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술에 배가 부를 만큼 (1)2021.11.09.
-보낸 이: 21 -사진 그 문자다. 미래를 알려 주던 그 문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전역 직후에 받은 뒤로는 처음 받는 문자. 예전과 똑같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까지. 게다가 보낸 이도 21. 지난번에 받은 두 개의 문자에서 보낸 이는 20과 22였다. 중간에 하나가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제 온 건가?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두세 번의 문자만으로 패턴을 파악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지금까지 두 개의 문자는 동영상이었으나, 이번에 도착한 문자는 사진이라는 점. 보낸 이의 홀수와 짝수에 대한 패턴일 수도 있다. 허나, 아직까지 확정지을 수 없다. 가능성은 무궁하게 열려 있으니까. “후우.”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폈다. 사무실에 있는 인원들 중, 내게 시선을 주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최대한 몸으로 휴대폰을 가린 채로 사진을 확인했다. 그리고 세세히 사진을 살피는 순간, 나도 모르게 팔에 닭살이 돋아났다. 이거 설마……. 나는 황급하게 서류철을 뒤지기 시작했다. * * * “일하고 있지?” 김치호는 커피를 홀짝이고는 8급 비서 오태용을 바라봤다. 사무실의 구조상 자신의 위치에서 최지훈이 들어가 있는 회의실은 보이지 않으니까. “예. 계속 서류철 뒤지면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고생 좀 해 보라지.”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러게 대통령 아들이 무슨 야당까지 기어 들어와?” 중간에 낀 오태용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었다. “그런데 정말 왜 저희 의원실로 왔을까요? 여당에도 들어갈 자리는 많을 텐데. 그쪽에서는 엄청 반기지 않겠어요?” “보나마나 뻔하잖아.” 김치호 비서관은 회의실 쪽을 째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의원실이 야당에서도 꽤 잘 나가잖아. 민국당 정보 빼 가려고 꽂은 거겠지.” “그런가요?” 오태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화해 보니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던데.” “몇 마디 말 섞어 본다고 속내를 어떻게 알아? 지난번에 김혁주 비서관이 우리 정보 그대로 들고 한성욱 의원실 가서 스파이짓 하다가 걸렸던 거 기억 안 나?” “아…… 그건 또 그러네요.” 최지훈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치현 의원실을 채우고 있어야 할 두 명의 비서관 중 한 자리는 공석이다. 그 자리를 채우고 있던 김혁주 비서관이 여당 의원에게 매수되어 정보를 빼 가다가 걸려 버리는 바람에 잘렸고, 그로 인해 사무실 자체에 의심이 팽배할 수밖에 없는 상태. “차라리 자기 형제한테 가든가. 셋째 최지곤도 대한당에 있잖아.” “그건 또 애매할 겁니다. 괜히 그쪽으로 갔다가 라인 벗어나면 위험하잖아요. 안 그래도 이번 총선에서 최지곤 의원 낙방할 뻔하기도 했고. 겨우 340표 차이였나?” 대통령의 아들임에도 재검표까지 해서 겨우 당선된 위태로운 의원실에 가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란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김치호 비서관은 더 생각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쯧, 모르겠다.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다가 나가라고 해. 우리 의원님은 굳이 여당 사람을 왜 받아 줬는지 모르겠다니까.” 그의 말에 오태용은 멈칫하더니 회의실을 턱짓했다. “아, 혹시 그래서 저 일을 맡기신 겁니까?” “당연하지. 저 녀석한테 알짜배기 일을 시킬 이유가 있어?” 지금 최지훈이 찾고 있는 건 오동렬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에 쓰일 그의 차명 계좌 관련 정보. 나흘 전, 의원실로 익명으로부터 하나의 제보가 들어왔다. 오동렬 장관 후보자가 차관으로 근무하던 도중, 경기도의 그린벨트 부지 하나를 풀었는데, 이 땅 중 일부를 차명 계좌로 사 놓고 시세 차익을 얻었다는 것. 공직자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구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명을 사용한 것까지 모두 불법이다. 그리고 그 관련 자료를 요청하자, 상대측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대응하며 미적미적 시간을 끌다가 청문회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서류를 무더기로 보내버린 것.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에 이치현 의원실 보좌진은 페이크 제보로 판단했다. 사실과 다른 정보이지만, 청문회에 쓸 수 있는 자료를 구할 시간을 낭비시키기 위해 거짓 제보를 한 것으로. 어제 저녁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린 탓에 아직 서류들을 치우지 못하고 회의실에 모아 둔 것이었다. 즉. 최지훈에게 엿이나 먹으라고 저런 일을 시킨 것이지. “그런데 말입니다.” 오태용은 슬쩍 기대감을 갖고 물었다. “만에 하나 저게 진짜 제보면 어떡합니까?” “그럴 리가 있어? 100% 오동렬 측에서 던진 거라니까. 익명 제보자면 뭐 해.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정황만 던져 놨잖아. 게다가 저렇게 자료까지 무더기로 보낸 걸 보면 일부러 혼선 주는 게 틀림없어.” “그런 거군요.” “그렇다니까.” 오태용은 김치호 비서관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려 회의실에 있는 최지훈을 바라봤다. 열중해서 찾고 있는 모습이 왠지 더 안쓰러울 따름. 마음 같아서는 텃세를 부리고 싶지 않았지만, 김치호 비서관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위치기에 어쩔 수 없는 형국이었으니까. 그때. 벌컥 소리와 함께 의원실의 문이 열리며 이치현 의원과 강선우 보좌관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김치호 비서관은 화들짝 놀라며 책상에 붙이고 있던 엉덩이를 떼어냈다. “의, 의원님 벌써 오셨어요? 지역구 가신다고 들었는데…….” 이치현 의원은 거칠게 넥타이를 풀었고. 답변은 강선우 보좌관이 대신했다. “오전 일정 취소됐어. 오후에나 갈 거야.” “아, 그렇군요.” 이치현 의원은 업무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점심 전까지 청문회 자료 더 찾을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오늘 최지훈 안 왔어?” “아, 왔습니다.” 김치호 비서관은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저기 회의실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치현 의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혼자서 뭐 하는데?” “그 오동렬 장관 후보자 제보 들어온 거 검토시켰는데…….” “그걸 왜 시켜?” 그는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페이크 제보로 판단했다며. 지금 청문회가 코앞인데 여당 사람이라고 꼬장 부리면 되겠어?!” “하지만 저번 김혁주 스파이 사건도 있어서 믿을 수가 없어서…….” “내가 뽑았잖아.” 이치현 의원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믿고 시켜. 내가 보증할 테니까. 알았어?” 김치호 비서관은 바로 머리를 숙였다. “네. 죄송합니다.” 이치현 의원은 집무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최지훈이 일단 내 방으로 들어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 * *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집무실에 들어가자, 이치현 의원이 소파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이게 얼마만이지?” 그는 푸근한 미소로 웃으며 나를 반겼다. “예전에 봤을 때는 완전 꼬맹이였는데.” “제가 초등학교 2학년에 뵀으니까 한 13년 정도 됐습니다.” 이치현 의원은 그때의 얼굴과 똑같았다. 흰머리가 많아지고 주름이 생긴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지. 그때는 삼촌으로 부르기도 하고 청와대에 자주 얼굴까지 비췄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 끝난 뒤로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아버지와 걷는 노선이 달라져서였겠지. “강산이 한 번 바뀔 시기구먼.” 이치현 의원은 그때 생각이 난다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각하께서는 잘 지내시고?” “예. 의원님께 안부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간만에 한 번 뵙고 싶긴 하네.” 이치현 의원은 소파의 팔걸이를 매만졌다. “자네를 이쪽으로 부탁할 때도 고태욱 비서실장 통해서 연락이 왔었거든.” “아, 그렇습니까?” 그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께서도 직접 만나기엔 조금 껄끄러우신 모양. 하긴, 검사 시절부터 수십 년을 함께하다가 완전히 뒤돌아선 뒤로는 정치판에서 싸우기만 했지, 사담을 나누지도, 술 한 잔을 하셨을 리도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서로의 입지를 리스펙트하기에 아버지는 나를 이쪽으로 보내셨을 것이고, 이치현 의원은 거부하지 않고 나를 받아 준 것일 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는 피식 입꼬리를 휘었다. “그리고 자네 출신이 어떻든 간에 난 상관 안 해.” 이치현 의원은 그런 사람이다. 재벌과 같은 대기업 수장, 유명인, 검사. 그 누구를 만나든 머리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대한다. 꿇릴 게 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아는 유일한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다. 그가 머리를 숙이는 대상은 유일하게도 ‘시민’뿐. 아버지가 나를 이곳으로 보낸 가장 큰 이유일 테지. 그렇기에 나 또한 이곳에서 진짜 정치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온 이상, 민국당으로서 민국당 사람답게 행동하리라 믿어. 그 외엔 일만 잘하면 돼.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최준석 대통령의 아들이 아닌, 이치현 의원실의 보좌진으로서 일하라는 뜻이다. “야당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여기서 일하기는 힘들 거야.”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안 그래도 저번 주에 여의도에서 자취 시작했습니다. 청와대는 제 아버지가 지내는 곳일 뿐, 그 외엔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내 답변에 이치현 의원 또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아. 그러면 잘해 보자고.” 그는 당당하게 손을 내뻗었다.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애들한테는 잘 말해 뒀으니 괜찮을 거야. 혹시라도 텃세 부리면 나한테 말하고.” “예, 감사합니다.”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당연히 텃세를 부려도 말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내 출신이 대통령 아들이니 나를 견제하고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오히려 말하면 내 그릇만 작아 보일 테지. 그리고 애초에 국회라는 곳은 미성년자 때 다니던 학교와는 다르다.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이곳에서 일개 비서까지 챙길 만한 여유로운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청와대의 막내아들로서 우쭈쭈 받을 시기는 지났다. 이곳에선 나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의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내 그릇을 증명해 대한민국의 꼭대기에 설 수 있을 테니까. “뭐 물어볼 건 없고?”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는 몸을 일으키며 문을 턱짓했다. “전부 들어오라고 해.” “예.” 그는 말을 남기고 집무실 내에 위치한 의원 전용 화장실로 향했다. 나는 곧장 집무실의 문을 열고 사람들을 불렀다. 이치현 의원과 함께 출근했던 강선우 보좌관을 비롯해 김치호 비서관 및 다른 의원실에 다녀온 한유라까지 전부 집무실로 들어왔다.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앉을 즈음, 이치현 의원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상석으로 향하며 내 손에 들려 있는 서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뭔데 아까부터 들고 있어?” “아, 조금 전에 김치호 비서관님이 시키신 오동렬 장관 후보자 차명 계좌 정보입니다.” 이치현 의원은 김치호를 한 번 째려보더니. “됐어. 그거 치워 버려. 아마 시간 뺏으려는 페이크 제보일 거야.” “페이크 제보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거 제대로 된 정보 같은데요.” “……뭐?” 순식간에 회의실에 있던 눈동자들이 내게 쏠렸다. 나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보이며 말했다. “차명 계좌 정보, 찾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