 넘기고, 그에 대한 보상 지원이 나갔으니, 다른 예산을 더 줄일 겁니다.” “……이치현 의원을 박살내려는 거군요.” “맞습니다.” “지난 번 코리안 뉴딜 때문이겠죠?” “그렇죠. 유출했던 그 김 뭐시기 그 비서관이 혼자 유출한 거라서 이치현 의원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들었으나, 어쨌든 이치현 의원실 소속이니까 대가는 치러야 하잖아요.”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께서 그렇게 힘을 줬던 정책이었고, 망신까지 당했으니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겠지. “그러면 결국 의원님의 연임을 막으려는 의도네요?” “맞습니다. 이치현 의원은 낙선시키고, 그 자리를 대한당에서 차지하는 게 최종 목표죠.” 충분히 그럴 만하다. 국회의원에게 최고의 복수는 선거에서 패배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권력을 잃은 국회의원은 총알 없는 군인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릎 꿇게 된다는 뜻이지. 대한당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최선의 선택이긴 하다. 이치현 의원이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건 맞으나, 흠을 잡을 만한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뒤가 구린 인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엿을 먹여서 그의 힘을 빼놓는 것이지. 대한당이 이런 식으로 마음을 먹었다면, 꽤나 골치가 아파진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면, 이번 건을 어떻게든 좋게 마무리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우리 지역구에 엿을 선사할 테니까. 애초에 유류 저장 시설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표심은 박살이 날 테니 결과는 안 봐도 뻔하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셨을 리는 없다. 이 상황은 나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허나, 이치현을 박살내고자 마음먹으셨다면,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도 알고 계시겠지. 침착하게 생각하자. 지금 상황에서 미래를 예견하고 이치현을 버리고 나간다면……. 아마 아버지께서 실망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아니, 오히려 긍정적이실 테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최선의 결론을 도출한 것이니까.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고 판단하시는 분이다. 그렇기에 자를 수 있는 꼬리를 자르며 대한민국을 손에 거머쥐신 것이고. 허나, 내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궁극적으로 ‘나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그저 흐름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것을 거슬러 판을 뒤집을 줄도 알아야 하니까. 일을 벌인 건 이치현의 지시라고는 하나, 이미 민국당 당대표에게 눈도장도 찍은 상태다. 민국당에서 버틸 수만 있다면, 분명 지금 나가는 것보다 얻을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을 터. 아버지에게도 나를 더 각인시킬 수 있을 테고. 손절하기엔 아직 이르다. 위험한 상황이라고는 하나, 충분히 역전할 만한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급한 건 대한당이지, 내가 아니니까. “도련님은 계속 이치현 의원실에 남아계실 생각이십니까?” “당분간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거기 계속 있으시면 타격을 좀 받으실 텐데…….” 우태직 의원은 무언가 골몰히 생각하더니. “아, 맞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퉁겼다. “의한회에 오셔서 인맥을 좀 넓혀 두시면 괜찮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의한회요?” “예. 혹시 못 들어보셨나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모임이다. “도련님께서는 민국당에 발을 걸치고 계시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한당이시니까…….” 그는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씨익 웃었다. “아마도 그곳에선 모두가 도련님을 환영할 겁니다.” 우태직 의원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오늘 화요일이죠? 지금 시간이면 한창일 겁니다. 같이 가시죠.” 그는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출발했다. 의한회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긴 하나, 대한당에 충성하는 우태직 의원이 소개하는 모임이다. 게다가 민국당까지 거론하는 걸 보면……. 무언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아주 달콤한 꿀이 흐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향기로운 냄새가. * * * “여기입니다.” 우태직 의원을 따라 도착한 곳은 한남동의 고급 주택단지. 평범해 보이는 3층 집 가까이 다가가자, 번호판을 확인한 경호원은 3m는 족히 넘는 커다란 대문을 열어 주었다. 울창한 나무로 가려져 외부에선 내부를 전혀 볼 수 없었다. “내리시죠.” 수행 비서를 두고 우태직 의원은 나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예전에는 호텔 같은 곳에서 만났는데, 요즘은 기자들이 워낙 붙어서 이쪽으로 옮겼습니다.” “여기는 대체…….” “겉으로는 일반 주택처럼 생겼는데, 내부는 또 깔쌈합니다. 저희는 여기를 ‘거실’이라고 부릅니다.” ‘거실’이라……. 이름부터 마음에 든다. 일반적인 주택에서 볼 수 없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마치 5성 호텔 펜트하우스와 같은 드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를 따라 몇 걸음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한 명 한 명을 볼 때마다 내 눈엔 놀라움이 가득 차올랐다. 국정감사에서는 그렇게 잡아먹을 것 같이 으르렁대며 서로 날을 세우던 대한당 의원들과 민국당 의원들이 서로 마주보고 껄껄 웃고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한무그룹의 부회장, 대현 건설 사장 등 각종 기업가는 물론이고 연예기획사의 사장들 그리고 검사장과 국정원장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이 하하호호 떠들고 있었다.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내 입꼬리는 거칠게 휘어졌다. 아버지는 모르는 세상이다. 대통령 최준석도 본 적 없는 광경. 허나, 내 눈앞엔 생생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런 세상이 있었어? 손발에 전율이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정치지. 이래야 진정한 정치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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