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놈인지, 안 될 놈인지 (2)2021.11.07.
“사실이야?” “예. 민국당 의원 측에서 전달받은 내용이니 틀림없을 겁니다.” “……허어.” 자신의 수족과 같은 김 실장에게 보고받은 사실에 둘째 최지원은 경계심 짙은 탄식을 뱉었다. “왜지?”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림이었다. 수능 직후부터 돌연 입대까지. 막내 최지훈의 행보가 워낙 독특했기에 주의를 하고 있었는데 전역하자마자 정계로 입문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이쪽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저 아버지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막내로만 생각했지, 정치를 꿈꾸거나 아버지의 뒤를 이을 엄두를 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대통령의 나이가 일흔을 넘어가는 현재 상황에서 후계 1순위는 자신으로 확고하게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아버지의 뜻인가?”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둘째 최지원은 판사복을 벗으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어느 의원실로 출근하는데?” “이치현 의원실입니다.” “……뭐?” 그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졌다. “민국당 이치현? 내가 아는 그 검사 출신 이치현?” “예, 맞습니다.” 머릿속이 혼잡해졌다. ‘대체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당인 대한당으로 입문을 시켰다면, 막내에게도 기본적인 정치를 가르치고 인맥을 형성시킨 뒤, 때가 되면 적당한 자리 하나를 쥐여 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이야기가 다르다. 현대 대한민국 정치에서는 어느 당으로 입문을 했느냐가 그 사람의 정치관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 정치관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게 사실이다. ‘출신 성분’이라는 게 단순히 조선시대에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전라도와 경상도, 대한당과 민국당, 출신 학교 등 어떻게든 한 가지 고리만 생기면 엮는 게 대한민국 정치판이니까. ‘보통 여당도 아니고 무려 이치현 의원이라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이치현 의원은 검찰 시절 아버지의 사람이었다가 현재는 서로 등을 돌린 인물이다. 그렇기에 더욱 최지원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의중을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원래부터 자식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움직이시는 분이지만, 이번에는 더욱 더. “지난 6.25 행사에 막내 도련님을 데려간 것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닐까요?” “글쎄.” 당시 6.25 기념식에 막내를 데려가는 게 예상외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군에서, 그것도 최전방에서 간부까지 했던 막내가 전역했던 직후였던지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뭔가 짚이는 건 없나?” 김 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역 이후부터 막내 도련님의 거취를 계속 좇고 있긴 하나, 의심되는 정황이나 상황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청와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까지는 알 수 없는 터라, 각하와 독대하여 나눈 대화까지는 파악할 수 없기에…….” “그렇지.” 다른 공간도 아니고 청와대의 대통령 관저는 아버지와 가족 그리고 고태욱 비서실장 외에는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니까. 지난 6.25 기념식에서 일어난 아버지 총격 테러 사건 이후로는 심지어 요리사를 포함해 관저의 미화와 관련된 다른 직원들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을 지경이고. “일단 막내 도련님 뒤는 계속해서 추적해 볼까요? 이제 청와대를 출가하셔서 여의도로 거취를 옮기신지라 조사하기는 더 쉬울 겁니다.” “아니야, 됐어.” 최지원은 손을 저었다. “지훈이 그놈이 어렸을 때부터 눈치 하나는 장난이 아니었거든. 오히려 청와대를 나오면서 경계심이 더 짙어졌을 거야. 지금 추적하면 위험하니까 당분간은 거리 두고 있어. 게다가…….” 그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오히려 국회로 들어갔으니, 굳이 그림자를 붙이지 않아도 일거수일투족을 더 감시하기 쉬울 거야.” “하긴, 국회에는 판사님의 사람이 훨씬 더 많을 테니까요.” 최지원은 음흉하게 미소를 흘렸다. “그렇지.” 띠리리링-. 그때, 인터폰의 전화벨이 울렸다. 최지원은 미간을 구기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강 비서. 내가 김 실장이랑 회의할 때는 방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그런데 지금 고태욱 비서실장님이 와계셔서요. 그는 흠칫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고 실장님이 오셨다고?” -예. 지금 앞에 계십니다. 최지원은 김 실장에게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김 실장 내보낼 테니 바로 들어오시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굳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아도 맥락을 파악한 김 실장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한 발 물러났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아니야. 가서 일 봐. 저녁에 연락하지.” “예, 판사님.”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이 노친네는 매번 연락도 안 하고 온다니까.” 그가 구시렁거리는 사이, 다시금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최지원은 언제 툴툴거렸냐는 듯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실장님 오셨습니까?” “예, 도련님.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연락하고 만날 정도로 예의 차릴 사이는 아니잖습니까? 언제든 편하게 오셔도 됩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며 다가왔다. “조금 전에 김 실장이 나가는 것 같더군요.” “아, 네. 와서 차 한잔했습니다.” 최지원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소파로 손님을 안내했다. 그러나 고태욱 비서실장은 불편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김 실장, 법원 사람도 아닌데 자주 드나들면 세간 사람들 눈에 띌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제하겠습니다.” 최지원은 가면 속에 불쾌한 감정을 숨기고 미소를 지었다. “실장님께서 법원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도련님께 알려 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호칭은 늘 도련님이었다. 판사로 임용이 되고, 부장 판사 직함을 달았을 때. 모두가 판사님이라 불렀지만 고태욱만은 최지원을 ‘도련님’으로 불렀다. 그를 ‘후계자 최지원’이 아니라, ‘최준석 대통령의 아들’로 본다는 의미였다. 즉, 고태욱이라는 사람 자체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아니라, 최준석의 사람이라는 뜻이지.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아무리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 혹은 현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한들, 최준석 외에는 절대 머리 숙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처자식까지 버리고 대통령께 충성한 사람이니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막내 도련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오래 끌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음 주부터 막내 도련님이 국회로 출근하실 겁니다.” 최지원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훈이가 국회로 나간다고요?” “예. 이치현 의원실에 7급 비서로 출근하게 될 겁니다.” 그는 여전히 놀란 듯이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가는 건 둘째 치고, 왜 이치현 의원실로 가는 겁니까?” “둘째 도련님을 위해서입니다.” 최지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를 위해서라니요?” 고태욱은 특유의 무덤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막내 도련님께서 대학도 진학하지 않으셨고, 군대를 다녀오셔서 아무것도 안 하고 계시잖습니까?” “그렇죠.” “뚜렷한 목표가 없이 방황하고 계시지만, 머리는 굉장히 비상하신 분이고요.” 최지원은 유감이라는 듯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그렇기에 각하께서 오래도록 고민하시다가 차라리 정치라도 배워서 후일, 도련님의 책사로 쓸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국회로 보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한다는 말에 최지원은 탄복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물론, 막내도련님을 거두실지 말지는 지원 도련님의 선택이고요.” “고민할 게 있겠습니까?”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형제로서 저야 고마울 지경이죠. 이 살얼음판 같은 정치판에서 혈육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태욱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혹시나 막내 도련님이 국회에 가시는 것을 보고 걱정하실까 봐 직접 일러 드리려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걱정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최지원은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가족인데요. 가까이 있으면 좋은 거죠.” “그렇죠. 맞는 말씀입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가 보겠습니다. 업무 시간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실장님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최지원은 웃으며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고태욱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을 떠나갔다. 둘째 최지원은 문을 닫고 난 뒤, 창가로 다가갔다. “하.” 그의 입가에선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잔망스러운 막내가 정치를 배워서 나를 보필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약 아버지께서 나이가 드신 탓에 이상향을 꿈꾼다면, 그의 생각은 이해가 가지만, 막내 녀석이 그 뜻을 순순히 따를 리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우리 형제들이 어떻게 자라고 성과에 따라 어떤 대우를 받아 왔는지 직접 눈으로 봐 온 놈이 아무런 계획 없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리라고는 절대 생각지 않으니까. 허나, 지금 당장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고 실장까지 보내서 이렇게 말할 정도면, 당분간은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니까. 그렇다고 최지원이 손 놓고 구경할 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랬다면, 차남으로서 아버지의 총애를 사는 일 자체가 없었을 테지. 그는 휴대폰을 꺼내 곧장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황 의원님. 잘 지내셨죠? 다름이 아니고 뵙고 이야기 나누고픈 사안이 있어서요. 조만간 술 한잔하시죠.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요. 예, 예. 그러면 그때 뵙겠습니다.” 최지원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휘어졌다. * * * “각하.” 고태욱 비서실장은 고개를 꾸벅이며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갔다. “왔나?” 그의 입장에도 최준석은 서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방금 둘째 도련님 뵙고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어떻게 반응하던가?” “처음 들은 시늉을 하긴 했으나,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눈치였습니다.” “역시…….” 그제야 최준석 대통령은 펜을 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의심하지는 않았고?” “의심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경계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 “예.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 말뜻은 이해한 것 같습니다. 당분간 직접적으로 막내 도련님을 건들거나 해코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 “간접적으로는?”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고태욱 비서실장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답을 내놓았다. “가만히 손 놓고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제가 좀 나서 볼까요?” “아니, 됐어.” 최준석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기 새라고 해서 어미 새가 평생 지켜 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 혼자 살아 가는 방법을 익혀야지. 알아서 잘 살아남길 바라는 수밖에.” “근황 들어오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가 봐.”