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 (3)2021.11.17.
-보낸 이: 22 -동영상. 문자다. 미래를 알려 주는 그 문자! 꿀꺽. 나도 모르게 목울대가 울렁였다. 미래 문자라는 걸 깨닫자마자 핸들을 쥐고 있는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문자는 매번 확인하자마자 사라졌다. 혹시나 시간제한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기에 서둘러 확인해야 한다. 또 갑자기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차를 천천히 갓길에 세웠다. 가로등 없이 어두운 길목. 비상등만 켜둔 채 곧바로 휴대폰을 부여잡고는 동영상을 재생했다. -부우우웅. 차의 엔진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화면이 밝혀졌다. 아니, 정확히 따지면 밝혀지진 않았다. 화면의 밝기를 최대로 올렸으나, 희미하게 핸들을 부여잡은 손만 보일 뿐. 핸들을 잡고 있는 가느다란 손가락과 옅은 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손은 여성의 것이다. 그렇게 약 30초쯤 지났을까. 차츰 카메라의 시점이 움직이며 운전자의 전신을 비췄다. 예상했던 대로 역시나 여성이다. 웨이브컬을 넣은 머리칼에 몸에 달라붙은 옷. 짙은 화장 위로 화려한 외모가 인상적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 확실한 건 외모가 일반인 수준은 아니었다. 연예인인가?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서 배우나 가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문제는 따로 있다. 왜 이 문자가 내게 온 걸까. 분명 내게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 정보를 담고 있을 텐데. 유심히 동영상을 지켜보기도 잠시. -반짝. 백미러에 세차게 불빛이 번쩍였다. 뒤에서 상향등을 켠 모양. 꽤나 빠른 속도로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은 추월할 수 있도록 비켜 주는 대신 오히려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육성. -이런 젠장……. 두려움에 섞인 목소리였다. 여성은 불안한 듯 손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따라오는 차는 점점 더 거리를 좁혔고. 여성은 계속해서 속력을 높였다. 그리고 커브길을 돌아 나오려는 그 순간. 정면에 육중한 화물차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쾅! 커다란 굉음과 동시에 시야가 뒤틀렸다. 조용히 지켜보던 나도 흠칫할 정도. 잠시 후, 화면이 안정되었을 때는 이미 여성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머리에서 흐른 피로 얼굴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녀는 정신을 잃은 채 숨만 헐떡이고 있을 뿐. 확신할 수 있는 건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그녀가 과다출혈로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벌컥.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 어둠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조수석으로 몸을 들이밀고 차를 뒤지더니, 뒷좌석에서 커다란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여성을 향해 낮게 읊조렸다. -그러게, 왜 배신을 해 가지고……. 허나, 여성은 여전히 정신을 잃어서 듣지도 못했다. 남성은 쯧쯧 혀 차는 소리만 남긴 채 차량에 붙어 있던 블랙박스까지 뜯어내 도주했다. 여기서 동영상은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지지직. 화면 조정이 되는 듯 노이즈가 끼더니, 이내 밝은 화면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화면에서는 매일 9시 뉴스의 데스크를 지키는 아나운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 9월 13일, 채응산 고갯길에서 임모 씨가 차 안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는데요. 뺑소니범은 3개월째 오리무중입니다. 강기현 기자 연결해서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강기현 기자. -네. 강기현입니다. 사실, 채응산 뺑소니 교통사고는 피해자가 사고 직후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럼에도 가해자가 현장에 방치해 둔 탓에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밝혀졌습니다. 현장 상황과 피해자의 사인이 과다출혈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교통사고의 규모가 사망 사고가 발생할 만큼은 아니었으나……. 그 말을 끝으로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이게 뭐야.” 나도 모르게 의문사가 터져 나왔다. 정말 뭔지 모르겠다. 갑자기 이런 영상이 왜 왔는지. 화면 속에 등장하는 여성과 남성이 누구인지,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도 알 수도 없다. 미래 문자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만 알려 주는 게 아닌 건가? 지금까지는 우연히 내게 도움이 되는 거였던 건가? 미래 문자에 대해서 접하면 접할수록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다. 도저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동영상을 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문자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뒤였다. “후우.” 차분하게 호흡을 가라앉히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우선 동영상의 내용은 확실히 기억에 남았다. 다만, 문제는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나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도. 또한, 문자의 보낸 이도 다시금 살펴봐야 한다. 처음은 20. 그 다음은 22. 그 후, 다시 21. 그리고 오늘은 또 22. 문자의 보낸 이가 다시 겹칠 줄이야. 중복은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금 혼란에 빠져 버렸다. 여전히 홀수와 짝수에 관한 이론은 살아 있다. 보낸 이가 21일 때 사진이었던 걸 제외하면 전부 동영상이었으니까. 허나, 이것만으로는 추가적인 추리는 불가능했다. 조금 더 정보가 필요하다.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쓸어 넘기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그런데 그 순간. “어……?” 문득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데자뷔처럼 느껴졌다. 잠깐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동영상의 장면들. 동영상 속 배경이 눈앞의 시야와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겹쳐졌다. 나는 서둘러 차량의 상향등까지 켜 두고 운전석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휴대폰의 플래시라이트까지 켜서 주변을 비추며 살폈다. 도로가 위로 뻗은 단풍나무. 저 멀리서 희미하게 비춰 오는 가로등. 가드레일 높이와 거친 코너까지. 그곳이다. 동영상에서 봤던 그곳과 똑같은 장소. 즉 이곳에서 사고가 난다는 것. “하…….”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갑자기 왜 미래 문자가 오는지 했더니만……. 문득 휴대폰에 떠 있는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9월 10일. 사흘 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사흘 뒤에 이곳에서 사고가 일어난다. 문자가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나는 다시금 휴대폰의 불빛을 끄고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우선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여성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들고 있던 서류가 무슨 서류인지. 사고를 낸 남성은 무엇을 위해서 사고를 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사고 정보를 미리 알았다고 한들, 내가 조치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차하다가는 나까지 위험에 휘말릴 수 있으니까. 허나, 고의로 사고를 냈다는 걸 알고도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밤새 고민해야 할 것만 같다. * * * 여의도의 한 주꾸미집. 의원실 직원들과 한 테이블에 같이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직원들이라고 해 봤자, 김치호 비서관과 오태용 비서 그리고 나와 김한나 비서까지 총 4명이다. 두 명의 보좌관은 이치현 의원과 함께 다른 오찬 자리로 향했으니까. 김치호 비서관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게 마냥 달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대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의원실에서 내가 나가거나 그가 쫓겨나지 않는 이상, 어차피 앞으로 4년간 함께해야 한다. 오래 있을 거라는 걸 서로 직감했기에 결국 좋으나 싫으나 손을 잡고 있어야 했으니까. 물론, 고운 정 대신 미운 정이 더 많이 들고 있는 형국이긴 하다. 주로 대화도 나보다는 오태용과 김치호 비서관 둘이서 나누는 게 대부분이기도 하고. “비서관님. 그거 들으셨습니까?” “어떤 거?” “송병준 의원실에서 오늘 법안 발의하기로 한 거, 취소됐답니다.” 부정선거 논란이 일고 있음에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법안 발의 날짜를 공표까지 했지만, 결국 펑크가 나고 말았다. 오태용 비서의 말에 김치호 비서관은 으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럴 줄 알았어.” “아, 예상하셨습니까?” “뻔하지. 보나마나 자료 부족에 조사도 제대로 안 해서 개념 정립도 안 됐을걸?” 나는 슬쩍 대화에 끼며 물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얼마 전에 마돈나 퇴사했잖아.” “마돈나라면 그때 말씀하셨던 그 임지현 비서관이죠?” “응. 맞아.” 그는 손가락을 퉁기며 말을 이었다. “아, 지훈 씨는 마돈나랑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김치호는 씨익 웃으며 거만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마돈나가 다른 건 몰라도 업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처리했거든.” 저번에 살짝 듣긴 했다만…… 일단 모르는 척 경청했다. 그는 인심 써서 알려 준다는 듯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대한당이지만, 업무 능력은 리스펙할 정도야.”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김치호 비서관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능력은 보통 보좌관들과 비교할 정도가 아니라는 건데. “송병준 의원이 저렇게 논란이 되면서 의원실 사람들도 자주 바뀌잖아. 실무진들 적응하기도 힘들 정도로 물갈이가 심해서 개판되는 상황에서도 마돈나 혼자서 다 커버해가지고 성과 냈었거든.” “아, 그렇습니까?” “그래. 그 성과가 꽤 좋아서 송병준 의원의 뒤가 구려도 계속 시민들한테 지지받아서 당선되었던 거잖아.” “엄청나게 일을 잘하는 모양이네요.” “내가 본 비서관 중에서는 최고야. 아, 물론 나는 제외하고. 업무 능력만 봤으면 임지현 비서관은 진즉에 보좌관 달았어야 해. 안 계셔서 하는 말이 아니라,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한유라 보좌관님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 같거든.” 모두까기 인형인 김치호 비서관이 이렇게 칭찬하는 건 처음 본다. 이 정도면 정말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질 정도인데. 옆에 있던 오태용 비서도 말을 보탰다. “맞아요. 저도 소문은 들었어요. 얼굴이랑 몸매 때문에 마돈나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그 별명에 능력이 묻힌 거라고 하더라고요.” “맞아. 송 영감도 처음엔 마돈나 외모 보고 뽑았는데 생각보다 일을 너무 잘해서 그 더러운 양반도 마돈나한테는 업무만 시키고 손길을 안 뻗었다잖아.” “아, 엄청난가 보네요.” 조용히 듣고 있던 9급 김한나 비서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김치호 비서관님은 어떻게 대화하는 내내 외모 이야기가 안 빠져요?” “한나 씨 마돈나 얼굴 못 봤어? 진짜 연예인급이라니까. 보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 “대체 어떻길래 그러는데요?” “어, 내가 사진 보여 줄게. 지훈 씨도 못 봤지?” “예. 본 적 없습니다.” “내가 예전에 업무 협조 때문에 번호 받아 놨거든.” 김치호 비서관은 입술을 비죽이며 휴대폰을 꺼냈다. “연락처 저장해 놔서 프로필 사진 보여 줄 수 있어.” 그는 임지현 비서관이라고 적힌 인물의 프로필을 눌러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김한나 비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가 인정하다는 듯 말했다. “예쁘긴 예쁘네요.” “지훈 씨도 한번 봐 봐.” “아, 네.” 김치호 비서관의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사진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얼어붙고 말았다. “……어?” 착각인가 싶어서 눈을 부비며 다시 확인했지만, 헤어스타일까지 익숙했다. 그 여자다. 어제 미래 문자의 동영상에 등장했던 그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