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5)2021.11.28.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를 하며 들어가기 무섭게. “선배님, 이거 보셨습니까?” 8급 오태용 비서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이번에 큰 거 하나 터졌습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한정일보의 신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읽었다. 다만, 모르는 척 오태용 비서에게 되물었다. “어떤 일인데요?” “송병준 의원의 숨겨진 커넥션이 공개되었습니다.” 나는 놀란 척 신문을 확인하며 물었다. “숨겨진 커넥션이라면 지난 부정선거 관련인가요?” “그거 관련이긴 한데, 예상외의 인물이 등장을 해서요.” 오태용 비서는 목소리를 슬쩍 낮추며 말했다. “선배님의 형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 “한번 읽어 보시죠. 요 부분입니다.” [단독! 송병준 의원과 청와대의 은밀한 커넥션…… 과연, 어떤 관계?] -지난 부정선거 논란으로 의원직을 사퇴했던 송병준 의원이 청와대 관계자에게 부정 청탁을 했다는 정황을 한정일보에서 단독 입수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청와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인물인 대통령의 둘째 아들 최지원 판사이기에 충격적이기 그지없는 사실. 아래는 두 인물간의 통화 녹음본을 그대로 옮긴 내용이다. -송병준 의원: 판사님. 통화 괜찮으십니까? -최지원 판사: 예, 송 의원님. 오랜만입니다. -송병준 의원: 다름이 아니고, 한 가지 부탁을 조금 드리고 싶어서 전화 드렸는데……. -최지원 판사: 부탁이요? -송병준 의원: 네. 저 이번에 대법원 상고 신청했는데, 여기서 어떻게 힘을 조금만 써 주실 수 없겠습니까? -최지원 판사: 죄송합니다. 이번 건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송병준 의원: 아니, 판사님……. 그동안 제가 많이 도와드렸잖습니까? 이번에 한 번만 도와주시면 저도 나머지는 제 손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최지원 판사: 의원님께 그간 신세 지긴 했습니다만, 이번 일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 힘으로 어쩔 수가 없어요. -송병준 의원: 아니, 판사님. 이번에 저 상고 기각되면 끝입니다, 끝. 진짜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최지원 판사: 이미 국민 여론이 너무 커졌습니다. 제 힘으로 덮을 수가 없어요. -송병준 의원: 이렇게 나 몰라라 하시면 어떡합니까! 제가 한두 번 챙겨 드린 것도 아니고……. -최지원 판사: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재판이 있어서 들어가 봐야 될 것 같네요. 최지원 판사의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끊겼다. 최 판사는 송병준 의원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통화 내용을 보아, 그동안 둘 사이에 적지 않은 커넥션이 있어 왔고, 송 의원의 발언을 통해 적법한 관계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서로의 관계에 대해 최지원 판사에게 물어봤으나 그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답했고. 송병준 의원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둘 사이의 관계에 의혹이 남는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법원 그리고 청와대를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정일보 김태원 기자. 굉장히 공격적인 뉘앙스의 보도.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김태원 기자가 나에게 손잡자고 이야기한 것은 진심이라는 뜻으로. 다만, 걱정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한정일보가 대형 신문사라고는 해도, 현 대통령과 깊은 연관이 있는 둘째 최지원을 건드렸기에 정부의 눈총을 맞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허나 반대로 생각하면, 김태원 기자는 그 후폭풍을 감내하기로 결심했고, 또한 한정일보에서 그의 입지는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거기다가 미래 문자까지 생각하면, 김태원 기자는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할 터. 그리고 이 기사는 단순히 둘째 최지원을 공격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현재 최지원은 첫째 형과 셋째 형과 기 싸움을 벌이는 상태. 그쪽에서는 이번 기사를 첫째 혹은 셋째가 터뜨렸을 것이라고 확신할 테니 전쟁을 선포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첫째와 셋째는 각각 서로가 이번 건을 준비했다고 생각하겠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때는 아니라고 해도 큰 의미는 없다. 어차피 이런 건을 터뜨려 놓고 본인 입으로 ‘내가 했다’라고 말할 만한 인물은 없으니까. 첫째와 셋째가 서로 동맹을 맺었어도 당연히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을 테고. 결국 나는 지금보다 더 그들의 시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지. 또 하나. 송병준 의원은 최지원 판사와의 커넥션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하므로, 자연스레 본인의 뒤통수를 쳤던 마돈나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게 되겠지. 자연스레 그녀는 더 안전해질 수 있을 터. 내게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기사라고 볼 수 있다. “꽤 심각하죠?” 이러한 심정을 알 리 없는 오태용의 물음에 나는 미간을 구긴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아마 둘째, 최지원 입장에서는 꽤나 난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다른 형제들을 향해 칼을 갈겠지만, 우선은 그 칼을 가는 것보다도 눈앞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기 위해 방패를 들어야할 테니까.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병준 의원과 엮었다. 이미 부정선거를 통해 벌금을 내고 당선 무효형까지 받은 인물. 그런 이와 지속적으로 맺어 오던 커넥션이 있다는 흔적이 발견되었으니 온갖 기자들이 달려들 테니까. 최지원과 같이 입지가 큰 인물을 대상으로 공격하는 기사를 처음 터뜨리는 건 찍힐 수 있기에 다들 사리지만, 한 번 터진 건은 어느 기자든 간에 피라냐 마냥 몰려드는 게 정치판이니까. 기사는 아침에도 보았지만, 국회에서 보니 제대로 실감이 났다. 피식 입가에 웃음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아무리 이곳이 민국당 의원실이라고 한들, 내 형제가 골탕을 먹었는데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 “하아…….” 일부러 머리가 아픈 척 짧게 탄식을 뱉어냈다. “괜찮으십니까?” 오태용 비서의 물음에 답하려는 찰나. “괜찮아야지.” 뒤에서 김치호 비서관이 등장하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형제는 형제고, 지금 여기는 민국당 의원실이잖아. 우리 영감님께서도 말하셨다고. 이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최 비서도 민국당 사람이라고.” 김치호 비서관은 히쭉 입꼬리를 휘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좋아해야지. 안 그래?” 저 인간은 어떻게 한결같이 기분 나쁜 짓만 반복해 댄다. 쯧쯧. 호감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다니까. 허나 그렇더라도. “예, 맞습니다.” 우선은 동의하는 척했다. 저 녀석과 날을 세워서 좋을 건 없으니까. “괜히 감싸고돌지 마. 괜히 우리까지 엮인다.” 문득, 한유라 보좌관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외부의 적도 위험하지만, 내부의 적도 조심해야 돼.] 아무래도 저 인간부터 치워야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지이잉-. 그때,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김태원 기자. 나는 슬며시 의원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전화를 거절한 뒤, 인적이 드문 건물 밖으로 나간 뒤에야 2G 휴대폰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지훈입니다.” -번호가 바뀌셨나요? “앞으로는 이 번호로만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다음부터는 새로운 선불 폰을 구매해서 연락드리면 되겠죠? “예. 그렇게 하시죠.” 새로운 번호의 용도를 바로 이해한 모양. -기사는 보셨습니까? “아주 잘 봤습니다. 마음에 들더군요.” -이제 그러면 함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길동무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래 끌 것 없이 기삿거리 하나 드리겠습니다.” -기삿거리요? “예. 직접 뵙고 말씀드리죠. 꽤 중요한 건이라서요.” -알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찾아가면 될까요? “시간과 장소는 제가 따로 연락드리죠. 그리고 혹시 믿을 만한 다른 기자가 있을까요?”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이번 건이 터지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제가 제보하는 건까지 기자님 이름으로 올라가면 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형, 최지원을 공격한 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이치현 의원이 맡긴 건은 정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 그걸 터뜨리게 되면, 정부에서 직접 나서서 제보자를 찾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김태원 기자도 위험할뿐더러, 나까지 위험해 처할 수 있다는 뜻이지. 자칫하다가는 새로운 건으로 인해, 오늘 올라간 기사의 배후가 나라는 것까지 들통 날 수도 있을 터. 그러면 둘째에게 목덜미가 잡히게 되고, 이는 내 정치 생명을 굉장히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 최대한 은밀하게 행동해야 한다. -아, 그거라면 다른 대책이 있습니다. 저희 신문사 시스템을 통해서 익명으로 기사를 올릴 수 있는데, 자세한 건 만나서 말씀 드리죠. “알겠습니다. 저녁에 뵙죠.” * * * “오셨습니까?” 김태원 기자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저 자신감에 찬 표정만 봐도 이번에 올린 둘째 형에 대한 기사가 얼마나 많은 국민들에게 관심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예.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이며 서류 가방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김태원 기자는 슬쩍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그게 오늘 말씀하신 기삿거리입니까?” “맞습니다.”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 전에.”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었다. “우선 한정일보의 그 익명 시스템에 대해서 자세히 들어보고 싶네요.” “특별할 건 없습니다.” 김태원 기자는 가볍게 설명했다. “복잡한 알고리즘을 통해 제3자의 이름으로 기사가 나가는 겁니다. 오늘 기사 보시면.” 그는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쓴 기사를 켜 하단부를 가리켰다. “여기에 있는 ‘한정일보 김태원 기자’ 대신 ‘한정일보 오성식 기자’ 이런 식으로 나가는 거죠.” “해당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 거고요?” “예, 맞습니다. 저희 회사에 등록되지 않은 기자죠.” “그렇게 되면 오히려 본인한테는 불리한 거 아닙니까?” 기자들은 본인들이 쓴 기사가 자신의 명함이 된다. 그런 기사들이 모여 연봉 협상에도 도움이 되고, 특종들은 특별 보너스 및 수당까지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만약 기자가 기사를 자신의 이름으로 내지 않으면 굳이 특종을 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된다. 허나, 김태원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른 이들은 알 수 없지만, 저희 사장님은 알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연봉 협상에는 따로 문제가 없고, 특종 수당도 따로 나옵니다.” “그 말인즉슨, 결국 기사를 쓴 인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을 이었다. “사장님 외에는 절대 유출되지 않습니다. 저희 한정일보에서 워낙 위험한 자료를 자주 다루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둔 거죠. 애초에 이런 굵직한 건들이 터져 줘야 저희 같은 언론사들이 구독자를 모으고 유치할 수 있는 법이니 사장님도 목숨 걸고 숨겨 주시는 거고요.” 김태원 기자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난 번 국무총리 불륜 건 아시죠? 문화체육부 장관이 직접 사장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럼에도 기자 신상 정보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죠.” 그 정도라면 꽤나 심한 압박을 받았음에도 비밀을 지켜냈다는 소리다.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는 뜻이지. 허나, 직접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100% 신뢰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이번 건은 정말 큽니다.” 그는 고심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어떤 건인지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정책이 담겨 있는 서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던 김태원 기자는 낮게 탄식을 내뱉었다. “보통 건이 아니긴 하네요.” 나는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이번 정책을 부정적인 시선에서 비판하는 기사를 원하시는 거죠?” “예, 맞습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걱정하실 만하네요. 아마 위쪽에서도 분명히…… 배후에 대해 굉장히 거세게 압박이 오겠네요.” 김태원 기자는 곰곰이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르니 추가적으로 대책도 세워 두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일단 그 전에 기사를 터뜨리는 시기를 정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주 좋은 시기가 있죠.”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달력의 한 날짜를 가리켰다. “이 날, 대통령께서 직접 정책에 대해 발표하실 겁니다.” 순간, 김태원 기자의 눈빛이 세차게 빛났다.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짜겠네요.” “그러면 그날에 터뜨리는 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 다음은 만에 하나 청와대에서 직접 나섰을 경우에 대비한 추가적인 대책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