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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술에 배가 부를 만큼 (2) (10/200)

첫술에 배가 부를 만큼 (2)2021.11.10.

“차명 계좌 정보, 찾은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김치호 비서관.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따지듯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페이크 제보인데 정보를 어떻게 찾아내?” “페이크 제보가 아닌 것 같던데요.” 나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동렬 후보자가 그린벨트에 2천 평 정도를 산 걸로 확인이 됩니다. 작년에 이걸 현금화한 걸로 추정되고요.” 서류를 흘긋 보고는 말을 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더 추적해서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마 확실할 겁니다.” “그, 그럴 리가.” 김치호 비서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강선우 보좌관은 정색하며 말했다. “신입이라 잘 모르나 본데 이런 중대한 사항은 함부로 보고하면 안 돼. 적어도 제대로 검토는 하고…….” “아니야, 됐어.” 그의 말을 이치현이 제지했다. “줘 봐. 내가 볼 테니까.” 이치현 의원은 내 서류를 직접 받아 그 자리에서 검토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의심 짙은 눈빛이었지만, 이내 그의 입가에선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허…….” 김치호 비서관과 강선우 보좌관 모두 설마 진짜겠냐는 듯 좌불안석이 되어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여유롭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결과는 뻔했다. 내가 직접 찾은 자료기에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마침내 이치현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입을 열었다. “이거 팩트 같은데?” “……진짜입니까?” “정확히 오동렬 장관 후보자의 재산이라는 확증은 없는데, 누가 봐도 차명 계좌야.” 그는 서류를 강선우 보좌관에게 건넸고, 김치호 비서관은 목을 쭉 내밀고 함께 읽어 내려갔다. 이치현 의원은 한 쪽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땅 소유주의 재산 현황, 자금 출처, 구매 내역까지 전부 봐 봐. 실소유주는 100% 따로 있어.” “……그러네요.” 김치호 비서관은 허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파 볼 만해요.” 파 볼 만한 정도가 아니다. 구린 내가 솔솔…… 아니, 코를 막을 정도로 아주 진하게 풍기는 급이지.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보다도 이치현 의원이 제일 어이가 없는 눈치였다. “지훈아.” “예, 의원님.” “저거 어떻게 찾은 거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보이던데요.” 김치호 비서관이 눈썹을 찡그리며 날 돌아봤다. “……뭐?” 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 서류 집어 드니까 보이는 게 저거였습니다. 그래서 관련 자료 쭉쭉 파헤치다 보니 차명 계좌로 의심이 되더라고요.” “…….” 순식간에 집무실 전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김치호 비서관은 주먹을 꽉 쥔 채로 따지듯 물었다. “그게 말이 돼?” “저도 보고 놀랐다니까요.” 나도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 * * 물론, 단순한 운빨은 아니었다. 우연히 집어 들었다는 건 적당히 의심받지 않게 둘러댄 것이고. 실은, 찾을 만한 근거는 있었으니까. 사실대로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한다고 해도 믿을 리가 없으니 굳이 털어놓지 않은 것이지. -보낸 이: 21 -사진 회의실에 도착해서 받은 문자에는 한 장의 사진이 전송되어 왔다. 사진에는 두 명의 남자가 나와 있었고. 테이블에는 그린벨트 부지와 관련된 땅문서와 부동산 서류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두 남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정확한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한 명의 신원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반쯤 벗겨진 머리에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살. 살짝 흐리멍덩한 눈동자와 손등에 보이는 화상의 흔적. 그리고 정장 가슴팍에 달려있는 특유의 살짝 빛바랜 사랑의 열매 배지. 그것만으로도 오동렬 장관 후보자라는 건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상대방은 알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넘어서 고개를 숙인 상태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지라, 사진이 찍힌 각도에서는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으니까. 의도한 건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받는 미래 문자 자체가 정확히 누군가가 찍은 것이라고 단언할 수가 없었으니까. 이전에 받았던 두 개의 동영상만 해도, 실제로 누군가가 찍었다기보다는 그저 미래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는 그런 느낌에 가까웠기도 하고. 허나, 사진에 나온 장소는 확정할 수 없었다. 인테리어 자체는 카페에 가까웠으나, 내가 아는 카페보다는 훨씬 더 음침하고 폐쇄된 느낌이었고. 그렇다고 집무실이나 오피스텔이라고 하기엔 공간의 크기가 애매했다. 다만, 배경을 살펴보던 도중 벽에 붙어있는 일력(日曆)을 알아볼 수 있었다. 3월 25일을 가리키고 있는 일력. 연도는 나와 있지 않았으나, 입가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린벨트 해제가 시행된 건 재작년인 2018년 5월. 책상에 놓인 서류들의 세세한 내용까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대략적으로 훑어보기만 해도 그린벨트 해제 후 판매를 진행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진 속 배경은 2019년 혹은 2020년이라는 뜻. 그런데 2020년엔 코로나로 인해 기존에 쓰던 마스크와 차별점이 생기게 된다. 한데 사진 속 두 남자는 모두 얼굴을 가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특히나 오동렬 장관 후보자는 건강을 지극히 챙긴다고 알려진 만큼, TV에 나올 때마다 검증된 KF94 마스크만 썼기에 저런 면 마스크를 썼다는 건 올해가 아니라는 증거로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사진에 나온 시간적 배경은 2019년 3월 25일이라는 뜻이지. 계약이 진행된 날짜만 알 수 있으면 추적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린벨트 해제로부터 2년간 거래되었던 모든 서류가 아닌, 그 날짜 근처의 서류들만 훑어보면 답이 나오는 법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2019년 3월 25일을 기준으로 그 며칠 전후로 거래된 내용을 쭈욱 훑어본 결과, 수상한 거래 내역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류 더미에서 관련 문서를 찾아내 검토하고 있던 도중. “비서님.” 8급 비서 오태용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의원님께서 잠깐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 * * 이렇게 된 것이지. 이러한 사정을 알 리 없는 이치현 의원은 계속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그게 페이크 제보가 아닐 줄이야.” 오동렬 장관 후보자 측에서 일부러 청문회 전에 시간을 빼앗고 혼선을 주기 위해 뿌린 정보라고 단정했던 김치호 비서관과 강선우 보좌관은 자신들의 실수에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치현 의원은 다시금 서류를 검토하고는 한유라 보좌관을 불렀다. “유라야.” “예, 의원님.” 그는 한유라에게 내가 찾아낸 서류를 건넸다. “네가 책임지고 관련 자료 확보해.” 이치현 의원은 보좌진을 스윽 둘러보더니 나에게 시선을 멈춘 채로 말을 이었다. “지훈이만 데리고 가도 충분하겠지?” “네, 물론입니다.” 한유라는 어렵지 않다는 듯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그러면 둘이 바로 자료 수집하러 가.” “알겠습니다.” 나는 입가에 피어나는 웃음기를 숨긴 채 한유라를 따라 집무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녀와 나에게 이 그린벨트 건을 맡겼다는 걸 다시 말하면, 김치호 비서관과 강선우 보좌관에게는 이번 건에서 손을 떼라고 한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그 둘보다 나를 높게 평가한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청문회에서 홈런을 칠 수 있는 기회가 나와 한유라에게 주어진 것일 뿐. 확실한 자료를 수집해서 활약해야 제대로 이치현 의원의 눈에 들 수 있다. “회의실에 있던 자료는 이게 전부예요?” 한유라 보좌관은 내가 들고 온 서류를 확인하며 물었다. “아니요. 조금 더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의원님 호출을 받느라고 미처 확인을 다 하지 못했고요.” “그러면 바로 들어가서 찾아보죠.” 우리는 곧장 회의실로 들어갔다. 한유라는 풀었던 머리까지 질끈 묶으며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 “지훈 씨가 그쪽 좀 확인해 볼래요?”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업무 합류해야 되니까 말 놓을게요. 괜찮죠?” “예, 물론입니다.” 한유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료를 뒤졌다. 그렇게 한 30분쯤 지났을까. 회의실에 있는 서류 중 오동렬 장관 후보자와 관련되어 미심쩍은 서류들은 모두 취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은데. 지훈 씨 쪽은 더 있나?” “아니요. 3월 25일과 관련된 서류들은 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여기까지만 하고 바로 구청 가서 서류 받으러 가자고.” “알겠습니다.” 회의실을 나서려던 한유라는 멈칫하더니, 돌아서서 나를 불렀다. “그런데 지훈 씨.” “네?” “3월 25일이라고 확정할 만한 이유가 있었나?” 아. 실수했다. 관련 서류들을 찾고만 있었지, 날짜는 아직 확정할 수 없었으니까. “내가 찾은 자료들은 3월 말에서 4월 초로 되어 있던데.”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제가 처음 찾은 자료에 찍힌 날짜가 3월 25일이라서 그걸 중심으로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류를 팔에 끼더니. 회의실의 문에서 떨어져 나와 내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거든.” “예, 말씀하십시오.” “처음에 발견한 서류 말이야.” 한유라는 팔에 끼고 있는 서류 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차명 계좌로 추정할 수 있는 서류였거든.” 그녀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진짜 어떻게 찾은 거야?” 나는 아까와 같은 대답을 꺼냈다. “우연히 집어든 게 그 서류였습니다.” “이 많은 서류더미들 중에서?” “예.” “글쎄.” 그녀는 서류더미를 스윽 훑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김치호 비서관이 그렇게 깐깐하게 대우하는 것도 모자라, 첫날부터 혼자 회의실에 보냈는데 이렇게 수만 장이 깔려 있는 서류에서 무언가를 찾으라고 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단순히 첫 출근한 비서라면 모를까, 청와대에서 굴러먹던 짬밥이 있으면 진짜 업무하라고 보낸 게 아니라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등에 식은땀이 나려 했다. 이 여자, 뭔가 알고 말하는 건가? 그럴 리가. 눈치챘을 리가 없다. 미래 문자는 다른 이에게 보이지도 않고, 이 회의실엔 카메라 따위 달려 있지 않으니까. 애초에 내가 회의실에 있을 땐 한유라가 의원실을 비운 상태였고. 설령 무언가 수상쩍은 행동을 포착했다고 한들, 증거는 없다. 나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봐.” 한유라는 나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여전히 회의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이치현 의원의 집무실에 들어가 있는지라 이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건 온전히 그녀와 나뿐이었다. “이 수만 장의 문서 중에서 우연히 집어든 게 핵심 자료였다고?” “맞습니다.” 그녀는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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