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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술에 배가 부를 만큼 (5) (13/200)
  • 첫술에 배가 부를 만큼 (5)2021.11.13.

    고민스러웠다. 오동렬 장관 후보자 측에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흘릴지. 아니면, 처음 생각했던 대로 청문회에서 터뜨리는 방향으로 밀고 갈지에 대해서. 물론, 의원실에서 말한 건 진심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고태욱 비서실장에게 따로 언질을 받은 건 없었고, 오자마자 배신할 생각 또한 없었으니까. 하지만 머릿속엔 계속해서 구태웅이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저희 측이 장관으로 임명되어야 지금 청와대에도 좋고, 그게 곧 지훈 씨에게도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김치호 비서관에게 한 소리 들었다고 해서 변절하려는 게 아니다. 청와대에서 무려 10년을 넘게 살아 왔다. 힘 있는 국회의원도 무섭지 않은데, 의원실에서 일하는 비서관, 보좌관 따위의 압박 따위는 신경 쓰이지도 않지. 내가 고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이치현 의원실로 보내며 ‘정치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확실한 건, 오동렬은 아버지의 사람으로서 장관으로 임명이 되면 청와대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을 테고. 청문회에서 한 방 먹고 아버지께서 지명 철회가 된다면, 청와대에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물론, 그 정도로 아버지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거나, 휘청거리실 분은 아니다. 그저 늘 그렇듯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 태클이 한 번 걸렸구나, 생각하는 정도겠지. 허나,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신 ‘정치’라는 게 이런 상황에서도 언제든 자신에게 도움이 되라는 뜻인지. 험난한 정치판에서 홀로 설 수 있을 만한 능력을 키우라는 뜻인지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전자의 경우, 오동렬 측과 손을 잡는 게 아버지의 눈에 들 수 있을 테고. 후자의 경우라면, 오동렬을 끌어내려야 아버지가 내게 기대한 바를 충족시킬 수 있을 테지. 허나, 그건 아버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후우우.”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정계로 입문해 처음 내린 결정이 나를 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결정할 수도 있으니까. 정확히는 나의 그릇을 판단하시겠지. 청문회는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겨우 사흘 남짓한 시간이 전부. 며칠째 고민을 하고 있지만, 도저히 아버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째깍. 째깍.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매일 같이 야근에다가 새벽까지 고민하니 몸이 지쳤지만, 다행히도 정신력은 충분히 버티고 있었다. 나는 고민을 멈추고 침대로 향했다. 자자. 내일 출근해야지. 적어도 내일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이불을 덮자, 또다시 불현듯 풀 수 없는 난제가 밀물처럼 몰아쳐왔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만약 젊었을 적의 아버지가 내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20대의 아버지는 그 어떠한 백 하나 없이 사시에 패스하신 뒤, 단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 오르셨다. 다시 말해, 매번 옳은 결정을 했다는 뜻이다. 어떤 걸 택해야 옳은 결정일까. 반대로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정계에 입문하고 싶다는 막내아들을. 그것도 진지하게 후계자로 고려할 만한 녀석을 야당 의원실로 보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러자, 놀랍게도 머릿속이 차분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대선 혹은 총선과 같은 커다란 판이라면, 분명 내가 돕기를 바라실 것이다. 그런 목적으로 보냈을 수도 있고. 허나, 이건 겨우 일개 장관의 청문회다. 아버지의 심복도 아닌, 그저 아버지와 친화적인 사람. 그를 돕기 위해 나를 보냈을 리는 없다. 즉. 이곳에서의 내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를 보기 위해서일 터.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셨다. 이러한 결정의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셨겠지. 그 옳은 선택이란 건 결국 아버지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다. 이 말은 결국. 나 또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오동렬 장관에게 의원실 자료를 넘겨주고 청문회를 방어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는 장관 임명에 성공할 것이고. 나와 손을 잡는 든든한 동맹이 될 게 분명하다. 청와대 측 인사이기에 단순히 임기 2년만 하고 나가떨어지는 게 아니라, 정계든 재계든 가릴 것 없이 어떤 식으로든 고리를 걸고 살아남아 영향력을 행사하겠지. 이는 언젠간 내게 도움이 될 터. 허나, 오동렬 장관은 뒤가 구린 놈이다. 정치인이라는 게 한 번 더러운 짓을 하기가 힘들지, 한 번 손에 오물을 묻히고 나면 손을 씻기가 힘들다. 계속해서 구린내가 난다는 뜻이지. 지금 당장은 그린벨트 부지를 차명으로 구매해 시세 차익을 남긴 것밖에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 파 보면 더 나올 것이다. 후일,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나는 오동렬이 장관으로 임명되는 데 도움을 준 사람이 되어 버린다. 즉, 범죄자와 결착한 놈이 될 가능성이 있고. 이는 언젠가 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생긴다. 내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 오동렬을 청문회에서 날려야 한다.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살아남는 게 진정한 정치니까.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청문회 당일. “안녕하십니까, 대한당 김한기 의원입니다.” 여당 의원들의 수법은 뻔했다. “오동렬 후보자님. 우선 장관으로 지명되신 점 축하드립니다. 워낙 주택과 토지 및 도시에 관련해 식견을 갖추신 데다가 멀리 보는 워낙 능력 있으신 분이시잖습니까?” 일단 좋은 말로 포장하며 시간을 끌고. “그렇기에 국토교통부 장관이 되신다면, 큰 역할을 많이 해 주실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감사합니다.” “질의하겠습니다. 후보자님께서는 국토교통부에서 차관으로 근무하며 구리시의 그린벨트를 푸는 법안에 적극 추진하시고 결국 성사시키셨죠?” “예, 맞습니다.” “그린벨트를 풀며 오히려 그 인근이 투기 지역으로 전락하며 부자들의 돈 놀이 현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거 때문에 실제 주민들만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거 후보자가 책임져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린벨트가 풀리면 땅값이 오르는 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 주변도 마찬가지고요. 허나 그 덕분에 구리시 전체의 아파트 매매 가격이 내려갔습니다. 공급이 많아진 덕분이죠. 무려 1만 세대입니다. 덕분에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들을 분할해서 받아들일 수 있기에 부담은 내려갈 테죠. 덕분에 구리와 인접한 서울의 중랑구 및 강동구는 전세가가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서민들에겐 도움이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게다가 그린벨트 근처에 죽어 있던 상권도 되살아나고 있고 구리시의 소상공인들 또한 큰 혜택을 볼 수 있을 걸로 추정되고 있죠.” 대한당 김한기 의원은 놀란 표정을 연기했다. “잘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예상했던 바였다. 저들끼리 날카롭게 캐묻는 척하다가 오히려 설득당한 척, 칭찬으로 돌려버리며 그의 신임을 높이는 것. 뻔하지만, 국민들에게 먹히는 수법이기에 청문회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대한당 의원들의 뻔하디 뻔한, 대한당 지지자들만이 좋아할 만한 질답이 이어진 끝에야 야당의 순서가 돌아왔다. “다음은 민국당의 이치현 의원입니다. 발언해 주세요.” 야당 측에서는 당연히 격식 따위 차리지 않았다. 아니, 그러한 것에 시간을 낭비하기도 아까웠다. “후보자께서는 2017년에 주택토지실장으로 근무하셨죠?” “예, 맞습니다. 국토교통부 소속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구리시의 그린벨트 해지 건이 2017년 초부터 추진이 되었어요. 그리고 차관으로 임명되자마자 확정이 되었고요.” “정확한 사실입니다.” “주택토지실장이면 그린벨트 추진 건에 대해서도 알 만한 자리죠?” “그렇죠.” “2017년에 구리시의 그린벨트 해지가 된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그때는 추진한다고 확정할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치현 의원이 보고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추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알고 계셨다는 뜻이죠?”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여기서 거짓말은 할 수 없다. 밝혀지는 순간, 장관 임명이 되더라도 모가지가 날아가니까. “……맞습니다.” “그때 땅을 샀다면 문제가 되겠죠?” “문제가 되는 게 맞죠. 그런데 제 재산 기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구리시의 땅을 거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혹시 ‘곽한수’라는 분은 아십니까?” “모릅니다.” 오동렬은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울였지만. 순간, 그의 동공이 흔들리는 건 충분히 포착할 수 있었다. 역시. 저럴 줄 알았어. 어느 새 내 입가에 가볍게 미소가 걸렸다. “그러면 이걸 한 번 보시죠.” 이치현 의원은 한유라 보좌관과 내가 찾아낸 자료들을 종합해서 준비한 패널을 들어올렸다. “여기 보시면 평범한 샐러리맨이던 곽한수 씨가 갑자기 2017년에 구리시의 땅을 구입합니다. 무려 20억 원이 넘는 땅을 말이죠. 자금 출처를 알아보니, 증여로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증여죠. 그런데 아버지의 돈은 서울의 한 법인을 폐업하며 배당을 받은 걸로 확인이 되더군요.” 오동렬 장관 후보자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그래. 목이 타겠지. 그는 생수까지 들이켜며 손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그 돈의 출처를 따라가 본 결과, 최종적으로 오동렬 후보자의 장인어른의 매제로 확인이 되더군요.” 오동렬 후보자는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둘러댔다. “장인어른의 매제는 완전 남입니다. 저 또한 본 적이 없고요.” “과연 그럴까요?” 이치현 의원은 씨익 입꼬리를 휘며 입수한 증거를 꺼내들었다. “오동렬 후보자, 휴대폰 두 개 쓰셨죠? 그 중 하나가 작년 말에 번호가 바뀌었더라고요. 그 전 번호에 대해서 통화 목록을 조회해 보니,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곽한수’라는 차명으로 그린벨트 부지를 구매했던 당시와 정책 직후에 하루에도 4, 5번씩 통화를 하던 번호가 하나 형광펜으로 쳐져 있었다. “이 번호가 오동렬 후보자의 장인어른의 매제로 확인이 되더군요. 이래도 모르시는 분이라고 할 겁니까?” 순식간에 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린벨트의 해제가 최종 확정이 될 때까지 차관님이 힘을 많이 쓰신 걸로 압니다.” “…….” “과연 이게 우연일까요? 친척이 돈 세탁을 여덟 번이나 거쳐서 땅을 샀는데 그 땅을 구매할 당시에 국토교통부에서 일하던 인물과 굉장히 많은 통화를 했다. 뭔가 찜찜하지 않나요?” 그때, 시간이 끝나고 이치현 의원의 마이크가 꺼졌다. “발언 마치겠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말하고는 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며 테이블 밑으로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전율했다.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열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곳에 앉고 싶다. 내가 찾은 자료를 의원에게 넘기는 게 아니라. 직접 부조리한 녀석의 만행을 까발려 전국으로 내보내며 녀석의 목을 치고 싶다는 그런 욕망이 생겨났다. 그렇기 위해서는 올라가야 한다. 국회의원. 아니, 그 이상의 높은 자리로.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고. 엔도르핀이 마구 돌기 시작했다. 그래. 내 적성은 정치였어. 처음부터 정치였다. 나는 기필코 대한민국 정계의 끝에 올라서고 말 것이다. 아니, 올라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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