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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6) (29/200)

거미줄 (6)2021.11.29.

“안녕하십니까, 최준석입니다.” 대통령은 오랜만에 단상 위에 섰다. 최준석은 평범한 일로는 국민들 앞에 서지 않는다. 그가 국민들 앞에 얼굴을 보일 때는 커다란 위기 상황 혹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있을 때. 다시 말해, 오늘 그가 이곳에 섰다는 건, 이번에 소개하는 일자리 정책이 정부에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뜻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최준석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생활이 마비되고 마음대로 산책도 나갈 수 없는 현 시국에 국민 여러분께서 얼마나 힘드실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참담한 심정을 토하듯 말을 이었다. “많은 자영업자분들이 점포를 닫고, 일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길거리로 쫓겨났습니다. 처자식은 굶어가고 젊은이들은 꿈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최준석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이러한 재난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안정되어야 하고, 국민 여러분은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그렇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고요.” 그의 눈빛이 총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저 최준석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에 다시 활기를 되찾아오기 위해 수뇌부 및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많은 회의를 거듭하고 거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한민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만한 새로운 정책을 완성했습니다.” 최준석은 한 템포를 쉬었다. 그리고 강조하듯 묵직한 톤으로 말했다. “코리안 뉴딜입니다.” 그는 참았던 말을 토해내듯,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정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10만 명의 실업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겁니다.” 대한민국 1년 국가 예산은 약 500조 원. 그의 2%에 달하는 금액인 10조 원을 5년에 걸쳐 투자할 예정. 단일 정책에 10조 원을 투자한다는 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놀라운 일. 그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이며, 최준석은 이 정책에 이번 분기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현재 정책은 국회에서 검토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빠르면 열흘 안에 통과될 수도 있지만, 늦어지면 기한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대한민국의 경제 공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이 정책이 통과되어 시행되어야만 합니다. 더 늦어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저는 국회에 간곡히 요청합니다.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빠른 결정을 통해 국민들께서 기존의 삶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힘을 보태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국당과 만세당에 대한 압박까지 더했다. 국민을 위한다면, 시간을 끌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지. 또한, 이번 정책의 통과에 시간이 끌면 이는 국민의 삶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 방해한다는 암시까지 심어 놓은 것이고. 실로 정치적이면서도 아주 전략적인 한 마디였다. “감사합니다. 최준석이었습니다.” 그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국민 담화는 마무리되었다. 대통령의 연설은 흠잡을 곳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준석이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청문회’와 ‘대선 토론회’였으니까. 그곳에서 국민의 마음을 휘어잡아 지금의 장기집권에 이를 수 있었다. 한낱 지방대 출신의 일개 검사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화술. 이미 국민들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것만으로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갈 수 있는 시국이었으니까. 한편, 이 연설을 생방송으로 지켜본 남자는 씨익 입꼬리를 휘었다. 그는 TV를 끄고서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최지훈입니다. “예, 지훈 씨. 처음부터 다 봤습니다.” -저도 시청했습니다. 기다리던 때가 온 것 같군요. “내일 아침에 터뜨리면 될까요?” -네. 출근 시간대가 제일 적절할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기존에 이야기했던 대로 신문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보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문보다도 인터넷 기사가 훨씬 더 퍼지는 속도가 빠르고 파급력이 강하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사 올리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태원 기자의 입가엔 거친 미소가 걸렸다. 특종이다. 정부에 도전하는 특종. 그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정부가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두근대는 기자의 심리. 밤새도록 김태원 기자의 온몸은 엔도르핀으로 흠뻑 적셔졌다. * * * “자자, 빨리 갑시다.” “어제 대통령 각하 연설 못 보셨습니까? 지금 아주 시급한 상황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정책을 통과시켜야 국민들이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어요.” “여론을 보십시오. 다들 기대하고 있잖습니까?” 환경노동위원회. 속칭 환노위에서는 여당의 거센 압박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에 야당 의원들은. “그렇더라도 이번 정책을 이대로 법사위에 올릴 순 없습니다.” “환경 파괴가 너무 심해요.” “한 5년 살자고 앞으로의 50년을 버리는 일입니다.” 반대를 던졌다. 허나, 그럴수록 여당의 목소리가 더 높아질 뿐이었다. “지금 국민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겁니까?” “야당이라고 해도, 나라의 위기 상태에서는 힘을 합치셔야 하잖습니까? 저희가 서로를 이겨먹으려고 정치를 하는 겁니까?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 거잖아요!” 아무리 여당과 야당이 부딪치고 서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이라고 한들, 국민의 여론이 한 쪽으로 쏠리면 저울은 평행을 유지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특히 어제처럼 최준석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연설까지 하며,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엄포를 놓은 경우엔 더더욱 국민들의 힘이 여당으로 쏠리게 된다. 그 힘으로 여당 의원들은 야당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지. “아니, 위원장님. 이거 환노위에서 오래 끌면, 국민 여론 감당 가능하시겠습니까?” 민국당인 환노위 위원장조차 부담을 느낄 정도. 말이 위원장이지, 결국 다음 총선에서 국민들이 등을 돌리면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는 게 대한민국의 정치판이었으니까. “흐음…….” 야당 의원들의 탄식과 여당 의원들이 압박이 회의실을 가득 채우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지이잉-. 누군가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얼마나 중요한 회의인데 휴대폰을 안 꺼놓고…….”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삐리리리-. 지잉지잉-. 회의실에 있던 의원들의 휴대폰에 동시다발적으로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했다. 무음으로 바꿔 놓은 의원들도 휴대폰을 꺼내자, 보좌관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심각성을 알아챈 의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각자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제일 구석에 위치한 이치현 의원은 한유라 보좌관의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그는 목소리를 낮춰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물었다. “어떻게 됐어?” -지금 기사 올라왔습니다. 바로 링크 보내 드리도록 할게요. “알았어.” 그가 전화를 끊자, 환노위 위원장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 한 시간 뒤에 다시 모이도록 합시다.” “그러시죠.” “그럽시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이치현 의원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의원님!” 그가 도착하자마자 김치호 비서관이 바로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가 떠있는 태블릿 PC를 건넸다. [단독! 코리안 뉴딜 정책…… 일자리 생산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과연?] -어제 오후, 최준석 대통령이 발표한 ‘코리안 뉴딜’ 정책에 대해 한정일보가 단독 입수를 했다. 세부 내용을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전문가들이 이번 정책을 해석한 결과는 당황스러울 수준이다. 그들 중 한 명은 ‘한국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 셈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정책에서 이번 개발은 5년만 지속한다고 했지만, 이 정책의 규모를 보면, 5년으로는 절반도 채울 수 없다. 결국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환경을 파괴하고 서해의 갯벌이란 갯벌은 전부 파괴하며 강원도의 산은 전부 부자들의 놀이터인 골프장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미래를 당겨서 현재를 채우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우리 자손 및 자식들의 등골을 뽑아 쓰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우리의 미래 자녀들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 과연 이번 정책을 수립할 때 대통령이 노환으로 죽은 뒤를 생각했는지가 의문이었다. -한정일보 성학승 기자 김태원 기자가 사전에 말했던 대로 본인의 이름이 아닌, 제3자의 이름으로 업로드되었다. 물론, 국민들은 보도를 한 인물이 어떤 기자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이번 보도의 방향성은 ‘자식들의 등골을 빼먹는 것처럼 보여 주고, 자손들은 우리의 삶보다 더 힘들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다른 국가와 가장 차별되는 점 중 하나가 바로 국민의 심성이다. 일반적으로 타 국가의 국민들은 ‘내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느냐’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즉, 국가에 ‘나를 위해 얼마나 일을 해 줄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지. 그러나 그들과 한국인들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는 조금 힘들어도 ‘내 자식들이 더 잘 먹고 잘 살며 행복하기’를 더욱 바란다. 자식들에겐 본인과 같이 힘든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런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식을 이용한 것이다. 이를 본 국민들은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 심리는 댓글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아, 이거는 조금 이상한 정책 같은데요. -내가 일자리가 급하긴 하지만, 결국 우리 자식들에게 부담 지어 준다는 거잖아. -나는 몰라도 내 아들도 내 가난을 물려받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정책 반대합니다. -조금 성급한 결정 같네요. -뭔가 오해한 게 있겠죠. 최준석 대통령님이 이런 정책을 수립했을 리가 없습니다. -최준석 대통령님 믿습니다. 다만, 아마도 밑에 있는 수뇌부, 실무진들이 정신 못 차린 듯. -어떻게든 살아 보겠습니다. 버텨볼게요. 내 자식들의 등골을 뽑아먹고 싶진 않습니다. 이치현 의원은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네.” 그는 흡족스러운 얼굴로 최지훈을 바라봤다. “고생했어.” 최지훈은 무덤덤하게 고개만 살짝 꾸벅였다. * * * “이런 제기랄!” 최준석 대통령은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책상을 내리쳤다. 그의 얼굴은 이미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라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통령의 노여움에 맞은편에 서 있던 대한당 당대표 및 원내대표까지도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대체 어떻게 관리했길래 내가 대국민 담화를 하자마자 정책 내용이 유출돼!” “아무래도 빠르게 통과시키려다 보니 보안 유지에 있어서…….” “그게 할 말이야!” 최준석은 자신의 책상에 있던 명패를 대한당 원내대표에게 집어던졌다. 배에 명패를 맞은 원내대표는 억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지만, 최준석 대통령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정책이 지금처럼 부정적으로 보도된 이상, 대한당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아무리 대한당이 다수당이라고 한들, 국민들의 여론을 저버릴 순 없었으니까. 그동안 최준석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국민들의 마음을 꿰뚫어 그들이 원하는 정책을 펼쳤고, 그간 정치인들이 하지 못했던 답답한 구석을 최준석이 시원하게 사이다처럼 긁어 줬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정책을 강행한다? 지지율 떨어지는 건 안 봐도 뻔한 일. 게다가 반박할 수도 없었다. 저 정책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큰 목적을 위해 몇몇 악조건을 좋게 포장을 했을 뿐이지, 실상은 환경 파괴를 가속화시키며 자손 세대들까지 고려한 정책이 아니었으니까. 자연을 희생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망가진 경제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 실제로 최준석 대통령도 이 정책을 오래 지속할 생각은 아니었다. 1, 2년만 버틴 뒤, 어느 정도 사회가 안정되면 정책을 보완하고 수정할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정곡을 찔렸으니 할 수 있는 건 결국 정책 철회밖에 없는 것이지. 최준석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야심차게 발표까지 한 상황에서 하루 만에 철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건 그의 얼굴에 똥칠을 한 것과 마찬가지.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고 실장!”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태욱 비서실장은 최준석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 “예, 각하.” “이거 유출한 새끼 알아내.” 최준석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당장 찾아서 끌고 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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