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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델로 (1) (21/200)

오델로 (1)2021.11.21.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태연하게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러나 반기는 건 답 인사가 아니었다. “어, 마침 오셨네요.” 9급 김한나 비서가 나를 보며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앞에는 정장 차림의 남성이 하나 서있었다. 김한나 비서의 표정을 보아하니, 평범한 직원은 아닌 거 같고, 꽤나 높은 사람인 모양. “최지훈 비서님.” 그는 돌아서며 나를 불렀다. 얼굴을 보자, 낯익은 인물이었다. “아, 우원태 보좌관님.” 또한, 우리 사무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물. 그도 그럴 것이. “의원님께서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셔서요.” “오늘이요?” “예. 가능하면 같이 점심 식사하셨으면 하는데…….” “알겠습니다. 제가 정오에 형님 의원실로 가도록 하죠.” 내가 말하는 형님이 지칭하는 건 우원태 보좌관이 아니다. 그가 섬기는 의원. 우원태 보좌관은 나의 셋째 형, 최지곤의 보좌관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때마침, 의원실로 들어오던 김치호 비서관이 놀란 눈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방금 나간 사람 우 보좌관 아니야? 저 인간이 여길 왜 와?” “저 때문에 왔습니다. 최지곤 의원님이 점심 시간에 잠깐 보자고 하셔서요.” “아, 그래?” “예. 오늘 점심은 따로 먹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렇게 해.” 그는 자신의 의자에 앉으며 얄미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식대 한 명 줄었으니까 맛있는 거 먹어도 되겠네.” 알아서 하라고 하지.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자리로 향했다. * * * “오랜만이다, 동생아.” “예, 의원님. 잘 지내셨죠?” 내 대답에 최지곤은 질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의원님은 무슨 의원님이야. 평소처럼 편하게 형이라고 해. 새삼스럽게. 말도 편하게 하고.” 그는 편하게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첫째 형이나, 둘째 형이라면 모를까 너랑 나는 몇 살 차이 안 나잖아.” 13살 차이긴 하지만,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사실, 내가 워낙 늦둥이었던 탓에 어렸을 적엔 편하게 형제들에게 모두 형이라고 부르며 반말을 했던 터라, 이제 와서 존댓말을 쓰기도 불편하긴 하다. “여기 특히 육전이 맛있어. 이거 먹어 봐.” 최지곤은 손수 내 앞접시에 전을 덜어 주었다.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게 마냥 고맙지는 않았다. 오히려 거부감이 들 정도지. 내게 잘 대해 주었던 것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지, 내가 어느 정도 머리가 큰 이후로는 권력의 경쟁자로 생각하며 점점 더 멀어졌으니까. “그래서 무슨 일인데?”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뉘앙스를 풍기자, 최지곤은 바로 자세를 고쳐 잡으며 물어왔다. “너 국회로 들어온 거 아버지 영향이 있었다며.” 말투를 보아하니, 어디서 주워듣긴 한 모양. 물론, 애초에 아버지와 내가 장치를 쳐 둔 덕분에 내가 먼저 오고 싶어 했다는 진실을 알 리는 없다. “없진 않았지.” “내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어.” 최지곤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중에 둘째 형을 보필하기로 했다면서?”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티를 내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거 사실이야? 나중에 둘째 형이 권좌에 오를 때 도와주라고 너한테 정치 교육 시키는 거라던데.”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청와대 측에서 연막으로 뿌린 소문인지, 둘째 형이 본인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뿌린 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확실한 건. 내 눈앞에 있는 셋째 형, 최지곤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그렇다면 어느 쪽에서 소문을 흘린 것이건 간에 큰 상관은 없다. 내가 이용하면 되는 법이니까. “하아.” 나는 젓가락을 놓으며 어쩔 수 없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사실이야.” “……뭐?” 순식간에 최지곤은 표정 관리를 실패하고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네가 온 게 결국 둘째를 밀어주기 위해서라고?”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그의 주먹에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셋째 형은 이런 스타일이지. 쉽게 달아오르고, 욱하는 성격이 있는 다혈질. 그는 차분한 척하려 했지만, 목소리에선 이미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신 거야? 둘째 형에게 권좌를 물려줄 테니, 너보고 뒤에서 돕기나 하라고?” “형.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나는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내 의견은 그렇지 않다는 게 중요하지.” “……뭐?” 최지곤의 말아 쥐어졌던 주먹이 살포시 풀렸다. “첫째 지만이 형한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스캔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그저 잘못한 거라고는 한국대를 못 가고 신촌에 있는 의대를 간 것뿐인데.” “그, 그렇지.” “당시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으니까 그 대학교로 간 거지, 정치에 뜻이 있었으면 충분히 한국대를 갔을 거야. 그럴 성적도 됐고.” “그것도 맞지.” “그런데 지만이 형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고, 정치에 뜻도 생긴 이러한 상황에서 둘째 형에게 아버지 자리를 물려주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한민국 유교사회에서 말이야.” 물론, 다혈질이라고는 해도 알량한 몇 마디에 설득될 만큼 최지곤은 단순하진 않다. 나이는 30대 중반. 이미 형제들과 정권 싸움으로 신물이 날 정도로 오래 버텨 온 인물이니까. 보궐선거까지 포함해 3선이나 당선되었으니 말할 것도 없지. 다만, 그가 내 말에 동조하는 이유는 하나. 명분을 찾은 것이다. 어차피 셋째 형의 위치상, 단독으로 첫째, 둘째 형을 모두 재끼고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는 건 불가능하다. 우선은 아버지의 가장 큰 총애를 받고 있는 둘째 형을 재끼기 위해서는 다른 형제들과 손잡아야 된다는 건 필수불가결한 사실이니까. 그리고 지금 상황은 첫째 형과 손을 잡기에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지. “후우.” 그는 깊게 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봤다. “지훈아.” 그리고는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조만간 지만이 형님을 한번 찾아가 볼게.” “첫째 형을?” “응. 만나서 이야기 좀 해 봐야겠어.” 나는 걱정스러운 듯한 어투로 말했다. “그러다 괜히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어떡하려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둘째 형이 다 집어삼키는 걸 볼 수는 없잖아.” 최지곤은 불신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너 설마 정말 둘째가 청와대에 입성하면 너한테 뭐라도 챙겨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아서라. 꿈 깨. 그 형님 성격상 지옥에서라도 모든 걸 독식할 양반이야.” 알고 있다. 애초에 그에게 콩고물을 받을 생각은커녕, 둘째 형을 도울 생각도 없으니까. 물론, 그런 내 생각을 보여 줄 필요는 없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척, 순둥순둥한 막내 동생. 그게 지금 내가 취해야 할 포지션이다. 나는 곤란한 척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데?” “우선 너는 모르는 척 조용히 있어. 큰 건은 우리가 처리할 테니까. 너는 지속적으로 청와대랑 둘째 형이 어떻게 나오는지 근황만 알아보고 특이한 점 있으면 알려 줘. 할 수 있지?” “알았어. 일단 형만 믿고 있을게.” “그래.” 최지곤은 흡족스럽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난 일단 첫째 형이랑 한번 만나고 나서 너랑 같이 자리 한번 마련할게. 기다리고 있어.” “알겠어.” “그래. 편하게 먹어. 불편한 이야기했다고 체하지 말고.” “알았어. 형도 먹어.” “난 잠깐 통화 한 통만 하고 올게.” 최지곤은 휴대폰을 들고 문밖으로 빠져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자, 입가에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저 다혈질의 성격상, 첫째 형 최지만에게 전화를 걸러 가는 것이겠지. 앞으로 한동안은 ‘첫째, 셋째 vs 둘째’ 구도로 기 싸움을 벌일 터. 서로 견제하고 눈치 보느라, 나까지 신경 쓸 시간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성장만 하면 된다. 내 영역을 넓히고, 내 사람을 만들면서 정권을 향해 나아갈 입지를 만드는 것. 즉 내게 가장 필요한 ‘시간’을 번 것이지. 첫째 형과 셋째 형이 힘을 합치면 둘째 형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을 터. 나는 지금처럼 중간에서 계속 간을 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서로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힘을 쓸 테니까. 재미있다. 아주 재미있어. 이게 진짜 정치지. * * * “어휴, 저거 어떡하냐?” 점심을 먹고 들어오자, 의원실 사람들은 전부 TV 앞에 모여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마돈나 입원했다는데?” 나는 모르는 척 되물었다. “임지현 비서관이요?” “응. 산길에서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네. 범인은 안 잡히고 도주했대.” 김치호 비서관은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물론, 보나마나 뻔하지. 송 영감이 어딘가에 사주했겠지.” “아, 송병준 의원이 원래 그런 스타일인가요?” “당연하지. 선거에 조폭들도 연루되었다는 소문까지 있는 양반인데, 뭔들 못 하겠어?” 하긴, 당선되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 했던 양반이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한유라 보좌관은 안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생명에 지장은 없다잖아.” “그건 진짜 천만다행이죠. 근처에 신고자가 있어서 바로 구조대 불러서 응급실로 가서 수술할 수 있었으니까.” 잠깐만. “신고자요?” “응.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현장 근처에 있었다나 봐. 마돈나 지인이라는 소문도 있는데, 그건 확실치 않고. 어쨌든 그 신고자 아니었으면 위험할 뻔했다고 하더라.” “그건 다행이네요.” 나는 모르는 척 동조만 했다. 김치호 비서관은 팔짱을 끼며 복합기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송 영감이랑 불화가 있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진짜였을 줄이야.” 김한나 비서가 미간을 구기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아, 비서관님. 거기 앉으면 고장 난다니까요.” “맞다. 미안, 미안.” 일이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돌아간다. 내 존재 자체를 숨겨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따로 신고자가 있다는 보도가 나갈 줄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까진 내 신원이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 모양새라는 점. 송병준 의원이 외압을 넣는다면 알아낼 수 있겠지만, 녀석은 그럴 만큼 멍청하진 않다. 여기서 저 일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가 본인이 찔리는 구석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니까. 한동안 익명의 신고자가 나라는 걸 알 수는 없겠지. 허나,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관계자 중 부패한 경찰이 있다면, 은밀하게 돈을 받고 빼내 줄 수도 있는 법이니까. 결국 이렇게 되면 일은 단순해진다. 송병준 의원이 나의 정체를 알아채기 전에 먼저 그쪽을 쳐야 한다. 녀석의 금배지만 떨어뜨린다면, 날개 잃은 파리 새끼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게 되면 내 정체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을 테고, 만에 하나 알게 되더라도 배지 없는 의원 따윈 두렵지 않다. “마돈나 병문안이나 가 볼까?” 헛소리하는 김치호 비서관을 뒤로하고 나는 슬쩍 칫솔을 집어 들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의원실을 빠져나가, 화장실 대신 한적한 구석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민중구입니다. 휴대폰을 넘어 들려오는 중후한 목소리. 통화해 본 적은 없지만, 전화번호는 이미 알고 있다. 실제로 만난 적도 있고. “최지훈입니다.”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휘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 한 번 뵈시죠. 기왕이면 은밀한 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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