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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놈인지, 안 될 놈인지 (3) (8/200)

될 놈인지, 안 될 놈인지 (3)2021.11.08.

띠리리리-. 익숙한 알림 소리를 듣고 눈을 뜬 곳은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청와대에 입주한 뒤로는 처음으로 청와대를 나와 새 둥지를 튼 것이니까. 물론, 군 시절은 예외. 침대에서 게으름 피울 것 없이 바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사실, 오피스텔 자체는 아버지가 구해 주시긴 했으나, 그러지 않아도 독립할 생각이었다. 청와대가 있는 종로에서 국회의사당까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기도 하고. 정치판에 뛰어든 이상, 대한민국의 꼭대기에 있는 청와대에서 출퇴근하는 건 그림이 굉장히 이상하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국회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모를 리가 없었다. 정치에 깊게 관심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평범한 국민들이라면 대통령의 얼굴은 알아도 그 자제들까지 큰 관심을 가지진 않으니까. 관심이 있어도 그나마 활동이 잦은 둘째 형의 얼굴을 아는 정도랄까. 당연한 말이지만, 여의도는 이야기가 다르다. 대한민국 정치의 심장과도 같은 곳. 정치판에 발을 담그고 있다면, 나를 모를 수가 없지. 결국 청와대를 나와 출가한 것은 일종의 보여주기식이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닌. 나만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 나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이지. 허나, 그렇다고는 해도 야당 측에서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의 지지층이 확고한 만큼, 반대파 또한 그 의견이 굉장히 강경하니까. “머리는 이 정도면 됐고.” 깔끔하게 머리를 올리고는 아버지가 사주신 정장을 빼입었다. 혹자들은 대통령 가족이라고 해서 명품으로 도배를 하거나 사치를 부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서민들과의 거리감을 느끼지 않도록 명품은 최대한 지양하고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하여 브랜드가 아예 없는 옷을 입으니까. 물론 싸구려 옷은 아니다. 청와대의 전속 재단사가 한 땀 한 땀 박음질해서 만든 옷이니까. 정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아버지 성격상 직접 의뢰하셨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지. 휴대폰과 지갑을 챙겨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부스럭. 주머니에 무언가가 들어있었다. 여유 단추를 넣어 준 게 아닐까 하고 손을 넣자, 웬 봉투가 하나 튀어나왔다. 봉투 속에는 한 줄의 글귀가 적힌 쪽지가 들어있었다. -길은 좁을지언정,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보자마자 피식 입꼬리가 휘어졌다. 아버지가 직접 쓴 필체다. 게다가 이 내용. 남들이 보면, 단순한 명언 같아 보이지만 내게는 다르게 느껴졌다. 한 집안의 막내아들로서 형제들을 제치고 올라서기는 쉽지 않지만.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 현재 청와대와 정치판에서 둘째 형, 최지원에게 힘이 실리고 있지만, 내가 언제든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갈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두겠다는 뜻. 아버지의 마음만 열려 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바늘구멍과도 같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단순히 둘째가 유력하다고 해서 다른 형제자매들이 포기할 만큼 욕심이 적은 사람들이 아니니까. 첫째 형은 이미 정계에 입문해 경상북도의 도지사로 본인만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는 중이고. 셋째 형은 여당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셋째 형과 쌍둥이인 누나, 최은실은 여당에서 국회의장까지 지낸 박태원 의원의 며느리로 들어가 야욕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매형이 차기 서울시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들었을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지. 물론, 넷째인 막내 형은 제외다. 아예 정치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아버지의 눈 밖에 난 데다가 연예계 엔터 사업으로 자리를 잡고 잘 나가고 있으니까. 그러나 다른 형제들보다 가장 위협적인 건 역시나 둘째 형, 최지원이다. 오래도록 아버지의 신임을 사 왔고 대부분의 정치인들 또한 그것을 알고 있으니까. 머리도 비상하기에 아마 오래지 않아 내가 정계에 입문하려는 의도를 눈치 챌 것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다른 형제들에게 알릴 만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본인 혼자서 파악한 뒤, 계획을 세우는 게 둘째 형의 스타일이니까. “후우.” 발톱은 숨기되, 날카롭게 벼려 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정상에 설 수 있을 테니까. 어느 새 시간은 7시 2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첫 출근이다. 아무리 곱게 자랐다고 해도 군대에서만 2년하고도 6개월을 더 보냈다. 9시까지 출근이라고 해서 시간에 딱 맞춰서 갈 만큼 사회생활을 못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시간 개념이 더욱 철저한 국회에서는 더욱 더 중요한 일.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집을 나섰다. * * *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시간은 8시가 채 되기 전이었지만, 사무실엔 한 명의 여성이 벌써 출근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최지훈입니다. 오늘부터 출근하기로 한…….” “아, 지훈 씨.” 그녀는 나를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 있던 펜으로 파티션의 한 공간을 가리켰다. “의원님한테 이야기는 들었어요. 저쪽 책상 쓰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자리 구조상, 여성이 앉아 있는 곳은 보좌진의 책상 중 상석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5급 보좌관의 자리라는 것이다. 이치현 의원실의 보좌관은 두 명으로 남성과 여성이 한 명씩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저 여성은 필시 한유라 보좌관일 터.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게 말했다. “책상에 국회 가이드랑 업무 지침서 올려 뒀으니 그거라도 읽고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꽤나 두꺼웠다. 읽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특별히 암기할 만한 사항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국회보다도 청와대가 상급 보안 시설인 만큼, 지켜야하는 사안 자체는 청와대와 다를 게 없었으니까. 업무 가이드도 청와대에서 아버지와 많은 ‘삼촌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꿰고 있는 것들이었고. 그래도 혹시나 내가 모르는 사항이 있을까 싶어 다시금 내용을 읽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나둘씩 사무실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등장한 건 8급 비서 오태용. 그는 들어오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보좌관님. 퇴근 안 하셨어요?” “처리할 게 있어서.” “아이고…… 몸 상하시는데.” 한유라는 더 대답하는 서류에 집중했다. 그게 익숙하다는 듯 오태용은 대답을 듣는 대신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 벌써 오셨구나. 최지훈 비서님 맞으시죠?” “예, 맞습니다.” “오태용입니다. 8급이고요. 와, 근데 TV로만 봤었는데…….” 그는 신기하다는 듯이 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도요.” 잠시 후 9급 비서 김한나가 도착했고. 반응은 오태용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8시 40분이 되었을 즈음, 6급 비서관 하나가 들어왔다. “보좌관님 벌써 출근…… 아니, 옷이 그대로시네. 퇴근 안 하셨구나.” “응.” “어제 금방 들어간다며 저희 보고 먼저 퇴근하라고 하시더니만……. 차라리 저희랑 같이 하시지.” “됐어.” “저한테 맡기고 들어가서 쉬세요. 어차피 오늘은 의원님도 강선우 보좌관님이랑 지역구 보러 간다고 출근 안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안 그래도 오후에 반차 냈어. 이거 처리하고 들어가서 쉴 거야.” “어휴, 잘하셨어요.” 그는 가식적인 목소리를 내고는 본인의 자리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나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원래 저런 성격인가 싶었는데. “비서관님.” 옆에 있던 오태용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여기 최지훈 비서님 출근하셨거든요.” 나는 바로 그에게 인사했다. “최지훈입니다.” 김치호는 나를 흘겨보고는. “아. 왔구나.” 불편한 기색이 여실히 드러나는 목소리. “반가워. 내가 사수니까 말 놔도 되지?” 그는 거만하게 한 손을 내밀었다. 그래, 왜 텃세가 없나 했다. 여당 국회의원실이었다면, 호의적으로 대하는 게 정상이지만, 이곳은 야당 국회의원 이치현의 사무실. 나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게 정상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 점은 당연히 각오하고 왔다. 오히려 친절했으면, 더 수상하다고 여겼을 테지. 애초에 아버지께서 날 이쪽으로 보내신 의도 자체가, 나를 경계하고 증오할 수밖에 없는 야당의 텃밭에서 버텨 살아남아야 능력을 인정해 주신다는 것이었을 테니까. 이런 차가운 대우는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반갑지. “예,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김치호는 나를 위아래로 스윽 훑어보더니. “군 간부 특채 전형으로 왔다고?” “맞습니다.” 나에게 보란 듯이 코웃음을 쳤다. “국회 일은 하나도 모르겠네.” “그래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의도는 열심히 한다고 의미가 없는 곳이야. 잘해야지. 아, 뭐 열심히 하면 아버지는 알아 주실 수도 있겠네.” 그는 피식 입꼬리를 비틀며 비꼬는 말을 남기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8급 비서는 눈치를 보더니 슬쩍 의자를 옮겨 조금 더 떨어져 앉았다. 그럴 수밖에. 6급 비서관이 저렇게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데 나랑 가까워졌다가는 괜히 핀잔을 먹을 수도 있으니까. 집안 때문에 괴리감이 들 수도 있고. 내가 이치현 의원실에 들어왔다고 한들, 나의 피는 바뀌지 않는다. 나의 출신 성분은 청와대다. 무엇보다 친해졌다가 이쪽 정보가 여당에 들어가는 건 원치 않을 테니까. 김치호 비서관도 후환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리는 없었다. 6급 비서관이라면, 정치판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있을 터. 대한당으로 넘어갈 게 아니라, 계속해서 민국당에 남아 있을 거라면 나를 적대시해도 크게 손해 보는 건 없을 테니까. 야당과 여당의 차이가 이곳에서 드러나는 것이지. 그때, 전화를 받은 한유라 보좌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유상국 의원실 좀 다녀올게. 치호가 지훈 씨 기본 업무 좀 알려 줘.” “예, 알겠습니다.” 김치호는 고개를 꾸벅이며 한유라를 배웅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나가기 무섭게. “어이, 최지훈.” 손가락을 까딱이며 나를 불렀다. “예, 비서관님.” “우리 다음 주에 청문회 있는 거 알지?” “오동렬 국토부장관 후보자 말씀이시죠?” “어. 그거 관련해서 우리 쪽에 제보가 하나 들어왔단 말이야. 오동렬이 몇 년 전에 차명으로 땅을 샀는데 그게 얼마 전에 그린벨트 풀려서 돈을 벌었다고. 그거 관련 자료들 저쪽 회의실에 모아놨으니까 한번 찾아볼래?” 업무 설명 대신, 바로 실무 투입이라니. 설명해 주기도 싫다는 거겠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럴 수 있다. 8급이나 9급이라면 모를까, 7급 비서라는 자리는 바로 실무에 투입이 가능해야 뽑힐 수 있는 자리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업무를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깍듯하게 대답을 하고는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하.”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카트에 서류가 넘칠 정도로 가득 담겨 있다. 최소 수만 장. 이건 엿 먹이는 거지, 업무를 맡긴 게 아니다. 스팀이 확 올라왔다. 뺑이나 치라는 뜻이니까. 그런데 그 순간. 지잉지잉-.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몇몇 알지 못하는 내 번호에 스팸 문자가 올 리도 없고. 첫 출근이니 가족 중 하나인가 싶어서 휴대폰을 들었다. 그런데 문자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건. -보낸 이: 21 -사진 미래를 알려 주는 그 문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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