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역 (4) (18/200)

영역 (4)2021.11.18.

미래 문자에서 보았던 그 여자가 마돈나일 줄이야. 머리가 쭈뼛 서고 손에 땀이 쥐어졌다. 김치호 비서관은 우쭐한 표정으로 말했다. “봐 봐. 지훈 씨도 놀란다니까. 국회에서 일하기에 아까운 외모야.” 말하는 걸 보아하니, 내가 놀란 게 임지현 비서관의 외모에 감탄한 거라고 여긴 모양.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별 상관없다. “아, 네.” 그렇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엄청 예쁘네요.” “그렇다니까. 괜히 마돈나라고 불리는 게 아니야.” 인정받은 게 흡족스러운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마돈나 퇴사하고 어디로 가려나. 부산시장 비서에서 국회 비서관을 거쳤으면 스펙은 대단한데 말이야.” “그러게요. 일단 능력이 있으니 좋은 데로 갈 것 같은데. 혹시 그쪽으로 가지 않을까요? 그 어디였더라…….” 김치호 비서관과 오태용 비서가 다시 대화를 이어 갔지만, 그들의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어젯밤에 보았던 동영상이 다시금 맴돌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이렇게 된 이상 날짜에 맞춰서 문자 속 그 장소에 다시 한번 가 봐야겠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국회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필시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을 테니까. 일요일. 사건이 벌어지는 그날, 반드시 그곳에 가 봐야만 한다. * * * 일요일까지는 앞으로 이틀. 사고가 나는 건 확실하나, 그전까지 임지현 비서관. 즉 마돈나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만 한다. 어떤 이유로 사고를 당하는지는 알아내야 가서 돕든 말든 할 테니까. 물론, 어느 정도 예상되는 사안이 없는 건 아니다. 사고를 내고 마돈나의 서류를 훔쳐 가는 남성은 ‘그러게, 왜 배신을 해가지고…….’라는 말을 남겼으니까. 아마도 임지현 비서관이 송병준 의원실에 사표를 낸 것과 관련이 있겠지. 허나, 아직까지 국회에 제대로 발을 넓히지 못한 나였기에 홀로 알아보기에 이틀은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럴 때 딱 이용하기 좋은 인간은 알고 있다. 평소의 인성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정보가 많으면서도 그걸 뽐내기 좋아하는 인간. “김치호 비서관님.” 나는 순수한 궁금증이라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 “혹시 송병준 의원실에서 지금까지 논란된 거나 문제 있는 사안 중에 잘 아시는 거 있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어지간한 건 다 알지.” 그는 우쭐한 듯 턱을 치켜들었다. “내가 국회 짬이 몇 년인데. 이 바닥 돌아가는 건 당연히 알 수밖에.” “이야, 비서관님은 확실히 다르시네요. 인맥도 많으시고.”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나는 그를 치켜세우며 물었다. “저는 이제 국회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비서관님은 잘 아실 것 같은데…… 이번에 송병준 의원실에서 논란이 된 부정선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서요.” “그거야 뭐 뻔하지.” 김치호 비서관은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지방에도 여러 가지 조합과 단체가 있잖아? 감투 하나 쓴 회장, 대표들한테 슬쩍 쌈짓돈 찔러 주고 그 밑에 애들 포섭하는 거지.”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그는 검지를 휘휘 저었다. “말로는 간단한데 실제로는 꽤 빡세. 우선 신고 당하면 큰일이 나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김치호 비서관을 치켜세워 주기 위해 감탄사 섞인 호응을 연신 내뱉었다. “와, 장난 아니네요.” 이래야 신나서 몇 가지 정보라도 더 공유해 줄 테니까. “그 외에도 조직과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도 있어요. 허강파였나? 거기 조직 보스와 송병준 의원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거든.” 오태용 비서는 신기하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으로 듣고 있었고. 김한나 비서는 내 의도가 궁금하다는 듯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호응하며 궁금한 점을 몇 가지 더 캐물었다. “그러면 임지현 비서관도 관련이 있는 건가요?” “없을 수야 없지. 의원실 소속이면 모를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마돈나가 공범이라는 건 아니지만, 알고 있다는 건 확실하지.” “비서관인데 공범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 “그럼. 가능하지. 지훈 씨 혹시 최홍식 보좌관이라고 들어 봤어?” “아, 네. 옛날에 한 번 본 적 있습니다.” 내가 중학생 때였나. 한 어린이 재단에서 모금 파티를 했는데, 어머니와 함께 참가했다가 그곳에서 송병준 의원과 인사를 나눌 때 봤었지. “그 인간이 송병준 초선 때부터 같이 일했던 양반인데, 잡다한 일은 걔가 다 처리하거든. 그래서 어지간한 일은 의원실 직원들을 안 거치고 최홍식 보좌관이 하는 거라 마돈나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지.” “일단 그러면 임지현 비서관도 암묵적으로 묵인을 하긴 했다는 거네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는 뭐…….” 뒷말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러한 일이 생기면 대부분 보좌관 중 한 명이 책임지고 나가서 꼬리자르기를 하니, 묵인한 사람에게까지 법의 철퇴가 닿을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더 궁금한 거 있어?” “임지현 비서관에 대해서 조금 궁금해지네요. 혹시 그분은 송 의원한테 약점 잡힌 거라도 있나요?” “아니, 없을걸.” “그러면 왜 거기서 그렇게 오래 일하는 겁니까? 그렇게나 능력이 좋으면 굳이 송 의원실에서 있지 않고 더 좋은 조건 부르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김치호 비서관은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를 휘었다. “지훈 씨는 진짜 마돈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예?” “마돈나 집안에 돈이 꽤 많아. 부산에 유명한 땅 부잣집 딸래미거든. 일에 조건 따질 만한 입장이 아니라는 거지.” “아아.” 그렇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오히려 일을 못 하는 송병준 의원실에서 혼자 업무를 잡으며 에이스로 거듭난 채로 몇 년만 버티면 이 바닥에 소문이 나는 건 당연한 사실. 실제로 그렇게 퍼지기도 했고. 그러면 오래지 않아, 더 높은 곳에서 러브콜이 오기 마련이다. 즉 단순히 비서관이 아니라, 더 큰 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의원실을 디딤돌 삼는 셈이지. 사실, 여의도에 입문한 사람들 중 적당히 비서만 하고 만족하며 끝낼 생각으로 이곳에 들어온 인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게든 나중에 한 자리 차지해 보려고 이렇게 인생을 갈아 넣고 있는 것이니까. 임지현 비서관이 몇 년 동안 버틴 것도 그 때문일 터. 조용히 듣고 있던 오태용이 궁금하다는 듯 몸을 들썩이며 물었다. “선배님. 그런데 마돈나 집안에 돈이 그렇게 많으면, 어떻게 돈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나요?” 그 대답은 내가 대신했다. “아무리 임지현 비서관 집안에 돈이 많다고 해도, 부산 땅부자는 여의도에 비빌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여기는 재계로 따지면 재벌 정도는 되어야 명함을 내밀 수가 있는 곳이니까요.” 부산 땅부자라고 해 봤자, 여기서 보기엔 그저 ‘지역 유지(有志)’ 정도로만 보일 뿐이지, 서울 부자들과 비교하면 감당이 되지 않을 테니까. 지방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실제로 부산에서 서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돈을 가지고 있다면, 청와대에 몸담고 있던 내가 모를 수가 없으니까. 내가 보기엔 마돈나도 그저 서민일 뿐이지. “그러면 임지현 비서관의 최종 목표는 국회의원인가요?” “그것까진 모르지. 하지만 야망이 있다는 건 확실해.” “그렇군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피어오르는 생각에 멈칫하며 물었다. “그러면 송병준 의원실 내에서 일어나는 성추행도 알고 있었다는 거네요?” “당연히 알겠지. 다만, 그것도 그냥 못 본 체한 것뿐이고.” 김치호 비서관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사실, 이 바닥이 그렇잖아. 자기한테 피해가 없으면 절대 목청 높이지 않는 거.” 그래야 찍히지 않으니까. 찍히지 않아야 적을 만들지 않고 높은 곳에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으니까. 대충 마돈나. 즉, 임지현 비서관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것 같았다. 정치에서 이상을 바라지 않는 현실적인 인물. 그럼에도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뭐든 할 사람. 그와 동시에 본인의 업무 능력은 최고 수준이라고 불려도 무색하지 않을 수준.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내 곁에 두기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지. 미래를 약속한다면, 내게 충성을 맹세할 만한 인물이니까. 그리고 나는 미래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남자. 마돈나에게 높은 자리를 약속해 줄 수 있는, 커다란 권력을 쥘 유력한 후보자라는 뜻이다. 임지현 비서관. 그녀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졌다. 일요일에 미래 문자로 본 교통사고 장소에 가 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 * * “여기서 내린다고요?” “예.” “아니, 여기 아무것도 없는데…….” 택시기사는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괜찮습니다. 택시비 현금으로 드릴게요. 잔돈은 됐습니다.” “진짜 괜찮겠어요?” “네. 가 보셔도 돼요.” 그는 못내 걱정이 되는 듯 연신 뒤를 돌아보았지만, 오래지 않아 도로를 떠났다. 일몰 시간에 맞춰서 온 탓에 슬슬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미리 봐 두었던 가드레일 너머의 우거진 나무 뒤에 숨어서 몸을 웅크렸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고 나서 다시 한번 차를 끌고 이곳에 왔었다. 차를 대고 잠복할 만한 장소를 찾기 위함. 그러나 워낙 도로가 좁고 비탈져서 차를 세울 만한 여유 공간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택시를 타고 와서 이렇게 숨어 있는 것이지. 현재 휴대폰이 가리키고 있는 시각은 9월 12일 오후 7시. 미래 문자에서 본 날짜는 9월 13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동영상으로 본 영상의 배경은 어두워진 시간이었지만, 9월 12일에서 13일로 넘어가는 새벽인지. 9월 13일 저녁 늦게 발생한 사고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으니까. 오늘 밤샘을 하고,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내일 다시 와야 한다. 휴대폰 불빛이 새어나갈세라, 그저 도로만을 지켜보며 한참동안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손발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졸음보다도 지겨움이 더욱 컸다. 게다가 워낙 한적한 도로라서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을 지경. 그렇게 맞이한 새벽 3시. “후우우.” 밤이슬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지루함을 넘어 눈꺼풀도 슬슬 무거워질 시간. 두세 시간만 더 견디면 일출이다.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던 그때. 부우우웅-. 저 멀리서 엔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도로를 지나던 차들과 달리, 배기음이 굉장히 센 걸 보니, 계속해서 속도를 올리고 있는 모양. 이런 비탈길에 속도를 낸다. 이 시간에 무려 두 대나. 분명히 그 녀석들이다. 마돈나 그리고 그녀의 차와 교통사고를 내는 남자. 순식간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미래 문자를 통해서 동영상을 본 덕분에 사고가 난 포인트는 정확히 알고 있다. 오래지 않아, 저 멀리서 라이트를 켠 두 대의 차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이내 자동차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산 세단 한 대와 외제차 SUV 한 대.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미래 문자에서 보았던 그대로다. 꿀꺽. 나는 침을 삼키며 다시금 긴장을 조였다. 부아아아앙-! 엔진음이 울리듯이 굉장히 가까워진 그 순간. 반대편에서 순식간에 엔진음이 발생하며 화물차가 한 대 등장하더니. 콰아아아앙! 그대로 세단을 들이박았다. 그래. 모든 게 내가 보았던 그대로다. 드디어 내가 움직일 차례다. 나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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