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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 (2) (34/200)
  • 도약 (2)2021.12.04.

    “선배님.” 한창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도중, 8급 오태용 비서가 슬쩍 말을 걸어 왔다. “담배 한 대 태우시겠습니까?”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 “그래, 좋지.” 나는 그와 함께 국회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적당히 인적이 드문 곳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자, 오태용이 바로 라이터를 가까이 가져왔다. “땡큐.”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본인의 담배를 꺼냈다. 나는 담배 연기 한 모금을 뱉은 뒤, 그를 바라봤다. 슬쩍 눈치만 보고 있는 걸 보니, 내가 먼저 말을 꺼내주길 기다리는 모양. “왜, 무슨 일 있어?” “그 다름이 아니고…….” 오태용 비서는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사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한테 뭐 잘못한 일 있어?” “아니요. 그게 아니고…….” 그는 민망하게 볼을 긁으며 말했다. “저는 이번 정책을 유출한 게 선배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랬어?” “예. 따로 들은 게 있는 건 아니지만, 대충 분위기상 저희 의원실에서 새어나간 거라는 건 눈치 채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국정원이 처음 들이닥쳤을 때나 그 이후로 선배님 반응이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아서…….” 하긴, 티가 나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 당시엔 나 또한 당황하기도 했었고. 나 혼자 아무리 연기를 한다고 해도, 한유라 보좌관을 포함한 다른 이들의 세세한 감정이나 눈빛까지는 내가 컨트롤할 수 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상황을 보아하니, 김치호 비서관님이 정책을 흘리신 걸로 확정이 된 것 같더라고요. 어쨌든 의심했으니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괜찮아.”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누구한테 말하거나 떠벌린 건 아니잖아?” 오태용 비서는 눈을 번쩍 뜨며 오해하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 그럼요. 혼자서만 생각했습니다. 가족들한테도 이야기 안 했어요.” “그럼 됐지, 뭐.”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도닥였다. “오히려 잘했어.” “……예?” “내부의 정보가 새어 나간 상황에서 100% 믿는 것보다는 의심하는 게 나아. 누군가를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의원실을 위하는 마음이었잖아?” “아…….” “혼자서 마음고생 많았겠네. 다음부터는 무언가 걱정되는 게 있으면 같이 공유하자고.” 그는 감동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며 담배꽁초를 짓이겼다. 그와 동시에 울리는 휴대폰의 진동. “먼저 들어갈래?” “예. 천천히 오십시오.” 오태용 비서는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고는 국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를 보는 눈빛에 신뢰가 담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가장 믿고 따르던 김치호 비서관이 빠졌고, 강선우 보좌관과 한유라 보좌관은 직급의 차이가 너무 크다. 결국 남은 건 사수인 나. 그런 상황에서 의심한 걸 사과했다가, 오히려 잘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신뢰감이 갈 수밖에. 그래. 이렇게 가면 된다. 천천히 국회에 있는 사람을 하나씩 잠식해 나가면 된다. 그러면 결국에 시간은 나의 편이 될 테니까. 나는 저 멀리 오태용 비서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2G 휴대폰. 발신인은 마돈나, 임지현 비서관. 아직 김태원 기자는 연락할 기회를 잡지 못한 모양. “어, 나야.” -도련님, 임지현입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말해.” -다름이 아니고, 최근 들어 도련님께서 계시는 이치현 의원의 지역구에 조금 분란이 생길 것 같아서 말씀드리려고요. “화성시?” -네. 정확히는 화성 전체와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화성에는 총 4명의 국회의원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세 명은 대한당.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민국당의 이치현 의원. 이치현 의원 지역구는 정확히 ‘경기도 화성시 을’ -제가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경기 남부 지역에 지어질 유류 저장 시설을 화성 쪽으로 미루려고 하는데 대한당 의원들이 작당하고 이치현 의원의 지역구로 밀어 버리려는 것 같더라고요. 대충 감이 오기 시작했다. 화성의 나머지 세 국회의원 외에도 화성을 둘러싸고 있는 수원과 안산, 오산 모두 대한당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구. 유류 저장 시설은 지역 주민들이 기피하는 혐오 시설이니, 이치현 의원 쪽으로 밀어 버리고, 해당 지역구에서 민국당에 실망을 하도록 만들 셈이겠지. “확실한 정보야?” -100%는 아니지만, 거의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일단 알겠어. 추가적으로 나오는 정보 생기면 알려 줘.” -예, 도련님. * * * 퇴근 후, 국회의사당 근처의 카페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 지 1시간쯤 지났을까.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이치현 의원. “예, 최지훈입니다.” -어디야? “국회의사당 길 건너 카페에 있습니다.” -거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있어. “알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챙겨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퇴근을 위장하고 이치현과 다시 만나서 가는 이유는 당 대표와의 만남을 의원실의 다른 보좌진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같은 의원실 식구라고 한들, 단순히 이치현 의원과의 식사와 달리, 당 대표와의 만남은 시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굳이 알려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주차장에 내려가자, 오래 기다리지 않아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나는 꾸벅 인사를 하며 이치현의 옆자리에 탑승했다. 수행비서가 핸들을 잡고 여의도를 빠져나간 뒤에야 이치현 의원이 입을 열었다. “지훈아.” “예, 의원님.” “오늘 만남, 독대라고 말했었나?” “독대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이치현 의원까지 포함해 셋이서 석식을 즐기는 줄 알았는데 독대라니. 단순한 만남과 독대는 만남의 무게가 다르다. 아무도 없이 단 둘만의 시간.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모른다.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 민국당을 이끌고 있는 야당의 수장과도 같은 인물이었으니까. “대표님께서 직접 지시하시더라고. 단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아, 그렇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는 나도 아직 몰라. 다만, 확실한 건…….” 이치현 의원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현혹되지 마라.” 그 한 마디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눌렀다. 민국당 당 대표. 어찌 보면 대한민국 정치를 대표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인물이다. 그만큼 커다란 권력을 가지고 있고, 또 굉장히 매혹적인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 허나, 그 달콤한 말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지금은 내가 민국당 소속이라고 한들, 어쨌거나 나의 뿌리는 대한당의 꼭대기에 있는 아버지이고. 그 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상극이니까. “알겠습니다.” 그 뒤로는 무거운 침묵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1시간을 더 달리고 나서야 고급스런 중식당 앞에서 차량이 멈춰 섰다. “잘 다녀와.” “예, 의원님.” 나는 이치현 의원의 배웅을 받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직원은 나를 안내했다. 굽이굽이 꺾여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자, 작지 않은 룸이 등장했다. 똑똑. 직원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실내에는 이미 백태성 의원이 자리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어, 왔나?” 그는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물론, 푸근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민국당의 당 대표에 오른 인물이다. 속이 얼마나 구렁이 같은지는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야. 방금 왔네. 음식이 식기 전에 와서 다행이구먼.” 그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들지.” “예,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오랜만에 보지?” “네. 10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그때 청와대에 갔을 때 한 번 봤을 거야.” 짧은 신변잡기 후, 백태성 의원은 자연스레 국회의 이야기로 들어갔다. “이번 일은 놀랐네.” 나는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자네가 맡을 거라는 건 미리 들어 알고 있었긴 하지만, 청와대에서 곱게 자란 샌님이 잘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못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계에 발을 들인지는 몇 달 되지 않았으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이번 일을 보다 보니까 느껴지더라고. 청와대에서 곱게 자란 게 아니라, 그 모든 풍파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살아온 거였더라는 걸.” 나는 대답 대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이 의원한테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었어. 오동렬 장관의 모가지를 날린 것부터 시작해서 이번 일까지. 국정원에서는 김치호 비서관을 타깃으로 잡았다지?” “예. 맞습니다.” “자네랑 김치호 비서관 사이는 우리 보좌관을 통해 이야기를 들었네.” 백태성 의원의 입꼬리가 헬쭉 휘어졌다. “정말 감탄했다니까. 내가 그걸 듣고 나서야, ‘아, 최지훈이가 역시 최준석 각하 아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과찬이십니다.” “아무래도 정치에 재능이 있다는 것 같단 말이야. 키우고 싶어졌어.” 너무 쉽게 손을 잡아도 재미가 없다. “제가 아무한테나 분양되지는 않습니다.” 나는 유연하게 받아쳤다. “귀하게 자라서 남들 먹는 사료는 안 먹거든요.” “하하하!” 그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젊은 친구가 보통내기가 아니야. 역시 내가 독대하자고 한 보람이 있구먼.” 백태성 대표는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중요한 이야기로 들어가지.” 이제부터가 진짜 본론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나는 자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어느 정도 가늠이 갈 것 같으면서도 또 전혀 모르겠거든.” 그는 내게 몸을 기울였다. “이번 일은 솔직히 민국당에게 큰 도움이 됐어. 그런데 그건 아버지 뒤통수를 치는 일이잖아. 가만히 있어도 부와 권력이 따라오는데 굳이 위험 부담을 안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 말이야. 그 이유를 알려 주겠나?” 부와 권력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청와대의 막내아들이라면, 쥐고 싶지 않아도 쥘 수밖에 없을 테니까. 허나,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부와 권력이 아닌, ‘1인자’라는 자리다. 그렇기 위해서는 이러한 도박수가 필요한 것이고. 그렇다고 백태성 의원에게 내 모든 패를 오픈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까지는 서로 간을 보는 시간이니까. 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어쨌든 간에 저는 지금 민국당 소속이라는 겁니다. 또 당분간은 계속 민국당 소속으로 있으리라는 것이고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자네 뿌리는 청와대야. 대한당에 뿌리를 둔 최준석 각하의 아들이라는 뜻이지.” 그는 젓가락으로 고추잡채를 들어 자신의 물컵에 푹 담갔다. 그리고는 수저로 물을 살포시 떠올렸다. “이게 뭘로 보이나?” “고추기름이 떠 있는 물입니다.” “그래. 이 둘이 섞이나?” “아니요.” “당연히 못 섞이지. 물과 기름은 상극이니까. 내가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아나?” 그는 수저에 떠있는 물을 잔반통에 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최준석 대통령 그리고 민국당의 관계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야.”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섞일 수 없다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는 그러면 비눗물이 되겠습니다.” 비눗물. 물과 기름을 섞이게 만드는 게 비눗물이라는 건 초등학교 과학에서 배우는 사실. 백태성 대표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크하하하하핫!”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나는 자네가 아주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그는 흡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5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 가늠이 가는 사람이 있다. 5년 전이라면, 분명……. “자네 둘째 형. 최지원한테 말이야.” 그럴 줄 알았다. “최지원이 어떻게 했는지 아나?” “혹시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까?” “아니.” 그는 물컵을 보여 주며 피식 입꼬리를 휘었다. “이걸 그대로 마셔 삼키더군.” 고추잡채가 섞여 있는 물이다. “어차피 몸에 들어가면 섞일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야.” 최지원.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다. 대한당의 환심과 응원을 등에 업은 것도 모자라. 민국당의 핵심 인물에게도 발을 뻗고 있었다니. 그래. 이래야 재미있지. 권좌에 오르는 일이 어찌 쉬우면 재미있겠는가?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십니까?” “임팩트가 있었던 건 자네의 형이긴 하다만.” 그는 히쭉 입꼬리를 휘었다. “누구와 다르게 그 친구는 대답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거든.” 백태성 의원은 눈썹을 들썩였다. “나는 머리 회전이 빠릿빠릿한 사람을 좋아해서 말이야.”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내가 다시 하나만 더 물어보지.” “예.” “다음 총선.”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 “그 선거에서 공천을 원하나?” 그가 줄을 당겼고. “원하면 주십니까?” 나 또한 둘 사이에 있던 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짧은 눈싸움 끝에 백태성 의원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글쎄. 그건 그때 가서 봐야지.” “그러면 저도 그동안 간 좀 보겠습니다.” “껄껄껄!” 그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최준석 각하 아들이야. 배짱이며, 눈빛 그리고 그 자신감…….” 백태성 의원은 기대된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내 눈여겨보도록 하지.”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죠.” 나는 씨익 입꼬리를 휘었다.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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