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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8) (31/200)
  • 거미줄 (8)2021.12.01.

    전화를 끝마치고 의원실로 돌아오자, 내가 문고리를 잡기 직전에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오는 NIS 요원들. 그들은 내게 고개를 꾸벅이며 내 곁을 지나갔다. 아무래도 내가 청와대 사람이라 그런지, 대통령을 직속으로 섬기는 국정원 소속에게는 어려운 사람일 테니까. 또한, 그렇다는 건 아직 국정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정확히 판단을 못 했다는 뜻일 테지.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여전히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시야에서 사라진 뒤, 나는 조심스레 의원실로 들어가 문까지 꼭 닫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때마침 이치현 의원이 집무실에서 나오며 팔을 쭉 뻗었다. 그리고는 안도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눈치챈 건 없는 것 같아.” “하아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야. 일단 정책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들쑤시고 있는 모양이니까.” 분명 그럴 것이다. 국정원이 나섰다는 건, 아버지가 마음먹고 이번 정보원에 대해서 캐내고자 마음을 먹었다는 뜻이니까. 또한, 대통령 최준석은 한다면 하는 인물이었고. “그래서 내 생각엔 아마 한정일보 쪽을 파 보지 않을까 싶은데…….” 안쪽에 있던 한유라 보좌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났다. “예. 방금 확인한 바로는, 한정일보에도 다녀갔다고 합니다.” “국정원에서?” “네. 국정원 요원뿐만 아니라, 고태욱 비서실장도 다녀간 것 같더라고요.” 순식간에 실내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아니, 이런 미친. 벌써 고태욱 비서실장이 움직일 줄이야. 나는 혹시나 잘못 들은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고 실장님이 한정일보로 갔다고요?” 한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간 게 아니라, 조금 전에 다녀갔대. 이미 사장이랑 이야기 끝낸 것 같다는데?” 이런 젠장. 아버지께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나설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초장부터 고 실장까지 보내며 강수를 둘 줄이야. 이건 단순히 정보원을 캐내겠다는 게 아니다. 찾아서 보복하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 이치현 의원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턱을 매만졌다. “아무리 한정일보가 약속을 지키고 의리를 지키기로 유명하다지만, 고 실장님까지 나섰다면 이야기가 다른데…….” 그는 심려하는 눈빛으로 나를 흘긋 바라봤다. 물론, 대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김치호 비서관을 비롯해 두 명의 보좌관은 국정원에서 찾는 정보원이 나라는 걸 알지만, 8급 오태용과 9급 김한나는 그걸 모르고 있으니까. 손에 땀이 쥐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상황이 더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더 대책이 필요하다. “저 잠깐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어, 다녀와.” 이치현의 대답이 떨어짐과 동시에 바로 의원실을 나서며 휴대폰을 꺼내 김태원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아라. 제발 받아라. 그러나 한참의 신호음이 울려도 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고, 결국.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오니……. “이런 젠장!” 대체 이 시간에 뭐 하고 있는 거야? 설마 벌써 국정원 요원들에게 잡혀 간 건 아니겠지? 까맣게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지이잉-. 김태원 기자의 품속에서 휴대폰의 진동이 연신 울렸다. 그러나 지금 그는 전화를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김태원 기자는 본인의 명의로 된 휴대폰으로 이미 통화를 하고 있는 상태. -태원 선배님. 지금 어디세요?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후배의 다급한 목소리. “방금 막 국회에서 나왔어. 마포대교 쪽으로 넘어갈게.” -고태욱 비서실장 포함해서 전부 빠져나갔어요. 대충 보아 하니까, 선배님 이름을 댄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한정일보의 사장도 이번 기사를 보고 100% 지켜 줄 수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은 했으니까. 다만, 생각보다 훨씬 더 밝혀지는 타이밍이 빨랐다. -그런데 나가면서 요원들이 다른 곳에 통화하는 걸 보면, 고태욱 비서실장이 직접 가기 전에 국회에 있는 다른 요원들이 선배한테 접근할 것 같아요. “하아…….” 김태원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는 분명 위험한 기사를 몇 번이나 써 본 적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그럼에도 오늘처럼 기사가 올라가자마자 국정원에서 옥죄어 온 건 처음이었으니까. “혜란아. 네 책상에 있는 문서들은?” 혹시 몰라서 이번 취재와 관련된 물건들은 전부 자신의 책상에서 치워 두고, 믿을 수 있는 후배에게 넘겨 두었다. “그때 말한 거 다 치웠어?” -네. 혹시 몰라서 파쇄기 갈아서 다 버렸습니다. “잘했어.” 그는 고태욱 비서실장이 회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국회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서울에 남아 있다면 잡히는 건 순식간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다만,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최지훈과의 고리를 끊을 만한 시간이. 그렇지 않으면 국정원은 자신을 타고 들어가 최지훈이라는 취재원까지 파악할 테니까. 가장 중요한 2G폰. “일단 나중에 연락할게.” -알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핸들을 돌려 마포대교에 올랐다. 이 휴대폰만 처리하면 일단 최지훈과의 고리는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이미 국정원 요원들이 국회에 대거 등장했던 걸 두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한정일보 사장이 고태욱에게 이번 기사를 쓴 인물이 자신이라는 걸 밝혔다면, 그 국회에 있던 요원들이 전부 자신을 쫓아오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할 확률이 크다. 그는 마포대교의 중간 즈음에 도착한 뒤, 차의 속도를 줄였다. 블랙박스는 출발할 때부터 진즉에 꺼 두었다. 그리고는 조수석의 문을 활짝 열고서, 온힘을 다해 마포대교 바깥을 향해 집어던졌다. 진동을 울려대던 휴대폰은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한강으로 풍덩 소리를 내며 빠졌고. 애타게 그를 찾던 전화는 끊어졌다. 김태원 기자는 다시금 속도를 올렸다. 그 후, 마포대교를 빠져나갈 즈음. 반짝-. 룸미러를 통해 뒤에서 켠 상향등이 비쳐 왔다. 그와 동시에 체감했다. 저들은 국정원 요원들이라고. 김태원 기자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갓길에 차를 붙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머릿속으로 자신의 행적을 되짚었다. 최지훈으로 연결되는 흔적은 모두 제거했고, 취재와 관련된 자료들도 모두 제거했다. ‘실수한 건 없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기다렸고, 머지않아 뒤따라오던 차량들도 멈추며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내려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운전석으로 다가와 국정원 배지를 보여 주었다. “김태원 기자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같이 가시죠.” “알겠습니다.” * * * 국정원의 어둑어둑한 조사실. 삼면은 평범한 벽이지만 나머지 한 면은 바깥에서만 볼 수 있는 이중 거울로 채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벌컥 문이 열리며. “김태원 기자.” 중후한 목소리의 남성이 들어왔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는 위압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는 대신 테이블 위로 엉덩이를 붙였다. “나 알지?” 사내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고. 김태원 기자의 얼굴엔 긴장이 가득 차올랐다.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인물은 국정원의 일반 요원이 아닌, 무려 차장급인 기획조정실장 임진묵이었으니까. “너무 겁먹지는 말고.” 임진묵 실장은 김태원 기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 민주주의 국가야. 고문 같은 거 안 해. 대화로 풀 거니까 걱정 말고.” 그러나 마음이 놓일 리가 없었다. 그가 위축되어 있다는 걸 임진묵 실장이 캐치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문득 김태원 기자의 시선이 이중 거울로 꽂혔다. “아, 저거 때문에 내가 눈치 보는 것 같아?” 그는 테이블 밑의 버튼을 눌렀다. “이제 녹화도 안 돼. 음성 녹음도 안 할 거야. 밖에 사람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김태원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하지 말라니까. 진짜 우리 대화만 하는 거야, 대화만.” 기조실장 임진묵의 말에 김태원 기자는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못 믿는지 모르겠네. 뭐, 크게 걱정하진 않아. 믿지 않아도 진실이니까. 겪어 보면 알 거야. 물론, 압박 수사야 가능할 수도 있지만, 가혹 행위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현실은 영화와 달라. 80년대도 아니고, 요즘은 다 좋게 좋게 말로만 한다니까.” 이건 진심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경찰과 검찰 그리고 국정원 모두 가혹 행위는 가하지 않으니까. 물론, 그게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할 때의 이야기. 남파 간첩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긴 하나, 김태원 기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이, 김 기자.” 기조실장 임진묵은 테이블의 맞은편에 편안하게 앉았다. “어렵게 가지 말자, 어차피 말할 건데 빙빙 돌아갈 필요 있어?” “…….” “재촉하진 않아. 결국 대답하게 될 거니까.” 그는 방긋 입꼬리를 휘었다. “말하고 싶어지면 거기 벨 눌러.” 임진묵 실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다시 올게.” * * * 그리고 다음 날. 국정원에서 주는 아침식사를 마치자,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또다시 임진묵 실장이 찾아왔다. 그는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며 다가오더니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툭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보자, 김태원 기자는 숨이 턱 막혀 왔다. “당신…….” 그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테이블에 올려진 사진은 다름 아닌, 김태원 기자의 가족들이었으니까. 임진묵 실장은 손을 휘휘 저었다. “에이, 걱정하지 마. 어제 말했잖아. 괴롭히지 않는다고.” 김태원은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괴롭히지는 않아. 다만…….” 임진묵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냥 괴롭히는 방법을 알 뿐이야. 가족들이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 “뭐, 그게 전부야. 그냥 안다고.” 김태원 기자의 가슴 한편에 옅은 공포감이 피어올랐다. 국정원에서 기조실장급 되는 인물이면, 그 괴롭힘을 실현시킬 만한 능력이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는 최준석 대통령이라는 뒷배까지 받쳐 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김태원 기자의 가족을 박살낼 수 있을 터. 당황스럽긴 했지만, 겁에 질릴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또한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베테랑 기자였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그 차분한 심정 속에서 그는 다시금 자신의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는 일부러 겁에 질린 목소리를 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집에 가는 거지.” 임진묵 실장은 살살 달래듯 이야기했다. “까놓고 말해서 김 기자가 무슨 잘못이 있어?” 그는 김태원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당근을 건넸다. “김 기자는 그냥 취재한 거야. 기자로서 본분을 다한 거라고. 이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건 무엇이냐. 정말 중요한 국가의 정책을 몰래 빼돌린 사람. 그 인간이 잘못한 거야. 기자가 정보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기밀사항을 알아내기라도 하면 특종이니까. 그런데 그 기밀을 유지하지 못하고 넘긴 건 그 사람의 잘못이지. 그렇지 않아?” 김태원 기자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캐치한 임진묵 실장은 점점 더 김태원 기자를 몰아붙였다. “김 기자,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나도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거든. 그런데 시간을 끌면 어떻게 되겠어? 윗사람들이 화를 내고 막 쪼아. 그런데 나한테 있는 건 우리 김 기자밖에 없어. 나는 자기한테 조금 서운해질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 “…….” “그런데 여기서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면 상부상조지. 혹시 알아, 내가 나중에 좋은 자료 하나 던져 줄지?” 임진묵 기획조정실장은 천천히 김태원 기자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지 않겠어? 괜히 미워해서 좋을 게 없잖아.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 그 말을 끝으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때로는 몇 마디 살벌한 말보다 침묵이 더 두렵다는 걸 임진묵 실장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1시간 같은 10분이 지난 뒤. “말하겠습니다.” 김태원 기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한테 정보를 준 사람은…….” * * * “후우.” 나도 모르게 초조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다리를 떨고 있는 것도 모자라, 어느 샌가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마를 감싸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럼에도 긴장된 기운은 가시질 않았다. 김태원 기자에게 소식이 없다. 한정일보 측에도 슬쩍 알아본 결과, 김태원 기자는 이틀째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통화를 받지 않기에 그 후로도 몇 번 더 전화를 걸어 봤지만, 아예 전화기가 꺼져 연결 자체가 되지 않았다. 내 품에는 여전히 2G폰이 남아 있었다. 내가 버리는 건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나에게 조사를 하러 온다는 것 자체가 이미 들통 났다는 것일 테니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김태원 기자가 나와 이야기했던 대로 이행하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들키지 않도록 2G폰을 버렸기를 바라는 수밖에. 한유라는 말없이 내 어깨를 툭툭 살포시 두드리고는 지나갔다. 괜찮을 거라는 눈빛을 지었지만, 마음은 쉬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쾅! 발길질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NIS 요원들이 우르르 의원실로 진입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들어온 요원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나도 모르게 몸이 굳고 말았다. 젠장. 김태원 기자를 믿어서는 안 됐던 건가? “무슨 일이십니까?” 오태용 비서와 김한나가 막으려 했지만, 그들은 손길을 뿌리치고 사무실의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런데. 꾸벅. 요원들은 나를 향해 슬쩍 눈인사만 하고는. “김치호 비서관님.” 옆자리에 있던 김치호에게 다가갔다. “저희와 함께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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