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약 (1) (33/200)
  • 도약 (1)2021.12.03.

    일주일. 정책에 대한 보도가 터진 지 어느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대통령 대신 국무총리가 이번 정책은 실무를 맡았던 자신의 실수라며 국민 앞에 나서서 사과와 함께 정책의 전면 수정을 약속했고. 그제야 국민들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생업으로 돌아갔다. 최준석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회복되었으나, ‘코리안 뉴딜’은 더 이상 그들이 원하던 정책이 아니게 될 테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적당하게 눈속임으로 수정을 했다가 다시 한번 논란이 불거지기라도 하는 순간,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테니까. 아마 대한당과 민국당이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나며 제대로 된 정책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김치호 비서관이 출근하지 않은 지 닷새가 지났다. 김태원 기자에게 따로 연락은 오고 있지 않지만, 아마 그는 무사히 풀려났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돈나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김태원 기자는 김치호 비서관이 잡혀간 다음 날부터 멀쩡하게 출퇴근을 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2G 휴대폰을 버렸으니, 전화는 불가능할 테고. 직접 만나기에는 아직 국정원의 눈치가 보이는 것이겠지. 오래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 그가 안전하다고 느낀 뒤에 다시 연락을 취해 올 터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자.” 의원실로 들어온 이치현 의원이 손바닥을 치며 시선을 모았다. “다들 하던 거 놓고 잠깐 들어와 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를 따라 집무실로 향했다. “김치호 비서관이 오늘부로 사표를 냈어.” “사표요?” 8급 오태용 비서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혹시 그때 그 국정원과 관련이 있는 건…….” “뭐,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이치현 의원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이었다. “국정원에서 조사받고 엊그제 풀려났다고 연락이 왔어.” “아, 다행히 잘 끝났나 보네요?” “응. 그 건은 잘 마무리되었는데, 며칠 동안 조사를 받고 나니까 도저히 무서워서 더 이상 국회에 못 있겠다고 하네. 어젯밤에 만나서 술 한잔하면서 그만두기로 했다.” 8급 오태용 비서와 9급 김한나 비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애초에 이번 정책에 관한 정보가 우리 의원실에서 새어나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비서관은 당분간 공석일 거야. 최대한 빠르게 인원 충원할 테니까 업무가 많아도 조금만 고생해줘.” “예.” “다른 쪽에서 김치호 비서관에 대해서 물어보면 적당하게 개인 사정 때문에 그만뒀다고 해.” “알겠습니다.” “한 명 빠졌다고 침울해하지 말고.” 그는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강선우에게 건넸다. “오늘 끝나고 다 같이 회식이라도 해. 소고기 맘껏 먹고 와.” “의원님은 같이 안 가십니까?” “오늘 민국당 간부진 석찬 약속이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래. 다들 일 봐.” 우리는 차례로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내가 나가기 직전. “지훈아.” 이치현 의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예?” 나는 멈춰 서서 그를 뒤돌아봤다. 이치현 의원은 지그시 나를 바라보다가. “아니다. 가서 일 봐.” “예.” 나는 고개를 꾸벅이고 의원실을 빠져나갔다. 자리로 돌아와 보고 있던 문서를 펼쳤다. 그러나 쉽게 업무가 잡히진 않았다. 이치현 의원이 마지막에 나를 불러 세울 때의 목소리가 영 마음에 걸렸다. 아마도 그는 어제 정말로 김치호 비서관을 만나고 왔을 것이다. 현대 사회인 만큼, 국정원에서 그를 감금시켜 놓는다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으니까. 또한, 그가 사표를 냈다는 건, 이번 건은 종결되었다고, 그 사건 유출의 주인공을 김치호 비서관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뜻일 테지. 다만, 마음에 걸리는 점은. 이번 정책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게 나라는 걸 이치현 의원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국정원이 아무나 잡아가서 강제로 범죄를 덮어씌우는 집단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국정원의 시야가 김치호 비서관을 향하도록 상황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뜻이고. 그 설계는 내가했다는 걸 이치현 의원이 추측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그러나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치현 의원도 그렇기에 나에게 더 말을 하지 못한 거겠지. 애초에 이치현 의원이 직접 지시해서 벌어진 일이고, 그 결과에서 약간의 변형이 있었다는 걸로 그가 나를 탓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 또한, 김치호 비서관에게 미안한 감은 없지 않다. 그가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고는 한들, 어쨌든 이번 국정원의 타깃은 나여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하나, 후회는 없었다. 나에겐 이게 최선이었고, 일주일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최선의 방식.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의 방식’이라고 봐야지.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권좌에 오르기 위해서는 내게 방해되는 인물과 위협되는 인물을 모두 제거하는 게 최우선적인 일이니까. 제거할 수 있을 때 제거해야 후환이 두렵지 않다. 한유라 보좌관이 말했듯, 외부의 적보다도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한 건 자명한 사실. 이번 사건의 실체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더 좋은 법이기도 하고. 이치현 의원과 한유라 보좌관은 걱정스럽지 않다. 이치현 의원은 자신이 엮여 있으니, 당연히 입을 다물 테고. 한유라 보좌관은 처음부터 걱정했던 인물이기도 하고, 이치현 의원과의 오랜 관계 때문에라도 충분히 믿을 만하다. 문제는 강선우 보좌관. 김치호 비서관과 가까웠던 만큼, 그의 시선이 내게로 쏠려 있었다. 한참동안 나를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눈빛에 오히려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강 보좌관님.” 나는 방긋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커피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지.” * * * 강선우 보좌관은 충분히 나를 의심할 수 있다. 아니,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이번 정책에 대한 정보를 흘리며 보도를 준비한 건 나고, 김치호 비서관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것 또한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가만 있으면 의심을 받는 건 뻔한 사실. 그 의혹이 증폭되기 전에 오히려 내가 선수를 쳐야 했다. “선배님. 혹시 뭐 아시는 거 있습니까?” “아니.”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숨김없이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네가 무슨 작당을 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드네.” “어유, 아닙니다.” 나는 그런 말이 나올 걸 예상치 못했다는 시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제가 무슨 작당을 하겠습니까?” “그러면 치호가 왜 그만둬?” “그게 저도 의문입니다. 솔직히 제가 완벽하게 작업은 해 뒀습니다. 출처를 못 찾을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김치호 비서관을 잡아갈 줄이야…….” 강선우 보좌관은 밀크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내 눈을 골몰하게 바라보았다. “정말이야?” “예, 진짜입니다.” 나 또한 놀랐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천천히 내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후우…….” 그는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옥상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의심 가는 건 없고?” “이건 순전히 제 추측인데…….”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김치호 비서관이 국정원에 끌려가기 전까지 이틀이라는 시간이 있었잖습니까?” “그랬지.” “도저히 찾다가 나오진 않고, 아버지 성격상 이번 일은 절대 허투루 넘어가지 않을 것 같으니 그냥 관련자를 하나 조진 게 아닐까요?” 강선우 보좌관은 멈칫하며 말을 이었다. “범인은 없고, 성과는 필요하고?” “예. 지금 상황에서 적당하게 끝나면, 분명 정부에서는 불같이 화를 낼 테니까요. 못 잡으면 국정원이 문책을 받을 테고…… 그래서 빠르게 한 놈을 조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김치호 비서관이 얻어걸렸다라…….” “그렇지 않고서야 김치호 비서관이 그만둘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것도 맞긴 해.” “김치호 비서관이 차라리 징계를 받았다거나, 재판을 받았다면 모를까, 그만둔 거니까요.” 강선우 보좌관은 천천히 고민하더니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난 솔직히 이 가정이 100% 이해되지는 않아.”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뉘앙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는 거고요.”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건 또 아니야.” 반은 넘어왔다는 소리다. 지금 당장 의심만 지우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혹시 연락해 보셨습니까?” “아니. 내 전화는 아예 안 받아. 엊그저께까지는 꺼져 있더니, 어제부터는 아예 나를 차단한 것 같아. 없는 번호라고 나오더라고.” “아…….” “가족들은 연락해 보셨습니까?” “걔 보육원 출신이잖아. 연고가 없어. 여자친구도 없었고…….” 강선우 보좌관은 말을 줄이더니 눈을 번뜩 떴다. “설마 그래서 타깃이 된 건가…… 처리하기 쉬우니까.” 나는 놀란 척 동공을 흔들며 맞장구를 쳤다. “왠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아…… 김치호 이 자식,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연락을 하지는. 의원님만 쏙 만나서 사표를 내고 훌쩍 사라질 줄이야.” 동요하고 있다. 이럴 때는 모르는 척 묻는 게 오히려 내가 결백한 것처럼 보일 터. “혹시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낸 거라면…… 정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겁니까?” “아니, 제 5공화국 시절도 아니고 그 정돈 아니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시대에서는 최소한 인권은 지켜 주니까.” “그러면…….” “정치에서만 손을 떼는 거지. 익명 따위를 빌어서 언론에 접촉하는 것도 불가능해지고. 정확하게는 나도 모르지만, 범죄 사실이 있다면 징역. 아니면 몇 년간 감시를 받으며 새로운 직장에 가거나 군대 가서 복무를 하게 되겠지. 그것마저 싫다면 부랑자처럼 거리나 떠돌 수도 있고.” “그렇군요.” 강선우 보좌관은 내 어깨에 턱 손을 얹더니. “처음엔 의심스러웠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괜한 의심을 한 것 같네.”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치호한테 연락 오면 알려 줘. 사이 안 좋았다고 너무 악감정 갖진 말고.” “그럼요. 공과 사는 다르니까요.” “그래.” 그는 다 마신 종이컵을 꽉 쥐어 구겼다. “들어가자고.” “예, 선배님.” * * * 사흘 뒤. 김치호 비서관의 공석이 작지는 않았지만, 차츰 적응해 가고 있었다. “지훈아. 잠깐 들어와 봐라.” 이치현 의원이 나를 따로 불렀다. “예, 의원님.” 나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앉아.” “네.” “일 바쁘지?” “아닙니다. 할 만합니다.” “조만간 직원 하나 들어올 거다. 실무 투입 가능한 녀석이니까 도움은 될 거야.” “알겠습니다. 다른 보좌진들에게도 전해 두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 저녁에 무슨 일 있나?” “따로 일정은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쭉 비워 둬.” “무슨 일 있습니까?” “내일 백 의원님이 잠깐 보자고 하시네.” “백태성 의원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백태성 의원. 6선 의원이자, 민국당의 당 대표를 맡고 있는 야당의 수장과도 같은 인물. 또한, ‘코리안 뉴딜’ 정책을 저지시키라고 지시했던 바로 그 의원이다. 그리고 나를 불렀다는 건. 이번 일을 잘 마무리시킨 공에 대해 치하하겠다는 뜻이겠지. 입가로 피어나는 미소를 꾹 참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따로 준비할 게 있습니까?” “없어. 내일 저녁에 업무 끝나고 나랑 같이 출발해야 되니까 퇴근하고 나서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1655736793433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