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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술에 배가 부를 만큼 (6) (14/200)
  • 첫술에 배가 부를 만큼 (6)2021.11.14.

    이치현 의원이 불을 지핀 덕분에 오동렬 장관 임명 인사청문회는 다이내믹하게 이어졌다. 대한당 소속인 위원장이 교묘하게 시간을 끌고 휴정을 하려 했으나, 워낙 열기가 뜨거워진 터라, 민국당과 만세당 의원들의 공세로 인해 저지되었다. 그렇다고 대한당 의원들이 실드를 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소속이 어찌 되었든 간에 이 자리 자체는 ‘인사청문회.’ 대놓고 마냥 감쌀 수는 없었기에 대한당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에 반해 민국당 의원들은 오동렬 후보자가 차명으로 구매한 그린벨트 땅을 시작으로 다른 사소한 건수들까지 꺼내며 계속해서 몰아쳤고. 결국 그는 야당 의원들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아니, 그 돈의 출처가 문제입니까? 서민들도 수중에 현금 10억 정도는 다들 있잖아요?’라는 실언까지 하며 스스로 자멸해 버렸다. 한껏 논란이 터진 다음 날, 이치현 의원실. 한쪽 구석에 놓인 TV를 통해 국회방송을 보던 8급 비서 오태용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이 정도면 지명 철회되겠죠?” 한유라 보좌관은 질끈 묶었던 머리를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야. 이 정도면 정부에서도 여론을 신경 써야 할 테니까. 무시하고 밀어붙이기엔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만 떨어지겠지.” “잘됐죠, 뭐.” 김치호 비서관은 피식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차피 이렇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대한당 힘은 빠지는 거니까요.” 그는 흘긋 나를 보고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말하면 불편한가?” “아닙니다.” “혹시 그러면 말해.”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제가 직접 찾은 정보’로 청문회에서 의원님을 스타로 만들었는데 당연히 저 또한 기쁘죠.” 특정 부분에 힘을 주어 말하자, 김치호 비서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지…….” 그때 문이 열리며 이치현 의원이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치현 의원의 얼굴엔 이미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처세술만으로 보좌관 자리까지 올랐다는 강선우 보좌관이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의원님 표정이 좋아 보이십니다.” “아, 티 나나?” 그는 빙그레 웃으며 멈춰 섰다. “방금 백태성 의원님 만나고 오는 길이거든.” 백태성. 민국당의 당 대표이자, 야당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인물. 어렸을 적, 아버지 덕분에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보통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간덩이를 가진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하나. 무려 6선 의원이다. 대한당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전라도에서 처음 민국당의 깃발을 꽂은 인물로서 전라도에서만 3선. 그리고 서울에서 3선. 이번 임기까지 생각하면 거의 30년 가까이 국회 밥을 먹었다는 뜻이지. 강선우 보좌관은 자신의 일처럼 화색이 도는 얼굴로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왔나 봅니다.” “어. 오동렬 장관 지명 철회될 거야.” “정말입니까?” “응. 지금은 엠바고인데 아마 오늘 오후 중으로 보도될 거야.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장관으로 임명되는 게 시간문제라고 불렸던 인물인데, 인사청문회 한 방으로 나가리가 될 줄이야. 멀리서만 지켜보던 정치와 달리, 그 소용돌이 속에 직접 들어와서 활약한다는 게 이렇게 짜릿할 줄은 몰랐는데. 이런 기분은 나 혼자 느끼는 게 아니었다. 옆에 있던 다른 보좌진들 또한 기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굳이 숨길 필요 없지. 이치현 의원도 여전히 싱글벙글이었고. “다들 고생 많았어.” 그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특히 지훈이.” “예, 의원님.” 그는 가볍게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자, 그는 툭툭 나를 두드리고는 피식 입꼬리를 휘었다. “자, 청문회도 끝났고 우리 신입도 들어왔는데 회식 한 번 해야지.” “아, 좋죠.” 8급 비서 오태용은 기다렸다는 듯이 메모장을 들었다. “어디로 예약할까요?” “오늘 같이 좋은 날은 한우 먹어야지. 다들 괜찮지?” “좋습니다.” “늘 가던 곳 있잖아. 거기로 예약해. 6시에 퇴근하고 바로 가자고.” “알겠습니다.” 이치현은 당당한 걸음으로 집무실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한우 먹겠네.” 김치호 비서관은 기지개를 쭉 켜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지훈 씨.” “네?” “술은 좀 하나?” “적당히 마십니다.” “소주로 몇 병?” “글쎄요. 남들 마시는 만큼은 마십니다.” “이야, 오늘 기대해도 되겠네.” 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잔을 넘기는 손짓을 했다. “이따 빼지 말라고.”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휘었다. “그럼요.” * * * 지글지글 한우가 익어 가는 소리에 술잔을 기울였다. 분위기는 축제였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번 청문회의 주인공은 이치현 의원이었고. 그 숨겨진 주역은 보좌진인 우리였으니까. “다들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의원님이 고생하셨죠.” “내가 고생은 무슨. 다 너희들이 한 거 읽기만 했을 뿐인데.” 이치현 의원은 여유로운 얼굴로 우리에게 술을 한 잔씩 건넸다. 오랜만에 한우로 배에 기름칠을 하며 배가 부르기 시작할 즈음. “어, 저기 나오는데요?” 8급 비서 오태용이 식당 내에 있는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엠바고 풀렸나 봅니다.” 고개를 돌리자, 뉴스 속보가 전해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PBC 뉴스 속보 유하영입니다. -오늘 오동렬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이 철회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어제 있었던 인사청문회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여론의 눈치를 본 정부의 판단이 아닐까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최민아 기자가 청와대에서 소식 전해 드리겠습니다. “끝났네.” 이치현 의원은 씨익 입꼬리를 휘며 소주잔을 꺾었다. “잘 됐습니다.” “깔끔한 결말이네요.” 강선우 보좌관은 슬쩍 몸을 기울이며 이치현에게 물었다. “의원님. 혹시 다음 후보자로 추측되는 사람은 있습니까?” 그는 이미 생각을 했다는 듯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끽해 봤자 최우철 아니겠어?” “최우철이라면, 대한당 전 국회의원 아닙니까?” “그렇지. 이번 총선에서는 낙마했어도 그래도 지난 국회까지 국토위에 있었잖아.” 국토위. 국토교통위원회의 준말로, 국회에서의 국토교통부라고 봐도 무방한 곳. 최우철은 지난 임기 시절, 국토위의 간사까지 맡았으니 국토교통부에 대해서는 훤히 꿰고 있을 터.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한당 측에서 제안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최우철은 청문회 통과할 수 있을까요?” “숨겨진 비리가 없다면 통과할 거야. 이 바닥에서는 그나마 청렴한 인간 중 하나니까.” 강선우 보좌관은 눈썹을 들썩였다. “에이, 그래도 의원님만 하겠습니까?” 이치현은 질색하며 손을 저었다. “됐어. 오늘 같은 날은 좀 편하게 마시자.” “하하, 죄송합니다.” 김치호 비서관은 눈빛을 번뜩이며 소주병을 들었다. “지훈 씨 잔 비었네. 한잔해야지.” “예. 주십시오.” * * * “어, 먼저 갈게.”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내일 뵙겠습니다.” 이치현 의원을 수행비서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시킨 뒤, 먼저 보냈다. 강선우 보좌관은 씨익 웃으며 허리를 폈다. “우리끼리 2차 갈까?” “좋죠.” “저 잠깐만요.” 김치호 비서관은 황급히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우웨에엑!” 위에 있던 음식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쯧쯧. 아까부터 나한테 계속 술을 권하더니 벌써 가 버렸네. 그나마 의원 앞이라서 좀 참았던 모양. 그게 기특하다 싶다. 8급 비서 오태용만 급하게 편의점에서 숙취 해소제를 사다가 그에게 건넸다. 한유라 보좌관은 못 볼 꼴이라는 듯 휙 고개를 돌리고는. “우리끼리 가볍게 맥주나 한잔하죠.” “이쪽에 괜찮은 호프집 있어요. 거기로 가실래요?” “좋죠.” 먼저 걸음을 옮긴 강선우 보좌관은 문득 돌아서서. “태용 씨. 김 비서관 택시 태워서 돌려보내고 와요. 장소는 문자로 찍어 둘게.” “예, 알겠습니다.” 한 20m쯤 걸었을까. 강선우 보좌관이 슬쩍 내게 물어왔다. “그나저나 괜찮겠어?” “예?” “이번 건 말이야. 분명 대통령님도 알게 되실 텐데. 청와대에서 안 좋아하지 않겠어?” 표정을 보아하니,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이다. 처세술이 심하긴 하지만, 사람 자체는 나쁘지가 않다. 무엇보다 일도 잘하는 축이고. 입만 번지르르한 김치호와는 다르지. “괜찮습니다. 애초에 아버지께서 이치현 의원실을 추천해 주신 거거든요.” “아, 그런 거였어?”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처음엔 색안경을 낄 수밖에 없었거든.” 이해는 한다. 내 신분이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보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느끼네.” 강선우 보좌관은 우직하게 내게 손을 내밀었다. “새삼스럽지만, 잘 부탁할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김치호 비서관은 아직 마음을 열지는 못한 것 같은데…… 지훈 씨가 이해해.” “괜찮습니다.” 그는 한유라 보좌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유라 씨는 어때?” “저는 처음부터 믿고 있었는데요.” “……그래?” “네. 한 팀이니까.” 그녀는 무심하게 대답하고는 먼저 호프집 안으로 향했다. “우리는 담배 한 대 태우고 들어갈게. 주문하고 있어.” “네.”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담뱃불을 붙이자, 새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때, 강선우 보좌관 휴대폰에 전화벨이 울렸다. “잠깐만. 나 와이프한테 전화가 와서.” “예.” 그는 몇 걸음 물러나 휴대폰을 들었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 한 모금을 내뿜었다. 어느새 니코틴이 폐 안에 깊숙이 쌓이며 술기운이 달아나 머리가 맑아져 왔다. 구름 한 점 없지만, 별 또한 보이지 않는 서울의 도심.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 벌써 국회에 들어온 지 2주. 그동안 삐걱거리긴 했지만, 점점 자리를 찾아 안정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내 선택이 옳았는지. 아버지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알 방도가 없으니까. 청와대에서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그 또한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내 길을 가야만 한다.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는 게 아닌. 온전한 나만의 길을. 턱. 전화를 마친 강선우 보좌관이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엄지로 호프집을 가리켰다. “들어가자고.” “예, 선배님.” * * * “이런 제기랄!” 대통령 최준석은 짜증 가득한 목소리를 내며 집무실로 돌아왔다. “오동렬 그 새끼는 좀 깨끗한 놈일 줄 알았더니, 뭐 이렇게 더러워? 괜히 대한당 망신만 시키네.” “죄송합니다. 제가 더 신중히 파악했어야 하는데…….” 최준석이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다. 이번 임기에 국토교통부 장관의 지명 철회만 벌써 두 번째. 지난번 후보자는 약간의 흠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험이라 생각하고 장관 지명을 한 것이었지만, 이번은 완전히 예상외였다. “대한당에 이렇게 인물이 없나?” “빠른 시일 내에 다음 후보자 찾아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최준석은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오동렬 그 자식, 우리 비서실에서 파악했을 때는 문제없었다는 거 아니야?” “예. 자잘한 건 있었어도, 이렇게 큰 건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최준석은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그래. 어이가 없어서.”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청문회에서 문제가 된 적 없잖아. 지명 철회할 때는 늘 이쪽에서 이미 파악한 문제를 덮지 못해서 그랬던 거고.” “예, 맞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살벌하게 변해갔다. “이 말은 결국 청와대가 그깟 의원실 하나보다 못하다는 거 아니야.” “…….” 고태욱 비서실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실수는 그가 대통령과 함께 일하고도 거의 없다시피 하던 일이었으니까. “비서실 인원 부족해? 충원해 줘?” “아닙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차갑게 목소리를 깔았다. “고 실장.” “예, 각하.” “나는 대한당 당 대표, 원내 대표, 160명의 국회의원. 이딴 놈들 하나도 안 믿어. 내가 믿는 건 오로지 고 실장 자네뿐이야.” 사실이었다. 최준석은 아들, 딸보다도 더 믿는 게 고태욱이었으니까. 고태욱이라는 사람 자체가 자신의 가족까지 버리고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이었기도 하고. “자네가 날 실망시키면 안 돼.” “알겠습니다.” 최준석은 책상 위에 있던 오동렬 후보자의 프로필을 구겨 버리며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후우우.” 그는 호흡을 깊게 내뱉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최준석이 궁금한 건 다음이었다. “이치현이 그놈은 대체 어떻게 파악한 거야? 돈세탁을 8번이나 거쳤으면 어지간해서는 못 알아냈을 텐데.” “실은 그게…….” 고태욱 비서실장은 스읍 숨을 들이마시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막내 도련님이 찾아낸 것 같습니다.” “……뭐?” 순간, 최준석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서렸다. “민국당 소식통에게 들었는데, 이치현 의원실에서 포기한 자료를 막내 도련님이 찾아낸 거라고 합니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막내아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름이 나왔으니까. 그렇게 몇 초쯤 지났을까. “으하하하하하하핫!” 최준석이 아주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런 변화에 고태욱 비서실장은 당황했으나, 티를 내진 않았다. “이번 건, 지훈이 녀석이 터뜨린 거라고?” “아마 확실할 겁니다.” 그 대답을 들은 최준석은 한참동안 집무실 전체가 울리도록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웃음기가 멎고 나서야 나직이 입을 열었다. “막내 놈이 했다는 거지…….” “예.” “오동렬 장관이 내 사람이라는 걸 그 녀석이 모를 리 없고.” 고태욱 비서실장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있어. 이거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네.” 최준석은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 “고 실장.” “예, 대통령님.” “우리 실험 한번 해 볼까?” 그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며 흥미로운 목소리를 냈다. “막내 놈이 얼마나 정치적 센스가 있는지 한번 봐보자고.” 고태욱 비서실장은 직감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가슴속에서 막내아들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리고 또 하나. 이로 인해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정계 구도가 요동칠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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