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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7) (30/200)
  • 거미줄 (7)2021.11.30.

    최준석이 ‘코리안 뉴딜’ 정책을 발표하고, 김태원 기자가 유출된 내용으로 기사를 터뜨린 이튿날. 단순히 논란이 되는 걸 넘어, 국민 청원에 이번 정책을 취소해 달라거나 세세한 내용을 제대로 설명해 달라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여론이 몰아치는 덕분에 이치현 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의 업무는 완전히 올스탑된 상태. 덕분에 우리는 여유롭게 밀린 일을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이번 일로 분명 아버지가 불같이 날뛰실 테고, 그로 인한 후폭풍이 이곳에도 덮쳐올 터였으니까.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에 몇 가지 대책을 세워 두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던 즈음. 벌컥-! 의원실의 문이 박차듯 열리며 검은 정장의 사내들 네댓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9급 김한나 비서가 당황한 얼굴로 일어서며 앞으로 나섰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렇게 갑자기 들어오시면…….” 그녀가 채 제지하기도 전에 남자들은 품에서 자신들의 신분증을 꺼냈다. “NIS에서 왔습니다.” NIS.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의 준말로, 청와대 직속 정보기관을 뜻한다. 미국의 NSA 및 CIA와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국가정보원. 즉 ‘국정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기관. 다시 말해, 아버지가 직접 지시해서 보낸 인물들이라는 뜻이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빨리 이곳에 왔다고? 김태원 기자가 벌써 말했을 리가 없다. 한정일보에서도 짧은 시간 내에 유출했을 리는 없고. 긴장감이 온몸을 덮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아직까지 그들의 패는 까 보지 않았으니까. “이치현 의원님 안에 계십니까?” 김치호 비서관도 당황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지금 계시긴 하는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국정원 요원들은 김치호 비서관을 가볍게 밀어내며 이치현 의원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 강선우 보좌관이 급하게 따라 들어갔으나. “아무리 국정원이라도 감히 국회의원한테…….” “괜찮아.” 이치현 의원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국정원에서 찾아올 걸 직감하고 있었던 모양. “다들 나가 있어.” 그는 우리를 집무실 밖으로 밀어냈고. “여기 앉으시죠.” 이내 굳게 문이 닫혔다. 이치현 의원은 국정원 요원들과 집무실에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걱정되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미 법조계와 국회에서 수십 년을 일한 사람이기에 이런 일로 압박을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니까. 김치호 비서관은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혹시 알아챈 거 아닐까요?” 그의 말에 강선우 보좌관이 눈을 부릅뜨며 입술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 입조심하라고.” “아…… 네. 죄송합니다.” 그사이, 한유라 보좌관은 내선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와 급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쪽도? 알았어. 고 의원님도 그렇다고? 일단 알겠어.”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쪽도 마찬가지래.” “다른 쪽이라면…….” “환노위 다른 의원실에 연락해 봤는데, 전부 국정원에서 들이닥쳤대.” 그 말을 듣자, 온몸을 휘감싸고 있던 긴장감이 풀렸다. “후우우.”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이쪽에 무언가 알고 온 건 아닌 모양. 아무래도 정책에 대해 알고 있는 의원실은 전부 쳐들어간 듯했다. 그러나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국정원에서 벌써부터 움직였다는 걸 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확실했으니까. 이번에는 작정하고 잡아낼 생각인 것 같은데……. 턱-. 그때, 내 어깨에 손이 얹어졌다. “괜찮아.”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한유라 보좌관이었다. 그녀는 차분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고는 작게 속삭였다. “저쪽에서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어. 이쪽에서도 전부 입 조심할 테니 걱정하지 마.” “감사합니다.” “이런 거 한두 번도 아니야.” “예.” 한유라는 툭툭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가 직접 손을 뻗기 시작하니, 그간 느끼던 압박감이 차원이 달랐다. 하긴. 이러니까 그 절대 권력을 십수 년째 유지하고 계신 거겠지. 지이잉-. 그때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사용하는 전화가 아닌, 2G 휴대폰. 지금 상황에서 온 연락이라면, 반드시 받아야 한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빠르게 의원실을 빠져나가 인적이 드문 옥상으로 향했다. * * * 서울시 종로구 한정일보 본사. 그곳에도 역시나 국정원에서 나온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찾아왔다. 다만, 젊은 요원이 들이닥친 국회와 달리, 그곳은 꽤나 나이가 지긋한 인물이 사장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사를 올렸다고 나와 있는 성학승 기자는 회사에 재직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확인하고 왔습니다.” 사장 대신 상석에 앉아 있는 남자는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다른 기자가 익명 알고리즘을 통해 업로드한 것까지 알고 있다는 겁니다. 누가 썼는지만 알려 주시죠.” “죄송합니다.” 송석기 사장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저희가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송 사장님.” 남자는 송석기 사장을 향해 빙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쉽게 갑시다.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합니까?” 그는 반 협박하듯 말했다. “어차피 말하게 될 거라는 건 서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남자의 으름장에 송석기 사장은 시선을 떨구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도 분명히 반항하고,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 허나, 눈앞에 있는 남자는 보통의 국정원 요원이 아니었다. 국정원의 기획조정실장. 통칭 기조실장을 맡고 있는 차장급의 인물이었으니까. 이번에 보도한 기사가 굉장히 굵직한 건이라는 사실은 송석기 사장도 보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김태원 기자가 본인에게 직접 보고하고 보도를 준비했으니까. 국정원이 나설 수 있으리라고도 짐작은 했다. 허나, 기획조정실장이 직접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에겐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렇기에 조금 다른 화두를 던지며 시간을 끌려 했다. “이번 건이 국정원까지 관여할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허나, 기조실장급이나 되는 인물에게 이처럼 급조한 전략이 먹힐 리가 없었다. “송 사장님. 이번 건은 평범한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중대한 문제예요. 그러니 우리 국정원이 나선 거죠. 국회에서 아직 법사위에 상정도 안 된 법이 일개 기자에게 유출되었어요. 이런 식으로 국가 기밀이 유출될 수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면 큰일이죠.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국회에서 유출된 건데요.” “우리는 언론사입니다. 정당한 취재 과정을 통해 얻어낸 정보만으로 기사를 쓴 겁니다. 또한, 취재원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요. 그게 한정일보의 제1 원칙입니다.” “물론 그렇겠죠. 한정일보의 의무, 인정합니다. 근데 이건 국가와 관련된 사항이에요. 일개 회사의 회칙이 헌법 위에 군림하진 않잖습니까?” “이번 정책도 일개 정책이죠.” “글쎄요. 어제 대통령께서는 분명 국가 위기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 위기 상황을 타파할 정책이었죠. 그러면 국가의 위기와 직결된 정책인데, 어떻게 평범한 다른 정책들과 동일시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 기밀과도 같은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죠.” 기획조정실장은 본인의 입맛에 맞는 논리로 찍어 누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그는 달콤한 말을 꺼냈다. “그 기자가 누군지만 알려 주시죠. 그러면 한정일보는 따로 터치하지 않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송석기 사장 또한 쉽게 입을 열 생각은 없었다.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숨겨지는 것이기에…….” “그놈의 알고리즘.” 기획조정실장은 송석기의 말을 끊으며 한숨을 내쉬고는. 사납게 눈을 치켜뜨며 송석기 사장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알고리즘 때문에 알 수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희가 이런 일을 대비해서 익명으로 올릴 때는 데이터를 철저하게 암호화시킵니다. 정말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후우.” 임진묵 기획조정실장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러면 그 서버에 남겨진 데이터 파일을 저희한테 주시죠.” “……예?” “저희 국정원에서 직접 분석하겠습니다. 그러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는 뒤에 있던 다른 요원을 보며 물었다. “가능하지?” “예. 시간은 걸릴지 몰라도 무조건 가능합니다.” 일개 언론사에서 사용하는 알고리즘쯤이야, 국정원에서는 어렵지 않게 분석할 수 있다. “…….” 송석기 사장은 이를 악물었다. 세게 나올 거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압박적으로 나올 줄이야. “그러시면 저희 같은 언론사가 취재는 어떻게 합니까? 최소한 취재원은 보호를 해 줘야, 다른 사람들이 제보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도 먹고 살아야죠.” “그건 저희가 알 바 아니죠.” “아니,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그가 구구절절 하소연을 하려던 찰나. 쾅-! 문이 벌컥 열리더니, 끝판왕이 등장했다. “임 실장 나와.” “예.” 그의 한 마디에 기획조정실장은 깍듯하게 허리를 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진묵 실장이 따뜻하게 데워 놓은 자리에 앉은 인물은 다름 아닌, 고태욱 비서실장. “안 되면 강제 집행하면 되지.” 그의 입꼬리가 거칠게 비틀어졌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데이터 내놓을래, 죽을래?” 장난기 넘치는 말이었지만, 이미 사무실은 위압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송석기 사장은 이미 반쯤 겁먹은 상태였다. 임진묵 실장은 몰라도, 고태욱 비서실장은 자신의 알량한 화술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비서실장님.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도 먹고 살아야…….” “회사가 존재해야 먹고 사는 거야.” 고태욱 비서실장은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직원들 다 같이 쇠고랑차서 끌려가면 처자식들은 누가 먹여 살려?” 송석기 사장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도 두려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고태욱 비서실장. 최준석 대통령의 오른팔로, 이 정권의 실세라고 볼 수 있는 인물. 다시 말하자면, 그는 방금 했던 말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고. 또 그걸 강행할 만한 배짱을 가진 인물이다. “그게…….” 그의 목소리는 이미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태욱 비서실장은 송석기 사장이 더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밀어붙였다. “감옥에서 여생 썩는 것보단 취재 조금 빡세지는 게 낫지 않겠어?” “…….”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고태욱 비서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어. 금단의 영역을 건든 거라고. 나도 어영부영 넘어갈 수가 없는 건이야.” 한정일보 입장에서는 이러한 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터뜨릴 수도 없었다. 죽을 작정을 하고 보도한다고 해도, 최준석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가적으로 언론을 통제할 테니까. 외신들도 소용없다. 지금의 정부는 모든 언론 통제가 가능하고 인터넷마저 차단 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자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다. 마치 세상에 없었던 사람처럼 흔적마저 사라지겠지. 실제로 최준석을 엿 먹이고 해외로 망명했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처절하게 보복을 당했으니까. 세상에 남아있는 인물조차 몇 없겠지. 사람인 이상, 죽음을 확신하고서 이런 건을 터뜨릴 만한 배짱을 가진 인간은 없다. “송 사장.” “예.” 그제야 고태욱은 채찍을 멈추고 당근을 건넸다. “기자도 터치 안 할게. 취재원만 알아내자고. 윈윈하는 거야.” “후우우…….” 송석기 사장의 입장에선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땀이 맺힌 손을 들어 수화기를 들었다. “김태원 기자 들어오라고 해.” 그제야 고태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송석기 사장은 전화를 끊는 대신 통화를 이어갔다. “어, 외근? 어딘데. 국회의사당?” 그는 수화기를 막고 고태욱에게 말했다. “밖이라고 하네요. 연락해서 바로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아니야, 됐어.” 고태욱 비서실장은 씨익 입꼬리를 비틀며 수화기를 빼앗아 전화를 끊었다. “우리가 직접 데리러 가면 되지.” 그는 정장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 실장. 바로 출발하자고.”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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